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펜젤러 타입캡슐 69년 만에 개봉
감리교와 배재학당 관계자들이 배재학당
주춧돌 밑에서 발견된 청동제 함을 개봉
하고 있다.
1932년 배재학당 주춧돌 밑에 묻었던 타입
캡슐이 69년 만에 개봉됐다. 2001년 2월 9일
철거된 배재학당 주춧돌 밑에서 발견, 이날
개봉한 청동제 함에는 110년 전 사용
하던 동전 100냥, 신약전서와 찬송가
합본 1권, 1900년대 초기에 통용되던10엔
일본 금화, 1932년 10월 배재학당 대강당
건축 당시의 이사-졸업생-재학생 대표 명부,
배재학당 학칙, 생도 수첩, 1932년 10월 22
일자 동아일보가 들어 있었다.
감리교 관계자들은 당초 “주춧돌을 놓으
면서 그 아래 성경, 서적,계약서 사본,동전
등을 넣은 함을 묻었다”는 아펜젤러의 일기
(1887년 8월 6일)에 따라 이 함이 아펜
젤러가 묻은 것으로 추정했었다.
그러나 가로 28.5cm 세로 16.5cm 높이
10cm의 함은 개봉 결과 내용물로 보아
1932년 10월 대강당 준공 때 만들어진
것으로 판명됐다. 또 동전 꾸러미에 ‘첫
건물 준공 당시의 동전’이라는 꼬리표가
붙어있는 점으로 미루어 1887년 묻은 함
은 1932년에 개봉되고 그 내용물 중 일부
를 새 함에 넣었던 것으로 추정했다.
▶2011년60~70년대 가요계 이끌던 손진석 대표 별세
▶2006년김유림, 세계 주니어 빙속 종합1위
김유림.
▶2002년국내 복권 사상 최고액인 55억원 복권 당첨
▶2002년보아(BoA) 앨범
‘Listen to my Heart’ 일본 음반판매 1위
댄스가수 보아(BoA).
▶2002년`한국의 슈바이처` 문창모 박사 별세
▶2000년조선일보 주최 `세기를 넘어서-
21세기 한민족 대항해 시대`전 개막
▶1999년삼성의료원 명예원장 한용철씨 별세
▶1998년주한미군사령부, 미8군을 육군구성군사령부(ASCC)로 개편
▶1996년폴란드 영화감독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 사망
▶1993년인도 뭄바이 연쇄 폭발사건
▶1992년터키, 강도 6.2의 강진으로 3천~5천명 사망
▶1990년아이티 임시정부,
여성대통령 에르타파스칼 트루이요 취임
▶1986년우주비행사 레오니드 키짐과 블라디미르 솔로비예프, 미르호에 도착
▶1986년최은희-신상옥 부부 서방으로 탈출
최은희-신상옥 부부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1978년 1월과 7월에 홍콩에서 각각 납북돼 북한과 동구국가들에서 영화제작 활동을 해오던 최은희-신상옥 부부가 1986년 3월 13일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서 미국대사관을 통해 극적인 탈출에 성공했다.
이들은 2월 14일~15일 양일간 서베를린에서 열린 베를린영화제에 참석한 후 파리를 거쳐 3월 12일 빈으로 와 하룻밤을 지낸 후 일본 교토통신 기자와 식사를 한다며 북한 감시원을 따돌리고 탈출했다.
최-신 부부는 탈출 후 미국에서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북한의 정치-사회-문화 현실을 낱낱이 폭로, 세상을 또 한번 놀라게 했다. 신씨는 그동안 두번이나 탈출을 시도했으나 실패해 제6형무소에 4년간 수감생활을 했다고 폭로했다.
이들 부부는 미국에서 체류하다 1989년 5월 11년 만에 귀국했다.
귀국 당시 이들은 북한에서 ‘신필름영화촬영소’ 총장과 부총장을 지내는 등 반국가단체간부로 지도적 임무에 종사했으며 ‘탈출기’ ‘소금’등 북한체제를 찬양 선전하는 영화 20편을 제작한 것과 관련, 국가보안법상 찬양 고무 동조(7조1항) 유언비어 날조유포(34조1항) 등의 위반혐의로 불구속 입건됐으나, 북한공작원에 의해 강제로 납치당해 북한에서 강압에 못이겨 활동해온 점을 인정, 불기소 처리됐다.
