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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석레인저가떴다] 자운·만장·선인봉의 합창…道로 이끄는 '제일동천'
<33>도봉산① 도봉산역-은석암-자운봉-도봉계곡 9.9㎞…도심 속 오아시스
Y계곡 오르면 산이라는 그릇에 서울 담긴 듯…도봉계곡엔 '선배'들 풍류가
(서울=뉴스1) 신용석 기자 | 2022-08-26 09:00 송고 | 2022-08-26 09:50 최종수정
도봉산은 북한산과 '따로 또 같이' 취급되는 산이다. 우이령을 경계로 남쪽은 북한산, 북쪽은 도봉산이지만, 살을 맞댄 '한 몸의 산'이다. 북한산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할 때 당연히 도봉산이 포함되었고, 두 산이 힘을 합쳐 거대한 도시에서 사람에게도 생물에게도 푸른 오아시스 역할을 하고 있다. 저번에 북한산을 갔으니 이번엔 도봉산을 가자는 식으로 수도권 2000만 주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도봉산(道峯山)의 이름은 특별하다. 도(道)는 세상의 깊은 이치다. 하늘로 솟구친 바위봉우리들이 도(道)를 깨치려는 모습이어서, 또는 그런 산의 기상이 사람들을 도(道)로 인도하는 모습이어서 도봉산이다. 한강 인근에 도읍을 정한 백제도, 북한산 아래에 도읍을 정한 조선도 도봉산을 통해 국가의 길(道)을 열었을 것이다.
도봉산 정상은 자운봉(739m)-만장봉(718m)-선인봉(708m)이 가깝게 우뚝 솟아 삼봉을 이루고 있다. 최고봉 자운봉(紫雲峰)은 자줏빛 구름이 어려 신비하고 상서로운 기운을 나타낸다는 이름이다. 만장봉(萬丈峰)은 높고 높은 봉우리, 선인봉(仙人峰)은 신선이 도를 닦았다는 뜻이다.
도봉산 산행은 주로 도봉계곡과 원도봉계곡, 송추계곡에서 출발하여 다양한 능선을 통해 정상에 오른 후, 다른 능선과 계곡으로 내려가는 순환코스가 일반적이다. 어디로 오르든 정상 직전에 가파른 암릉을 거쳐야 하지만, 정상에 닿으면 땀을 쏟은 것 이상의 ‘대단한’ 풍경 선물을 받는다.
기자는 도봉산의 대표 탐방로 중 하나인 도봉계곡-다락능선-Y계곡을 통해 자운봉에 오르고, 마당바위-천축사-도봉서원으로 내려오는 길을 간다.
◇ 도봉산역-다락능선-포대능선 5.1㎞ "다락능선-포대능선은 도봉산 전망대"
도봉산역에 내려 기다란 상가를 통과한다. 아웃도어 매장, 식당, 간이매점이 즐비한 여러 갈래 길은 도봉계곡 입구에서 하나의 길로 모인다. 이 길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들락날락하는 등산로다. 주말마다 이 넓은 통로로 사람의 물결이 밀물 들어오듯 한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로 산이 남아날까? 라는 염려를 할 정도다.
탐방지원센터를 통과해 북한산국립공원이라고 쓰인 랜드마크 앞에 선다. 왼쪽의 다리를 건너면 무수골 방향의 둘레길로 가거나 우이암으로 오르는 보문능선길이 나온다. 직진하면 곧 왼쪽에 도봉동문(道峯洞門)이라 새긴 바위가 있다. 조선시대의 정치가이자 학자였던 송시열이 1650년에 쓴 글이다.
이 바위를 지나면 왼쪽으로 북한산생태탐방원이 있다. 도봉공원이라는 대형 음식점을 허물고 지은 환경교육용 건물이다. 이 건물의 뒤편 계곡에 제일동천(第一洞天)이라 새긴 바위가 있다. 천하제일의 계곡이란 뜻이다. 바위를 갈라 쏟아진 폭포수가 암반을 몇 굽이 휘돌아 물보라를 일으키며 내려가는 풍경은 언제 보아도 절경이다.
