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이재명은 현장으로 가야 한다. 그 현장이란 광화문이나 여의도 같은 법과 제도의 공간이 아니고, 보수나 중도보수나 진보 같은 이념의 공간도 아니다. 항소심 판결 직후 안동을 찾는 모습은 적절한 첫 걸음이었다. 그런 곳이 바로 '현장'이다. 그 곳에서 치유의 시간을 만들어가야 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그가 경북 북부에서 화재를 진압하려 애썼던 이들을 만나보았으면 한다. 강원 인제 기린면에 마지막 남은 의사가 지키고 있는 병원을 찾아갔으면 한다. 경기도 연천의 폐교 현장을 살펴보았으면 한다. 우리 사회의 가장 아픈 곳에서, 그 아픔을 치유하려 애쓰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 '현장'이다.
이재명은 27일 항소심 무죄판결로 우리나라의 리더 위치에 올라섰다. 그를 지지하든 반대하든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난장판이 되어가는 이 나라에서, 그런 사람이 지금 해야 할 역할은 무엇일까?
지난해 12월 3일 밤 이후 이 나라의 모든 관심은 법과 제도로 쏠렸다. 국회 본회의장을 지켜보며 마음 졸이던 국민들은 다음에 공수처와 검찰과 경찰로 눈을 돌렸고, 서부지법으로 헌법재판소를 파고들어갔다. 폭도들은 서울 서부지방법원을 덮쳤고, 시민들은 여의도와 광화문에서 국회와 헌법재판소를 에워쌌다. 시민들은 헌법을 필사하고 재판 장면을 시청하며 법전을 들추며 채널마다 나오는 법률가들과 평론가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삶은 법으로 뒤덮였다. 이래서는 사회가 지속될 수 없다.
거대한 불길이 15만 도시를 완전히 에워싸기 직전까지, 경북 북부에 관심을 가진 사람은 그곳 주민들 뿐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지역소멸이 진작부터 진행되고 있던 그 곳이다. 이번 재앙이 아니더라도 삶도 공동체도 일촉즉발의 위기 앞에 놓여 있던 지역이었다. 전라도나 강원도나 심지어 수도권의 일부인 경기 북부도 마찬가지다. 이번 재앙을 제대로 추수르지 못한다면, 그 파장은 어디까지 갈지 모른다.
그러나 관심받지 못하고 피폐한 가운데서도 그곳을 지키는 국민들이 있다. 영덕군 지품면 황장리의 36살 청년 신한용씨는 마을에 불이 번지자 귀가 안 들리고 무릎이 아파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을 마을 밖으로 실어 날랐다. 그 직후 동네는 잿더미가 됐다. 신씨는 마을의 가장 어린 청년이었다. 마을을 지키던 단 한 명의 청년이 수많은 어르신들의 목숨을 구했다. 그마저 지역을 지키지 않았다면 어르신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솔로다’에 출연해 유명해진 광수씨는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의 유일한 의원을 운영하는 의사다. 그는 하루에 100여명의 환자를 돌보고 있다. 마을에 남은 단 한 명의 의사가 그 마을 사람 전체의 건강을 지키고 있다. 그마저 떠난다면 그 마을의 환자들은 어떻게 될까.
지역소멸뿐 아니다. 우리 공동체의 문제는 넘쳐난다. 내가 매일 방송을 진행하는 서울 광화문의 식당들조차 저녁 시간에 손님 채우기가 쉽지 않다. 서울 여기저기에는 빈 상가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건설 현장, 생산 현장에서는 이틀이 멀다 하고 산재 사망자 소식이 들린다. 서울 강동구의 씽크홀에서 유명을 달리한 배달 노동자의 비극도 마음을 울린다.
대한민국 공동체가 관심을 가져야 할 문제는 이런 문제다. 법이 아니라 삶에 관심을 기울이고, 제도가 아니라 실천에 자원을 배분해야 한다.
사실 더 큰 문제가 있다. 이런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고 헌신하는 사람들을 냉소하거나 조롱하는 문화가 번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윤리와 가치관이 무너진 사회에서 나타나는 전형적 모습이다. 소멸지역 마을에 남은 마지막 청년은 그 사실만으로도 존경받아야 하고, 지역을 지키는 의사는 그 사실만으로도 보상받아야 하며, 열심히 일하던 배달노동자는 그 노동만으로도 삶을 보장받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이대로 흘러가면, 그들이 지속적으로 존중받을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인다.
지금 우리 사회의 리더가 할 일은 공동체의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다. 그런데 어디서 누구와 함께 회복할 수 있을까? 공동체의 신뢰 회복은 법관과 국회의원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시민사회가 해야 한다. 결국 정치적 문제가 아니라 삶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쓰는 사람들, 법과 말을 통해서가 아니라 삶과 행동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들, 삶을 헌신해 타인의 아픔을 치유하려는 사람들이 신뢰를 회복할 것이다. 현장을 지키는 주민들과 활동가들과 기업가들이 그들이다. 지금 우리나라의 리더는 그들 곁으로 가야 한다. 피폐한 현장을 꿋꿋이 지키는 사람들 곁으로 가서, 그들과 악수하고 안아주며 영웅이라고 힘을 실어 주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 국민들에게 삶이 되돌아오고 신뢰가 회복될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으면 한다.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에 대한 믿음이다. 이 믿음을 딛고 일어서서 새로운 영웅들과 손을 잡고 공동체 전체의 신뢰 회복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리고, 지금 그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이미 리더 위치에 올라서게 된 이재명뿐이다. 그가 대통령이 되고 안 되고는 나중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