▶1982년충주 다목적댐 착공
▶1981년국무회의, 노동청을 노동부로 승격
▶1981년광업진흥공사,
강원도 영월서 국내최대 몰디브덴 광맥 발견
▶1979년대법원, 근로자의 법정시간외 근무거부는 태업아니다 판시.
▶1979년EC수뇌회담, 유럽신통화제도(EMS)발표
▶1979년그레나다 무혈쿠데타, 새정권 수립
▶1976년최규하 제12대 국무총리 임명
▶1976년해운항만청 발족1976년베트남 대규모 관개공사
▶1974년서울 고려대 앞서 우리나라 첫 나체질주자 등장
▶1973년노동3법 공포, 발효
▶1971년서울~부산간 자동전화 개통
▶1969년남산 제1호 지하터널 기공
▶1969년문공부, 문화상 일원화 결정
▶1962년서울시 초등학교 휴교
▶1959년박태선 장로교 신자, 법정 난입
▶1958년미국-영국-프랑스 정상회담
▶1956년한국과 스칸디나비아3국,
메디컬센터 건립 협정 조인
▶1954년월맹군, 디엔비엔푸 공격 개시
▶1950년국회, 내각책임제 개헌안 부결
▶1946년함흥 학생반공의거
1945년 8월 소련군에 의하여 점령된 북한에 소련군정이 실시되면서 각 도의 도청은 소련군의 군정청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그러다 1946년 초에 소위 인민위원회가 조직되었는데, 도인민위원회가 들어설 도청은 이미 소련군이 점거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함남중학의 교사(校舍)를 청사로 차지하였다. 그러자 학생들은 모교사수(母校死守)를 외치며 이에 항거하였다. 한편, 이 무렵 흥남비료공장을 비롯한 큰 공장의 기계가 어디론지 뜯겨가고, 식량배급이 끊기면서 시민들의 불평은 심각한 상태에 이르렀다.
이러한 상황하에서 3월 11일 마침내 함흥공업학교 학생 200여 명이 ‘학원의 자유를 달라!’ ‘우리의 쌀은 어디로 갔는가?’ 등의 구호를 외치며 가두시위에 나섰다. 이에 호응한 600여 명의 함흥농업학교 학생들도 거리로 뛰어나와 합세하였다. 사태가 이에 이르자 인민위원회는 긴급대책으로 3월 20일 예정이던 학년 말 방학을 3월 13일로 앞당겨 실시하도록 각 학교에 시달하였다.
그러자 각 학교 학생대표는 12일 밤 비밀회합을 가진 다음, 이튿날 방학식이 끝나자 함흥의전(咸興醫專) ·함흥중학 ·함흥농업 ·함흥공업 ·영생고녀(永生高女) ·실과여학교(實科女學校) ·함흥고녀 등 약 5,000여 명의 학생들이 일제히 궐기하였다. 시민들도 이에 호응하여 약 1만 5,000여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결국은 보안서원과 소련군이 동원되어 일대 격돌이 일어났는데, 보안서원의 발포로 학생 1명, 시민 2명의 희생자가 나고, 보안서원 3명이 사망하였으며, 학생 ·시민 ·보안서원 120여 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사건진압 후 많은 학생 ·시민이 검거되었다.
▶1946년조선문필가협회 결성
▶1944년여성 독립운동가 김마리아 순국
독립운동가이자·교육자였던 김마리아 선생.
▶1940년독립운동가 이동녕 선생 사망
이동녕 선생.
▶1938년오스트리아 재벌 로스차일드, 나치에 체포
▶1938년독일-오스트리아 합병
▶1926년런던-남아프리카 비행성공
▶1923년뉴욕서 발성영화 첫상영
▶1917년독일의 세균학자 베링 사망
▶1915년러시아 제국 헌법에 따라 임명된
초대 총리 비테 사망
▶1913년호주, 캔버라를 연방수도로 공식 결정
▶1908년우표-엽서 자동판매기 파리에 등장
▶ 1906년 미국의 여성 사회개혁자 수전 앤서니(Anthony, Susan) 사망
앤서니(앤소니) [Anthony, Susan Brownell, 1820.2.15~1906.3.13]
미국에서 여성 참정권 운동을 시작한 선구자이며 미국여성참정권협회 회장(1892~1900).
