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로 할까 백세주로 할까.
두 가지 술밖에 없다는 횟집주인의 말에 우리는 잠시 머뭇거렸다.
서해라면 백세주도 괜찮을 것이다. 일행이 대강 ‘비주류(非酎類)’ 들인데다 흐린 바다의 그 물빛이 술빛과도 조금 닮아 있을 터이므로. 그러나 여기는 동해, 푸른 물살이 예각으로 일렁이고 소주보다 ‘쐬주’가 어울리는, 감포 바다 앞이었다.
물미역 한 접시와 가재미구이가 애벌 안주로 차려지는 동안 잠시 창밖을 내려다본다. 한여름인데도 바다에는 오소소 소름이 돋아있다. 청솔 한 가지가 건들거리는 창가에서 맑은 술 한잔을 털어 넣던 ㅈ이 생각났다는 듯이 묻는다.
“바다에 오면 왜 술이 쎄질까. 왜 빨리 안 취하는지 몰라.”
“이생진 시인이 말했잖아. 술은 내가 마시는데 취하기는 바다가 취해버린다고.”
그래. 바다도 때로는 취하고 싶을 때가 있을 것이다. 취한 척 흥청거리며 맨살의 모래언덕을 기어오르고 싶을 때가 있을 것이다.
수평선처럼 눈이 가느다래진 ㄱ이 그 옛날, 감포 바다에 수장시켜버린 첫사랑의 추억을 이야기한다. 영일만과 호미곶을 거치며 7번 국도를 달려오는 동안 쉴만한 곳이 더러 있었지만 굳이 여기에서 신발끈을 풀어제친 이유를 알겠다. 연두색 원피스와 주황빛 산나리꽃과 바닷가 빨간 우체통의 추억이 금세 건져 올린 미역줄기처럼 생생한 안주거리로 술상 위에 오른다. 첫사랑 그가 건네 준 문학지를, 한 호도 빠뜨리지 않고 지금까지 구독하고 있다는 ㄱ의 사랑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인가. 우리는 간간히 잔을 부딪친다. 지나버린 사랑을, 스러져간 청춘을, 뜨겁고도 쓸쓸한 격정을 추모하며.
“달빛 아래 도라지꽃을 만난 적이 있나요? 어스름 달빛 아래 무더기져 피어있는 도라지밭을 보면 나는 그냥 미쳐버려요.”
횟집으로 내려서는 길목 어귀에서, 한 무더기의 도라지꽃밭에 반색하며 ㄴ이 말했었다. 그 또한 도라지꽃처럼 연연한 사람 하나를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것이리라. 가슴 밑바닥에, 타다가 남은 숯동강 같은 사연들을 신안 앞바다의 유물처럼 가라앉혀두고도 가뭇없이 살아내는 사람들. 몸이 늙어도 마음은 늙지 않는다는 사실이 신의 가호인지 과오인지 아직도 나는 알지 못한다.
해안으로 내려서는 돌계단에 나는 잠시 걸터앉는다. 난간 아래 피어난 나팔꽃들이 허리 가는 여인네처럼 철망을 휘감고 기어오르고 있다. 신안 앞바다의 유물에 대하여, 생철 쪼가리 같은 상처에 대하여,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고 마는 사랑의 속절없음에 대하여, 꽃들이 내지르는 보랏빛 함성이 멀리 멀리 퍼져 나간다.
저만치, 바닷바람에 머리칼을 나부끼며 파도와 술래잡기를 하는 은발의 소년들이 보인다. 존재 속에 웅크린 어린 아이들. 그 아이들은 나이를 먹지 않는다. 예기치 않은 순간에 깜짝 등장했다 사라지는 카메오처럼, 기우는 시간 갈피갈피에 내색 없이 숨어있다 불시에 튕겨져나오곤 한다.
“선생님들 아직도 청춘이시네요”
“청춘이 아니고 홍춘(紅春)이라오!”
“아니, 그보다 청추(靑秋)가 어때요?”
“언감생심! 노추(老醜)요, 노추!”
퉁겨내는 말맛 속에 스며나는 페이소스. 웃음은 때로 눈물보다 서글프다.
그물을 깁느라 잠시도 쉬지 않는 늙은 어부의 차양막 그늘에 우리는 잠시 세들어 앉는다. 넘실거리는 바다를 바라보며 나직한 목소리로 ㄴ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Adoro la calle en que nos vimos,
la noche cuando nos conocimos
대낮에 부르는 사랑노래에도 바다는 덩실 흥이 오르는가. 낮술에 취한 바다가 쪽빛 치마를 걷어 올리자 하얗게 나풀대는 레이스자락 아래 결 고운 동해의 속살이 금빛으로 눈부시다. 구겨진 은박지 같은 수면 위로 새 한 마리 휘청 하늘을 가르고 차양막을 받쳐둔 장대 하나가 번쩍 솟구쳐오른 것도 그 때였다. 신명은 막대기도 춤추게 하는가. 술은 우리가 마셨는데 취하는 건 바다와 장대막대로고.
“아니, 이 놈 보게. 이놈 분명히 수놈일세그려. 숙녀들 앞에서 왜 지가 흥분해 날뛰냐고.”
불어오는 바람에 사뿐 들렸다 내려꽂히는 장대막대를 가르키며 누군가 객쩍은 농을 던진다. 푸른 물살 일렁이는 감포 바닷가에 조약돌 같은 웃음이 흩어진다.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