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손주들이 젖먹이가 아니어서 돌봄이 양육 수준은 벗어났다.유치원이나 학교가 시작할 아침에 등원, 등교를 돕고 오후에 하원 그리고 하교하게 되면 그 시간에 맛추어 학원 돌봄을 하는 순서다. 그래도 아들네가 퇴근 귀가할 때까지 돌봄을 하다 보면 개인적인 시간에 제약이 많아 사회활동 하기가 쉽지 않았다. 우리 부부가 교대로 돌봄을 해도 서로 약속이 겹치면 한쪽이 포기 양보해야 한다. 보다 못해 20여 년 운영하던 사무실도 2년 전 코로나19 구실로 접고 홈오피스를 꾸린 이유다. 그러나 여러 해 동안 돌봄을 하다 보니 손주들과의 애착 관계가 깊어짐은 물론이거니와 천사 같은 티 없는 웃음에 행복감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손주 돌봄 책 두 권은 그 소중한 결과였다.
동창 모임에 나가 보면 가끔 손주 돌봄으로 모임에도 잘 나오지 못하는 친구가 있다. 술이 한 순배 돌고 나면 으레 "이제 우리도 인생을 즐겨야 지, 손자 안 봐줘."라며 대놓고 호기롭게 주장하는 친구도 있다.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겠지만 손주 돌봄을 일종의 시혜라고 보는 관점이 아닐는지? 아니면 이미 나이 들어 못다 한 인생이나마 되찾고 싶은 걸까? 그도 아니라면 돌봄에서 앞의 사례처럼 실망 끝에 나온 달관일까?
오늘도 방학을 시작한 손주 두 녀석이 와서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로 집안이 가득하다. 대형 소파에 집을 짓고 들어가 숨는 장난을 하는가 하면 뻐꾸기 노래를 할아버지에게 들어보라며 피아노 두드리는 소리, 할아버지와 체스를 하면서 나이트를 잡았다고 깔깔거리는 소리 하며, 적막강산이던 집안이 오랜만에 떠들썩했다. 아연 밝아진 분위기에 사람 사는 집 같은 느낌도 든다.
자랄 때 늘 형제뿐으로 조용했던 우리 집에서 자손이 많아 북적이며 서로 돕고 사는 이웃이 부러웠다. 잠시 후면 뒤치다꺼리에 골치가 아파질 저녁이 기다린다. 방학인 요즘 온 종일 돌봄을 하다 보면 파김치가 되곤 했다. 이어지는 학원 순례에 아이들도 힘들겠지만 찻길에 다칠까, 학원 시간에 늦을세라 신경을 곧추 세우다 보면 언제 하루가 다 갔는지 모른다. 오죽하면 '오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갑다' 라는 말까지 있으랴만 해맑게 빛나는 손주들의 눈망울을 볼 때면 모든 노고가 잊힌다.
아침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그분 말대로 내 노고쯤 알아주지 않으면 어떠리. '애 봐준 공은 없다'지만 손주들과 함께한 그 시간이 우리 부부의 노년에 가장 행복했음을 뒤늦게 돌아본다. 괴테는 "아무리 큰 공간일지 라도 설사 그것이 하늘과 땅 사이라 할지라도 사랑은 모든 것을 메울 수 있다."라고 했다. 오늘도 내리사랑에 나서는 이유라면 지나칠까?
차성기
저서 과학기술의 산책. 건설감정절차서 등 37책, 공저 3책 출간 한국과학기술정보협동조합 이사장 처음이자 마지막일 영국,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자유여행이 꿈같다. 여행기 쓰기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