앤소니의 활동은 결국 여성에게 투표권을 부여한 헌법 수정조항 제19조(1920)에 이르는 길을 열어주었다(→ 여성운동).
퀘이커교도로서 노예폐지론자이며 면직물 제조업자인 다니엘 앤소니의 딸로 태어났다. 그녀의 집안은 독립심과 도덕적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앤소니는 조숙하여 3세 때 이미 읽고 쓰는 법을 배웠다. 1826년에 가족이 매사추세츠 주에서 뉴욕 주 배튼즈빌로 이사한 뒤, 앤소니는 그 지역학교에 다니다가 아버지가 세운 학교로 전학했고, 마지막으로 필라델피아 근처의 기숙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
앤소니는 뉴욕 주 북부지방의 여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다가(1846~49), 뉴욕 주 로체스터 근처로 이사해온 가족에게 돌아와 금주운동을 시작했다. 이것이 그가 벌인 최초의 대중운동이었다. 이미 기반이 잡혀 있는 금주운동에서 여성에게는 제한된 역할밖에 허용되지 않는 것에 낙심한 앤소니는 뉴욕 주 여성금주협회 창설을 도왔다. 이 단체는 이런 종류의 조직으로서는 가장 먼저 창설된 조직이다. 앤소니는 1852년부터 친구인 엘리자베스 캐디 스탠턴 및 아멜리아 블루머와 함께 여권운동에 참여했고, 여성의 옷차림을 제약하는 사회적 관습에 항의하는 표시로 한동안 치마와 헐렁한 바지를 혼합한 '블루머'를 입기도 했다. 1854년부터 노예제도반대운동에 뛰어들어 정력적으로 활동했고, 1856년부터 남북전쟁(1861)이 일어날 때까지 미국반노예협회에서 일했다. 스탠턴과 함께 뉴욕의 자유주의적 주간지인 〈혁명 The Revolution〉(1868~70)을 발행했으며, 여성에게도 남성과 동등한 임금이 지불되어야 한다고 요구하면서 뉴욕 근로여성협회를 조직하는 데 한몫했다. 1872년에 그녀는 헌법 수정조항 제14·15조에 따라 흑인 남성에게 부여된 시민권과 참정권이 여성에게도 주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여성의 투표권을 확인하기 위해 한 무리의 여성들을 이끌고 로체스터의 투표소로 갔다. 앤소니는 2주일 뒤에 체포되었지만, 재판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널리 순회강연에 참여했고, 1873년 3월 다시 시 선거에서 투표권을 행사하려고 시도했다. 그후 앤소니는 재판을 받고 선거법 위반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벌금 납부를 끝까지 거부했다. 그때부터 앤소니는 전국여성참정권협회(1869~90)와 미국여성참정권협회(1890~1906)를 통하여 여성에게 참정권이 부여되도록 연방헌법을 수정하기 위해 끈기있게 노력했고, 미국 전역과 서부지역을 순회하면서 강연을 했다.
앤소니는 가까운 동지인 스탠턴 및 마틸다 조슬린 게이지와 함께 4권으로 된 〈여성 참정권의 역사 The History of Woman Suffrage〉(1881~1902)를 편찬하여 출판했다. 1888년 국제여성협의회를 조직했고, 1904년에는 국제여성참정권동맹을 결성했다. 런던(1899)과 베를린(1904)에서 열린 회의에서 그녀는 여권신장에 대한 선구적인 공헌으로 전세계 여성의 갈채를 받았다.
▶1901년종교인.사회운동가 함석헌 출생
▶1901년미국 제23대 대통령 해리슨 사망
▶1891년프랑스의 시인 방빌 사망
▶1890년사상가 유영모 출생
▶1883년이탈리아 작곡가 토셀리 사망
▶1882년독일 경제학자 슈미트 출생
▶1848년독일 3월혁명 발발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서 시작된 시민폭동이
기폭제가 되어 독일 3월혁명이 일어났다.
▶1828년`일본도덕론`(1887)을 저술한
니시무라 시게키 출생
▶1781년영국 천문학자 허셀 천왕성 발견
https://youtu.be/ctjyrvmOnNk
출처 네이버지식백과,반가운의hi스토리 , 편집 뜨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