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짐은 어깨에 맞추어서 져라
어린 시절, 아버님과 형님들과 함께 나무를 하러 자주 갔다. 우리 마을구혜리는 들이 넓어서 나무를 하려면 보통 20~30리 떨어진 곳까지 가야 했다. 마을 뒤쪽을 흐르는 남강 상류를 건너 의령군 지정면의 태부고개, 원내 등지로 자주 갔다. 형님들이 만들어 준 작은 지게를 지고 나도 한몫을 한답시고 쫄래쫄래 따라갔다. 지금이야 연료도 바뀌었고 운송 수단도 크게 변했지만 트럭이나 경운기가 없던 시절, 지게가 최상 의 운반 도구였다.
주먹밥을 지게에 달랑 매달고 함께 떠나는 길은 무척 즐거웠다. 소풍이라도 가는 듯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나는 재롱을 떨었다. 그러면서도 나도 한몫을 톡톡히 하리라는 다짐을 속으로 했다. 새참 때가 되어서 목적지에 도착하면 지게를 벗어 놓고 일을 시작한다. 아버님은 주변을 빙 둘러보시고 비교적 나무하기가 수월한 곳을 나 에게 지정해 주셨다.
"너는 여기서 해라." 장정인 형님들에게는 조금 더 올라가서 하라고 이르시고 당신께서는 주변에서 가장 힘든 곳을 택하셨다. 갈비, 마른 가지, 둥치가 잘려 나 간 나무 밑둥 등이 좋은 땔감이다. "손 다치지 않도록 조심하그라."
아버님은 걱정이 되어 내가 있는 쪽을 자주 바라보시며 큰 소리로 주 의를 주셨다. 한창 힘을 쓸 때인 형님들도 부지런히 나무를 했다. 나무를 한무더기씩 해놓고 그늘에 모여 주먹밥을 먹을 때가 가장 신이 났다. "너 짊어질 만큼만 해라." "예."
대답은 그랬으나 내심은 그게 아니었다. 옹차게 해서는 형님들 못지 않다는 대견함을 보여 주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어이구! 장하다. 벌써 어른 몫을 하는구나.' 이런 칭찬을 들어야겠 다는 작정을 했다. 열대여섯 살이면 제법 어른 흉내를 내는 동네 아이 들도 있었다. 으슥한 담벼락에 옹기종기 모여 초등학교를 졸업한 덩치 큰 녀석들은 훔쳐 온 담배를 종이에 말아서 뻐끔뻐끔 연기를 내뿜어 보 기도 하는 것이었다.
점심을 먹고 해거름이 되기 전에 각자가 한 나무를 부지런히 지게에 꾸린다. 아버님의 나뭇짐은 한덩이 조각품처럼 단단하다. 형님들의 나 뭇짐은 겉보기에는 그럴듯하지만 나뭇단이 제대로 다져지지 않았다. 나도 형님들의 도움을 받아 부지런히 지게를 꾸렸다.
"많이 했구나. 너 이것을 모두 꾸릴 작정이냐?" "예." 나는 의기양양하게 대답했다. "이걸 다 꾸리면 일어날 수도 없다. 반만 꾸려라." "아입니더. 다 지고 갈 수 있습니더." "집까지는 30리다. 욕심내면 안 된다." "싫습니다. 얼매나 힘들게 한 나문데······." 나는 뜻을 관철하고자 바득바득 우겼다.
"야 임마! 그거 다 니꺼 될 것 같노? 반짐 맞춰라 반짐." 형님들마저 거들자 나는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다. 갑자기 외롭 고 서러웠다. "지고 갈 수 있심더. 얼매나 힘들게 했는데······." "할 수 없구나. 그래 가는 데까정 가 보자." 어린 가슴에 상처가 될 것을 아셨는지 내 뜻대로 나뭇짐을 꾸려 주셨 다. 작은 지게가 파묻힐 지경이었다. 새끼줄을 넘기며 형님들은 계속 투덜거렸다.
짐꾸러기가 완료되면 우리는 캐러밴 행렬처럼 대열을 지어 집으로 향했다. 지게 작대기에 힘을 바싹 주어 일어서기는 했지만 일어서자마 자 휘청거렸다. 그러나 아버님과 형님들이 눈치챌까 봐 다리에 힘을 모 아서 나는 앞서서 걸었다. 형님들이 바로 뒤를 따르고 아버님은 맨 뒤 에서 우리 형제들의 걸음걸이를 주시하며 따라오셨다. 어린 나의 걸음 걸이에 아무래도 마음이 많이 쓰였을 것이다.
고개를 넘기도 전인데 나는 비틀거리는 것이 눈에 뛸 정도였다. 그러 나 이를 악물고 빈틈을 보이지 않으려 애썼다. "자, 쉬었다 가자. 지게 받쳐라." 뒤에서 아버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쉬자는 소리가 그렇게 반가울 수 가 없었다. 약간 높은 논둑을 의지하여 지게를 받쳐 놓고 아버님은 담 배를 한 대 무시고 내게 다가와 다짐을 받으셨다.
"니 정말로 이거 지고 집까지 갈 수 있겠노? 니 형들도 지(자기) 힘에 맞게 지게를 꾸렸기 때문에 도와 줄 수 없다." 의기양양하던 출발 때와는 달리 나는 풀이 죽어 대꾸를 못 하고 고개 를 떨구었다. "지게를 풀어라. 반짐으로 다시 꾸리자." 애써서 한 나무를 반이나 버리자는 아버님의 뜻을 거부할 명분도 묘 수도 없었다.
"진작 그래라카이(그렇게 하라니까). 왜 두불 일(두 번 일) 시키노. 이 카다(이러다가) 해 빠지겠다." 형님들의 핀잔을 고스란히 감수하며 짐을 다시 꾸렸다. 절반이나 뭉 텅 버려진 내 나뭇짐을 보면서 팔뚝이 잘려 나간 것처럼 가슴이 아렸다.
"마음 두지 마라. 정 아까우면 내일 너 혼자 와서 지고 가거라." 아버님은 '너 혼자'라는 말에 힘을 주셨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지게 를 지고 캐러밴처럼 느릿느릿 집으로 향했다. 강을 건널 때는 아버님이 당신 지게를 먼저 옮겨 놓고 다시 건너와 내 지게를 지고 건너셨다. 지금도 그날의 나뭇짐 생각으로 '짐은 어깨에 맞추어서 져라'는 아버 님의 말씀을 교훈으로 삼아 무리한 일과 행동을 삼가야 한다는 철칙에 충실하려 한다.
출처 : 천천히 걷는 자의 행복
|
첫댓글 아버지의 지혜를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___________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