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ttps://www.facebook.com/share/1DnEAe1i22/
어제 헌법재판소 앞에서 윤석열 지지자들은 민주당 의원들에게 폭력을 가했다. 서울서부지방법원을 폭력으로 일시 점령했던 사상 초유의 사건에 연장이다. 헌법재판소 재판관들도 유무형의 압박과 폭력에 시달리고 있다.
“극우집단 징벌 않으면, 한국 비참한 미래 맞을 것”
한겨레신문 전 도쿄특파원을 지낸 정치 사회 문화평론가 '시민언론 민들레' 한승동 에디터가 미국 브라운대학에서 사회학 학위를 받고 하와이대학(마노아)에 재직 중인 양명지 교수(사회불평등, 민주주의와 시민사회)가 일본의 월간 <세카이(세계)> 4월호 기고문에서 던진 한국 사회 현 사태에 대한 질문을 인용해 오늘 한국 사회 현상을 압축해 드러낸 글은 유용하게 읽힌다.
한승동 에디터는 "비상계엄을 발동한 윤석열의 행위는 소름끼칠 정도로 비민주적이었는데, 어떻게 앞서 탄핵당한 박근혜 대통령보다 높은 지지를 받고 있는 것으로 나오는가? 국민의힘 당원 대부분은 왜 윤을 대놓고 옹호할까? 계엄령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이런 사태를 빚어낸 더 큰 구조적 조건은 무엇인가?"
오늘 사태에 대한 핵심의 질문이다. 한 에디터는 양 교수의 '세계'지 기고 글, ‘한국 뉴라이트의 전략-계엄령, 극우, 권위주의체제의 유산’이란 제목을 단 기고문 전체가 오늘 사태에 답하는 내용으로 파악하고 있다.
한 에디터는 양 교수의 기고 글에서 “한국 극우의 역사와 특징을 충분히 파악하지 않고서는 지금 한국에서 진행중인 위기를 이해하기 어렵다”며, “한국정치에서의 극우정치와 민주주의 심화 간의 긴장과 충돌”에 대해 이런 결론을 내렸다고 인용해 말했다.
“2024년 12월 3일 이후의 한국상황(현상)은 현대 한국 역사상 가장 심각한 정치위기에 속한다. 비민주적인 극우집단을 억제하고 엄중하게 처벌하지 않는다면, 정치적 폭력과 과격주의가 횡행하는 비참한 미래가 닥쳐오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다.”
한 에디터는 "한국에서는 새삼스러울 게 없을지도 모를 이런 주제의 글은, 이 글을 주로 읽게 될 일본인들이 최근 ‘한국사태’를 제대로 이해하는 데에는 분명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 한국 극우세력과 거의 다를 게 없는 시각과 세계관을 지닌 집권 자민당 주류에게 그럴 것이다. 그들이 <세카이. 세계>를 얼마나 읽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그들은 이미 잘 알고 있으면서 그럴지도 모른다.) 일본 자민당 주류는 한국의 민주화 세력을 좌파, 종북주의자, 반미반일 친중세력으로 매도해 온 점에서는 한국 우파, 극우세력과 다를 바 없다. 이제까지 이미 많은 논의와 지적들이 있었지만, 외부의 제3자 시선으로 최근 한국 위기사태를 진단하는 양명지 교수의 글을 원문에 충실하게 정리한다."면서 양 교수의 글을 소개했다.
--------------
‘국민의힘’의 기원, 그들의 반공주의 생존전략
한국 극우세력의 대두를 2016년 이후 20년간 진행돼 온 ‘태극기 운동’(태극기 부대)으로 상징되는 최근 현상으로 생각할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양 교수에 따르면, 유명 극우인사들과 복음주의 교회 신자, 고령자들이 참가하는 극우행동이나 사상은 예전부터 한국정치에 존재해 왔다. 분단과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전쟁으로 인한 한반도 냉전구조 때문에 한국사회에서는 반공주의 우편향 사상만이 허용돼 이데올로기적 지평은 지극히 제한돼 있다.