폭포 옆 바위에 '물이 구슬처럼 떨어져 바위를 찧는다'는 뜻인 용주담(舂珠潭), 모든 물(중국의 황허강)은 동쪽으로 간다(지조가 있다)는 뜻인 필동암(必東岩)이란 글씨가 새겨져 있다.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며 도(道)를 닦던 흔적이다. 이 예쁜 풍경을 내려다보는 장소에 가학루(駕鶴樓)라는 정자가 있는데, 학이 날아올 만한 정자이긴 하지만, 건물은 보수가 시급한 상태다.
생태탐방원에는 다양한 탐방·환경교육 프로그램이 있고, 산악안전교육원에서 하는 등산훈련 과정도 있으며, 산악박물관에는 산과 관련된 각종 전시물과 서적이 비치되어 있어 둘러볼만하다. 생태탐방원을 나와 도봉분소에서 직진하여 둘레길의 도봉옛길 숲에 들어서니 물소리와 매미소리, 새소리가 가득하다. 자연에 들어온 것이다.
부드러운 오르막을 10분쯤 가서, 자운봉 3.2㎞라고 쓰인 이정표를 따라 왼쪽으로 커브를 틀고, 거친 바위오르막을 넘어 은석암에 도착한다. 커다란 바위 틈을 막아 산신각이라 하고, 작은 바위마다 작은 석불을 쭈욱 얹어놓았을 뿐, 법당이 없는 암자다. 은석암에서 바위능선을 오르자 경사는 점점 급해져, 바위에 박힌 쇠난간과 쇠사슬을 잡아당기며 다락능선 삼거리에 도착한다.
여기서 5분쯤 올라가, 길 바깥으로 돌출된 전망바위에서 도봉산의 북쪽 스카이라인을 올려다본다. 새파란 하늘에 하얀 뭉게구름이 두둥실하고, 포대능선에 도열한 바위봉우리들이 반짝반짝 빛나며, 망월사 법당들이 초록숲 사이에서 인형의 집처럼 앉아있다. 여기서 15분쯤 더 오른 바위전망대에서 기다란 절벽으로 보이는 선인봉과 만장봉, 자운봉을 가깝게 올려다보고, 멀리 북한산의 인수봉과 더 멀리 보현봉 라인을 바라본다. 시내에 뿌연 안개가 끼어있는 것을 제외하곤 100점짜리 풍경이다.
정상에 다가갈수록 '닥치고 오르막'이다. 수직 암릉에 박힌 난간과 쇠줄을 부여잡고 기어올라 418안전쉼터에서 호흡을 고른 뒤, 기다란 데크계단을 올라 포대능선 전망대에 도착한다. 예전에 적기를 격추시키기 위한 방공포대가 있었던 곳일 만큼 전망이 확 트였다. 바로 코앞의 자운-만장-선인 3형제 암봉도, 그 옆으로 멀리 삼각산의 3형제 암봉도, 포대능선에서 사패능선으로 이어지는 암릉도, 멀리 수락산과 불암산 전망도 압권이다. 송추 넘어 일산 방향은 안개가 자욱하다.
◇ 포대능선-신선대-도봉계곡 4.8㎞ "짜릿한 Y계곡 올라, 자운봉 기운 받고, 도봉계곡 풍류에 젖어"
와이(Y)계곡으로 내려선다. Y자 형태로 깊이 내려갔다 올라서는, 급경사라기보다는 거의 수직 암릉이다. 지난 10년 동안 25명의 사상자가 있었다는 경고판이 있고, 그 옆에 안전한 우회로 표지판이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Y계곡으로 빠진다. 쇠난간을 꽉! 잡고 난간기둥과 쇠발판과 바위틈을 조심조심 디디며 뒷걸음으로 내려선다. 다리가 짧다고 농을 하는 사람 때문에 낄낄대느라 몸 균형이 흐트러진다.
