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 1: 4 생명 - 요 1: 5 빛과 어두움
요 1: 4 생명 -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
이 구절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의 구원의 관계를 증언한다. 그것은 생명과 빛이라는 말로 표현하였다. 그 생명은 영적인 생명, 몸의 생명, 영원한 생명을 다 포함한다.
생명은 밝고 기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흔히 생일을 축하한다. 사람에게 있어서 죽음은 슬픔과 우울함이며 거기에는 두려움이 있다. 우리는 죽음을 축하하지 않는다. 무덤은 쓸쓸하고 적막한 곳이다. 그러나 생명의 봄은 밝고 기쁘다.
하나님께서는 생명의 원천이시다. 모든 생명은 하나님한테서 나왔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에 대해 “나는 생명이다”라고 증언하셨다.
* 요 11: 25 -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 요 14: 6 -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사도 요한은 그의 서신에서 그를‘생명의 말씀’이라고 표현했다.
* 요일 1: 1 -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또 ‘영생’이라고 말했다.
* 요일 5: 20 -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
그에게는 죄 사함으로 인한 죽음의 정복과 영원한 생명이 죄인들을 위해 준비되어 있다. 그 생명은 또한 사람들의 빛이다. 빛은 지식과 의, 기쁨과 즐거움을 가리킨다.
무지와 죄는 어두움이요 그것은 또한 슬픔과 고통과 죽음, 곧 영원한 지옥이다. 그러나 주 안에 있는 참된 지식과 의는 기쁨과 즐거움이며 그 결과는 영원한 생명이다. 우리는 과거에 다 어두움에 속해 있었다. 그러나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어두움에서 빛의 세계로 구원을 얻었다.
* 엡 5: 8 -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우리는 지식과 의, 그리고 거기에서 오는 기쁨과 즐거움과 영원한 생명을 얻었다. 그러나 빛이 어두움에 비취었지만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아직도 그 빛을 깨닫지 못하고 어두움 가운데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 고후 4: 3-4 – 3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4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그러나 하나님께서 은혜로 부르시는 자들에게는 이 빛이 비췬다.
* 고후 4: 6 -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감사하게도 우리 속에 이 빛이 비치었다. 또 지금도 하나님께서 은혜로 부르시는 자들에게 이 빛이 비칠 것이다.
1]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생명'으로 번역된 헬라어 '조에'(*)는 '영원한'(*, 아이오니오스)이라는 형용사를 수반하여 '영생'이라는 용어로 자주 등장한다(3: 15-16).
* 요일 5: 12 -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요한은 단지 '조에'라는 단어로써 영원한 생명을 묘사할 때도 많으며 본문의 경우도 그러하다. 한편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은 생명을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는(시 36: 9) 생명의 주인(시 104: 29-30)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구약성경의 생명관이 반영된 것이 본문의 '생명'(*, 조에)이다.
* 시 36: 9 - 진실로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
* 시 104: 29-30 - 29 주께서 낯을 숨기신즉 그들이 떨고 주께서 그들의 호흡을 거두신즉 그들은 죽어 먼지로 돌아가나이다. 30 주의 영을 보내어 그들을 창조하사 지면을 새롭게 하시나이다.
따라서 사도 요한은 '생명'이 바로 말씀이신 그리스도 안에 존재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 존재하고 있는 생명이 영원한 생명(영생)임을 명시한다(14: 6. 17: 3). 따라서 그리스도를 주로 믿고 영접하는 성도들에게는 영생이 부여된다. 그러므로 성도는 바로 그리스도 안에 본원적(本源的)으로 존재하고 있는 영생을 매개로 하여 영원한 하늘나라의 시민이 되는 것이다.
* 엡 2: 19 -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2] 사람들이 빛이라.
'빛'이라는 용어는 단순히 자연 현상인 빛을 가리키거나 빛과 어두움을 절대적 차원에서 대치시키는 이원론적인 종교 사상을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빛(the light, NIV)에 대한 개념은 구약성경의 맥락에서 발견할 수 있다.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은
(1) 빛을 발하는 구름이나 불기둥 가운데 현현하시는 분
* 욥 37: 15 - 하나님이 이런 것들에게 명령하셔서 그 구름의 번개로 번쩍거리게 하시는 것을 그대가 아느냐?
* 시 78: 14 - 낮에는 구름으로, 밤에는 불빛으로 인도하셨으며
(2) 감추인 것을 드러내시는 빛나는 분
* 욥 12: 22 - 어두운 가운데에서 은밀한 것을 드러내시며 죽음의 그늘을 광명한 데로 나오게 하시며
* 사 42: 16 - 내가 맹인들을 그들이 알지 못하는 길로 이끌며 그들이 알지 못하는 지름길로 인도하며 암흑이 그 앞에서 광명이 되게 하며 굽은 데를 곧게 할 것이라. 내가 이 일을 행하여 그들을 버리지 아니하리니
(3) 빛과 어두움의 주
* 암 5: 8 - 묘성과 삼성을 만드시며 사망의 그늘을 아침으로 바꾸시고 낮을 어두운 밤으로 바꾸시며 바닷물을 불러 지면에 쏟으시는 이를 찾으라. 그의 이름은 여호와시니라.