과거 권위주의 체제는 조금이라도 비판적이거나 진보적인 집단이나 사상을 위험한 ‘종북(북한편향)’으로 간주해, 좌파는 존립할 여지가 없었다. 대다수 시민들은 침묵하면서 ‘반공’을 생존을 위한 기제로 내면화할 수밖에 없었다.
1980년대 민중운동과 학생운동 덕에 1987년 6월, 정치적 탄압에 짓눌려 온 무수한 시민들이 민주화운동 활동가들과 손잡고 민주항쟁에 나서 20년 가까이 계속된 권위주의 체제를 마침내 무너뜨렸다.
1987년의 민주화로 선거제 민주주의가 복원됐으나 예전의 군사적 권위주의 세력은 배제되지 않았다. 그들은 그 뒤 1990년대에 김영삼과 같은 온건보수파와 폭넓은 정치동맹을 맺었다. 그것이 국민의힘 당의 기원이다. 이전 권위주의 체제의 후계자들로 구성된 파벌이 우파 국민의힘 당내 주류가 돼 과도한 비율로 당을 장악했다.
그들이 정치전략으로 정적에 대해 근거없는 이데올로기 공세(비난)를 가하면서 북한의 스파이(간첩) 또는 종북세력이라는 오명을 덮어씌웠다. 국민의힘 내의 이 큰 집단은 정치적 다양성이나 관용을 인정하지 않는데, 한국적 문맥에서는 일반적으로 ‘보수’로 인식되고 있다.
많은 학자들은 주류 중도우파와 극우를 구별한다. 중도우파는 민주적인 규범이나 절차를 존중하지만, 극우는 민주주의를 적으로 돌리고 더 극단적이고 폭력적인 수단이나 전략을 구사한다. 이들 두 집단이 현재 국민의힘 내에서 공생하고 있는데, 대체로 극우 쪽 목소리에 힘이 더 실린다.
좌파와 우파 개념은 상대적인 것이고, 그 의미도 개개의 역사적, 정치적, 사회적 문맥에 따라 갈린다. 국민의힘 카운터파트인 지금의 더불어민주당(민주당)과 그 지지자들은 우파로부터 좌파 취급을 당하는 경우가 많지만, 좌파가 아니라 중도파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민주당의 경제정책은 온건하지만, 국민의힘에 비해서는 경제개혁이나 규제를 지지하는 경향이 더 강하다. 양당간의 가장 큰 차이는 외교정책, 특히 북한에 대한 자세다.
이제까지 중도 리버럴(자유주의적, 진보적) 정권은 북한을 나름의 정당성을 지닌 정권, 또는 교섭과 대화의 상대로 인정해 왔다. 그렇게 해서 평화 추진을 우선시해 양국간 긴장과 대립을 경감시켜 왔다. 이에 대해 우파정권은 북한에 대해 더 적대적인 자세를 취함으로써, 우파 정권 때는 북한과의 교류도 매우 제한적이었다.
게다가 일반적으로 다른 나라들에서는 내셔널리즘(민족주의)은 우파가 주장하고, 민족 내셔널리즘과 이민 배척주의는 극우가 쓰는 말인데, 한국에서는 좌편향 집단이 반(反)식민주의적이고 반제국주의적인 용어로서의 ‘내셔널리즘’을 써 왔다. 특히 최근 10년간 우파 단체들은 반대세력을 ‘에스노 내셔널리스트’(종족적 민족주의자)로 비판하면서 스스로 ‘반내셔널리스트’(반민족주의자)적인 자세를 취하는 경우가 많았다. 민족주의적인 여느 나라의 우파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한국의 극우, 그들은 누구인가?
한국의 극우 지지자들과 그 협력자들은 누구인가?
