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바 테츠야의 '내일의 죠'가 과거 일본의 최고 복싱만화였다고 한다면,
조지 모리카와의 '더 파이팅'은 현재 일본의 최고 복싱만화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단순한 스포츠만화의 차원을 넘어 일본인의 사상에 한 궤적을 그었다고도 평가되는 '내일의 죠'의 영향력과 담겨진 정신에는 필적하지 못하더라도,
'더 파이팅'이라는 만화 자체는 적어도 90년대 이후의 일본 스포츠만화 중에서는 단연 다섯손가락 안에 꼽힐만한 작품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내일의 죠'라는 이 거대한 작품에 대해서는 이 주제의 마지막에 다뤄볼 생각입니다)
제가 감상했던 작품들 중에 몇 안 되는,
슬램덩크와 어느정도 비슷한 노선을 추구하는 것으로 느껴지는 작품이 바로 '더 파이팅'이기도 하지요.
특정 스포츠 자체에 대한 작가의 박식함과 풍부한 이해, (만화에선 의외로 드물죠)
그리고 그것을 잘 짜여진 스토리 안에서 크게 과장되지 않게 풀어나가는 점에서 공통분모를 찾았다고나 할까요.
슬램덩크같은 '괴물'에는 다소 미치지 못한다 하더라도,
나름대로 수준급의 재미와 감동은 확실하게 보장할 수 있는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파워와 테크닉이 모두 어느정도 요구되는 체급인 페더급을 중심으로,
주인공 잇포(일보)와 기타 인물들이 피와 땀을 쏟으며 혈전을 벌이는 장면들은 하나하나가 상당한 흡입력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경기 외적으로 등장하는 개그들 역시 작품의 분위기를 깨지 않는 한도 내에서 간간히 배를 부여잡을 수 있게 만들 정도이구요.
이미 61권까지 출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주인공은 일본 챔피언 방어조차 간신히 해 나가고 있습니다.
대단히 훌륭한 선수이고, 엄청난 노력을 하는 강자임이도 불구하구요.
실제 복싱에서만큼, 강자가 넘쳐난다는 반증이기도 하겠지요.
국내 모 팬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이 시점이 되면 세계제패를 한 후 신과 겨루어 이겨서 이젠 외계인과 맞장떠야할 시점인데도, 그들은 여전히 인간들의 싸움을 하고 있고 잇포는 여전히 우직할 뿐이다."
이 점을 긍정적으로 생각할지 부정적으로 생각할 지는,
읽는 여러분의 주관에 따라 틀려질 듯 합니다.
61권까지 이끌어 오면서도,
다른 작품들에 비해 '질질 끈다'는 느낌을 상대적으로 덜 주는 것은,
어디까지나 조지 모리카와라는 작가의 역량 덕택이라 생각합니다.
일어나는 수많은 경기들 역시 각각의 차별성을 둔 채,
나름대로의 재미를 충분히 제공한다고 보여지는군요.
그런데 대체,
이 작품은 언제쯤 끝나려는지 모르겠습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해적판(복서왕 파이팅)으로 읽었었는데,
대학에 들어가고 도중에 군대까지 갔다와 이제는 대학 졸업을 눈앞에 두고 있는 상황에서도,
잇포는 이제 겨우 신인왕에서 일본 챔피언으로 상승했을 뿐이로군요.
(물론, 잇포 외의 다른 선수들의 경기와 스토리도 상당히 비중있게 다뤄지긴 하지만...)
그래도 화나거나 지겨워지지는 않는군요.
잇포를 비롯한 여러 등장인물들은,
수많은 격전과 우여곡절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계속 스스로를 발전시키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것을 몇년이고 계속 지켜보고 있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아 보입니다.
(아직도 갈 길은 많이 남아 있어 보이지만...)
*재작년에서야 일본 현지에서 애니메이션화가 되었습니다.
이미 100편을 넘긴 것으로 알고 있네요.
국내에서는, 케이블TV 투니버스에서도 방영하고 있습니다.
기회가 되시는 분들은 한번 감상해 보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