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 브랜딩(!local branding)들어 보셨나요?
제 고향 인근 지역에서 영해장은 경북 북부지역에서도 이름 있던 장(場)이었습니다.
어린 시절의 아련한 추억속에도 어머니를 따라 장 구경을 다니다
약장수가 보여주는 원숭이에 정신이 팔려 인파속에서 어머니를 잃어버려서
혼났던 적이 생각납니다.
시골 장터였음에도 사람에 치일 정도로 북적이었던 영해 지역이 흐르는
세월 속에 지난해 명절 대목장이었음에도 한산한 모습에
지방 소멸 위기라는 말의 무게를 피부로 느꼈습니다.
시골 교회 목회자로 살아가기에 지방 소멸 문제는 그 무엇보다도
현실적인, 체감으로 다가오는 주제입니다.
인터넷 뉴스를 검색하다가 흥미로운 기사를 발견하였습니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LG그룹의 광고 계열사 HS애드에서 근무하며
칸 국제광고제에서 은상을 수상할 정도로 광고인으로 정점을 달리다가
2018년 퇴사를 결정합니다.
그 후 영국 런던과 일본 교토 여행을 통하여 한국에도 지방의 가치를
상기시켜줄 로컬 브랜딩을 해야 겠다 결심합니다.
(더 비비디, 진은혜 에디터 기사 일부 인용)
로컬 브랜딩이란 지역(지방)의 를 뜻하는 로컬과 상표를 의미하는
브랜드가 합쳐진 말로서 지역(지방)의 고유성과 독특성을 상품화 시킴으로
지역 공동체를 활성화 시키고 영속화하려는 작업이라 하겠습니다.
잘 나가던 광고인에서 브로컬리 컴퍼니라는 회사를 통하여
지방 소도시의 문제를 브랜드의 힘으로 해결을 시도하고 있는 김지영 대표,
그녀는 전남 화순 수만리의 구절초를 통하여 화장품을 개발하여 출시함으로
지역과 공생하려는 시도를 하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나아가 이분은 어글리시크라는 브랜드로 못난이 농산물을 활용해
유기농 러브젤, 여성 청결제, 선크림 등의 제품을 만들어 출시중이라 합니다.
이분에 대한 소개 기사를 읽으며 참신함과 기발함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나아가 각 지역마다 고유의 브랜딩을 발굴하고 상품화 시켜야 한다는 주장에는
목회자이지만 깊은 공감을 하게 됩니다.
로컬 브랜딩의 대표적 긍정 사례로 소개된 두 지역을 열거하자면,
“헤이 온 와이”와 강원도 양양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헤이 온 와이는 잉글랜드와 웨일스 접경 지대의 한 작은 농촌 마을에 불과했던 지역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책 마을로 재탄생 되었습니다.
세계적 명소가 되게끔 한데에는 헌 책방을 운영한 리처드 부스라는
이 고장 출신의 젊은이에 의해서라 합니다.
세계 각지를 돌며 헌 책들을 사들여 자신의 책방을 채운 결과
전 세계의 책 애호가들이 모여 드는 기염을 창출하게 됩니다.
총 인구가 1400명이었던 작은 시골마을에 연간 50만명의 관광객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하니 헌 책으로 지역을 활성화 시킨 셈입니다.
(지역을 살리는 로컬 브랜딩/ 64쪽 참조/ 저자 김영수/ 클라우드나인 출판)
국내의 경우에 대표적으로 지역 자원으로 상품화를 한 곳으로 강원도 양양은
서퍼들의 성지라 불릴 정도로 파도타기를 즐기는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지역이라 합니다. 이국적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양양 하조대 서퍼비치는
강원도에서 가장 핫한 관광지로 부상(浮上)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로컬 브랜딩에 대하여 살펴보면서 저는 목회자이기에 자연스럽게
오늘과 내일의 농촌교회는 과연 어떤 로컬 브랜딩을 해야 할까를 고민하게 됩니다.
물론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과 섭리하에 속한 농촌교회임을
고백하지만, 그럼에도 두 발을 이 땅 위에 딛고서 살아가야 하는 현실 속에서
교회의 생명력과 가치, 그리고 존재 이유에 대하여 깊은 생각을 갖게 됩니다.
분명한 것은 교회의 교회됨과 정체성은 곧 영혼의 구원입니다.
우리 안에 계신 비밀인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이
복음의 소망을 품고서 살아가도록 이끌어야 함이 지상 교회의 존재 목적입니다.
이 일을 위하여 우리 주님께서 지역교회를 세우셨고 존재하게 하셨음을
고백하는 이라면,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은 얼굴과(계1:16下)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책임지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골1:27)”
여러분 한명 한명을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