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0일 오늘의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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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고반(Goban)
성 울탄(Ultan)
축일 6월 20일
아일랜드 태생으로 성 푸르세우스(Furseus)의 제자였던
성 고반은 스승을 수행하여 이스트앵글리아로 갔으며,
그 후 성 울탄(Ultan)과 더불어 프랑스 지방으로
파견되어 선교하였다. 그러나 그는 독일에서 건너온
야만인들의 희생물이 되고 말았다.
생 고반(Saint-Goban) 마을은 그가 생활하고 죽었던
몽 에르미타주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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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그레고리오 로페즈, 주교(1596년 순교)
축일 : 6월 20일
스페인의 마드리드 태생인 그는 궁중의
사환으로 일하던 중에 에스트레마두라에 있는
과달루페의 성모 경당을 순례하였다.
이때 그는 멕시코에 과달루페의
다른 경당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알기 위하여 그곳으로 갈 계획을 세웠다.
그는 베라 크루스에서 소유물울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준 뒤에
은수자로 살만한 곳을 찾아가,
어느 한적한 계곡에서 기도와 고행으로
평화스럽게 얼마를 살았다. 그 후 그는
도미니꼬회의 유명한 선교사의 권유를 받고,
멕시코의 도미니꼬회에 입회하기 위하여
길을 떠났으며, 몇몇 공동체에서 생활한 결과,
자신은 이 생활보다 은수자가 맞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이때부터 그의
명심이 널리 알려졌고, 멕시코의 대주교조차
그를 일컬어 특별한 신심과 덕행을 갖춘
사람이라고 하여 더욱 유명해졌다.
특히 그의 철저한 가난 생활은 지나칠 정도였고,
늘 성서 공부를 하여 성서에 뛰어난 지식을 가졌다.
그는 54세의 일기로 운명하였는데,
멕시코 전역에서 그를 공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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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노바토(Novatus)
축일 6월 20일
성 노바투스(또는 노바토)는 로마 원로원 의원인
성 푸덴스(Pudens, 5월 19일)의 아들이자
성녀 프락세데스(Praxedes, 7월 21일)와
성녀 푸덴티아나(Pudentiana, 5월 19일)의 형제로
잘 알려져 있다. 성 푸덴스와 그의 자녀들은 모두
사도 베드로(Petrus)에 의해 개종한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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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리차드 랭고른, 순교자(1679년 순교)
축일 : 6월 20일
잉글랜드의 베드포드셔에서 좋은 가문의
후예로 태어난 그는 1654년에 법조계로
진출하여 정의롭고 신심깊은 뛰어난 법률가라는
명예를 얻었다. 그는 런던 대화재 사건 이후인
1667년에 체포되었다. 그는 1679년 7월 14일,
타이번에서 형을 받을 때, 이런 말을 남겼다 :
"주 예수여, 저는 당신의 순에 내 영혼을
맡겨드립니다. 지금 이 순간에 천국에
들게 하소서. 저는 예수님과 함께 있기가
소원입니다. (그리고 교수형 집행자에게)
나는 준비가 되었소, 나때문에 지체할 필요는 없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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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마카리오(Macarius)
축일 6월 20일
성 마카리우스(또는 마카리오)는
팔레스티나(Palestina) 지방 페트라(요르단
남부에 있는 대상 도시유적)의 주교로
사르디카(Sardica) 공의회에서 아리우스파를
강하게 반대하였다.
그 결과 그들은 주교의 면직을 획책하여 아프리카로
추방하였고, 그는 그곳에서 선종하였다.
성 마카리우스 주교의 원래 이름은 아리우스(Arius)
였으나 이단과의 거리를 두려는 뜻에서
이름까지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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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미첼리나 메텔리(Michelina)
축일 6월 20일
부유하고 이름 있는 집안에서 태어난 미첼리나 메텔리는
12세 때에 리미니의 말라테스타 가문의 아들과
결혼하여 행복한 생활을 하였지만, 20세에 남편과
사별하여 과부가 되었다. 그녀에게는 어린 아들 하나가
있었지만 그것으로 자신의 마음이 안정될 수는 없었다.
