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사곡(碑史谷)에 맴도는 60년 원혼(冤魂)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 깊은 계곡 양지 녘에
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 모를 이름 모를 비목이여
먼 고향 초동친구 두고 온 하늘가
그리워 마디마디 이끼 되어 맺혔네!』
1968년에서 1970년대로 들어서면서 가수 남진의 “가슴 아프게”는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때와 장소를 막론하고 안방까지 전국을 휩쓸며 대 히트곡이 된다.
그 사이 사이로 머~ㄴ 하늘가에 무엇을 남겨두고 온 것 같은, 그리고 눈을 감으면 아득한 감정과 고독(孤獨)한 우수(憂愁)의 느낌을 주는 가곡(歌曲) 하나가 불리워지곤 했다.
비목(碑木) !
이 노래는 1967년에 작곡된 곡으로 6·25전쟁 때 전투가 치열했던 화천 부근에서 군 생활을 하면서, 이름 없이 죽어간 무명용사의 녹슨 철모와 돌무덤을 보고 작사한 것이라 한다.
적막(寂寞)의 두려움과 전쟁의 비참함, 그 때문에 더욱 간절한 향수(鄕愁)가 서정적인 감동을 주는 가곡이다.
6.25 !
사변(事變), 동란(動亂), 전쟁(戰爭), 동족상쟁(同族相爭), 남침(南侵)등 여러 가지 이름이 뒤따르지만 어느 한 가지도 사용하고 싶지 않는 단어 들이다.
필자는 초등학교 1학년 때인 여덟살때 6.25를 경험했다.
생생한 기억이다.
피투성이가 된 미군을 실은 트럭이 집 앞을 줄지어 지나가는 광경을 목격했다
그리고 한 달 후 보리 미숫가루를 만들어 피난을 나섰다.
7월 여름, 도랫몰 오리방천에 수백명의 피난민속에 우리가족도 있었다.
그때 비행기에서 무차별 기관총 사격을 가했다.
사람들이 보리 베이듯 쓰러졌다. 밀물로 만조된 바다위에 시체가 떠다녔다.
우리동네 “높은집” 아저씨가 빠져나온 창자를 움켜잡고 살려달라는 단말마(斷末魔) !
내가 감자를 벗기며 앉아 있던 바위 모서리가 기관총을 맞아 돌이 튀어 밀짚모자가 날아갔다.
그런데 그 지옥의 장소를 빠져나오려고 해도 주눅이 들어 걸음이 옮겨지질 않았다.
고양이 앞에 쥐가 꼼짝 못하는 이유를 그제야 이해 할만 했다.
지금도 도랫몰 동네는 같은 날 제사 지내는 가정이 백여 호가 넘는다.
고동개 바닷가에서도 비행기 폭격을 당했다.
키 1m정도 되는 소나무 밑에서 어머니와 같이 숨었는데 섬광이 번쩍이는 기관총 사격 속에서 얼마나 졸음이 오는지 어머니도 졸면서 계속 나를 깨우셨다.
당천(堂川) 들판에서도 기관총 사격을 당했다.
다리 밑에 몸을 피했는데 머리위로 큰 구렁이 한 마리가 혀를 날름거려도 기관총 소리에 얼마나 놀랬는지 뱀이 무섭지 않았다.
동네에서는 치안대라는 붉은 완장을 낀 인민군 동조자들이 마을 사람들을 장터에 모아 방공호를 파고 그 안에서 “압록강 굽이굽이 피어린 자국” 하는 김일성 노래를 가르쳤다.
전시중에서도 선생님들은 학생들을 동사(洞祠)에 모아 기름 냄새 나는 가르방 프린트 교재로 전시 공부를 가르쳤다. “드르륵 드르륵 탱크가 갑니다. 시내고 산이고 거침없이 탱크가 갑니다”를 공부했다.
서울(파주)에서 먼 친척이 피난을 와서 가난한 우리 집에 같이 살았다.
식량이 없어 들에서 자란 독없는 풀은 전부 식량이 되었고 산에 소나무순은 송구 떡으로 사용되었다. 그중 고구마는 최고의 식량이었다.
전쟁 !
전쟁은 스타크래프트나 카트라이더 등에서 나오는 전쟁 게임 놀이가 아니다.
“까짓것 한번 붙어보지” 하는 젊은이들은 “전쟁”을 모르는 철부지의 말이다.
전쟁은 배가 고프고 병이 들고 사람이 죽는 아비규환(阿鼻叫喚)의 지옥이다.
이제는 비목을 부르면서 60년전 6.25를 회상할 사람들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6.25의 상처는 아직도 아물 줄을 모르고 더욱 깊어 간다.
이 지구상에서 허리가 반동강난 불행한 반신불수 나라는 한반도 밖에 없다.
신라 백제 고구려의 삼국 분열, 고려와 여진의 남북 양분, 조선왕조의 통일, 그리고 남한과 북한의 분단. 이것이 우리 민족이 겪는 분열 주기(週期)의 아픈 역사란 말인가 !
우리는 왜 독일의 게르만 민족과 이스라엘의 유대민족처럼 통일된 나라를 지키지 못할까 !
일본도 난립된 봉건사회 막부정치를 거치면서 결국에는 기득권자인 쇼군 도쿠가와와, 개혁세력들간에 새 일본의 미래 개혁을 위한 대 타협인 명치유신(明治維新)을 이룩하여 오늘날 일본 강국을 만든 것이다.
자 우리 좀 솔직히 말해 보자.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고 김경일이 책을 쓸 정도로 유교사회를 비하한 조선왕조는 한반도 통일국가로 500년을 지속하였다.