올라서는 것도 쉽지 않다. 이렇게 '쇠'에게 감사한 적이 있었던가? 쇠난간과 쇠줄과 쇠파이프를 잡고, 밟고, 끌어안고, 끙끙대며 '네 발로' 올라선다. 팔힘이 떨어질 무렵, 마지막 용을 쓰고 암릉 꼭대기에 오른다. 스릴 넘치는 도봉산의 명소다. 주말과 휴일에는 포대능선에서 Y계곡 방향으로만 일방통행제가 실시된다.
도봉산 정상은 정말 쉽지 않다. Y계곡에서 팔힘을 다 쓰고, 이제 정상으로 오르는 기다란 계단에서 발힘을 다 쓴 끝에, 드디어 신선대(726m)에 선다. 사방팔방의 조망 중에서도 우선 코앞의 자운봉을 올려다본다. 커다란 바위가 갈라지고 쪼개져, 여러 개 바위들이 떡시루처럼 쌓여 있는 그곳에 도봉산 최고의 기상과 기품이 서려있다. 온누리를 내려다보고 있는 도봉의 왕이다. 남쪽으로 우람한 바위봉우리들이 솟구친 도봉주능선이 힘차게 뻗어내려 오봉능선과 우이암능선으로 갈라진 골격과 핏줄이 선명하다. 그 너머에 북한산의 윤곽이 이쪽 도봉산을 바라보고 있다. 좌청룡 우백호, 호형호제하는 사이다. 하얀 도화지같은 도시와 건너편 산줄기를 바라보며, 산은 도시를 담고 있는 그릇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신선대에서 바로 마당바위로 내려가는 급경사 길이 있고, 주봉을 돌아서 내려가는 길이 있다. 주봉(柱峰)은 기둥처럼 생긴 바위봉우리로 위험해서 출입금지다. 주봉에서 금줄을 넘어온 등산객 3명이 다시 금줄을 넘어 샛길로 들어가 "국공(국립공원 직원)한테 걸리면 30만원이다!" 하면서 사라진다. 도봉산과 북한산에서 가장 큰 문제는 샛길이다. 샛길은 산을 조각내고, 야생동물 서식지를 옥죈다.
주봉 갈림길에서 15분쯤 급경사 돌길을 내려서니 계곡물이 콸콸 쏟아지는 지점과 만난다. 계곡의 상류에도 물이 넘치니 산도 나도 시원하다. 조금 더 내려가 관음암으로 갈라지는 삼거리에서 산허리를 돌면 곧 마당바위다.
비스듬하게 경사진 마당바위에 햇빛이 쨍쨍하고, 사람들은 소나무 밑에서 그늘을 즐기고 있다. 배낭을 벗고 간식을 꺼내는데, 부스럭 소리를 들은 고양이들이 슬금슬금 다가온다. 고양이 문제는 참 골칫거리다. 집에서 키우던 고양이가 산에서 쥐, 새, 개구리 등의 동물들을 마구 잡아먹는 피해를 주고 있다. 자연생태계에서 고양이는 퇴치해야 할 외래종이다. 황소개구리와 같다. 그러나 '불쌍한' 고양이를 잡아내면 안된다는 의견도 있고,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는 사람들도 많다. 고양이를 안전하게 포획해서 합리적으로 처리하는 대책을 빨리 추진해야 한다. 개도 마찬가지다.
돌계단을 길게 내려가 천축사에 닿는다. 천축(天竺)은 천축국(인도)에서 따온 이름이다. 법당은 다른 절과 같은데, 법당 뒤에 우뚝 선 선인봉이 이 절에 엄청난 기운을 주는 풍경이다. 종무소 앞 그늘의 대형 선풍기 앞에서 잠시 졸다가 일어선다. 도봉대피소 삼거리를 지나 계곡 하류에 이르니 평소에 숨어있던 작은 폭포들이 여기저기서 아우성이다.