그때 미첼리나는 프란치스코 재속 3회원이 되었다.
그녀는 대부분의 시간을 기도로 보내고, 애긍으로
생활하였으며, 밤이면 은혜로운 사람들이 베푸는 곳에서
쉬곤 하였다.
그러던 중에 아들을 잃게 되자 그녀는 이 세상을 완전히
포기할 수 있었다. 그녀는 철저한 고행과 기도생활에
빠져들었다.
그녀는 나병환자들을 돕거나 온갖 자선활동으로
지친 몸으로 주님과 하나 되는 행복감을 맛보았다.
임종이 가까워 올 즈음에 그녀는 로마(Rome) 순례를
했는데, 이즈음에 그녀는 56세의 일기로 운명했다.
전통적으로 그녀의 축일이 오면 램프 불을 밝힌다고 한다.
그녀가 문전걸식할 때에는 아무도 불을 밝혀주지
않았던 것이 그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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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바뇨(Bagnus)
축일 6월 20일
칼레스 마을의 주요 수호성인으로 모셔진
성 바그누스(또는 바뇨)는 프랑스어로는 뱅(Bain)이라
부르는 퐁트넬(Fontenelle)의 은수자였다.
그는 성 반드레지실루스(Wandregisilus)의 가장
열심한 제자였다고 전해온다.
689년경에 그는 테루안(Therouanne)의 주교로 선임되어
샤넬 지방까지 열렬히 복음을 선포하여 대단한 공적을
남겼다. 교황 성 세르기우스 1세(Sergius I)를 방문하고
돌아올 때 그는 많은 선물을 받았는데, 그중에는
성 실라(사도 바오로의 동료)의 유해도 들어 있었다.
그는 아일랜드의 두 순례자(성 루글리오와 루글리안)가
성지에서 돌아오는 길에 강도들에게 살해당한 것을 알고
장례를 지내주었다.
12년 동안 주교직을 수행하다가 사임하고는 다시
옛 은수처로 물러가서 고독한 생활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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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바오로(Paul)
성 키리아쿠스(Cyriacus)
축일 6월 20일
성 바오로(Paulus)와 성 키리아쿠스(Cyriacus)는
흑해 연안 하(下) 모이시아(Moesia)의 토미(Tomi)에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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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실베리오(Silverius)
축일 6월 20일
교황 성 호르미스다(Hormisdas)의 아들이었던
성 실베리우스(또는 실베리오)는 이탈리아 남부
캄파니아(Campania)의 프로시노네(Frosinone)에서
태어나 로마(Rome)의 부제가 되었으며,
교황 성 아가피투스 1세(Agapitus I)의 서거 일에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정치문제에 휘말려
곤욕을 치렀고, 소아시아 리키아(Lycia)의 파타라로
납치된 사실도 있었다.
그 후 그는 황제 유스티니아누스의 도움으로
석방되었으나, 반대파에 의하여 재차 납치되어
나폴리(Napoli)의 팔마롤라 섬에 갇혀 있던 중
기아로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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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아달베르토(Adalbert)
축일 6월 20일
트레비스의 성 막시미누스 베네딕토 수도원의
수도자인 성 아달베르투스(Adalbertus,
또는 아달베르토)는 황녀 올가(Olga)의 요청에 따라
황녀의 러시아 신하를 개종시키도록
오토 대제로부터 명을 받았다.
황녀 올가는 70세에 콘스탄티노플에서 이미
신자가 되었다. 올가의 외교인 아들 스비야토슬라브가
961년에 어머니로부터 왕위를 이어 받았을 때
박해가 일어나서 선교사들이 강제 축출되고,
또 키예프(Kiev) 근처에서는 순교하는 사례까지 있었다.
아달베르투스 역시 피신하여 마인츠(Mainz)의 황궁에서
4년을 살았다. 그 다음에 바이센부르크 대수도원의
원장으로 피선되었고, 학문의 후원자로서 명성을 얻었다.
