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橘化爲枳'(귤화위지)라는 말이 있다. 이는 '橘踰淮而化爲枳'(귤유회이화위지: 귤이 회수를 넘으면 변하여 탱자가 된다)는 말을 줄인 것으로,'考工記'(고공기)라는 책에 실려 있다.
이 말은 주로 사람이 환경에 따라 기질이 변하게 된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할 때 쓰인다.
橘을 요즘은 대개 蜜柑(밀감)이라고 하는데,문헌에서는 주로 柑橘로 기록되어 있다.
'동국여지승람'에 '柑에는 黃柑(황감) 乳柑(유감)이 있고,橘에는 金橘(금귤) 山橘(산귤) 洞庭橘(동정귤) 倭橘(왜귤) 靑橘(청귤) 등이 있다'라고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柑과 橘을 묶어 柑橘이라 했음을 알 수 있다.
橘의 원산지를 히말라야 산맥으로 보는 견해가 많기는 하나,현재는 중국의 강남과 한국의 제주도,일본의 일부 등 주로 동아시아에서 재배되고 있다.
특히 제주도는 세계의 감귤류 재배지 중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 언제부터 柑橘이 재배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일본쪽의 야사인 '肥後國史'(비후국사)에 삼한에서 橘을 들여왔다는 기록이 있고 '古事記'(고사기)와 '日本書記'(일본서기)에 지금의 제주도를 가리키는 桑世國(상세국)에서 橘을 들여왔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삼국시대부터 이미 柑橘을 재배해왔던 것 같다.
요즘에 우리가 먹는 柑橘은 주로 일본에서 수입된 품종이지만,이렇듯이 柑橘이 원래는 제주도에서 일본으로 넘어갔다가 일본에서 다시 역수입되고 있는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선초부터 간헐적으로 柑橘을 순천 등의 남해 연안에 移植(이식)해 보았던 것 같다.
중종 때는 제주목사 이운이 글을 올려,柑橘을 남해 연안에 옮겨 심어보았으나 열매가 맺지 않았다고 보고하기도 하였다.
제주의 柑橘이 남해바다만 건너면 탱자가 되었던 것이다.
이렇듯이 종종 柑橘의 移植(이식)을 시도할 정도로 柑橘은 중요한 과일이었다.
제주 柑橘의 진상은 동지 때에 이루어졌는데,제주 감귤이 궐내에 들어오면 이를 기념하여 成均館(성균관)과 四學(사학)의 유생들에게 柑橘을 나누어 주고 과거를 보게 하였다.
이것이 곧 柑製(감제) 또는 黃柑製(황감제)로 불리는 과거시험이었다.
이외에도 이따금 玉堂(옥당)의 관원에게 柑橘을 하사하기도 하고 앓고 있는 신하에게 柑橘을 하사하기도 하였다.
인조 때에는 司直(사직) 이유간이 열 개의 柑橘을 하사받고 감사의 상소를 올리기도 하였다.
요즘에는 재배가 불가능하다던 남해 연안에서도 柑橘이 재배되고 있다.
환경의 영향을 받는 것만이 아니라,피나는 노력으로 자신의 환경을 바꾸기도 하는 존재가 인간인 것이다.
그것이 인류 문명의 발달사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