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몽고지역에서 날아온 황사가 하늘을 흐리게 하거나 바다에서 올라온 안개가 섬 전체를 심하게 뒤덮는 경우가 아니라면, 제주도에 위치한 새 월드컵경기장 위에 펼쳐진 하늘은 눈부실 정도로 푸르다. 이 경기장은 특별히 월드컵대회를 위해 건설된 경기장인데, 이 경기장은 이제 다른 스포츠 행사들도 개최할 뿐 아니라 대형의 민속 축제장과 기타 전통 문화행사의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이 경기장의 관중석에서 바라보면 남쪽으로는 멀리 탁상(卓狀)형의 바위가 솟아있는 바다가 내려다보이고 북쪽으로는 해발 1950미터의 한라산이 자리잡은 서귀포시를 볼 수 있다. 경기장 입구에서 왼편으로는 16세기부터 제주도에서 수호신 역할을 해온 검은 용암석으로 만든 석상 "돌하루방" 11개가 원뿔형의 초가들과 더불어 늘어서 있다. 제주도는 육지와는 아주 상이한 문화를 갖고 있으나, 한국을 찾는 독일인들은 전통적으로 육지에서와 마찬가지로 제주도에서도 대환영을 받고 있다.
제주도는 마치 거대한 느낌표의 한 점과 같은 형태로 한반도 대륙에서 남쪽으로 90여킬로 떨어진 곳의 백여미터 깊이에 불과한 바다에 서 있다. 제주도는 특히 한반도 남서부에 집중해있는 총 3,500여개의 섬들 중에서 최대 규모의 섬이다. 서울에서는 비행기로 한 시간이면 편안하게 제주도에 도달하며, 부산에서는 30여분 거리에 있다.
제주도민들은 또 한 가지 특별한 성과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다. 금년 1월 서귀포에 위치한 '파라다이스' 호텔이 한국 호텔로서는 처음으로 저명한 세계 최고급 호텔뷰티크 체인(Relais & Chateaux)에 가입한 것이다. 이 호텔이 파라다이스로 불릴 만한데, 한국에서 가장 수려한 호텔로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해안에 위치하고 있다. 이 호텔의 56개의 객실은 야자수들과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붉은색, 하얀색, 검은색, 황금색의 물고기가 노니는 자그마한 개천들을 갖춘 지중해식 정원에 둘러싸여 있다. 헬스장이나 거대한 유리로 둘러진 사우나실에서 바라보면 청록색의 물과 거대한 바위들이 보인다. 호텔 시설물 옆에는 검은 현무암의 암벽들이 바다를 향해 깎아지른 듯이 서 있다. 어떤 날들은 작은 폭포수들이 쏟아져내려 부서지는 파도와 같이 피어오르는 장관이 연출되어 한국의 관광객들은 이 놀라운 광경을 보려고 이곳을 찾기도 한다.
'제주'라는 말은 "수평선 저 너머의 지역"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아마도 호기심을 가진 유럽인들이나 선교 목적의 선교사들로부터 가장 오랫동안 보호된 지역이어서 이러한 명칭이 생겨났을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13,14세기에는 몽고인들이 이 섬을 한때 점령한 적이 있다. 일본의 침략자들은 100여년전 제주도를 점령하려고 했을 때 이를 악물어야 했다. 제주도 주민들의 항쟁이 아주 거세었기 때문이다. 제주도민들은 자신들이 제주도 사람이며 육지 사람들과는 구별된다는 점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전설에 따르면 제주도 원주민들의 시조는 고(高), 양(梁), 부(夫)의 삼성(三姓)에서 비롯되며 이들 시조들은 '삼성혈'과 인근의 사당에서 아직도 숭배되고 있다.
그런데 제주도를 형성한 인물은 여신 '설문대' 할망으로 알려져 있다. 서귀포 월드컵경기장과 파라다이스 호텔에서 보면 한라산의 정상은 하늘을 쳐다보는 얼굴의 형태를 뚜렷하게 보여준다. 바로 설문대 할망의 얼굴이다. 설문대 할망은 아주 거대한 인물로 낡아서 구멍이 난 옷자락으로 거대한 양의 용암재를 산쪽으로 쓸어모으는 형상을 하고 있다. 설문대 할망이 열심히 이리저리 움직이는 동안에 여러 구멍에서 흘러내린 먼지들이 제주도에 펼쳐져 있는 360여개의 크고 작은 화산봉들을 형성했다. 설문대 할망이 마침내 한라산을 베개삼고 발을 바다에 걸친채 휴식을 취하자 발가락에 해당하는 부분들이 화산재로 검게되고 세월로 굳어진 형체로 고개를 내밀었다고 한다.