곧 도봉서원터에 이른다. 조선시대의 유교 이념을 좌지우지했던 조광조와 송시열을 기리는 '엄청 잘나갔던 서원'이었으나, 대원군의 철폐령으로 완전히 헐렸다. 이 서원을 복원하기 위한 작업을 하던 중 불교유적이 많이 발굴되어 복원사업이 지연되고 있다고 한다.
서원터 앞 계곡의 바위에 고산앙지(高山仰止)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조광조를 높은 산처럼 우러른다는 뜻이다. 이 주변에 '시냇물을 베개 삼아 누워 즐겼던' 침류대(枕流臺)가 있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천민 출신이지만 큰 인물이 된 유희경이 풍류를 즐기던 장소다. 계곡 왼쪽은 메꾸어져 넓은 길이 되었지만, 오른쪽의 반쪽 풍광은 여전히 아름답다. 그 오른쪽 풍광을 왼쪽 길에 중첩시키니 과연 '제일동천(第一洞天)', 천하제일의 절경이 상상된다.
도봉계곡 입구에 있는 유희경-이매창 시비(詩碑)에서 산행을 마무리한다. 이 도봉계곡에서 유희경은 그가 사모한 여인을 그리며 "그리움 사무쳐도 서로 못 보고/ 오동잎에 비 뿌릴 젠 애가 끊겨라" 라는 시를 썼다. 그 여인은 여류시인 이매창이다. 매창은 전라도 부안에서 유희경을 그리며 "이화우(梨花雨) 흩뿌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추풍낙엽에 저도 날 생각하는가" 라고 노래했다. 이 시비는 가운데가 갈라진 두 개의 몸체이지만, 서로 다가서려는 몸짓을 표현하고 있다.
도봉산에 들어가 도(道)의 근처에도 가지 못했지만, 자운봉 정상에서 드넓은 세상을 바라보고, 도봉계곡에서 선배들의 풍류와 애절한 스토리를 접했다. 가슴을 넓히고 깊게 한 산행이었다.
[신용석레인저가떴다] 우람한 포대능선, 꼭대기엔 바위제국…엄홍길 집터도
<34>도봉산② 원도봉계곡~사패산~회룡계곡 10.6㎞…역세권의 '으뜸 산'
그림같은 원도봉계곡, 신라 그리는 망월사…사패산서 본 풍광도 압권
(서울=뉴스1) 신용석 기자 | 2022-09-02 09:00 송고 | 2022-09-02 09:43 최종수정
도봉산의 산세는 사방팔방으로 울뚝불뚝하다. 자운봉-만장봉-선인봉이 육체미 자랑을 하는 정상에서 남쪽으로 도봉주능선이 힘차게 뻗어 오봉능선과 보문능선, 우이남능선으로 갈라진다. 정상에서 북쪽으로는 바위봉우리들이 울룩불룩한 포대능선과 사패능선이 이어지면서 산 아래로 다락능선, 송추북능선, 안골능선이 내려간다. 능선 사이로 도봉계곡, 원도봉계곡, 송추계곡 등이 기암괴석과 어우러져 절경을 빚고, 곳곳에 유서깊은 사찰들이 점점이 박혀있다.
의정부 사람들은 도봉산을 원도봉산으로 부른다. 본래 도봉산은 경기도 땅이었으나 1949년 도봉산 정상과 도봉계곡이 서울 도봉구로 개편됨에 따라 다락능선 이북의 도봉산을 원래, 또는 으뜸이라는 의미를 붙여 원(元)도봉산으로 부르는 것이다.
원도봉산은 비공식적인 이름이지만 원도봉계곡은 정식 지명이다. 원도봉계곡은 원도봉유원지라고 불렸을 만큼 물가에 음식점과 놀이시설이 가득했으나 환경오염과 안전문제로 대부분 철거하여 본래의 자연계곡 모습을 되찾고 있다. 계곡을 막아 물을 가두고 자릿세를 받던 영업도 사라져 국립공원다운 품위도 복원되고 있다.