양 교수는 ‘우익 인프라’라는 개념을 쓰는데, 이는 우익 공통의 정치목적-사회적, 정치적 변화의 억제와 특권계급(대기업과 부유층)의 권리 보호-을 달성하기 위해 서로 다른 액터(행위자)와 조직들이 밀접하게 연결돼 있는 것을 가리킨다. 주류 국민의힘과 그 전신(한나라 등), 일부 정부기관(검찰청, 군, 국가정보원), 우파 미디어(주류 <조선일보> <동아일보>와 소규모 온라인 미디어), 시민단체, 복음주의 교회, 열성적 우익 시민이 극우의 주요 구성요소다.
이들은 ‘자유민주주의’라는 개념을 자신들의 주요 원칙으로 내세운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자유민주주의 개념과 일반적인 자유민주주의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일반적인 자유민주주의는 시민적 권리, 정치적 자유, 권력 분립, 법의 지배를 보장하는 정치제도다. 그런데 한국의 극우는 자유민주주의를 반공, 반북한, 친미, 그리고 최근에는 반중국의 동의어로 이해한다. 극우는 또 이승만이나 박정희 등 예전 권위주의체제의 지도자를 건국의 아버지, 근대화의 아버지로 숭배한다.
자유민주주의를 부르짖는 반자유민주주의자들
극우는 최근에 점차 전두환의 강력한 리더십을 공공연히 칭찬하기에 이르렀다. 극우는 전제적(독재적)인 지도자를 지지하는 한편으로, 1980년대의 민주화운동이나 학생활동가의 유산을 종북, 공산주의, 파괴적, 극좌라며 배격한다. 역설적이게도 우파가 말하는 ‘자유민주주의’는 곧 권위주의로, 이는 일종의 옥시모론(oxymoron, 모순어법)이다.
달리 말하면, 한국의 극우는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반자유민주주의를 실천하면서 그것을 자유민주주의라 주장하고 그것을 독점하려 하며, 진짜 자유민주주의자를 자유민주주의 파괴자라 주장하고 있다. 완전히 뒤집힌 주장이다.
극우의 사고방식은 지난 40년간 거의 일관됐다. 예컨대 1988년 <월간조선> 기사에서 극우 저널리스트 양동안은 극좌가 한국사회의 문화와 미디어의 영역을 빼앗아 갔다고 주장했다. 검찰총장 출신으로 1972년 박정희의 유신헌법을 고안해낸 김기춘과 국가안전기획부 차장으로 국민의힘 전신인 한나라당 국회의원이 됐던 정형근도 마찬가지다. 김기춘은 좌파세력이 한국의 자유민주주의 제도를 전복하려 했다고 주장했고, 정형근은 학생운동가와 김일성 지지자들이 문화와 미디어 분야, 특히 출판분야에 취직해 위험한 공산주의사상을 퍼뜨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반자유민주주의 독재체제와 그 문화를 독점해 온 세력이 그들의 기득권에 저항하며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싸운 세력을 오히려 자유민주주의 파괴자, 공산주의자로 매도해 온 것이다.
극우 지지세력 양산 메커니즘
이들은 극우 엘리트의 전형이다. 서울대 로스쿨을 나와 검사가 되고, 국가 정보기관에서 일하면서 우파 정당 당원이 돼 직업정치가로 옮겨간다. 그들은 자신들의 정치목적을 위해 공산주의 위협에 대한 공포를 적극적으로 조장했다. 최근 이런 공포를 부채질하는 언설들이 지식인이나 시민 사이에서 널리 퍼지면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들 극우 지식인들은 한국사회가 민노련이나 전교조 등의 ‘급진좌파 집단’에 완전히 장악돼 있다며 개탄한다. 그들의 눈에는 이런 단체들이 여론을 조작하고, 모든 좌편향 항의활동들에 돈을 대면서 젊고 세상물정 모르는 학생과 시민들을 위험한 종북주의자로 세뇌하고 있는 것으로 비친다. 그런 생각들이 우익 카카오톡 채팅방이나 유튜브를 통해 삽시간에 퍼진다. 양 교수가 ‘팔로우’하고 있는 카카오톡의 그룹채팅 방에는 ‘한국에 20만 명의 종북 스파이들이 있다’는 불온한 메시지들이 수시로 떴다. 보수적인 시민들은 늘 이런 주장을 접하고 들으면서 ‘급진좌파’에 대한 심각한 공포와 적의를 품을 수밖에 없다. 그들이 윤석열과 국힘당 지지자가 된다.
