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면교사(反面敎師) 될 교훈
구체적으로 바잔은 자신들이 건조한 스페인 해군의 프린시페 데 아스투리아스(Principe de Asturias)를 축소(縮小)한 경항모(輕航母)를 만들어 주겠다고 했습니다.
사실 스키점프대처럼 함재기 운영(艦載機運營)과 관련(關聯)된 시설(施設)을 제외(除外)한다면 LPD나 경항모의 기본적(基本的)인 구조(構造)는 크게 차이(差異)가 나지 않습니다.
항모라는 말에 솔깃했으나 굳이 필요성(必要性)을 느끼지 못한 태국이 망설이자 이번에는 스페인 정부가 나서 결정적(決定的)인 당근을 제시(提示)했습니다.
↑2011년에는 홍수와 비로 위험해진 섬의 외국인들을 구하는데 동원되기도 하였다.
↑건조 직후 프린시페 데 아스투리아스(下)와 시험 항해 중인 차크리 나루에벳
퇴역 예정인 해리어(스페인 명 AV-8S) 6기를 무상(無償)으로 제공(提供)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1992년 3월 LDP보다 약 10% 정도 비싼 3억 3,600만 달러에 계약(契約)이 체결(締結)되었습니다.
그야말로 얼떨결에 구매(購買)했다는 표현(表現)이 맞을 정도였습니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항모였지만 현 왕실인 '차크리(chakery) 왕조(王朝)의 영광(榮光)'이라는 의미의 차크리 나루에벳(HTMS Chakri Naruebet)으로 함명(艦名)을 명명(命名)했을 정도로 태국의 기대(企待)는 컸습니다.
↑스페인의 호위 항모 데달로(SNS Dedalo)에서 출격한 AV-8S
일사천리(一瀉千里)로 건조(建造)가 이루어졌고 1996년 1월 진수(進水)되어 각종 시험(試驗)을 끝낸 후 1997년 3월에 인도(引導)가 이루어져 태국은 당당히 14번째 항모 보유국(航母保有國)으로 이름을 올려놓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취역(就役)과 동시에 수많은 문제점(問題點)이 속속 드러났습니다.
수용(受用)한 함재기(艦載機)가 10기도 안되어 작전 능력(作戰能力)이 떨어지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독도함(獨島艦)보다 작은 만재 배수량(滿載排水量) 11,486톤 크기로는 원활(圓滑)히 임무(任務)를 수행(修行)하는데 부족(不足)한 점이 많았던 것입니다.
↑차크리 나루에벳에서 이함 준비를 하는 AV-8S
예정(豫定)에 없던 도입(導入)이다 보니 호위함 전력함 호위함 전력(戰歷護衛艦)이 없다는 점도 커다란 문제였습니다.
평시(平時)나 재난구호 임무(災難救護任務)라면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전시(戰時)를 대비(對備)해야 하는 항모에게 이는 너무 치명적(致命的)이었습니다.
더구나 추후(追後)에 획득(獲得)할 계획(計劃)도 없었습니다.
미국의 슈퍼캐리어도 호위 전력 없이 항구(港口)를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을 상기(想起)한다면 차크리 나루에벳은 도입과 동시(同時)에 군사적 능력(軍事的能力) 상당 부분을 상실(喪失)한 것과 다름없었습니다.
↑태국에 인도 전 스페인 호위함들과 항진 중인 차크리 나루에벳
또한 추후 장착(裝着)할 예정으로 각종 센서나 방어용 무장(防禦用武裝)을 생략(省略)하고 선체(船體)만 인도(引導)받았으나 도입 직후 닥친 외환 위기(外換危機)로 업그레이드 계획(計劃)이 모두 취소(取消) 또는 연기(演技)되었습니다.
거기에다가 10년도 안된 2006년에 어떤 미련도 두지 않고 전량(全量) 도태(陶汰)시켰을 만큼 무상(無償)으로 제공(提供)받은 해리어들도 문제가 많았습니다.
한마디로 폐기 비용(廢棄費用)만 부담(負擔)한 셈이었습니다.
이런 여러 문제점으로 말미암아 차크리 나루에벳은 애물단지로 전락(轉落)했습니다.
↑계약 당시부터 많은 사연을 만들어 낸 미니 항모 차크리 나루에벳
결국 현재 차크리 나루에벳은 고정익기(高挺益機) 없이 6~8기 정도의 헬리콥터만 운용하면서 헬리콥터 초계 항모(哨戒航母)로 지위(地位)가 변경(變更)되었습니다.
차라리 처음부터 LPD로 건조(建造)했다면 공간(空間)만 차지하는 스키점프대 같은 시설(施設)을 만들 필요(必要)도 없었을 것입니다.
결국 사타힙(Sattahip) 군항(軍港)에 정박(碇泊)하는 날이 더 많아졌습니다.
한마디로 항모라는 단어(單語)에 유혹(誘惑)에 너무 도취(徒取)되어 많은 부분을 간과(看過)한 결과(決科)였습니
다.
↑모항에 정박 중인 차크리 나루에벳
물론 가만히 있기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2003년 캄보디아에서 반(反)태국 시위(示威)가 벌어졌을 때 긴급 출동(緊急出動)하여 자국민(自國民)을 소개(疏槪)함과 동시에 무력 시위(武力示威)를 벌여 캄보디아를 긴장(緊張)하게 만들었습니다.
2004년 동남아(東南亞)를 휩쓴 쓰나미(Tsunami, 地震海溢) 당시에 구호 활동(救護活動)을 벌였습니다.
다만 최초 도입 단계(最初導入段階)부터 구호 임무가 중요(重要)한 목적(目的) 중 하나이기는 했어도 해군의 전략자산(戰略資産)이라 할 수 있는 항모에게 그런 임무가 주가 되어서는 곤란(困難)합니다.
↑건조 후 시험 항해 중인 차크리 나루에벳(우)과 원형인 프린시페 데 아스투리아스.
↑나름대로 역할을 했지만, 좋은 평가를 내리기는 어렵습니다
단지 구호(救護)나 구난(救難)이 목적(目的)이면 획득(獲得)과 운용 비용(運用費用)이 저렴(低廉)한 전용 선박(專用船舶)을 구매(購買)하는 것이 효율적(效率的)이기 때문입니다.
항상 바다로 나가 작전을 벌일 수는 없지만 목적이나 기능(技能)이 상실(喪失)되어 값비싸게 도입(導入)한 항모(航母)가 항구(港口)에서 보내는 시간이 훨씬 많다면 이는 상당한 문제입니다.
항모를 운용했다는 경험과 자긍심(自矜心)을 얻기 위해 태국이 치러야 했던 대가(代價)는 너무 컸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무기 도입에 있어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야 할 사례(事例)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 august 의 軍史世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