그는 962년에 오토 대제의 권고에 못 이겨
작센(Sachsen) 지방 마그데부르크의 초대 대주교가
되었으며, 슬라브에 대한 관할권까지 갖게 되었다.
그는 벤드족(Wends)에게 그리스도교회를 전파하고,
자기 교구내의 수도회 육성을 위해 여생을 보냈다.
메르세부르그 방문 길에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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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오산나(osanna)
축일 : 6월 20일
성녀 오산나는 그 지방의 공작 집안인
니꼴라오 안드레아시와 루이자 곤자가의 딸이다.
그녀는 다섯 살 때에 처음으로 신비체험을 하였다.
어느날 카르보나롤라의 포 강변을 거닐고 있는데,
"아가야, 생명과 죽음은 사랑이신 하느님께
달려 있단다" 하는 신비스런 음성이 들려왔던 것이다.
그 말을 들은 즉시 탈혼에 빠진 그녀는
한 천사의 인도로 천국으로 인도되었다는 것이다.
오산나는 거기서 모든 창조물이 하느님을 영원히
찬양하는 것을 본 것이다. 이때부터 어린
오산나는 장시간 동안 기도와 보속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녀는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읽고 쓰기를 배웠으며, 14세 때에는 도미니칸
3회원이 되려고 했으나, 결혼을 주장하는 부모의
반대를 받았다. 이상한 것은 그녀가 37세가
될 때까지 서약하지 않고 거의 항상 수련자로
지낸것이다. 이것은 부모께 대한 순종이
하늘나라에서도 매우 중요함을 환시를 통하여
알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1476년부터
1481년 사이에 그녀는 그리스도의 수난에
직접 동참하는 체험을 하였다. 처음에는 가시관,
그다음에는 옆구리의 상처, 그리고 마지막으로
양손과 발에 상처가 드러나게 된 것이다.
그녀는 지극히 단순하고 또 깊은 신뢰심을
가지고 하느님만 바라고 일생을 살았던 때문이다.
1501년, 그녀는 비로소 재속 도미니칸으로서
서약을 하였고, 그 즉시 56세의 일기로 선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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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요한(John)
축일 6월 20일
이탈리아 풀사노(Pulsano)의 베네딕토회의 설립자로
공경을 받는 성 요한(Joannes)은 어릴 때부터
은수자로 살았는데, 장성하게 되자 그는 부친의
집을 떠나 타란토(Taranto) 섬으로 건너가 양치는
일을 하면서 수도원에서 지냈다.
그 후 그는 그곳을 떠나 칼라브리아(Calabria),
시칠리아(Sicilia) 등지를 돌아다니다가 하느님의
계시를 받은 후에 지노사로 와서 지냈다.
그는 여기서 성 베드로(Petrus)의 환시를 보았다.
그는 이때 사도로부터 이 지역에 있는 허물어진
성당들을 수리하라는 명을 받고 성당을 성공적으로
수리하던 중에 수많은 보물을 발견하여 지방의
통치자에게 보냈는데 이것이 화근이 되어 투옥되기도
하였다. 그는 천사의 도움으로 탈출에 성공하여
몬테 라체노의 성 빌리암의 공동체에 들어갔다.
그 후 그는 풀사노에 정착하여 수도원을 세웠으며
수많은 제자들을 얻었다. 그의 지혜와 기적 그리고
예언은 그 당시에 너무나도 유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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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플로렌시나(Florentina)
축일 6월 20일
카르타고(Carthago)에 정착하여 살다가 549년경
서고트족(Visigoths)의 침입으로 도시가 파괴되자
세비야(Sevilla)로 이주한 에스파냐계 로마인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성녀 플로렌티나(또는 플로렌시나)는
후에 성인이 된 에스파냐의 성 이시도루스
(Isidorus, 4월 4일), 성 레안데르(Leander, 2월 27일)
그리고 성 풀겐티우스(Fulgentius, 1월 16일)와
형제지간이다. 그녀는 카르타고에서 출생해서
세비야에 정착했으며, 수녀원을 설립하고 원장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