실재하지 않은 종북주의자와 종북 스파이 20만 명에 대한 공포를 심어 젊고 세상물정 모르는 학생과 시민들을 세뇌해 우익 지지세력으로 만드는 것이 극우다.
우익 재조직의 첫 번째 국면-뉴라이트의 등장
양 교수는 극우가 우파 전체를 재조직하기 위해 특별한 정치적 수단을 동원한 중요한 역사적 국면이 몇 차례 있었다고 본다.
첫 번째는 2000년대 초고, 다음은 2016-17년의 ‘태극기 부대’가 대두한 시기다.
1997년에 주변화돼 있던 전라도 출신으로 오래 반체제 운동을 한 김대중이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랜 세월 정적들로부터 종북 급진좌파로 비난받은 김대중의 당선은 한국현대사에서 처음으로 야당후보가 대통령선거에서 이긴 사건이기도 하다. 햇볕정책과 재벌개혁 등 김대중의 개혁정책은 그때까지의 역대 정권들 정책과 달랐고, 뒤이은 인권변호사 출신 노무현 정권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를 설립해 권위주의 정권이 자행한 역사적인 부정과 인권침해를 바로잡으려 했다. 우파들은 이에 크게 반발했고 그들이 ‘급진세력’으로 규정한 정적들로부터 위협받고 있다고 느꼈다.
그 경험은 우파에게 귀중한 교훈이 됐다. 정치권력을 잃는 순간 모든 기득권을 잃게 될지 모른다. 그들은 새로운 수단과 전략을 채용할 수밖에 없었다. ‘뉴라이트’는 이런 맥락에서 보수파를 쇄신해 정치적 카운터파트와의 이데올로기 투쟁에서 이기려는 시도로 출현했다. 뉴라이트 핵심 멤버의 다수는 교수와 저널리스트, 교회 목사, 그리고 흥미롭게도 우파로 변신한 1980년대의 학생(좌파)혁명가들이었다. 뉴라이트는 반공의 올드라이트와 민족주의적 올드레프트와 모두 선을 그었다. 뉴라이트는 자신들을 미래지향적이고 좀 더 온건하고 실천적인 대안 정치세력으로 자임했다. 그들의 주요 사업은 역사 교과서 개정이었다.
뉴라이트는 민중지향의 ‘좌파적 역사관’이 한국사의 어두운 면만을 강조한다고 공격하면서 경제성장 등 ‘성공한 한국사’의 위대한 유산을 중시하는 승리주의적인 역사 서술을 통해 이승만 박정희를 그 성공을 이끈 영웅으로 치켜세우고 그들의 억압적인 통치행태엔 눈을 감았다.
뉴라이트의 그런 역사인식은 반공주의 올드라이트의 그것과 별 차이가 없었으나, 그들은 새로운 전략을 고안해냈다. 좌파로부터 배운 전략을 활용해 시민단체를 설립하고 책이나 잡지를 출판해서 공개토론이나 강연회를 기획해, 자신들의 세계관을 일반시민에게 퍼뜨리려 했다. 뉴라이트 지식인들이 이탈리아 혁명가 안토니오 그람시의 문화헤게모니와 진지전 개념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그들은 풀뿌리 조직 네트워크와 강력한 시민 지지기반 없이는 정치투쟁에서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뉴라이트가 채용한 이 그람시 방식의 전략은 유럽의 극우가 지금 채용하고 있는 ‘메타 폴리틱스’와 비교될 만하다. 메타 폴리틱스는 세계에 대한 사람들의 시각(생각)을 바꿔 새로운 여론을 형성하려 한다.
