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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난이의 첫사랑 #1.
나는 아주 어려서 부터 밤 무대 음악을 시작하였기에
당시 교회와 관련된 일을 하시던 부모는
나를 몹시 부끄럽게 여겼는지
내가 밤늦게 다니는 걸 아주 싫어했다.(마귀?)
부모가 하지 말란 다고
하고 싶은것을 하지 않을 나도 아니어서
나는 집을 나와서 마음에 맞는 친구와 변두리
철로가의 싸구려 여인숙에 방을 얻었다.
굳이 클래스로 따지면 -5 등급 정도로서--
1,특급호텔- ᆢ
2, 보통호텔-
3,장급여관-
4,그냥 여관-
5, 여인숙 정도로,
그런데 그때 같이 살던 내 친구는 아직도
그"여인숙"이라는 간판이
여인숙, 呂人淑 즉 주인 여자의 이름인 줄 알고 있다..ㅋ
旅人宿,``` 여행자들이 묵어가는 곳이란 뜻이지만
우리가 자던 그 집은 여행객은 거~~~~의 없고,
우리처럼 집에 있기는 좀 뭐한, 조그만 술집의 아가씨들,
웨이터,그리고 돈이 없어서
사글세 나마 들어갈 형편도 안 되는
개털 노가다등..
오합지졸 같은 사람들이 하루하루
방세를 내고 살았고
(하루에 200원)
방의 넓이는 대략, 둘이 누우면 사방에 남는 공간이
한 뼘 정도인 방 에다,
게다가 전력을 아끼자는 차원에서
방과 방 사이를 뚫어서 전구 하나로
두 방이 공동 조명으로 쓰고,
신발은 밖에 그냥 두면
그 길로 行方不明이 되는 경우가 많아서
방의 문 쪽 구석, 천정 부근의
마치 바닷가 절벽에
절묘하게 지은 바다 제비 집같이
공중에 조그만 선반을 달아서
거기다 신발을 얹어두었고,
목욕탕은 당연히 아예 없었고,
(No shower!!)
그냥 시멘트로 만든
사각 욕조 같은 곳에다
언제 받아 두었는지도 모르는,
회색빛마저 감도는 수돗물에,
그곳에 있는 여러 명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군데군데 찌그러진 양은 세숫대야가
전부였으나
그런 건 우리가 얻은 자유에 비하면
아무런 문제가 못 되었다.
그 자유는, 우리가 새벽에 들어가든지,
또는 10명이 한방 에 자든지,
매일 다른 여자와 들어 오든지,
아무런 상관없이 오직 방세 200원만 제때 내면
어떤 문제나 제재(制裁 )가 없었고,
간혹 그곳에 방을 얻어 놓고 살면서 돈을 위해서
남자 손님을 모시고 온 아가씨가
어떤 날은 재수 없게도 예고 없이 찿아 온
기존의 단골 남자와,
서로 부딪혀,
니가 가라 내가 간다 하며
남자들끼리 치고 받고 싸우면
그때 우리가 나가서 가볍게 정리해 주면
상황 끝이였다.
식사는 어쩌다 낮에 집에 몰래 들어가서도 먹고,
또 근방의 중국집에서 시켜도 먹었는데,
그때 까지만 해도 술을 잘 먹을 줄 몰라서
술값은 별로 안 들었다.
진짜로 괴로운 것은
얇은 베니어 판에다
겨우 신문지로 도배를 해놓은
누르스럼한 방과 방사이의 얇은 벽을 뚫고
새벽이건 낮이건
괴상한?사운드가 무차별로 들려 왔는데
처음에는 신경이 빠짝 서고...
ㅎ 또...ㅎ...ㅎ (부끄)
그래서 처음에는 호기심에
낮에, 미리 벽에다
아주 조그만 구멍을 뚫어 놓았다가
그 사운드의 발원처인
그 장면을 리얼하게 훔쳐 보기도 했는데,
얼마 안가서 시들해졌다..
(늘~ 보면 재미없다..)
게다가 그 옆방의 아가씨가
돈 때문에 데리고 왔던
그 남자 손님을 보내고 나서
미안한 마음에서 인지
우리에게 뭐 먹을거라도
좀 주면서
배시시 웃으면...
그 옆방 아가씨의 창백하고
화장기 없는
뭔가 병이라도 있는듯한
까칠하고 기미낀
맨 얼굴을 보고 나서는
그녀가 불쌍하기도 하고
괜한 동료의식 마저 들어서
미안한 마음에
우리는 더 이상 그걸 보지 않았다.
그러다가 어느 날은 우리옆방에
세 들어 살던,
다른 팀의 드럼을치던
좀 날라리같은 친구에게
뭘 좀 빌리러 갔는데
(만화책 아니면 담배..)
어렵소!! 같이 사는 여자가
지난 번의 그 김양이 아니다...
