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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2020년 이재명 대표의 대법원 판결이 언급됩니다. 판례에 대한 비판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만, 이 판례에 대해 잘못 알려진 게 있어서 글을 씁니다.
그 판결 번호는 대법원 2020. 7. 16. 선고 2019도13328 전원합의체 판결입니다.
https://casenote.kr/%EB%8C%80%EB%B2%95%EC%9B%90/2019%EB%8F%8413328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기존 판례를 엎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위 사건은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입니다. 그럼 기존 판결을 엎어버린, 새로운 법리를 도입한 것일까요? 일부 음모론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이재명을 살려주기 위해서 그런 것일까요?
보시면 아시겠지만 위 판결은 기존 판례를 엎은 게 아닙니다. 오히려 참조판례 목록에는 참고한 기존 결들이 다수 열거되어 있습니다. 이 판결이 중대하기 때문에 전원합의체가 판결한 것이지, 판례를 엎기 위해 전원합의체가 판결한 게 아닙니다.
따라서 이 판결이 설시한 다음 법리는 원래 대법원이 인정해온 기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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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헌법상 모든 국민은 국가권력의 간섭이나 통제를 받지 아니하고 자유롭게 정치적 의사를 형성·발표할 수 있는 정치적 자유권을 가지고, 선거운동의 자유는 정치적 자유권의 주된 내용의 하나로서 널리 선거과정에서 의사를 표현할 자유의 일환이므로 표현의 자유의 한 태양이기도 하다. 자유로운 의사 표현과 활발한 토론이 보장되지 않고서는 민주주의가 존재할 수 없으므로 표현의 자유, 특히 공적·정치적 관심사에 대한 정치적 표현의 자유는 중요한 헌법상 권리로서 최대한 보장되어야 한다.
(다) 단체·언론기관의 후보자 등 초청 토론회나 선거방송토론위원회 주관 토론회는 헌법상 선거공영제에 기초하여 고비용 정치구조의 개선과 선거운동의 공정성 확대를 위하여 도입된 선거운동방법의 하나로서, 후보자에게는 별다른 비용 없이 효율적으로 유권자에게 다가설 수 있게 하고, 유권자에게는 토론과정을 통하여 후보자의 정책, 정치이념, 통치철학, 중요한 선거쟁점 등을 파악하고 각 후보자를 적절히 비교·평가하여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다. 이러한 후보자 토론회에 참여한 후보자 등은 토론을 할 때 다른 선거운동과 마찬가지로, 자신에 관한 것이든 다른 후보자에 관한 것이든 진실에 부합하는 주장만을 제시하고, 자신의 의견을 밝히고 다른 후보자에게 질문하거나 다른 후보자의 질문에 답변할 때에는 분명하고도 정확한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유권자가 각 후보자의 자질, 식견과 견해를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원칙이다.
한편 후보자 토론회는 선거의 공정과 후보자 간 균형을 위하여 참여기회의 부여나 참여한 후보자 등의 발언순서, 발언시간 등 토론의 형식이 엄격하게 규제되고 있으므로(공직선거법 제82조 제3항, 제82조의2 제7항, 제14항, 공직선거관리규칙 제45조, 선거방송토론위원회의 구성 및 운영에 관한 규칙 제23조 등 참조), 이러한 공정과 균형을 위한 기본 조건이 준수되는 한 후보자 등은 토론과정에서 최대한 자유롭고 활발하게 의사를 표현하고 실질적인 공방을 주고받을 수 있어야 한다. 후보자 토론회는 후보자 등이 직접 한자리에 모여 치열하게 질문과 답변, 공격과 방어, 의혹 제기와 해명 등을 할 수 있는 공론의 장이고, 후보자 등 상호 간의 토론이 실질적으로 활성화되어야만 유권자는 보다 명확하게 각 후보자의 자질, 식견과 견해를 비교·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토론의 경우에는 미리 준비한 자료에 의하여 일방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는 연설 등의 경우와 달리, 후보자 사이에서 질문과 답변, 주장과 반론에 의한 공방이 제한된 시간 내에서 즉흥적·계속적으로 이루어지게 되므로 그 표현의 명확성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특히 토론회에서 후보자 등은 다른 후보자의 질문이나 견해에 대하여 즉석에서 답변하거나 비판하여야 하는 입장에 있으므로, 다른 후보자의 발언을 의도적으로 왜곡하지 않는 한 자신이 처한 입장과 관점에서 다른 후보자의 발언의 의미를 해석하고 대응하며, 이에 대하여 다른 후보자도 즉시 반론하거나 재질문 등을 함으로써 그 진실 여부를 밝히고 견해의 차이를 분명히 하여 유권자가 그 공방과 논쟁을 보면서 어느 후보자가 공직 적격성을 갖추고 있는지 검증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선거과정에서의 일반적인 절차이다. 