흑백으로 장식된 이 섬은 이외에도 많은 전설을 갖고 있다. 오늘날에도 300여개가 넘는 사당들에서 1만8천의 토착신들에 대한 숭배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의식은 불교도들에게서만 발견되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인들도 토착신들의 존재를 알고 있으며 이를 존중한다. 점심 식사를 할 때 카톨릭 교도인 한 젊은 택시운전사의 행동이 감동을 주었는데, 그는 식사로 주문한 술병을 열어 마개에 조심스럽게 술을 따라 옆에 내려놓은 후에야 사람들에게 술잔을 돌렸다.
제주도 전체에 펼쳐있는 화산 봉우리들 중에서 한라산은 가장 위풍이 당당하며 한국에서 최고 높은 산으로 등산을 해볼만한 산이다. 비옥한 초원에는 살찐 소들이 풀을 뜯고 있다. 무성한 산림을 지나면 기이한 형태의 고목들과 낮은 관목들이 나타난다. 꽃이 피어나는 계절에는 이 지대는 다채로운 환상적 장면을 연출한다. 그리고 가을이면 한라산의 숲은 노란색에서 다양한 붉은색에 이르기까지 단풍으로 아름답게 물든다. 놀랍게도 정상의 분화구에는 '백록담'이라고 불리우는 작은 호수가 있다. 백록담에서 보면 2천 평방킬로 크기의 제주도는 동서로 타원형을 이루며 펼쳐져 있다. 이 섬은 절벽과 암벽들이 해안을 이루며 곳곳에서 눈부실 정도로 흰색의 부드러운 모래사장들이 들어서 있어 가히 장관을 이룬다고 할 수 있다.
한라산의 봉우리들은 추운 북풍(北風)을 막아주는 장벽 역할을 한다. 따라서 섬의 남부지역에는 아열대 식물들이 자란다. 야자수들이 하늘을 향해 자라고, 동백꽃들이 피어나며, 파이애플 열매와 약 10여종의 감귤과 오렌지들이 익어간다. 온실에서는 각종 야채와 복숭아, 버찌, 딸기 등을 일년에 여러 차례 수확한다. 또한 온실 형태의 검은 플라스틱 격자로 이루어진 시설물에서는 특별한 종류의 담수어들이 양식되고 있다.
섬을 둘러서 나 있는 해안도로를 달려 보면 제주도의 숨어있는 비경(秘境)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북부 해안에는 검푸른색의 바다에 남부 해안에서 볼 수 있는 백사장이 검은색 용암들 사이로 펼쳐져 있다. 자전거로 이동할 경우 도로의 붉은 표시를 한 부분을 따라서 바다로부터 불어오는 소금기를 머금은 바람을 맞으며 달릴 수 있다. 제주도의 수도 제주시로부터 동쪽으로 나 있는 해변에는 높이 4미터, 길이 1킬로의 견고한 성벽을 볼 수 있는데, 이 성벽은 15세기 조선시대에 바다로부터 침범하는 왜구를 막기 위해 축조된 것이다. 이 성벽은 1910년에는 우선 일본의 침략에 좋은 방어막을 제공했다. 물론 일본은 나중에 제주도 주민들의 강력한 저항을 물리치면서 결국 조선왕조를 종식시켰다. 한반도는 제주도를 포함해 35년간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았다. 명랑한 모습의 소년, 소녀들로 구성된 한 학급이 성벽 위에서 주의를 기울이면서 선생님이 들려주는 역사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몇 명은 바람이 심하게 불어 손에서 날아가려는 메모장을 들고서 메모를 하는 모습이다. 그리고 나서 용기를 낸 학생 몇 명이 코큰 서양인인 내게로 다가와서 "헬로우, 웨어 아유 프롬?"하고 질문을 던진다. "독일에서 왔다"고 하자 "독일 사람"이라고 하면서 인사를 하고 버스에 오른다.
이 학생들은 물론 제주도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아직은 거의 찾지 않는 한 특별한 장소를 방문하지는 않을 것이다. 거기에는 거대한 무덤들이 늘어서 있는데, 모두가 이름 없는 무덤들이다. 다만 소박한 비석 하나가 55년전 이 섬을 유혈과 눈물로 적셨던 주민학살에 대해 증언해주고 있다. 일본의 식민지배가 끝나자 제주도의 어민들과 농민들은 대부분의 한국인들과 마찬가지로 이제 자신들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나갈 수 있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이러한 희망은 1945년에서 1948년 사이 한반도 남부 지역을 통치한 미군정의 의도에 부합하지 않는 것이었다. 미군정은 1948년 4월 3일 고문과 강간, 살인 등을 수반한 새로운 지배에 항거해 일어난 항쟁을 진압하도록 명령했다. 몇 달 사이에 아이들과 노인들을 포함해 3만여명이 사망하고, 여러 마을이 초토화됐다. 이 사건은 세계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생존자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침묵 속에 지내야했으며, 그렇지 않을 경우 엄한 처벌을 각오해야 했다.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이 가공한 시절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꺼린다. 이 비극의 현장은 보통 관광객들의 방문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다.