그래서 내가
" 제수씨 姓氏 가 金氏 였던가여 ?.." 했더니,
오히려
그 아가씨가 " 전번의 아가씨 말이에요 아니면
그 전,전,번의 金氏 아가씨를 말하는 거에요?"
묻길레 오히려 우리가 더 미안했다.
(참 쿨 하게도 받아 들이네...)
그 드럼 치던 친구는 늘~ 자기가
방만 딱 하나 얻어놓으면
여자는 자동으로 로테이션 된다고 했는데,
우리는 그가 진정으로 존경하고 싶은 멋진 남자라고 생각했다 .
그러다가 그 친구가 현역 입대 영장이 나와서
군 입대를 하게 되면서
우리에게 자기 애인을 좀 잘 봐 달라고 하고 입대했는데...
하.. 시바.. .
그 친구가 입대하고 나서
진짜 채 일주일도 안돼서
그 여자가 다른 남자를 데리고 와서
같이 자는 걸 보고
저 여자가 불쌍하다.. 했던 우리들의 생각을 싹 바꾸었다.
그런데 웃기는건
그로부터 한참 후에,
어느 여름에, 풀장에서
우연히 그 아가씨를 다시 봤는데
동네 양아치 스타일의,
온몸을 만화방(문신)으로
도배?한 배가 약간 나온 남자와 아주 어린애를
하나 안고 풀장에 왔더라..
그 여자가 우리를 딱 보더니
흠칫 놀라며 간절한 눈빛을 던지더라..
그건-
"제발 모르는 체 해 주세요
내게 말이라도 걸면 나는 죽어요"
..더라.. 딱 봐도.
그래서 우리는 원래 눈치 하나는 끝장인 사람들이라.
그냥 모르는 체 해주며 수영장 반대편 다른 쪽 스탠드로 갔는데
바로 그때, 여자를 무슨 티셔츠처럼 바꾸다가 군대에 간
그 드럼 치던 친구의 얼굴이 떠 오르면서
그 친구가 여자들한테 진짜로 인기가 있었던 건
아니구나.. 하고 생각했다.
(여자의 변심은 무죄?)
자~ 이제 본론으로 들어간다...
70년대... 그때는 모두가 어려울 때라 여자도 일할 사람이 넘쳤고
남자들도 그러했는데
불행하게도
좋은 일자리는 별로 없었다.
어느 날 나와 같이 한 방에서 지내던 친구가
무슨 일로 자기 집으로 들어가 버리고 잠시
나 혼자 지내던 때가 있었는데
그때 나는 어느 장사가
지독하게도 안 되는
변두리의 작은 술집에서 일할 때였다
진짜 이 딴따라 세계가..
실력이 없으면 결국은 변두리로 밀린다...
그 공식은,
실력X 일자리=수입 이었는데.
나는 아직 어릴 때라 벌이가 좋은 곳은 형들이나 어른들이 차지하고
나는 아직 實力未達 이라며
잘 안 써줌...
(그 때도 진짜 잘 불었는데
그쪽의 생태가 남의 캐런티를
단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삥을뜯어감
그래서 나는 꼰대나 삥뜯길 일이 없는 변두리로 스스로 감)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그 아주~ 변두리의
후진 술집에서 일을 할 때 인데,
좀, 약간 못생긴,거기다가 덩치도 좋은 여자애가
자꾸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얼굴에는 여드름도 좀 만발했었는데..
그래도 나한테 곰살곰살 친근하게 굴길레
(껌하나 드릴까요?..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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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난이의 첫사랑 #1 끄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ㅌ
To be continue....
못난이의 첫사랑 #2.
(부제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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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에서 계속,,
나는 뭔가 살짝 겁이 나서 그 여자의 말에 대답도 잘 안 했다.
(뻐팅김..??)
(그리고 그때는 아직 예쁜 요정의 왕 누나들을 만나기 전임.)
그러다가 영업이 끝나고, 그때는 12시가 통금이라
피곤한 몸과 얼마 안되는 수입을 안고 버스를 타고
나의 숙소인 그 허름한 여인숙으로 졸며 돌아오는데.
어라!! 그 아가씨가 내가 탄 버스 뒷좌석에 타고 있네..
그때 내가 자던 그 여인숙은 철로 가에 있어서
큰 길에서도 좀 걸어서 들어가야 했는데...
내가 이제는 다른 길로 갔겠지 하고 뒤돌아보니
어... 그 좁은 길로도 그 여자가 졸졸 따라오기에
이제는 아! 애가 나를 따라오는구나 느꼈다.
사실,나는 이때까지도 여자를 제대로 한번도 사귀어 보지 못했는데..
(그러나 입으로는 또래 중에서도 조선 최고의 플래이 보이 였지만..)
하기야 그 전에도 좀 친하던 여자애들이 약간 심하게 모션?