설령 후보자 등이 부분적으로 잘못되거나 일부 허위의 표현을 하더라도, 토론과정에서의 경쟁과 사후 검증을 통하여 도태되도록 하는 것이 민주적이고, 국가기관이 아닌 일반 국민이 그 토론과 후속 검증과정을 지켜보면서 누가 옳고 그른지 판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물론 일정한 한계를 넘는 표현에 대해서는 엄정한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지만, 그에 앞서 자유로운 토론과 성숙한 민주주의를 위하여 표현의 자유를 더욱 넓게 보장하는 것이 보다 중요하다. 표현의 자유가 제 기능을 발휘하기 위하여는 그 생존에 필요한 숨 쉴 공간, 즉 법적 판단으로부터 자유로운 중립적인 공간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선거의 공정을 위하여 필요하다는 이유로 부정확하거나 바람직하지 못한 표현들 모두에 대하여 무거운 법적 책임을 묻는 것이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선거운동방법으로서 후보자 토론회가 가지는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후보자 간 균형을 위한 엄격한 토론 형식과 시간적 제약, 토론기술의 한계 등으로 인하여 토론이 형식적·피상적인 데에 그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러한 현실적 한계에 더하여 국가기관이 토론과정의 모든 정치적 표현에 대하여 그 발언이 이루어진 배경이나 맥락을 보지 않고 일률적으로 엄격한 법적 책임을 부과한다면, 후보자 등은 자신의 발언에 대해 사후적으로 법적 책임을 부담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더더욱 활발한 토론을 하기 어렵게 된다. 이는 우리 사회의 중요한 공적·정치적 관심사에 대한 치열한 공방과 후보자 검증 등을 심각하게 위축시킴으로써 공개되고 공정한 토론의 장에서 후보자 사이의 상호 공방을 통하여 후보자의 자질 등을 검증하고자 하는 토론회의 의미가 몰각될 위험이 있다. 또한 선거를 전후하여 후보자 토론회에서 한 발언을 문제 삼아 고소·고발이 이어지고, 이로 인하여 수사권의 개입이 초래된다면 필연적으로 수사권 행사의 중립성에 대한 논란을 피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선거결과가 최종적으로 검찰과 법원의 사법적 판단에 좌우될 위험에 처해짐으로써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로 대표자를 선출한다는 민주주의 이념이 훼손될 우려도 있다.
(중략)
공직선거법은 ‘허위의 사실’과 ‘사실의 왜곡’을 구분하여 규정하고 있으므로(제8조의4 제1항, 제8조의6 제4항, 제96조 제1항, 제2항 제1호, 제108조 제5항 제2호 등 참조), 적극적으로 표현된 내용에 허위가 없다면 법적으로 공개의무를 부담하지 않는 사항에 관하여 일부 사실을 묵비하였다는 이유만으로 전체 진술을 곧바로 허위로 평가하는 데에는 신중하여야 하고, 토론 중 질문·답변이나 주장·반론하는 과정에서 한 표현이 선거인의 정확한 판단을 그르칠 정도로 의도적으로 사실을 왜곡한 것이 아닌 한, 일부 부정확 또는 다소 과장되었거나 다의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 경우에도 허위사실 공표행위로 평가하여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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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긴데 읽어볼 가치가 있습니다.
공직선거법 250조 허위사실공표죄의 적용에 대해, 이미 이 판결 이전부터 여러 이야기들이 있었습니다. 대체로 이 규정이 너무 남용되면 선거의 자유를 침해하기 때문에, 아예 그 규정을 없애거나, 적용을 엄격하게 해야 한다는 주장들이었습니다. 모두 학계에서 정식으로 오가던 이야기였습니다.
사실 우리나라 공직선거법은 너무 규제가 복잡하고 촘촘합니다. 법이 그렇게 된 건 역사적 이유가 있습니다만, 헌법에서 가장 중요하게 보호받는 기본권이 정치적 기본권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우리나라 공직선거법의 지나친 복잡함과 규제는 확실히 문제가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한 문제의식은 옛날부터 있었는데, 특히 가장 문제로 지적된 규정이 공직선거법 250조 허위사실 공표였습니다. 그래서 이미 법원은 이재명 판결 이전부터 이 규정의 적용을 제한하는 경향이 뚜렷했습니다. 저도 이 규정이 문제된 사건들에서 여러번 무죄를 받아낸 경험이 있는데, 모두 사실과는 어느 정도 다른 말이 문제된 사안이었습니다. 사실과 다르게 해석될 여지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유죄가 나온다면 그 사건들 모두 유죄가 나왔을 겁니다.
이 이재명 판례는 그런 기조를 그대로 유지한 케이스입니다. 물론 대법관들 사이에 법리 적용 방식에 의견이 갈린 것은 맞지만, 법리 자체가 새로 도입되었다거나, 이재명에게만 거짓말할 자유를 줬다는 식의 주장은 공직선거법 사건의 기본 법리를 모르고 하는 소리입니다.
이번 이재명 고등법원 판결 역시 그런 기준에서 이루어진 것이고, 2020년 판결은 전원합의체 판결이라서 중요도가 높기 때문에 참조된 겁니다.
요컨대 2020년 판결도 지금 판결도 특이한 판결이 아닙니다. 오히려 원래 대법원 판례대로, 확고한 법리에 따라 법대로 판결한 거라고 보는 게 맞습니다.
이런 거 설명해도 다들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할 테니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합니다만, 그래도 스피드웨건 흉내 한번 더 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