도봉산은 역세권 산이다. 전철 1호선(도봉역/도봉산역/망월사역/회룡역), 7호선(도봉산역), 의정부 경전철(회룡역/범골역/의정부시청역)을 이용해 등산로나 둘레길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주말의 전철은 언제나 등산객들로 넘쳐난다.
기자는 망월사역에서 내려 원도봉계곡을 통해 포대능선과 사패산에 오르고, 회룡계곡으로 내려오는 산행을 간다.
◇ 망월사역~원도봉계곡~망월사~포대능선 3.5㎞ "예쁜 계곡, 유서깊은 사찰, 우람한 포대능선"
망월사역에 내려도 망월사는 없다. 3㎞의 길을 오르며 땀 좀 쏟아야 절이 있다. 역 바깥으로 나와 신한대학교 캠퍼스 사이로 멀리 보이는 도봉산 암봉들을 바라본다. 그곳을 향해 오르는 길은 좀 어수선하다. 오래된 골목길 풍경의 상가들을 지나, 공룡 같은 외곽순환도로 밑의 아스팔트 길을 올라, 원도봉상가의 언덕 끝에 닿는다. 여기서 내려다보니 계곡 하류의 남루했던 음식점 대부분을 헐었다. 원도봉계곡의 곱고 예뻤던 원형이 복원되기 바란다.
쌍용산장 삼거리의 모퉁이에 있는 탐방지원센터를 통과하면 금방 초록숲과 하얀 계곡과 맑은 물이 어우러진 숲길이다. 길 초입에 이곳의 식물과 곤충, 이끼, 숲을 설명하는 자연해설판이 쭉 설치되어 있는데, 보고 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 외국의 국립공원에 가보면 해설판 앞에서 노트를 하거나 스케치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계곡길 옆으로 약간의 평지가 풀밭을 이룬 곳이 몇 군데 있는데, 그런 곳은 과거의 집터다. 그 흔적 중 한 곳에 '산악인 엄홍길 대장이 살던 곳'이라는 표지판이 있다. 히말라야 16좌를 오른 산악영웅이 어릴 적부터 37년간 살았던 곳이다. 기자는 이곳과 인연이 있다.
20여 년 전 이곳에 사망사고가 날 만큼 큰 수해가 나서 계곡변에 난립되어 있던 상가들을 이주시키는 사업을 추진했다. 그때 엄홍길 대장의 집만은 남겨 기념관으로 하자는 요청이 있었으나,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이주에 응하지 않던 주민들이 많아 예외를 둘 수 없었다. 세월은 흘러, 몇 년 전 엄홍길 대장과 지리산 산행을 함께할 기회가 있었다. 벽소령 대피소에서 한 방을 쓰며, 그때 그런 일이 있었다고 말하니, 엄홍길 대장이 “그게 당신이었냐?”고 놀랬다. 그날 술 한잔 한 끝에, 주민등록증을 '까서' 형·아우 하기로 했다.
슬슬 가다가, 짧은 급경사 돌계단을 올라서면 두꺼비 바위 전망터인데, 이제 나무들이 많이 자라 시야를 가린다. 거기서 조금 내려가면 시야가 트인 조망점이 있다. 언제 보아도 소주 광고에 나오는 두꺼비와 닮았다.
부드럽게 올라가던 등산로는 극락교를 넘어서면서부터 가팔라진다. 땀이 솟지만 골짜기로부터 시원한 바람이 내려온다. 덕제샘 삼거리에 도착하니 어떤 사람이 돌투성이 길을 맨발로 내려온다. 기자는 반달가슴곰의 '맨발'을 만져본 경험이 있다. 등산화의 밑창보다 더 단단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너무 부드럽고 푹신한 발바닥이었다.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는 말이 생각났다.