도발이라고 나할까?를 내게 걸어 온 적도 있었으나,
(막 내게 술도 먹이고 내 앞에서 답답하다면서 스웨터도 막 벗고 그랬음..)
그러나 그때만 해도 교복을 입고는 숙박시설?에는
들어 갈 수도 없었거니와,
사실 나는 그럴만한 재주나 배짱도 없는
그냥 개 찐따에 한심한 놈이였다..
나는..
물론,그 뒤로 이날의 소중한?
실전 경험을 바탕으로
훗날 중앙(서울)에 진출하여
맹활약?을 하게 되지만
이곳의 성격상 그건 거의 외설이 되기 때문에 참는다.
(그러나 자꾸 시키면 ㅎㅎ...!!!)
기성세대가 지금의 젊은 애들이 까졌다..대담하다 ..
고는 하지만
어느 시대든지, 어느곳에 서든지,심지어 전쟁터에서도
아이가 태어난 걸보면
어둠이 오면 , 또 기회가 오면 남성들은
자신들의 DNA에 프로그램 되어있는 종족번식의 본능을
상상을 초월하는 힘과 능력으로 발휘해 왔던 것이다.
그래서 오죽하면 젊은 애들 한테 밀린,
수천년의 이집트의 중 늙은이 들이
피라미드 안의 석판에다 이렇게 써 놓았을까?
"요즘 젊은 놈들 싸가지 없다..."라고..
하여 간에, 얼굴이 별로 라서
(바디도..좀..많이 큼) 마음은 덜 내켰지만..
그래도 처음 보는 여자가, 어두운 골목까지,
그것도 대도시의 반대쪽에서 부터
반대인 이곳까지 나를 뒤따라 왔는데
더 이상 모르는 체 하면 사나이의 도리가 아니다 하여
나는 그녀에게 돌아서서 말을 걸었다.
나/ " 이 동네에 아는 사람이 있나요?"
여/ "........"
아무 말이 없었다... .
나/ 잘 데는 있어요? 조금 있으면 통금인데..
여/ "........"
역시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면서 그냥
내가 가는 방향으로 따라 만 오는 것이었다..
그러자 갑자기 귀에서 매미 소리가 들리고..
호흡이 가빠지고..말이 빨라졌다."
할 수 없이 내가 자는 방으로 내가 앞서 들어가니
마치 저희집인양 여자가 따라 들어 왔다.
그동안 그렇게 수 많은 밤을, 그 여인숙의 얇은 벽을 통해서
듣고, 닦아온 맹 훈련도
막상 실전에 돌입하려니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그날 밤 내가 자던 방은 비록 200원 짜리였고 겨울이였지만
이미 두 사람의 체온으로 더울 지경이엇고
제법 덩치도 있는, 처음 보는 여자와 단둘이 방에 같이 있다 ..는
것만으로 이미 나는 제 정신이 아니였는데...
"아마 이것도 운명인가봐요"
그녀가 코트를 벗으며 하던 말이 였는데..
순간 나는 머리 속이 복잡해 졌다..
"어..어..애가 여기서 아주 눌러서 살려고 하나?
나는 솔직히 저런 스타일 내 취향이 아닌데.."
어쨋든,그날, 조물주가 프로그래밍 해놓으신 대로
우리 둘은 충실하게 움직였고,
(서로 다소, 많이,..아직.. 초보..미숙...
그래서 빠른 전개와 결말...그리고 또 도전..)의..
그날 밤,그 긴 겨울밤에 잠시,
잠시 그녀에게서 들은 말로는
자기 엄마가 병으로 빨리 돌아가시고
아빠가 곧 재혼을 했다는 데
자기와 자기 계모와의 사이가 좋지 않아서
계모의 구박을 견디다 못해
처지가 비슷한 친구와 둘이서 집을 나왔는데
이번에는 같이 집을 나온 그 친구가
이번에는 남자와 눈이 맞아서
여자 둘이 서 자는 방에 자기 남자를
자꾸 데려 오고
눈치를 주는 바람에 갈 데가 없었다고...
그리고 자기가 앞으로 돈을 벌기 위해서 이 생활을 하려면
아저씨들의 요구대로 돈을 받고서
2차도 가야 하는데..
그러기 전에 꼭 한번만 이라도 자기 또래의 남자애와
같이 단 하루 만이라도 지내고 싶었다 한다..
(왜 ,하필 그게 나야...ㅠㅠ)
왜냐하면 자기는 얼굴도 사실 별로 이고 게다가 집도 넉넉지 않아서
계모가 이쁜 옷도 별로 안 사줘서
그동안 또래 남자애들한테
고백은 커녕 희롱 조 의 말 한번 못 들어 봤단다.
