|
제 3 장 다소 시민 바울과 헬라 문화
제 1 절 바울과 헬라 문화의 수용
바울서신에는 단 한번의 언급도 없이 단지 누가에 의해서 바울이 다소 시민 혹은 다소 출생으로 밝혀진 것에 대해서 논의하면서 레가스는 다음과 같은 주장을 편다.
누가의 작품에는 그러한 (바울의) 기원을 요청할만한 어떤 요소도 없다. 21:39에서와 같이 그(누가)는 자신이 묘사하는 상황에서 그것(바울이 다소 출생이라는 것을)이 주는 이점을 사용하는 방법을 알고 있지만, 분명히 누가는 바울의 예루살렘과의 연계성을 밝히는 데에 더 많은 관심을 쏟고 있다. - 중략 - 바울의 로마 시민권과는 대조되게 다소 시민권에 대한 바울의 언급은 사도행전에서 고립된 것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레가스에 의하면 ‘다소 시민 혹은 다소 출생의 바울’은 사도행전 이야기에 긴요하지 않을뿐더러 바리새인 혹은 로마 시민 바울을 보충하는 신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다소 시민 바울’ 역시 누가가 제시하려 한 중요한 바울상 중에 하나라는 것은 사도행전 이야기의 다음과 같은 검토를 통해 알 수 있다.
먼저, 주목받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도행전에서 ‘다소인 사울’(Sau/loj Tarse,a)은 부활한 예수에 의해 처음으로 알려진다(9.11). 다메섹의 아나니아에게 현현한 예수는 아나니아가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고(9.13),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을 결박할 권한을 대제사장들에게서 받은”(9.14) 것으로 알고 있는 바울을 ‘다소 사람 바울’로 명명하는 것이다. 특별히 9.11에서 예수는 아나니아에게 바울의 거처에 대한 구체적이고 정확한 ‘정보’(information)를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누가가 보도하는데, 그것과 마찬가지로 예수가 일컫는 ‘다소 사람 바울’은 독자로 하여금 바울을 알아 볼 수 있는 우선적인 ‘정보’로 간주하도록 한다.
9.30에서 바울은 예루살렘의 헬라파 유대인들의 적대적 행위 때문에 예루살렘의 크리스천들에 의해서 다소로 보내진 것으로 보도된다. 누가는 11.25에서 바나바가 안디옥 교회의 사역을 위해서 바울이 머물고 있던 다소로 찾아간 것으로 기술하는데, 이러한 기술은 바울이 비록 예루살렘에서 양육 받았지만(22.3) 여전히 다소는 사도행전의 바울에게 피난처를 제공할 정도로 바울과 친밀한 관계에 있다는 점을 알게 한다.
다소 사람 바울에 대한 구절은 21.39에 와서 다시 나타나는데, 이곳은 성난 유대인들로부터 바울을 구출한 로마의 천부장 글라우디오 루시아에게 바울이 자신의 정체를 밝히는 장면이다. 바울이 이집트인 폭동가인지를 의심하고 있는 로마의 천부장 앞에서 바울은 자신의 신분을 다소 시민으로 밝히고 있다. 이집트인 폭동가와 다소 시민의 이러한 병렬적(juxtaposition) 구성에 대하여 헨헨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천부장이 의심하고 그 다음에 바로 그 의심을 거두는 것은 기독교의 (정치적) 무죄(acquittal)를 선언하는 것이다. - 중략 - 천부장이 바울에 대하여 그의 의심을 표현하는 것은 갑자기 바울에 대하여 그가 생각하고 있는 바를 확신에 차서 말하는 군인의 순진함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처음부터 기독교는 정치적 메시아주의와 관계가 없다고 가르쳐지고, 또한 즉시 그것의 비정치적 성격을 깨달은 독자들을 교훈하는 것이다.
물론, 바울이 이집트 선동가라는 의심을 정정하는 측면에 주목한다면 이 구절이 헨헨의 주장, 즉 바울의 비정치적 성격, 나아가 기독교의 정치적 무해성을 알리려고 한다는 주장에 타당성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하필이면 바울이 왜 자신을 ‘로마 시민’이 아니라 ‘다소 시민’으로 자신을 드러냈는지 묻게 된다. 다시 말하자면, 정치적 변증을 위하여 바울이 자신에 대한 오해를 정정하고자 하였다면 왜 굳이 다소 시민으로 자신을 밝히느냐 하는 것이다.
로마 시민으로서의 바울의 입장이 천부장에게 커다란 중요성을 가진다면, 그리고 실제적으로 그 어떤 정보도 이 지점에서 바울의 목적을 도울 수 없다면, 사도행전의 독자들은 바울이 이 시점에서 그의 로마 시민권에 대해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대신에 다만 그의 다소 시민 됨만을 자랑스럽게 강조했다는 누가의 보도에 어리둥절해 질 수밖에 없다.