뉴라이트는 새로운 이데올로기를 제시할 순 없었으나 그런 전략을 통해 시민사회를 자신들 목적을 위해 동원하려는 노력은 열매를 맺었다.
또 이명박 박근혜의 보수정권 연속 집권기간에 뉴라이트 지식인들은 정계로 들어가 정치가가 됐고, 대기업과 전국경제인연합회 같은 경제단체들은 우파 단체와 인터넷 우익 미디어에 거액의 자금을 지원했다. 그런 물질적 지원과 뉴라이트에게 유리한 정책들을 통해 우파의 조직, 이데올로기적 인프라는 크게 발전했고 그때부터 좌파에 대한 그들의 지속적인 공격이 시작됐다.
우익 재조직의 두 번째 국면-태극기 부대 등장
2016년 박근혜 탄핵은 민주적이고 평화적인 투쟁을 거쳐 문재인 정권 탄생으로 이어졌다. 당시의 촛불시위에 대한 반작용으로 수만 명의 고령 시민들이 애국과 자유민주주의를 기치로 ‘태극기집회’에 참가했다. 태극기와 성조기를 함께 든 태극기 부대 참가자들은 철저한 반공의식을 토대로 촛불시위자들과 그들 뒤에 있다고 생각한 종북 좌파에 대한 극도의 두려움과 실망과 적대감을 품었다. 그들은 강력한 한미동맹만이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 믿었다. 촛불시위가 대한민국 체제를 전복하려는 북한과 급진좌파를 돕고 있다고 생각한 그들은 문재인 정권 내내 종북 사회주의 척결을 외쳤다.
양 교수는 이때가 극우에겐 중요한 국면이었다고 본다. ‘태극기운동’은 한국현대사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장기간에 걸친 극우운동이었다. 극우는 고령의 시민들을 동원하는데 성공했다. 참가자의 주력이 왜 60~80대의 고령자들이었을까. 그들이 그렇게 모일 수 있었던 데에는 그들에게 공통된 아디덴티티가 큰 역할을 했다.
그 세대는 한국전쟁과 전후의 발전에 관한 집단적 기억을 공유했다. 잔혹행위와 피난, 가족 상실이라는 비참한 체험을 통해 그 세대는 공산주의와 북한에 대한 적의를 내재화했다. 그들은 또 일상생활 속에서 반공과 반북 감정을 주입받았다.
동시에 1960년대와 1970년대는 한국경제가 폭발적으로 성장한 시기였다. 급속한 경제성장과 생활수준 향상의 은혜를 입은 이 세대는 한국의 발전에 대한 강한 긍지와 희망을 공유했다. 그들은 경제성장의 성공은 위대한 지도자 박정희 덕이라고 굳게 믿었다.
이 세대가 보기에 반체제파는 사회적 혼란을 부르고 국가안보를 위협하기에 위험하며, 나아가 대한민국의 정당성과 아이덴티티를 부정하는 것으로 비쳤다. 박정희의 딸인 박근혜는 박정희의 위업을 되살릴 수 있는 보수파 아이콘의 체현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박근혜의 탄핵은 그들에게 보수의 몰락과 대한민국 유산의 붕괴를 의미했다. 그들은 거기에 반대해 거리로 나선 것이다.
IT기술과 태극기 부대를 엮은 ‘우익 인프라’
그런 강력한 고령시민의 지지기반에 더해 극우는 새로운 통신기술과 수단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1990년대와 2000년대에는 인터넷 미디어와 출판 분야에서 리버럴 세력 쪽이 유리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우파가 자신들의 시각을 전파하는 장으로 미디어와 문화 분야를 택했다. 카카오톡이나 유튜브 채널이 우파 시민에게 정보와 뉴스의 주요 공급원이 됐다. 거기에서는 음모론과 극단적 얘기들이 흘러 넘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이들 대안적 뉴스 채널 및 전통적 주류 미디어와 국민의힘 사이에 깊은 연계와 협력관계가 형성돼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극우 유튜버 중에는 <조선일보> 출신 저널리스트와 국민의힘과 그 전신에서 일한 정치인들이 있다. 극우집회가 열릴 때는 주최하는 단체와 활동가가 <조선일보>에 광고를 낸다. 극우 유튜버 중의 몇몇은 국민의힘 집행위원회의 평의원 선거에 출마했다. 그들의 주장은 국민의힘 당원들에 의해 당 안팎 공론장에서 반복된다. 서로 도우면서 공통의 정치목적을 추구해 가는 것이다.