묘성(昴星) : 이십팔수(宿)의 열여덟째 별자리의 하나. 좀생이.
삼성(參星) : 이십팔수의 스물한째 별《오리온자리에 있으며, 중앙에 있는 세 개의 큰 별을 삼형제별이라 함》.
(4) 이스라엘의 영원한 빛으로 묘사되고 있다.
* 사 60: 1-2 – 1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2 보라. 어둠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따라서 요한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참되고 영원한 생명이 곧 인류에게 임할 참 빛이라는 사실을 피력하고 있다(1: 9). 그리고 본 절의 두 문장에서 '에이미'(*, '존재하다')의 3인칭 단수 미완료형인 '엔'(*)을 두 번 사용함으로써 이러한 생명과 빛은 창조되었거나 형성된 것이 아니라 본래부터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 존재하고 있었던 것임을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본 절은 성도가 "대저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광명중에 우리가 광명을 보리이다"(시 36: 9)라는 기쁨의 찬양에 이르게 한다.
요 1: 5 빛과 어두움 -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
1]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빛과 대조되어 나타나는 '어두움'(*, 스코티아)은 앞 절에 비추어 볼 때, 생명을 가로막는 죽임의 세력, 즉 사탄의 세력과 그 세력 하에서 부단히 죽어가는 이 죄악 된 세상을 상징한다.
원문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그리고 빛이 어두움 안에서 비추고 있다'(*, 카이토 포스 엔 테 스 코티아 파이네이)라는 뜻이므로, 본문은 이 죄악 된 세상과 빛이신 그리스도께서 역사적인 성육신을 통하여 죄악 된 세상인 이 세상 안으로 임하셨다는 뜻이다.
또한 그리스도의 지상 사역과 승천 후에 생명의 빛은 소멸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즉 요한은 '비추다'의 헬라어 '파이노'(*)의 3인칭 현재형을 구사함으로써 말씀의 빛이 쉼 없이 비추고 있음을 나타낸다.
따라서 생명의 빛은 지금도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16: 13) 성도들에게 비추이며 생명을 부여할 뿐만 아니라, 빛의 군사로서 어둠의 세력과 끝까지 투쟁하는 능력을 공급하고 있다.
* 딤전 1: 18 - 아들 디모데야! 내가 네게 이 교훈으로써 명하노니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
* 딤전 6: 12 -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
2]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깨닫지'의 헬라어 '카테라벤'(*)의 원형 '카타람바노'(*)는 본래 '굳게 잡다'라는 뜻으로서 본문에서는 '이해하다', '이기다' 등으로 번역될 수 있다. 여기서는 '깨닫다', '이해하다'로 번역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죄악 된 세상 속으로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를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십자가에 처형했다는 것이 바로 본서의 전반적인 맥락이다. 이러한 증거는 예수의 말씀에서 여러 차례 나타난다.(4: 5-26, 31-38. 5: 10-47. 6: 25-65. 7: 14-36. 8: 12-59. 9: 39-10: 18, 22-39. 12: 20-36. 13: 1-16: 33).
따라서 사도 요한은 영적으로 무지하여 생명의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깨닫지 못한 이 세상의 정체(正體)를 준열하게 드러내었다. 이처럼 어두움의 세력에 휘말린 세상이 이제 재림하실 그리스도에 의해 심판을 받는다는 사실을 요한계시록에 기록하였다.
그러므로 본문의 동사 '카테라벤'은 현실을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1) 복음을 '깨닫지 못하는' 죄악 된 세력의 실상을 깨우쳐 주며
(2) 이 죄악 된 세력들이 그리스도에게 속한 빛의 세력을 궁극적으로는 '이길 수 없는' 사실을 보여준다(히 11 장).
3]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는 신비한 존재이시다. 그는 인간의 상상이나 사고나 이해나 경험을 초월하여 존재하시며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만이 그분의 존재를 증명해 줄 수 있다.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말씀은 빛과 생명으로 세상에 오셨다고 말씀하고 있다.
(1)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
태초부터 계셨던 말씀은 하나님이신데 그가 이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나타나신 일에 대하여 1-3절에 걸쳐 그 근원을 밝혀주었다. 그런데 이 말씀 안에는 생명이 있고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다. 생명이 있다는 말은 “말씀”은 곧 생명이라는 뜻이다.
생명이란 말은 “조에”인데 이 말은 모든 것의 원인이 되며 근본이 되는 생명의 본질을 말한다. 예수님이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다시 살아나신 것도 그가 생명이시기 때문이며, 죽은 사람들을 다시 살리시는 부활의 권능이 그분에게 있는 것도 그가 생명이시기 때문이다.