랩스키는 이러한 의문이 램지의 표현대로 ‘현대적 성향’(modern tendency)에서 비롯된 것으로 간주하면서 바울이 다소 시민권을 우선적으로 밝힌 것이 부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로마 시민권에 비해 다소 시민에게 우선권을 부여하는 것은 고대의 논리(ancient logic)에 맞는 것이다. 렘지는 현대의 애국심(patriotism)은 국가와/혹은 종족을 향하여 배타적인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고대 도시 시민들 가운데 자치 도시를 향한 충성심(patriotism)의 강도(intensity)를 과소평가하는 것은 현대적 성향이라고 지적하였다. 그는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고대 그리스 시민권자들에게 그의 도시는 그의 모든 충성심을 흡수했다. 전체 그의 국가가 아니라, 그의 도시가 ‘아버지의 땅’(fatherland)이었다.” - 중략 - 2세기에 들어설 때까지 원칙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어머니 도시(mother-city)와의 관계에 비추어 생각하는 것이 줄어들지 않았다. 그 때 로마인 됨은 단지 ‘국가적 정체성’(national identity)을 제공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랩스키는 이러한 관점에서 바울이 밝힌 다소 시민권이 로마 시민권 보다 열등한 것이라거나 나중에 밝혀지는 로마 시민권을 위한 문학적 장치라고 보는 것에 반대한다. 다소는 당대에 정치, 경제, 문화적 우수성으로 널리 알려진 도시였고, 그 도시민들 역시 그 도시의 명예를 자랑스럽게 생각하였다. 이러한 견해는 렌쯔에 의해 보충될 수 있다.
그의 오해된 정체에 대한 바울의 반응은 사도행전의 마지막 장들 전체에 걸친 바울의 사회적 지위(social status)에 관한 누가의 민감함을 대변하고 있다. 이집트인으로 오인되는 것은 심대한 사회적 불명예(immense social slur)이다. 그리스 시민권자들은 그들의 세금 면제와 다른 특권들을 통하여 많은 이집트인들과 사회적인 차이를 유지하였다. - 중략 - 바울은 즉시 이러한 사회적 모욕을 공격하면서 재빠르게 그의 사회적 지위(status)와 자격(credentials)을 주장한다. - 중략 - 그의 다소 시민권은 천부장에게 커다란 인상을 남기지 않지만 그러나, 이것은 그 백부장의 촌스러움을 나타내는 것일 뿐이다.
바울이 자신의 다소 시민권을 밝힘으로써 자신의 신분과 특권, 그리고 명예를 나타내는 것은 ‘다소 시민 바울’이 사도행전 이야기의 주요한 한 바울상이라는 걸 증명해 줄 수 있다고 판단된다.
이와 같이 사도행전에서 ‘다소 시민 바울’이 주변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레가스 류의 주장과는 달리 누가는 ‘다소’를 바울의 고향이자, 명예와 특권 등등을 제공하고 있는 곳으로 그리고 있다. 그런데 다소가 바울과 누가공동체 당시 문화와 학문의 도시로 명성을 떨쳤다는 점이 특기될 만 하다.
다소는 폼페이우스 정복 이후 길리기아의 로마 속주의 수도로서, 아우구스투스는 그곳의 세금을 면제해주고 철학과 수사학의 중심지로 발전시켰다. 티아나의 아폴로니우스(Apolonius of Tyana)가 비록 그곳이 배움의 장소라기 보다는 사치스러운 곳이라 평하고 그곳을 떠났어도 여러 문헌들에서 다소는 특별히 스트라보(Strabo)의 찬사에 걸맞은 곳으로 등장한다.
다소의 사람들은 매우 열심히 철학뿐만이 아니라 모든 학문에도 헌신적이다. 그 점에 있어서 그들은 아테네, 알렉산드리아, 또는 학파나 철학자들의 강의가 있는 어느 곳이나 다 능가한다. ... 더 나아가, 다소는 모든 종류의 수사학파가 존재하고, 대체적으로 그곳은 많은 인구뿐만이 아니라 가장 강력하고 그리하여 어머니 도시로서의 평판을 유지하고 있다.
사도행전의 바울은 이와 같은 도시의 평판에 어울리는 수사학적 능력과 철학적 소양을 갖춘 것으로 묘사되는데, 누가는 바울이 자신의 다소 시민권을 밝히는 바로 그 장면에서(21.39) 학문의 도시 다소의 특징을 나타내는 수사학을 사용함으로써 바울의 말에 신뢰성을 더하도록 한다.
