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회음(石灰吟)
석회
우겸(于謙, 1398~1457)
천 번 깨고 만 번 뚫어 산속에서 캐낸 석회
뜨거운 불로 태워도 대수롭지 않게 견디며
살을 에고 뼈를 부숴도 두려움 전혀 없어라
그저 이 세상에 청백리로 남기만을 바랄 뿐
千錘萬鑿出深山(천추만착출심산)
烈火焚燒若等閑(열화분소약등한)
紛身碎骨渾不怕(분신쇄골혼불파)
要留淸白在人間(요류청백재인간)
1449년 몽골군이 포로로 잡은 명나라 황제 영종을 끌고 베이징 근처까지 왔다.
위기의 순간이었다. 병부상서 우겸은 영종의 동생을 황제로 옹립하고 방위선을
구축했다. 새로운 황제가 즉위한 것을 본 몽골군은 포로인 영종이 쓸모가 없어
졌고, 명의 방위선이 견고하여 결국 몽골로 퇴각했다. 1년 뒤 몽골은 몸값을 받
지 못했어도 영종을 풀어주어 명나라의 분열을 노렸다. 그 후 7년이 지나 영종
은 황제에 복위하고 우겸을 대역죄로 처형했다. 나라를 몽골족으로부터 구한
충신 우겸은 이 시를 짓고 죽었다. 강직한 성격의 우겸은 자신을 석회에 비ㅇ유하
여 맑고 하얀 깨끗한 존재로 남겠다고 했다. 현재 부패하지 않은 관리, 청백리
와는 사뭇 다른 의미다.
[작가소개]
우겸[ 于謙 , yú qiān ] : 명 왕조 우국충절의 표상
시대 : 명나라 전기
출생 – 사망 : 1398년 ~ 1457년
1. 명 왕조 초기 황제를 보좌하다
절강(浙江) 항주(杭州)부 전당(錢塘, 지금의 저장성 항저우시) 사람으로 자는 정익(廷益)이고, 호는 절암(節庵)이다.
성조 영락(永樂) 19년(1421)에 진사가 되어, 벼슬은 어사(禦史), 강서(江西, 장시성) 순안(巡按), 하남과 산서(山西) 순무(巡撫, 지방장관), 병부우시랑(兵部右侍郎)을 거쳤다.
선종(宣宗)이 즉위한 이듬해인 1426년에 선종(주첨기)과 함께 한왕(漢王) 주고후1)의 반란을 진압했다.
영종(英宗) 정통(正統) 13년(1448)에 좌시랑(左侍郎)이 되었다.
다음해인 1449년 가을, 몽골 서쪽의 부족 와랄(瓦剌)의 수장 야선이 침입해왔다. 당시 섭정을 하고 있던 환관 왕진이 영종을 끼고 직접 정벌에 나섰는데, 병부(兵部)상서2) 광야(鄺埜)가 황제와 함께 출정을 하였고 우겸이 남아서 병부의 일을 처리했다.
그러나 친히 정벌에 나섰던 영종(주기진)이 토목보3) 전투에서 포로로 잡히는 변고가 일어났고 나라 전체는 충격에 휩싸였다. 이에 감국4)으로 있던 성왕(郕王)이 병부상서가 되어 수도의 방어를 책임지는 전권을 맡았다. 우겸이 성왕을 황제로 옹립하니 이가 경제(주기옥), 즉 대종(代宗)이다.
2. 반역죄로 처형당하다
10월 야선은 영종을 미끼로 삼아 자형관을 격파하고 수도를 엿보았다. 우겸은 장병들을 9개의 문(門)으로 보내 적을 맞이하여 싸우게 하는 한편, 자신도 직접 전투를 지휘하여 야선의 동생 패라와 평장 묘나해를 죽이는 전과를 올렸다. 그러자 야선은 영종을 데리고 북으로 도망쳤다.
대종 경태(景泰) 원년(1450)에 야선이 화의를 청하면서 영종을 돌려보냈고, 영종이 돌아오자 남궁(南宮)에 모시고 상황(上皇)으로 추대했다. 이 무렵 복건(福建, 푸젠성)과 절강(浙江, 저장성)의 등무칠과 광동(廣東, 광둥성)의 황숙양 등이 봉기를 일으키고, 호광, 광서(廣西), 귀주(貴州)에서는 소수민족이 반발하는 등 국내외로 어수선하였으나, 모두 우겸에 의해 진압되었다.
그러나 1457년에 장군 석형, 환관 조길상(曹吉祥) 등이 대종이 병으로 남쪽 교외에 머물고 있는 틈을 타 영종을 복위시키고, 우겸을 반역죄로 몰아 처형했다.
후에 헌종 성화(成化) 연간(1447~1487)에 우겸의 관직이 복원되고 제사를 드리게 함으로써 맺힌 한을 풀게 되었다. 사후에 시호는 숙민(肅湣)이었다가 충숙(忠肅)으로 바뀌었다.
3. 우국충절의 표상
우겸은 영종이 포로로 잡혀간 뒤 남쪽으로 수도를 옮기자는 천도파의 주장을 물리치고 북경(北京, 베이징)을 사수했고, 군영(軍營)과 군제(軍制)를 개혁하여 이른바 ‘단영제5)’를 실시함으로써 일시나마 명 왕조의 군대에 활기를 불어넣었던 인물이었다.
그는 우국충절의 표상으로 꼽히는 인물이며, 악비, 장황언과 더불어 ‘서호삼걸(西湖三杰)’로 불린다.
그의 작품으로는 <영석회시(咏石懷詩)>가 유명하고 『우충숙집(於忠肅集)』이란 문집이 훗날 편집되었다.
4. 관련 유적
저장성 항저우시에 우겸의 옛집과 무덤, 그리고 사당 등이 남아 있다.
항저우 송성(宋城)에 세워져 있는 우겸의 석상
항저우 송성(宋城)에 세워져 있는 우겸의 석상
[네이버 지식백과] 우겸 [于謙, yú qiān] - 명 왕조 우국충절의 표상 (중국인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