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쯤 연꽃이 한창이겠다.
연꽃을 보려고 작심하고 나서는 일은 왠지 어설퍼 보일 것 같아서다.
내가 신발끈 고쳐 매고 만나러 간다고 해도 연꽃이 내게 선뜻 안기지는 않을 것이다.
나와 연꽃의 관계는 서로 서운하게 한 일도 없는데 이렇게 늘 서먹서먹하고 먹먹하다.
미당 서정주도 그랬을 것 같다.
시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같이’가 바로 그 증거.
“섭섭하게,/
그러나/
아조 섭섭치는 말고/
좀 섭섭한 듯만 하게”
이별을 하자는 말은 무엇인가.
더군다나
“다시 만나기로 하는 이별”
이라니. 성미 급한 이들은 이 무슨 개뼈다귀 같은 소리냐고 성화를 낼지 모르겠다.
어느 날 문득 연꽃 향기가 코끝에 닿았을 때, 나는 그 향기를 어떻게 표현할 수가 없어서 쩔쩔맨 적이 있다.
‘향기롭다’는 형용사는 연꽃에 대한 모독 같고, ‘은은하다’는 상투적이어서 내 후각에 대한 비하로 여겨졌던 것.
그때 미당의 시가 떠올랐고,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이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라고 쓴 까닭을 조금 알 것 같았다.
이 시는 아직 이뤄지지 않았거나 깨지기 직전의 연애를 노래하고 있는 게 아닐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 조절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미당은 연꽃 향기를 맡으며 깨달았는지도 모른다.
연애에 빠진 이들이 연꽃한테 무얼 좀 배울 게 없을까?
향기롭게는 말고, 좀 향기로운 듯만 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