덕제샘에서 곧 망월사, 민초샘 삼거리에 닿으니 목탁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오른쪽의 가파른 돌길 300m를 헐떡이며 올라서면 망월사 안내도가 서 있고, 거기서 약 200계단의 고행을 해야 망월사의 상징인 영산전(靈山殿)에 닿는다. 산신령처럼 우뚝 선 자운봉, 만장봉, 선인봉이 바짝 다가와 영산정을 내려다보고 있는 산세가 압도적이다. 건너편의 포대능선으로 가는 등산로 입구에서 영산전을 보면 도봉산의 바위봉우리들이 그 기운을 법당에 전해주는 풍경이 완연하다. 바깥에는 휙휙~ 바람소리 요란한데, 문을 열어둔 법당 안에는 아무 소리도 들어가지 않는 듯, 참배객 두 명이 미동 없이 숙연하다.
산꼭대기 비탈의 여기저기에 축대를 쌓아 전각을 세운 망월사다. 산이 절을 품은, 절이 산을 섬기는 모습 하나 하나가 그림같은 풍경이다. 망월사(望月寺)는 신라시대에 창건되어, 월성(月城/경주)을 바라본다는 의미의 이름이다. 신라의 달을 그리는 절이다. 환한 보름달보다는 외로움이 서린 초생달이 비추는 절 풍경이 더 어울릴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망월사 북쪽 끝 벤치에서 산과 절의 어울림을 한참 바라보고, 포대능선으로 간다. 아무 생각없이 땀 한 바가지 쏟으며 500m를 오르니 포대능선 꼭대기의 바위제국이다. 조각처럼 빚어진 바위들이 봉우리에 얹히거나 꼽혀서 기다란 성을 쌓았고, 그 아래로 초록숲의 바다가 내려가고, 그 아래엔 도시가 건물들의 바다를 이루고 있다. 금방 비를 뿌릴 듯 컴컴한 구름 아래서 도시와 바위들은 더욱 하얗게 빛나고 있다. 이 장소에 몇 번 왔지만, 올 때마다 완전히 생소한 장관이 펼쳐진다.
◇ 사패능선~사패산~회룡계곡~회룡역 7.1㎞ "사패산에서 풍경에 감동하고, 회룡폭포에서 복원을 바람하고"
산불감시초소 밑 바위무더기에서 포대능선 방향의 장관과 도시풍경을 한번 더 가슴에 담고, 사패능선으로 간다. 얼마 안 가서 소나무 고사목들이 비장하게 서있는 지점을 통과한다. 아래 기둥만 지탱되고 있을 뿐 꺾이고 부러진 가지들, 곤충과 버섯에 의해 부서지고 분해되는 잔해들을 본다. 자연스런 생태계의 순환이지만, 인생도 그러하다는 감정이입을 느낀다.
가파르고 기다란 계단에서 나는 여유있게 내려가지만, 올라오는 사람들은 고개를 들지 못하고 오르다 서다를 반복한다. 산불감시초소에서 출발한 지 30분쯤 지나 좌우로 송추와 회룡사로 가는 사거리에 도착한다. 직진해서 1.2㎞ 남은 사패산으로 가는 능선길 옆으로 멧돼지가 흙을 뒤집어놓은 흔적이 많아진다. 확실히 인구밀도가 적은 곳에 야생동물 흔적이 많다.
길에서 약간 벗어나, 널따란 바위 한쪽에 기다란 바위가 얹힌 곳에서 도봉산 능선을 훤하게 조망하는 뷰포인트가 나온다. 더 좋은 사진을 찍겠다고 뒷걸음치면 안 되는 낭떠러지다. 이어서 삼거리 두 곳을 지나면 곧 펑퍼짐한 돌언덕이 나오고, 거기를 올라서면 사패산이다.
사패(賜牌)란 임금이 가족이나 신하에게 땅을 주는 것을 말한다. 사패산은 조선의 선조가 그의 딸 정휘옹주가 시집 갈 때 선물로 준 산이다. 2000년대 초기에 서울외곽순환도로를 건설하면서 '사패산 터널'을 뚫느냐 마느냐가 큰 환경이슈가 되어 널리 알려진 사패산이다. 터널은 결국 뚫렸고, 연결도로 주변은 너무 시끄럽고 공기는 탁하다.