윤 대선 승리 2가지 요인-집값 급등과 반페미니즘
문재인 정권 때 검찰총장이었던 윤석열은 국민의힘 후보로 출마한 2022년 대선에서 경쟁상대인 이재명에 득표율 1% 미만(0.73%)의 근소한 차로 이겼다. 윤이 승리한 데에는 2가지 요인이 있었다. 하나는 문 정권의 개혁이 실패한 것이다. 문에게 투표한 사람들은 ‘기회의 평등과 사회적 공정’이라는 약속에 큰 기대를 걸었으나 결국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그 중에서도 문 정권의 부동산 규제로 집값이 급등하고 젊은 세대의 주택 구입이 더 힘들어진 것이 많은 시민들을 실망시켰다. 동시에 주택소유자도 집 등의 부동산 관련 세금이 늘었기 때문에 문과 민주당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다.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영입된 윤은 이른바 진보세력의 위선을 비판하며 문 정권이 해내지 못한 공정을 위해 운동하겠다고 약속했다. 윤은 결과적으로 사태를 훨씬 더 악화시켰지만, 그때의 그 공약은 표를 얻는데 효력이 있었다.
또 한 가지 요인은 윤이 적극적으로 반페미니즘 자세를 취하면서 20~30대 젊은 남성들에게 어필한 것이다. 여성가족부 폐지를 약속함으로써 윤은 젊은 남성들의 지지를 얻어냈다. 그 집단의 반수 이상이 윤에게 투표했다.
젊은 남성이 반페미니즘 감정을 지니고 정치에 우편향적 자세를 보이는 것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경제적 기회의 부족과 노동시장에서의 경쟁 격화 속에 젊은 세대 사이에 상대적 박탈감과 좌절감이 커졌다.
동시에 2010년대의 ‘미투’MeToo 물결과 젊은 페미니스트들의 운동은 젊은 남성들의 강한 반발을 불러, 그때부터 그들은 페미니즘이 ‘죄없는’ 남성을 부당하게 취급하는 여성 지상주의 운동이라는 반페미니스트 감정을 공유하게 된다. 한국의 페미니즘은 과도하게 급진적이며 한국사회에서 젊은 남성이 역차별받고 있다고 주장하며 그런 감정을 이용하는 우파 정치가들도 나타나, 점점 더 많은 젊은 남성들이 선거에서 국민의힘을 지지하게 된다.
젊은 세대의 지지를 확보하는데 반공주의가 예전만큼 효과가 없어졌기 때문에, 우파세력은 새로운 이데올로기 자원으로 반페미니즘과 미소지니(misogyny. 여성혐오)를 채용해 젊은 남성들을 한국 극우의 새로운 지지기반으로 만들었다.
윤석열 정권이 이전 보수정권들과 다른 2가지
정치적인 목표와 특징적 면모에서 윤석열 정권은 이전의 보수정권인 박근혜 이명박 정권과 별로 다를 게 없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윤 정권에서는 독특한 패턴 몇가지를 찾아볼 수 있다. 첫째로, 뉴라이트가 다시 등장해 그 사상이 윤의 정책에 강력한 영향을 끼쳤다. 정부 고위직 다수를 뉴라이트 인사들이 차지했다. 윤의 외교정책-미국 일본과의 동맹관계 강화와 북한 중국 러시아에 대한 적대의식을 핵심으로 한 ‘자유민주주의’ 이데올로기를 원동력으로 삼는다-도 뉴라이트 사상을 반영하고 있다.
