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동에서] 배다리는 어디까지입니까?
▲ 박정우 인하대학교 도시재생학과 겸임교수·마농탄토 대표
배다리에 처음 가는 사람은 종종 묻는다. “배다리가 정확히 어디부터 어디까지입니까?” 우리가 이 오래된 장소를 어떻게 기억하고 체감하고 있는지, 도시 정체성이란 무엇으로 구성되는지에 관한 본질적인 질문이다. 지도 앱을 켜면 배다리는 면적 0.29㎢, 인구 3200여 명이 거주하는 작은 생활권으로 표시된다. 하지만 이곳을 걷고 호흡하는 사람들의 기억 속 배다리는 훨씬 넓고 복잡하며 다층적이다. 주민 인터뷰와 커뮤니티 매핑 연구를 통해 분석한 결과, 배다리의 진짜 경계는 도로가 아니라 사람들의 '기억의 밀도'가 그려내는 세 가지 차원의 '배다리다움'으로 나타났다.
첫 번째는 사람들이 느끼고 인식하는 '인지 경계'가 진짜 배다리를 만든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눈에 띄는 장소와 그곳을 오가는 길의 흐름 속에서 공간을 기억한다. 동인천역에서 내려 평범한 거리를 걷다 보면, 헌책방 특유의 간판들과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오래된 골목을 마주하게 된다. 사람들은 그 순간, 비로소 '아, 여기부터가 배다리구나'라고 체감한다. 도시는 보이지 않는 행정구역의 선으로 나뉘기보다, 동성한의원이나 충인쌀상회, 꿀꿀이죽 골목 같은 장소들이 이어지며 만들어내는 경험의 흐름 속에서 그 경계가 형성된다.
둘째는 하나의 지점이 아니라, 서로 이어진 '기억의 네트워크'가 배다리를 만든다는 점이다. 배다리는 특정 랜드마크 하나로 정의될 수 없는 장소이다. 1919년 인천 3·1운동의 발상지였던 창영초등학교 담장을 지나, 과거 여공들의 애환이 서려 있는 성냥공장(조선인촌주식회사)터로 이어지는 길을 직접 걸어볼 때 그 의미를 알 수 있다. 개별적으로 떨어진 장소들은 파편화된 과거가 아니라, 하나로 연결된 시공간 속에서 상호작용하며 '배다리'라는 온전한 장소로 인식된다. 주민들의 일상과 역사가 공간을 따라 차곡차곡 쌓이면서 배다리만의 독특한 분위기가 완성된다.
셋째는 배다리의 브랜드를 완성하고 이어가게 하는 '경험의 흐름'이다. 배다리를 지탱하는 핵심 축은 단연 헌책방거리다. 이 거리는 사람들이 오가며 반복적으로 쌓아 올린 눈에 보이는 풍경과 보이지 않는 기억이 한데 어우러져 동네의 든든한 중심축으로 자리 잡았다. 서울의 서촌이 이 중요성을 잘 보여준다. 서촌은 행정구역이라는 딱딱한 선이 아니라, 사람들이 생활하고 문화를 누리며 체감하는 범위로 인식되는 공간이다. 경복궁 서측 골목부터 통인시장, 한옥과 소규모 상점들이 끊김 없이 이어지며 하나의 '경험 축'을 형성했고, 도시는 보행 환경과 경관 관리, 상업 규제를 통해 이 고유한 흐름을 지켜내고 있다. 결국 서촌은 물리적인 경계를 선으로 그어 관리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서촌답다'고 느끼는 경험 자체를 관리한 성공적인 도시다. 배다리 역시 마찬가지다. 이제는 지도 위에서 배다리가 어디까지인가를 묻기보다, 사람들의 발길이 닿는 어디서부터 '배다리답게' 느껴지는지 그 경험의 영역을 세심하게 가꾸고 관리해야 할 때다.
오는 7월이면 제물포구가 닻을 올린다. 행정 구역이 개편되는 이 시점에서 가장 먼저 살펴야 할 것은 지도 위에 반듯한 선을 다시 긋는 일이 아닐 것이다. 그보다 중요한 건 사람들이 체감하는 '배다리다움'의 경계를 세심하게 읽어내 정책에 담아내는 과정이다. 배다리가 품고 있는 이 고유한 '결'을 이해하는 일이야말로, 우리가 앞으로 찾아가야 할 '인천다움'의 중요한 실마리가 되어줄 것이다.
배다리 동네에 켜켜이 쌓인 사람들의 기억이 장소의 정체성을 어떻게 만들어내는지 잊히기 전에 깊이 살펴봐야 한다. 이 소중한 자산을 다음 세대의 일상으로 자연스럽게 이어가는 것, 그것이 새롭게 출범하는 제물포구가 가장 먼저 시작해야 할 '진짜' 도시의 일이다.
/박정우 인하대학교 도시재생학과 겸임교수·마농탄토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