이상의 논의에서 살펴보았듯이, 누가는 다소를 바울의 고향으로, 또 피난처이자 본격적인 사역을 준비하는 곳으로서, 그리고 바울에게 명예와 특권을 선사하고, 또 그 학문적 영향을 끼친 곳으로 설정한다. 이렇게 바울을 헬라 도시인 다소와 긴밀히 연관시키고자 하는 누가의 반복된 보도를 통해 우리는 ‘다소 시민 바울’ 배후에 놓인 누가공동체의 여러 정황 중에 특별히 헬라 문화와의 관계 설정 정황을 상정하고, 그에 따라 ‘다소 시민 바울’을 해석할 수 있다. 상술하자면, 이방세계에 자리잡은 누가공동체가 대면하게 된 헬라 문화와 그 세계를 어떻게 평가하고 위치 지울 것인가, 또 그들에게 이 ‘도’를 어떻게 소개하고 선교할 것인가의 관계 설정 정황이 바울서신에서는 한 번도 밝혀지지 않은 ‘다소 시민 바울’을 배태한 정황이자 역시 ‘다소 시민 바울’을 해석할 곳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정황 설정은 17.17-18을 통해서 지지를 얻을 수 있는데, 그곳에서는 바울이 근동 세계 문화의 중심지인 아테네의 ‘우상’에 관한 문제를 두고 유대인, 경건한 사람들, 그리고 장터에서 만나는 사람들 및 특별히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철학자들과 변론하고 있다. 아테네에서 사도행전의 바울상의 한 면목, 즉 헬라 문화 세계에서 수사학적 능력에 철학적 교양을 겸한 ‘다소 시민 바울’의 모습이 뚜렷이 나타날 뿐만이 아니라 바울의 행적을 통해서 헬라 문화와의 관계 설정의 특징이 드러난다고 하겠다.
먼저, 누가가 제시하는 아테네에서의 바울은 무엇보다도 소크라테스와 여러 유사점을 지닌다. 헨헨은 이 점을 분명하게 지적하였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소크라테스에 대한 암시적인 언급들(allusive references)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바울은 소크라테스와 같이 장터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을 향해 얘기하고 있다. 그들은 그가 소크라테스와 같이 새로운 신들을 소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이유 때문에 소크라테스는 법정에 서서 사형선고를 받게 되었다. … 중략 … 그래서 누가는 그의 이름을 언급함 없이 소크라테스의 그림자를 그려내고 있다.
바울이 소크라테스와는 달리 아레오바고에서 사형선고를 받지 않았다는 점에 주의한다면 헨헨의 주장은 받아들일만 하다. 즉 누가는 자신의 위대한 선교사 바울에게 헬라 철학의 대표자격인 소크라테스의 색깔의 입히고 있는 것이다. 누가는 사도행전의 바울의 행적을 누가-행전에서 절대적 위치를 갖는 예수와 베드로의 그것과 병행을 이루게 하는데, 이제 헬라 철학의 대표자 소크라테스가 바울의 병행 대상으로 놓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개인 소크라테스에 대한 찬사가 전제된 것일 뿐만이 아니라 그가 상징하는 헬라 철학 혹은 문화에 대한 존중을 의미할 수 있다. 이렇게 소크라테스의 실루엣 속에 있는 바울은 그의 연설을 통해서 아테네인과 그들의 문화로 대변되는 헬라인과 헬라 문화의 특정한 부문은 바울 자신, 또 그의 선포와 연속선상에 있음을 밝힌다.
헬라 철학의 대표적인 두 학파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철학자들은 바울이 예수와 부활을 전하는 것을 보고 두 가지 반응을 나타낸다. 첫째는 “이 말쟁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가?”라는 다소 경멸적인 어투의 반응이고, 두 번째는 바울을 “이방 신들을 전하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바울이 “새로운 가르침을 말한다”(h` kainh. au`,th h` u`po. sou/ laloume,nh didach,)고 생각하는 데에는 일치하였다. 그런데 두 학파의 철학자들은 바울이 가르침이 새로운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과는 달리, 사도행전의 바울은 자신의 가르침이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님을 주장하고 있다. 오히려 자신이 전하는 것은 무지 중에 있었지만 아테네인들이 예전부터 경배해 오던 것이고, 자신의 가르침은 바로 그 신에 대한 무지를 일깨우기 위한 것이다.
여기 저기 다니며 여러분이 섬기는 것들을 보다가 나는 또한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겨진 단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모르면서 경배하는 그것을 내가 지금 여러분에게 알려 드립니다(17.23).