나아가 윤은 노동조합과 진보주의 운동단체, 좌편향 정치가 등 이른바 ‘운동권’을 법의 지배와 사회질서에 반하는 파괴적인 존재들이라 비난하며, 반국가적 북한편향(종북) 전체주의 세력과 연결시켰다. 이는 이전의 보수정권의 전략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라 할 수 있으나, 윤 정권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반체제 세력을 악당이나 범죄자로 몰았다.
국민의힘은 왜 단결하나?
그럼에도 2016-17년과 달리 2024-25년인 지금은 왜 국민의힘 당원이 (박근혜 탄핵 때와는 달리) 윤을 지키기 위해 단결하고, 국민의힘에 대한 여론의 지지도 강해졌을까?
양 교수는 2017년 대통령선거 패배와 박근혜 탄핵이 지금 국민의힘 당원들의 그런 선택에 강한 강한 영향을 끼쳤다고 본다. 2016년에는 온건 보수파가 박근혜의 새누리당을 버리고 보수파 세력을 개혁하기 위해 새 정당 ‘바른 정당’을 결성했다. 그러나 그 정당은 소수정당이 돼 완전히 실패했고 당원 대다수는 원래 정당으로 되돌아갔다. 그때 그들은 분열은 잘못된 정치전략이며, 당내에서 자신들의 정치생명을 위태롭게 만들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체험했다. 그 때문에 그들은 이번엔 당 지도부 아래 강고하게 단결했다.
윤은 국회에서 탄핵당한 뒤에도 극우 지지자와 국민의힘 지지 속에 “반국가 세력에 대해 끝까지 싸우겠다”고 큰소리쳤다. 국민의힘은 폭력을 사주하기까지 했다. 당원 김민전 의원은 군사정권 시절의 경찰 폭력조직 ‘백골단’ 재건 국회 기자회견을 열었고, 그 며칠 뒤 윤의 체포에 반발한 우익 폭력배들이 서울 서부지법을 습격하는 폭동을 일으켰다. 극우 정치 지도자들이나 유튜브 인플루언서들은 그들을 선동하고 처벌받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해 극단적 행동으로 치닫게 만들었다.
극우를 엄중 처벌하지 않으면 비참한 미래 올 것
헌법재판소가 탄핵에 대한 최종판단을 내리기까지 지금의 정치위기는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판결이 나온다 하더라도, 윤의 광신적 지지자들과 국민의힘이 법의 지배에 이의를 제기하며 자신들의 대응을 ‘시민적 불복종운동’으로 정당화해 온 이제까지의 사태추이를 보건대, 그들이 헌재 판결을 받아들일 것인지조차 알 수 없다고 양 교수는 걱정한다.
그리하여 양 교수는 기고문을 다음과 같이 끝맺는다.
“정치학자나 평론가들 다수는 권위주의 체제 뒤의 한국정치에서 계엄령이나 권위주의 체제로의 회귀가 유효한 선택지가 될 가능성을 검토한 적이 없다. 2024년 12월 3일 이후의 현상은 현대한국 사상 가장 심각한 정치위기에 속한다. 비민주적인 극우집단을 억제하고 엄중하게 처벌하지 않는다면, 정치적 폭력과 과격주의가 횡행하는 비참한 미래가 닥쳐오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진 - 2월 28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정문 앞에서 '윤석열 파면! 쿠데타 옹호 세력 규탄 2.26! 이화여대 긴급 행동' 소속 학생, 졸업생들이 지난 26일 교내에 들어와 여성 혐오적 발언, 폭력을 행사한 일부 극우 단체 회원, 유튜버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5.2.28. 연합뉴스 /
국민의힘 추경호(왼쪽부터), 김기현, 윤재옥 의원이 1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 각하 촉구 릴레이 시위를 하고 있다. 2025.3.13. 연합뉴스
https://www.mindle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25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