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선고를 앞두고 있다. 나는 비상계엄 내란행위 문제와 이재명 판결이 얽히는 상황에서, 이재명 판결의 당부에는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하지 않을 것이다.
나의 어떤 실천이 정치적인 의도로 해석되는 것을 나는 바라지 않는다. 헌법을 지키는 것이 나의 가장 큰 목적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재명 판결을 한 번 형사법 학자로서 읽어보고 싶다.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유포죄가 변호사시험 범위에 들어가지는 않는다. 하지만 선거 범죄에 관한 입법과 법리를 어떻게 형성할지는 중요한 형사법의 한 주제이고 학자의 강의와 연구에 당연히 포함되어야 할 부분이다.
그런데 나는 그 판결문을 구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안다. 보통 1심 형사판결의 경우 보도용 판결 혹은 판결 요약 자료는 기자들에게에만 제공된다. 미확정 형사 판결문은 내가 알기로 판결문 공개 대상에서 여전히 제외되어 있다.
판사시절 정말 이해할 수 없는 법관들의 레파토리가 하나 있었다.
누군가 판결 결과를 강하게 비판하면,
"아이고, 판결문도 안 읽어보니 저런 수준낮은 비판을 하지. 판결문은 읽고 비판해야지"
그런데 판결문을 주지를 않는다.
어렵게 어둠의 경로로 판결문을 어렵게 구해 읽고 비판하면,
"기록 안 읽어보고 판결만 보니 이해를 못하지"
그런데 기록은 아예 공간 시스템조차 없다. 당연한 얘기지만 현직 판사 또한 진행중인 다른 판사 사건의 기록을 볼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뭐, 이건 비판하지 말라는 얘기 아닌가.
전면적인 판결문 공간은 물론 미국의 소송 기록 공개 시스템인 PACER의 한국적 도입을 빨리 연구하기 시작해야 한다. 여기까지 나아가는 것은 아직은 꿈같은 일이라 그런지 대부분 이 부분을 진지하게 얘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오래전부터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소송 기록 공개까지라고 얘기해 왔다.
그래야 공평하지 않은가? 그래야 판결문 읽어 보고 기록도 보고 비판하라는 법관들의 레파토리에 정당성이 부여되지 않겠는가?
개인적으로 나는 이 상황이 코미디라고 생각했다.
단독판사 시절 나는 이 상황이 너무 싫어서,
내가 다루는 민사 사건에서 내가 법원 내부 판결 검색 시스템을 이용해서 사건에 적용될 만한 의미 있는 하급심 판결들을 찾은 다음,
직접 주민등록번호와 주소 등 개인정보를 지우고 나온 관계자들의 이름을 모두 익명화한 공간되지 않은 하급심과 대법원의 판결문을 당사자나 소송 대리인에게 보내주었다.
쟁점을 모두 정리한 석명 처분(몇페이지, 십여페이지에 이르는 나의 장문의 쟁점별 석명처분은 군산모델, 차성안 재판모델의 자랑스런 트레이드마크였다)을 보내어,
"보내드린 판결문 읽고 쟁점별로 각자의 주장을 보완해서 내시라"고 했다.
친절한 판사였지만 인기는 없는 무서운 판사였던 게, 기한을 정해드렸다. 그 기한을 어기면 다시는 그 주장을 할 수 없는 민사소송법의 실권효를 저는 진짜로 적용한다고 경고했다. 그리고 몇 번 실제로 적용했다. 그 충격은 좀 컸나보다. 그 이후 내가 정한 기한을 어기는 소송 대리인은 거의 만나볼 수 없게 되었다. {물론 기한을 지키지 못할 사정이 있는 경우 사유를 밝혀 기한 연장 신청을 사전에 하도록 안내했고 그 정도의 친절함은 나도 유지했다}
나는 판결문 전면 공개, 정확히는 전면 "공간"에 찬성한다. 정확히 얘기하면 사생활의 비밀 등의 이유로 비공개되어야 하는 극히 일부의 판결문을 제외하면 "예산을 왕창 투입해" 몽땅 공개하는 판결문 공간 시스템을 만드는데 찬성이다.
그것이 단기적으로는 민간의 변호사들에 대해서 판사가 가지는 지적 우위 상태를 약화시켜서, 판사들이 내부 판결 검색 시스템 덕에 누리는 일종의 방탄용 권위를 사라지게 만들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장기적으로 판사들의 심리와 판결을 수월하게 하고 그 판결의 질을 획기적으로 높일 것이라고 확신한다.
생각해 보라. 내가 군산에서 판결문 검색할려면 서울이나 일산까지 올라가야 하는 군산과 전주의 변호사들을 위해 직접 하급심 판결문을 쟁점별로 검색한 다음 익명화해서 뿌리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을 썼는데.
나처럼 심리 중 관련 하급심 판결을 익명화해 당사자와 소송대리인에게 뿌리는 판사는 물론 극소수일 것이다. 사실 만나본 적은 없다.
하지만 적어도 판결을 쓸 때 관련된 중요한 하급심 판결을 놓치지 않으려고 판사들이 내부 판결 검색 시스템을 통한 검색에 얼마나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쓰는 줄 아는가.
판결문이 전면 공간되면 그 작업을 변호사들이 대신 해주니 얼마나 편할 것인가.
법원에서 일개 단독판사로서 대한민국 재판 방식의 혁신을 일으킬 재판모델, "군산 모델", "차성안 모델"을 추구하던 그 나의 화양연화의 단독판사 시절이 갑자기 그립다. 눈물이 나는구나. 30대가 그렇게 지나고 40대를 넘어 이제 50을 바라보는구나.
버리고 나온 꿈이 아련하다. 조강지처인 사회보장법과 장애인법에게 미안하다. 한눈 팔고 바람피던 시절의 일장춘몽에 다시 흔들리는 마음을 들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