그래서 오늘이 이 생활로 들어선지 가 딱 7일째 인데
내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기보다는
어쨋든 빨리 초보의 딱지를 떼어버리고
프로의 길로 들어서겠다.. 이런 말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내가 걔를 "그러지 마라..."
말리고 같이 살았으면 어떻게
됐을까 생각도 해 봤는데,
그때는 그런 선택을 하기에는 둘 다 너무 어렸고
능력들도 지지리 없었다.
(200원의 방 값도 부담스러울 때..)
그 다음날 오후, 내가 잠시 우리 집에 갔다 온 사이에
그 지저분하던 내 방이 깨끗하게
청소 되어 있었고 세상에나..
무슨 쪽지 하나도 없이 그 여자애는 사라져 버렸다.
갈 곳 없는 자기를 어떻게 캐어도 해주지도 않는
무심한 사내놈이 미웠을까?
아니면 어떻 하든 빨리 돈을 벌어서 자립하고 싶어서 였을까?
그 순간 나는
아.. 내가 못할 짓을 한 것인가? 하는 미안한 생각도 들었고..
그러나 나는 금 새 그 일을 잊었다.
그동안 집으로 들어갔던 내 친구가 돌아와서
그와 같이 음악연습도 하며 그녀 일은 곧 잊었는데,
얼마의 세월이 흐른 후에 ,그 동네에 약간 양아치科의
술집지배인이 한 사람 있었는데
그러나 양아치 치고는 그래도 약간 인간적인 면까지 있던,
그리고 생긴 건 영 ..진짜로 영~아닌
그 사람과 그녀가 같이 시장을 봐서 오는지
무슨 큰 봉지를 두 손에 들고
둘이서 마주보고 웃으며 나란히 지나가는 걸 봤는데,
(둘이서 동거를 하는 듯...)
놀랍게도 내가 자는 여인숙에서 버스로
한 두 정류장 거리에 그들의 집이 있었다.
그녀는 이 동네를 떠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동안 내 눈에는 한번도 띄지 않고..
나는 속으로 "
아~!! 내가 살면서 이런 경우를 두번이나 보게 되네...
"한번은 바람둥이 드럼의 여자가 그러더니
젠장.. 이번엔 남의일이 아니라 내게 이런일이 닥치다니...'
하고 한숨을 쉬었다..
그 후, 간혹 그 여자애를 길에서 마주쳐도
짧은 순간에 서로 눈 인사 정도만 하고는 지나쳤다
거의 항상,그 준 양아치가 옆에 있었기 때문이다.
70년대의 나의 젊은 시절은 이런 홍역을 치르며 보냈는데,
왜 이렇게 수 십 년이 지나서 영감이 다 된 지금,
새삼 그때 생각이며, 후회며, 죄의식이 느껴질까?
그건 아마 내가 죽을 때가 다 되어 그런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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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마음속에 못다 한,
결코 남에게 말하지 못할 사연 들을
가지고 계시다면 더 늦기 전에 진심으로
뉘우칠 건 뉘우치고, 결제도 하시고
그 대상이 이미 주변에 없다면
가족들에게 라도 더 잘 하시기 바랍니다.
*에필로그.
그때의 그 여자애는 내가 발랑 까져서 여자 경험이 되게 많은
놈으로 알았겠지만,
그리고, 자기의 첫 순정을 내게 맡기다 시피
던져 버리고 훌훌 턴 기분으로
자기 살길 을 갔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나도 그때가 처음으로.. 여자랑 ....처음 .....이였어...
그래서 이렇게 오~~래 되어도 니 생각이 나는거란다.
너는 아직도 잘 살고 있을 거라 믿는다. 왜냐하면
너 그날 밤 보니까
덩치가..장난이 아니더라...
뭐~ 코트 위로..보고 대충 짐작은 했는데,
막상 접해보니 휴.. 그 이상이더라..
아니.. 놀리려는 게 아니고... 그 정도의 튼실한 몸을 가진 사람은
대개 무지하게 오래 살더라..
병치레도 별루 안하고..
그러고보니
"니가 당한 게 아니고 사실은 내가 당한 거였어...흑.."
*그때 그녀가 그 semi 양아치 애인과 내 앞을 지나가던 그날 ,
봄바람마저 불어 마음이 텅 빈듯한 한 길에는
어느 이름 모르는 여인의 연 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연 분홍치마는
"어때 나? 난 이쁘지 않아도 이렇게 잘 살고 있어.."
라고 내게 말 하는 듯 했다.
못난이의 첫사랑 끝...
1. 불꺼잔 창
2 딜라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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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60년대 후반, 70년대 초반에 지방을 떠돌며 장사를 했던 200원짜리 여인숙의 기억을 가진 사람입니다.
신발 봉지며 옆방과 공동으로 쓰는 전구 하며......
아련한 기억속의, 그러나 다시 돌아가기는 싫은 20대때의 풍경들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