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담요’와 ‘빨간 신호등’
제겐 완벽하지는 않지만 결벽증에 가까울 만큼
스스로 지키려는 약속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대단한 게 아니고 교통신호등 지키기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나와 함께 길을 가다가
어쩌면 답답함을 느꼈을지도 모르는 ‘빨간 신호등’ 지키기,
운전을 하면서도 예외가 아니어서 한밤중이나 새벽에도
교차로에 빨간 신호등이 켜지면 혼자서도 차를 멈추고 기다립니다.
그러면 뒤가 무서울 정도로 신경이 쓰입니다.
밤중에는 신호를 무시하고 마구 달려서 기어이 건널 것처럼 달리는
그런 느낌의 차들을 간혹 만나기 때문입니다.
그런 무서운 기세의 차가 가까운 뒤에서 오면 눈물을 머금고
그냥 건넌 적도 몇 번 있습니다.
한국 교통문화가 새벽에 신호등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너무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 덕분인지 20년 가까운 운전 중에
속도위반 카메라로 서너 번 벌금고지서가 나온 적은 있어도
신호위반은 한 번도 스티커를 받은 적이 없었고,
사고도 그래서 안 났는지 감사할 일입니다.
그런데 그런 마음이 길을 건널 때도 습관이 되어
아무도 없는 길도 신호등이 바뀔 때까지 서 있게 되었습니다.
옆으로 어른들은 말할 것도 없고 학생들,
심지어 아이들을 데리고 건너는 엄마들도 수두룩 봅니다.
‘빨간 신호등’에는 기다리고 파란불에는 손들고 좌우를 보고
건너라고 유치원부터 가르치면서도...
서 있는 내가 민망하고 힐끗 보면서 비웃으며 가기도 합니다.
그래도 나는 아이들과 기다리고 좀 돌아가도 무단횡단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아이들도 익숙해져서 당연히 받아들입니다.
운전 중이든 걸어 다닐 때든 저하고는 신호등을 따라 움직인다는 걸...
예전에는 그게 느슨했지만 좀 더 정확하게 의식하고 하는 동기는
어느 목사님의 ‘대한항공 담요’ 말씀을 듣고부터입니다.
기내용으로 주는 담요를 기념품이나 전리품처럼 무용담을 섞어가며
몇 개씩 챙겼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에게 생각해볼 이야기였습니다.
얼마나 한다고, 여행중에 아주 요긴하다. 혹은 화투 담요로 딱이다.
뭐 별 이유로 한 두장씩 집에 들고 간다는 것입니다.
뭐 그런 것에까지 신앙양심이니 도둑질이니 그러냐는 생각도 들긴합니다.
그 목사님이 독일에서 청년집회에서 이 담요이야기를 하면서
그걸 집어가는 사람들이 승무원이나 곁에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당당히
가방에 담아갔겠느냐, 그런 몰래 숨겨서 가져가는 태도로 사는 사람이
아무도 안보는 곳에서조차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말씀을 지켜서 살 수 있을지,
그런 기독교인이 전 국민의 25%가 아니라 99%가 된다고 사회가 정직하게
세금 납부의 의무와 병역의무 등을 잘 지키는 나라가 되겠냐고...
그 집회 마지막날 한 청년이 고백하듯 모두 앞에서 말했답니다.
주변에 그런 일이 너무 많고 당연해서 자기도 두장이나 가지고 있다고,
문제는 자기가 신학도 이기에 밤잠을 못자고 고민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나중에 신학자나 목회자로 평생을 살 것인데 남이 한다고 같이 하고,
그것이 도둑질인데도 도둑질인지도 모르고 살아 갈 뻔 했다는게
맘이 걸려 잠을 못 이루었다면서...
많은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듣고 담요를 돌려주거나 돈으로 입금을 시키고
깨우쳐주어서 고맙다는 편지를 보내왔다고 합니다.
대한항공이 그 모자라는 담요를 다시 채우는데 엄청난 비용을 들인다는
사실도 장난이나 푼돈의 차원이 아님을 따로 들었습니다.
실재 그 말씀을 하신 목사님이 교통신호를 남이 보든 안보든
스스로 지키며 사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저도 결심을 하였습니다.
이런 작은 것 하나도 못하면 더 큰 용기와 불편을 감수해야하는 약속은
죽었다 깨도 못 지킬거라는 생각이 몰려왔습니다.
어느 편의점에서 근무하든 청년이 이 목사님의 속건제 이야기를 듣고
자기가 큰 양심 가책 없이 다른 알바생들이 하듯 근무 중 슬쩍 가져간
물품을 계산해서, 성경대로 오분지일을 더해 10만 8천원을 주인에게 돌려주고
용서를 구하겠다고 했답니다.
생활속에서 일어나는 도둑질, 위반들을 철저하게 죄로 따지는 율법주의가
목적이 아니라 무뎌지게 덮어가는 양심의태도를 깨우고 반복 훈련이 필요하다는
값진 가르침이었습니다.
우리 둘째 아이도 편의점에서 7개월을 넘게 아르바이트일을 했는데
저는 모릅니다. 아이가 얼마나 그런 점에서 정직했는지,
혹 넉넉지 못한 형편에 먹고 싶은 거나 필요한 것을 값을 주지 않고,
사용했는지, 소위 슬쩍 도둑질을 했는지...
언젠가 둘째 아이에게 이 ‘대한항공 담요’이야기를 해줄 생각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자유를 가져오는지, 더 큰 도둑질을 막아주는지
경험해보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예수의 정신으로 사는 것은 순교부터가 아니고
생활속의 작은 실천과 정직하게 약속을 지키는 것에서 출발하며
그 결과는 돈이나 부가 아니라 생명과 영혼의 자유로 돌려받는다는
기쁜 명령임을 다시금 기억합니다.
첫댓글 신학생 시절 한 고등학교 후배 신학생의 차를 탔는데 '깜빡등'을 안 켜고 차선을 바꾸는 것을 보고 '깜빡등'을 키라고 하였습니다. 후배는 웃으며 "걱정 마세요. 다보고 운전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계속해서 등을 켜지 않는 그에게 "너 목사 하지 말어!"라고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고맙습니다.
어지니님, 참 잘하셨습니다.
깜박이 등은 나를 위해서가 아니고 다른 운전자를 위해서입니다. 흔히 브레이크는 멈추기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달리기 위해 존재하지요.
악셀레이터는 브레이크가 없으면 사용이 불가능한데도... 예전에 독일에 한달정도 머무르며 떼제공동체 등 수도원을 탐방했습니다. 차를 운전하며, 그런데 오후 3시 날이 훤한데도 많은 차들이 전조등을 켜기 시작하더군요. 그때 알았습니다. 자기가 보기 위해 차 헤드라이트를 켜는게 아니라 상대방들이 차를 잘 인식하도록 켜는 배려라는걸...
한국에 돌아와 저도 조금만 흐리면 불을 켜줍니다.
자기가 보인다고, 운전 자신있다고 어둑한데도 자동차 라이트를 안켜고 달리는분을 앞 뒤로만날때 얼마나 곤혹했는지 모릅니다. 이건 신앙인 여부와 직위 여부를 떠나 참 필요한 배려락 생각합니다. 하물며 목회자로 남을 섬기는 삶을 살게다고 하는 분들이라면 더더욱이나... 고맙습니다. 공감의 글을 남겨주셔서! 늘 깊이있는 글 보면서 존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