사패산 정상은 하얀 암반이 비스듬하게 펼쳐진 ‘운동장’이다. 여기 도착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도봉산을 먼저 바라본다. 마치 산을 옆으로 길게 늘어뜨린 것처럼, 방금 지나온 봉우리에서 사패능선-포대능선-자운봉-도봉주능선-오봉능선으로 이어지는 스카이라인이 쫘악 펼쳐져 있다. 오봉 너머로 북한산의 상장능선이 뚜렷하고 그 위로 백운대와 인수봉이 구름에 살짝 가려지고 있다. 시선을 돌려 일산과 파주, 양주 쪽에 깔린 벌판과 산을 내려다보고, 의정부와 북서울의 하얀 도시 너머로 둘레를 친 수락산과 불암산 라인을 바라본다. 사방팔방이 감동적인 풍경이다.
큰 힘 들이지 않고 올라온 작은 산에서 이렇게 넓고 막힘없는 풍경을 즐기다니, 사패산은 가성비가 높은 명당이다. 웅웅~ 하며 불어온 세찬 바람이 몸을 휘청거리게 하는데, 이곳에서 태어나 수백 년 동안 비바람을 맞았을 소나무가 가지를 낮게 펼쳐 물결처럼 흔들린다. 독야청청(獨也靑靑)이란 단어에 딱 어울린다. 이 멋진 경관과 이토록 시원한 바람과 헤어지기 어려운 사람들이 암반에 앉아서, 누워서, 엎어져서 움직일 줄 모른다. 다 함께 자연이 된다.
다시 1.2㎞ 길을 돌아 나와, 회룡사 사거리 쉼터에서 계곡으로 내려서니 찬 바람이 사라지고, 뜨듯한 공기가 밀려온다. 기다란 돌계단과 더 기다란 철계단 끝에 계곡물을 만나 땀을 씻는다. 입 속에 들어온 물이 차고 달아 수통에 채웠다. 능선에서 내려온 지 30분쯤 되어 회룡사를 만난다.
멋진 바위들이 모여 봉우리를 이룬 산자락 아래에 자리한 절이다. 회룡(回龍)이란 이성계가 아들(이방원)을 피해 거처하던 함흥에서 돌아와 머문 곳이라는 뜻이다. 이 때 ‘함흥에 간 사신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함흥차사(咸興差使)라는 말이 생겼고, 한양의 신하들이 이곳으로 와 정사를 논해 의정부(議政府)라는 지명이 생겼다고 한다.
절을 나와 시멘트 길을 내려선다. 왼쪽 계곡에 하얀 물줄기가 암반을 몇 굽이로 가르며 쏜살같이 내려가다 폭포로 떨어지는 아름다운 풍경을 본다. 그러나 이 풍경의 반쪽은 시멘트 길이다. 계곡의 반쪽에 높은 축대를 쌓고 메운 도로다. 도로가 아니라면 '용이 돌아와 솟구치는' 모습의 회룡폭포는 천하의 명소가 되었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풍경복원을 하면 좋겠다.
외곽순환도로 다리 밑부터는 도시다. 400년 넘은 회화나무를 지나 10분쯤 걸어 회룡역에 도착하면서 10.6㎞ 5시간 반의 산행을 끝낸다. 역 주변의 음식점과 카페에서 산행 뒤풀이가 한창이다. 등산의 최종 목표점은 집인데, 머나먼 집이다.
명산 도봉산에서도 으뜸으로 치는 원도봉산, 오리지널 도봉산을 다녀왔다. 우람한 바위들이 도열한 포대능선과 세찬 바람이 몰아친 사패산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사나운 환경에서도 아름다움과 품위를 갖춘 소나무들로부터 도(道)의 경지(峯)를 보았다.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사람이 찾는 국립공원이지만, 가장 한적하고 여유로운 코스에서 가슴 벅찬 풍경을 즐기고 사색한 산행이었다.
도봉산 산행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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