시대의 변천과 새 세상의 도래(到來)에 따라서 국민에게 주권이 주어지고 자유를 표방하는 새 시대의 주역이된 우리 후손들은 500년 역사의 유산을 지키지 못하고 5년 만에 남북으로 분단되는 역사의 죄를 짓고 말았다.
참 못난 후손이다.
잠깐 한말(韓末) 이후의 우리나라 약사(略史)를 간단하게 정리하여 보자.
1884년-한말(韓末)의 개화운동인 갑신정변(甲申政變) 김옥균·박영효 서광범 홍영식
1894년-동학운동(東學運動)
1894년-갑오개혁(甲午改革)
1904년-갑진개혁운동(甲辰改革運動)
1905년-이승만의 구한말 개혁운동
1905년-을사조약(乙巳條約)국권상실
1918년-미국대통령 윌슨 민족자결주의 선언
1943년-12월 1일 카이로 선언 일본 패망후 조선독립에 영·미·중국 선언 발표
1945년-2월 12일 얄타회담 소련이 연합국에 늦게 참가 일본 패전후 한반도 권리 부여
1945년-8.15광복(光復)
1945년-9월 남한에 미군정, 북한에 소련군정,
1945년-12월 모스크바 3상회의 5년간 신탁통치 결정 미소 공동위원회 설치,
1946년-6월 3일 이승만의 남한 단독정부 주장 정읍발언,
1946년-10월 여운형 김규식의 좌우 합작운동,
1947년-5월 21일 미소 공동위원회 완전 결렬,
1947년-11월 미국이 한국문제를 UN에 상정.(5.10 총선거 결정됨)
1948년-2월 납북협상에 김구와 김규식 김일성에 이용당한 실패
1948년-4월 5.10총선거 반대 제주도 4.3 폭동사건
1948년-4월 남북 대표자 연석회의 남북협상은 실패.
1948년-5월 5.10총선거 제헌의회 구성 제헌헌법을 제정 대통령 간선제 채택
1948년-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1948년-9월 9일 북한 조선민주주의 인민 공화국 수립
1949년-6월 29일 한반도 미군철수
1950년-1월 미국 국무장관 에치슨 라인설정 미국안전보장에서 한국 방위 권에서 제외
1950년-6월 25일 북한 남침
이상의 약 70년동 한국역사의 큰 제목을 나열해 본 것이다.
필자는 역사가도 아니고 학자도 아닌 하루 밥 세끼를 걱정하는 평범한 소시민이다.
70년의 역사 속에는 경륜 높은 정치가 지식인 애국자도 많았고 통일국가를 위한 좋은 의견도 많이 제시 되었다. 그리고 국제적으로도 윌슨 민족자결주의 선언이나, 카이로 선언등은 우리민족에게 통일국가를 건설할 좋은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그러나 하잘 것 없는 시정인(市井人) 눈으로 볼 때도 통일 국가를 세우지 못한 이유는 간단하다고 생각된다.
미국과 소련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결정적인 것은 우리국민끼리 타협의식이 없고 자기의 정치적 주장과 국가와 민족을 생각하지 않은 이기주의 때문이다.
1956년에서 1958년에 걸친 미국의 노동문제에 대하여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깡패나 협잡꾼들이 끼어들어 일반 시민이나 조합원의 이익에는 관계없이 사회 혼란에 대하여 고(故) 로버트 F케네디 상원의원이 미 상원에 보고한 내용을 기록한 것이 “내부의 적” 이라는 저서(著書)이다.
우리나라가 남북으로 분단된 것은 미국 소련 중국의 영향이 크지만 우리민족이 결속하지 못하고 이데올로기로 인한 이기주의적 분열이 큰 원인이라고 본다.
이것이 분단 원인의 “내부의 적”이라 본다.
아무리 미국과 소련의 영향이 크다해도 우리민족이 단결하면 “외부의 적은” 극복할 수 있다.
주역(周易)의 괘중에서 63괘인 수화기제(水火旣濟)는 “성취하여 완성했다”는 괘이다.
64괘인 화수미제(火水未濟)는 “미완성”을 의미한다.
이 두괘는 우주만물의 이치는 고정되지 않고 계속되는 변화를 의미한다.
남북에도 필연적으로 변화가 올 것이다.
북한에 인적(人的) 물적(物的) 변화가 야기되어 한반도에 8.15광복절(光復節) 같은 시기가 주어져 백지(白紙) 상태가 되었을 때 우리는 이 백지위에 우리나라의 완전한 지도를 그려 넣어야 한다.
또다시 북쪽에 “위대한 수령”의 교조(敎祖) 사상을 주장하고, 남쪽에 동서로 갈라진 이념 갈등의 “내부의 적”이 있다면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죄로 벌 받아 2천년 동안 나라 잃은 디아스포라(Diaspora)와 같은 신세가 우리에게도 올 것이다.
우리는 한민족의 발상(發祥)지인 신단수(神壇樹)의 건국이념인 홍익인간(弘益人間)에 죄를 짓지 말고 통일 조국을 건설하기 위해 “나”를 버려야 할 것이다.
육십갑자(六十甲子)의 돌을 맞이한 2010년의 6.25는 의미 있는 해이다.
6.25
天怒南侵北攻先(천노남침북공선)-하늘도 노할 북한의 남침으로
兄弟相爭山河血(형제상쟁산하혈)-형제는 서로 싸워 피로 물든 산과 강
悠悠歲過六十年(유유세과육십년)-세월은 아득하게 60년을 흘렀건만
今日餘淚離散恨(금일여루이산한)-오늘도 남은 눈물 이산가족 한이로세!
雁飛往來自南北(안비왕래자남북)-기러기는 자유롭게 남북을 오가는데
休戰障壁如泰山(휴전장벽여태산)-휴전선 장벽은 태산같이 높구나!
농월(弄月)
-농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