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월드컵 호주 對 잉글랜드 경기 / 홍속렬
여자축구의 강자 잉글랜드가 무너지는 경기를 보았다.
어느 팀이든 천적은 있게 마련인데 무적이라 보았던 잉글랜드가 비슷한 스타일의 호주에게 일격을 당했다.
체격도 플레이 스타일도 같은 두 팀은 용호상박이었다
그러나 승리의 행운은 호주 편에 섰다
힘의 축구를 바탕으로 맞선 두 팀은 진정 세계여자축구를 반분하는 힘의 균형을 깨뜨리는 순간을 보았다.
1993년 세계유니버스 대회가 미국에서 열렸는데 나는 당시 여성분과 부위원장 겸 한국여자축구 시작 발전 단계의 모든 행정을 도맡아 처리해 오던 차 대한축구협회장 정몽준 회장의 배려로 대표선수 2명과 경희대 감독 김태운감독과 이렇게 4명이 여자축구가 열리는 카나다로 갔다.
당시 호주 여자축구는 아마츄어 수준에 있었다.
그때 강호는 미국 중국 일본등이 강호의 반열에 서 있었다
나는 당시 금성 카메라를 개인적으로 구입 그 큰 구형 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볼 수 있는 경기 모두를 뜨거운 태양과 싸우며 땀을 흘리며 손수 모든 경기를 찍어 돌아와 내 개인 경비로 복사 전 초중 고등 대학, 팀에게 골고루 나눠 주었었다
그렇게 세계적인 수준을 가눔하라고 나눠 보급해 주었다.
그때만 하더라도 세계여자축구는 걸음마 단계였고 한국 여자축구는 진짜 타 종목 선수를 끌여들여 기초도안 되어 있는 팀으로 경기를 이끌어 왔다
당시 여자축구의 산증인 발전의 공로자 칭찬받아야 할 사람은 동산고등학교 감독이었던 서정호감독이였다
그도 사재를 털어 여자축구를 지도해서 많은 국가대표 선수를 만들어 냈다
그의 제자들이 현재 여자축구지도자로 많이 활동하고 있다.
서감독은 좀 더 주위 사람들과 인간관계를 잘해서 여자축구발전에 더 많은 기회를 주었더라면 정말 많은 선수를 육성해 내는데 큰 기여를 했을 것으로 믿는다
어찌 보면 나는 불행한 지도였다
단지 열정 하나만 믿고 앞뒤도 안 돌아보고 가정도 안 돌아보고 오직 여자축구 하나만 붙들고 앞만 바라보고 달려갔다.
아무 지원도 없는 체육 선교 신학교 팀을 7년간이나 이끌어 왔는데 대표선수 14명을 배출했고 여자축구의 기반을 닦아 놓았다고 봐야 한다
그래 여자축구 짝사랑으로 인해 나는 파산을 했고 고난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데 나는 내가 좋아하는 여자축구에 매달려 성취감과 자기만족에 급급해 가족을 돌아보지 않는 멍청한 짓을 해왔지만 피해는 곧 가족에게 엄청난 데미지를 가져다주었다.
이제 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 있으랴?
그래서 지금도 여자축구만 보아도 남모르는 눈물을 흘리게 된다
처음 여군으로 시작하려는 내 생각과 비젼은 맞았다.
지금은 상무에 여군 팀이 존재하지 않는가?
그러나 나 개인의 힘은 너무 무력했고 아무도 날 도와주는 곳은 없었다.
먼 나라 이곳 과테말라에서 축구 선교를 하며 노구를 이끌고 말 안 듣는 현지 아이들을 주님의 사랑으로 지도하며 천직으로 축구를 여기고 이 아이들이 복음을 받아드려 뼈속 까지 변화되어 이 나라 과테말라의 인재가 되게 하려고 매일 한 아이 한 아이 이름을 부르며 기도로 변화를 주님께 아뢰며 늙은 나의 삶을 보람 있게 뜻 있게 불태우고 있는 현재에 만족하고 감사하는 나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