그러나 이 사건의 실상을 아는 사람들은 부드럽고 정감이 넘치는 사랑스러운 주민들을 만나면서 외경심을 갖는다. 제주도 주민들은 미소를 짓고 다소곳이 몸을 굽히면서 유럽의 관광객들에게 익숙한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말을 건넨다. 과일들을 건네주면서 한 번 맛보라고 권하는데, 오징어와 무엇인지 전혀 알 수 없는 것들도 있다. 용감하게 삼키면서 맛이 좋다는 표정을 지으면 이미 상대방의 마음을 얻은 셈이다. "감사합니다"라고 예의를 갖추면 굳이 사라고 권하지도 않는다. 독일 관광객은 놀랍게도 자주 제주도를 찾은 다른 한국 관광객들이 영어 또는 독일어로 말을 걸면서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묻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민속마을인 '성읍'은 조선시대에는 동부지역의 중심지였다. 오늘날에도 이곳에는 검은 용암석으로 지어졌으며 담장도 용암석으로 되어 있는 많은 전통의 초가집들이 남아 있다. 전체 지역이 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이곳에 사는 소유주들은 건물과 샘들을 보호하도록 국가로부터 보조금을 받는다. 왜냐하면 전기 시설이나 수도 시설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의 유명한 온돌방 형태는 꼭 한 번 체험해 볼만한 것이다. 온돌은 바로 옆에 위치한 부엌에서 불을 넣으면 여러 겹의 한지가 깔린 방바닥이 전체적으로 따뜻해져 방안의 공기를 데우는 난방 방식으로 과거 로마시대 목욕탕의 바닥난방과 유사한 난방 시스템이다.
박물관 형태의 민속촌으로는 섬의 남동부 지역에 자리잡은 '제주민속촌'이 있는데, 매일 전통 복장을 한 남녀들이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농민춤을 비롯한 여러 풍습을 선보인다. 한편 무속의 영역도 엿볼 수 있는데, 성스러운 나무들에 다채로운 천조각들과 옷가지들이 걸려 있다. 한 자그마한 집에 여자 무당이 앉아 있으며, 그 옆방에는 쌀, 과일, 야채, 과자 등 신에게 바쳐진 제물들이 들어서 있다. 여자 무당이 있을 경우 사진찍는 것은 별로 환영받지 못하는데, 한 관광객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찍으려하자 혈관의 피를 얼어붙게 할 정도로 날카로운 목소리가 방안에 울려 퍼진다.
육지에서 제주도를 찾는 신혼여행 부부들이 가장 즐겨 찾는 장소가 바로 이 민속촌이다. 갓 결혼한 신부들이 자랑스럽게 우아한 전통 한복을 입고 다니는 모습도 보인다. 길고 폭이 넓은 치마 위에 짧고 커다란 옷고름으로 묶은 저고리가 그것이다. 서양식 옷을 입은 신혼부부들은 이보다는 매력이 없어 보인다. 대부분 사진사가 따라 다니면서 전원적인 전통 가옥들, 수려한 해안지역 또는 분재원 등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최근에는 같은 색상의 풀오버와 긴 바지의 현대적인 파트너 룩을 입은 젊은 쌍들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정말 가 볼만한 곳중의 하나는 동부 해안의 바다에 솟아있으며 좁은 등성이를 통해 섬과 연결돼있는 '성산 일출봉'이다. 톱니 모양의 분화구 주변부를 향해 구불구불하게 나 있는 좁은 오솔길에는 일출 광경을 보려고 나온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봄에는 늦어도 5시45분까지 올라가야 바다에서부터 불그스름한 해가 하늘과 바다를 온통 물들이며 솟아오르는 장관을 즐길 수 있다. 대낮에는 분화구에 중심에 거대한 녹색 초원이 모습을 드러내는데, 초원에는 소들이 행복한 모습으로 걸어다닌다.