두 번째로 우리는 바울이 자신의 논지를 강화하기 위하여 헬라 시인의 말을 인용했다는 점을 기억할 수 있다. 즉 헨헨의 주장처럼 “그 인용(aratus Phaenomena 5)은 사도행전의 다른 연설에서 성경 인용과 같은 방식으로 입증의 말(proof)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헨헨은 “성경 인용과 같은 방식”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밝혀 놓지 않았다.
사도행전에 나타난 유대인 관련 연설에서 연설자들은 자신의 논지를 구축하고 상대방에 대한 비판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성경을 인용하였다. 그것은 두 가지 전제에서 가능했다. 하나는 연설자와 청중들 모두가 성경의 권위를 인정한다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인용의 내용이 연설자의 논지와 부합된다는 것이었다. 이제 누가는 바울로 하여금 아라투스의 시구를 인용하게 함으로써 바울이 그 시구로 상징되는 헬라 문화의 권위를 인정하며, 그 시구의 내용이 바울의 연설과 부합된다는 점을 독자들에게 주지시킨다.
세 번째, 바울은 모든 인류가 한 조상으로부터 기인하였다고 말한다. 즉 바울에 의하면 “그 분(하나님)은 한 사람으로부터 인류의 모든 민족을 만드셨다”(evpoi,hse,n te evx e`no.j pa/n e;qnoj avnqrw,pwn, 17.26). 브루스는 이러한 혈통적 통일에 대한 말이 아테네인들에 대한 바울의 공격이라고 생각한다.
아테네인들은 그들의 고향인 아티카(Attica)의 땅으로부터 솟아난 "Auvto,cqonej"인 것을 자랑했다. 일반적으로 그리스인들은 야만인(barbarians)이라고 부르는 비그리스인들에 대해 그들 자신이 우월(superior)하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인종적 우월성에 반대하여 바울은 한 사람 즉 아담으로부터 기인한 인류의 단일성(unity)을 주장했다.
브루스는 혈통적 통일성에 대한 생각이 그리스인에 대한 공격이라는 점은 적절히 지적했지만, 그러한 생각이 선민 의식에 사로 잡혀 있는 유대인에 대한 비판 역시 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하였다. 그런데 이 혈통적 단일성에 대한 바울의 생각은 단지 혈통적 우월성을 주장하는 이들에 대한 비판의 기능만을 담당하는 것은 아니다.
바울의 이 말은 누가가 제시하는 족보의 사상과 맞닿는데, 아브라함을 기원으로 하는 마태의 족보(마 1.1-17)와는 달리 누가는 예수의 인간적 기원을 아담으로부터 산정하고 있다. 여기에는 누가의 혈통의 보편주의가 한껏 드러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구절에서 사도행전의 바울은 헬라 문화에 대한 연속성뿐만이 아니라 유대인과 헬라인간의 인종적 연속성까지 확보하려고 하는 것이다.
넷째, 바울은 하나님을 찾으려는 아테네인들의 노력을 인정한다. 즉 하나님은 연대와 거주의 경계를 설정하시면서 인류를 온 땅에 살게 하시려고, 또 하나님을 찾게 하시려고 모든 민족을 만드셨다(17.26-27). 마샬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모든 것에서 하나님의 목적은 하나님을 발견하려는 희망으로 사람이 하나님을 찾게 하기 위해서이다. 이 언어는 헬라적으로 어떤 성공에 대한 확신 없이 무엇이 진정한 (true) 혹은 신적인 것(divine)인가에 대한 철학적 탐구로 취급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이 경험한 하나님의 선함에 대한 엄숙한 갈망과 감사라는 구약적 의미로 취해지는 편이 더 낫다.
그러나 마샬의 주장은 이 연설의 청중이 아테네인들이라는 점에서 성립되기 어렵다. 곧 마샬 자신이 해석하고 있듯이 27절에 나타난 하나님이 각 사람에게서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은 지금 주요 청중의 하나인 스토아 철학자들의 사상인데, 바로 이 사상을 근거로 하여 그들은 지적 의미의 신적 존재를 탐구하였다. 그리고 바울의 연설에서도 하나님이 각 사람에게서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이 하나님을 찾는 것의 근거로서 채택되고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볼 때, 마샬의 주장과는 반대로 이 구절은 구약적 의미보다는 신적인 것에 대한 철학적 탐구라는 헬라적 의미를 우선적으로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즉 바울은 하나님이 각 사람에게 가까이 있다는 헬라적 사상에 근거한 하나님 발견 노력의 타당성을 긍정하고 있는 것이다.
다소 시민 바울이 아레오파고 연설을 통해 헬라인 및 그들의 문화와 지니는 연속적인 면을 분명히 드러냈다. 그러나 그 연설에는 그들과 그들의 문화를 비판하고, 더 나아가 그들의 종교 활동 중 특정 부분의 철폐를 요구하는 발언 역시 발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