그의 생명은 알파와 오메가의 생명이기에 그의 생명은 시작과 끝이 없다.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에 생명을 주는 하나님의 떡으로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므로 생명 자체이신 예수님만이 오직 “내가 곧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하실 수가 있다.
(2) 빛으로 오신 예수님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고 했다. 이 ‘말씀’의 생명은 이 세상에 빛으로 나타나셨다. 생명이란 말과 빛이란 말은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하나님의 생명이 빛으로 나타나셨기 때문이다. 요한1서 1: 5에서 “하나님은 빛이시라”고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실 때 이 빛을 세상에 나타내셔서 빛과 어두움을 나누셨다. 우리 주님은 요12: 45에서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다”라고 하셨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빛으로 세상에 오신 분이다.
창세기 1: 4에는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하는 말씀이 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창조역사가 시작되기 이전은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는” 상태였다.
말하자면 어둠에 깔려 있었다. 하나님은 이 같은 흑암의 상태에서 빛이 있으라고 하신 것이다. 이처럼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게 된 하나님의 역사는 빛 되신 하나님께서 그의 빛을 이 세상에 비추시도록 들어내 놓은 것이다.
그리하여 어둠을 한 곳으로 물리치고 빛을 나타내시어 이 세상을 빛과 어둠으로 갈라놓으셨다. 하나님은 이 빛 가운데서 세상을 창조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보시기에 좋으신 것이다. 하나님은 이 어두움의 세상에 첫째 날의 역사로 빛을 보내시어 어둠과 빛을 나누셨지만 우리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오히려 어둠의 사자인 사탄을 따르게 됨으로 다시금 어둠이 세상에 깔리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 빛은 다음 세 가지 뜻을 지니고 있다.
① 어둠을 물리치는 빛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세상의 어둠을 물리치시기 위하여 오셨다. 그러나 빛이 어둠에 비추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였다. 깨닫지 못했다는 말은 그 빛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 빛을 자기 것으로 소유하지 못한 것을 의미한다.
어두움은 빛을 싫어한다. 빛 가까이 있거나 그 빛을 받기를 원치 아니한다. 다만 성령으로 인도하심을 받는 사람들만이 빛으로 인도하심을 받게 되며 빛의 자녀들이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빛이시기 때문에 그를 영접하는 사람들은 어둠이 쫓겨간다. 어둠이 그의 인생을 지배할 수가 없다.
② 사망을 물리치는 빛이다.
이 빛이 오기 전까지는 모든 사람은 다 어둠의 자식들이요 사망 권세 아래서 사탄의 지배를 받아왔다.
그러나 이 빛을 받으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는 역사가 있다.
③ 생명을 공급하는 빛이다.
누구든지 이 빛을 받으면 하늘의 생명을 받게 된다.
이 생명의 빛을 받은 사람들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세례 요한은 이 빛에 대한 최초의 증언자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다. 빛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사람들에 의하여 증거되는 것이다. 세례 요한은 이 빛을 세상에 증언함으로써 많은 사람으로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려고 했다.
아직도 이 땅에는 어두움에 잠겨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들은 빛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성도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세례 요한과 같은 사명을 가지고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므로 모든 사람이 예수를 믿게 해야 한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태초부터 계신 자이시다.
그는 태초부터 계셨던 말씀이라고 불리신다.
그것은 그가 영원하신 하나님이심을 의미한다. 과연 그는 하나님이라고 불리신다(1절).
물론 그는 아버지와 구별되신다. 삼위일체는 하나님의 신비이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의 신성(神性)을 믿고 확신하자.
둘째,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만물을 창조하신 자이시다.
본문은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고 말한다.
그는 만물의 창조자이시며 우리는 그의 피조물이다. 온 세상과 우리의 존재의 뿌리는 그에게 있고 우리의 존재의 의미와 목적도, 또 우리의 행위의 가치 기준도 그에게 있다.
우리는 이 모든 문제를 그에게 질문하고 그에게서 대답을 들어야 한다.
셋째,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빛과 생명이시다.
그는 우리에게 참된 지식과 의, 기쁨과 즐거움과 영원한 생명을 주셨다.
그는 우리가 죄인인 것과 그가 죄인의 구주이심을 알려 주셨고, 그를 믿는 우리에게 실제로 죄 사함과 의롭다 하심의 구원을 주셨으며, 또 구원받은 자들에게 이 세상에서의 기쁨과, 내세의 천국과 영생의 복을 주셨다.
|
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생명은 밝고 기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흔히 생일을 축하한다.
💖세상의 모든 희망은 언제나 오늘 부터 입니다.
언제나 함께하는 마음과 좋은 인연에 감사드립니다.
건강 하시고 행복한 날 되시길 바랍니다.💖
생명은 밝고 기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흔히 생일을 축하한다.
설교 감사합니다.
생명은 밝고 기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흔히 생일을 축하한다.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