서귀포 해안에서는 나무로 만든 전망대에 오르면 바닷 속에 솟아 있는 검은색의 거대한 현무암들을 볼 수 있다. 다양한 높이의 이 바위들은 나란히 서 있는 기둥들 형태의 거대한 예술품을 연상시킨다. 기둥들은 낮은 곳에서는 한반도 형태를 띠며 바닷속으로 잠겨 있다. 이 예술품을 조성한 예술가는 물론 자연이다. 이 현무암 기둥들은 수백년전에 분출한 마그마가 바다 속에서 급히 식으면서 생겨난 것들이다. 이 자연 경관을 보러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든다. 한 위치 좋은 곳에는 승려 하나가 단조로운 리듬으로 목탁을 두드리는 모습이 보인다. 많은 관광객들이 지나가면서 부처탄신일을 상징하는 연등에 돈을 던져준다. 이 승려는 이 상당한 기부금을 자신이 속한 사찰의 중요한 행사에 사용할 것이다.
한국 국민의 다수는 불교의 신앙을 갖고 있다. 민간의 시주로 최근 몇 년간 남부 해안에는 위풍 당당한 절이 하나 건축되었는데, '약천사'라는 이름의 사찰이다. 약천사는 수개의 층으로 되어 있고 동양에서 단일 사찰로는 최대 규모의 특이한 사찰이다. 층계들과 벽들에는 부처의 일생을 그린 그림들이 들어서 있다. 사찰의 최고 위층에 올라 바라보면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는 거대한 금색 부처상 앞에서 기도하며 절하는 신도들의 모습은 아주 자그마한 모습으로 보인다. 아주 거대한 규모의 이 사찰은 하늘을 향해 나 있는 3층 형태의 지붕 모양으로 지상에서 치솟는 느낌을 준다. 사찰이나 집안으로 들어가는 경우 방문객들은 신발을 벗어야 한다.
아스팔트로 잘 포장되어 있는 해안도로를 서서히 달려가다 보면 긴 줄에 은색으로 빛나는 오징어들을 말리는 광경이 종종 전개되는데, 이곳 바다에서는 오징어가 대량으로 잡히는 모양이다. 자그마한 가게들에서는 즉석에서 구워주는 오징어를 찢어 스낵처럼 먹을 수 있다. 소시지나 튀긴 감자, 팝콘 또는 미국이나 유럽에서 흔한 살찌게 하는 음식은 찾아보기 어렵다. 온갖 양념을 한 야채, 생선, 조개, 달팽이, 여러 크기의 게와 종종 알 수 없는 해물로 이루어진 한국의 식단은 기호를 떠나 일단 건강식이다. 제주도 사람들은 거의 모두가 호리호리한 몸매를 유지하고 있다.
아침 식사로 나오는 전복요리는 비싸지만 아주 맛이 있다. 이 맛있는 음식은 옛날에는 아주 드문 것이고 건강에 좋다고 해서 왕들이나 귀인들이 즐기는 음식이었다. 점심이나 저녁에 나오는 성게죽도 마찬가지로 비싼 편이지만 건강에 아주 좋으며 특히 빈혈에 좋다고 한다. 생선과 조개국 그리고 생선회도 아주 탁월한 것이다. 어떤 다른 지역의 해역도 전혀 공업시설이 들어서 있지 않으며 모든 종류의 생선과 어류들이 행복하게 자라는 제주도 주변의 해역보다 청정하지 않을 것이다. 관광객들은 썰물인 경우에는 바위들 사이에서 신선한 조개 등을 직접 주워 모을 수도 있다.
해변의 여러 가옥들에는 다채롭거나 화려한 적,황,청의 방석 형태의 기구가 기대어져 있다. 그 옆에는 그물들과 때때로 검은 잠수복과 혁대 등이 걸려 있기도 한다. 유명한 제주도 해녀들의 잠수 장비들이다. 제주도 해녀들은 수백년 전부터 때로는 아주 위험하며 건강을 위협하기도 하는 이 직업에 종사하고 있다. 이들은 물안경을 끼고 때로는 다른 보조 기구 없이 물속 30여미터까지 4분여 동안이나 잠수하는데, 허리띠에는 그물이 달려 있는데, 소라, 전복, 해삼, 말미잘을 찾아내고 때로는 큼지막한 문어도 잡아 올린다. 그들이 물 속에서 작업하는 동안 물위에는 부표와 같이 다채로운 색깔의 바구니가 떠 있다. 해녀들은 건져낸 해물들을 바구니에 부착된 그물에 비운다. 아주 힘든 작업이다.
해녀들은 보통 아침 7시부터 오후 2시까지 거의 휴식 없이 바다에 나가있다. 모두가 스스로 위험을 감수하면서 작업에 임한다. 이들은 마치 다른 행성에서 온 존재들처럼 하루의 일과가 끝나면 용암석 위를 걸어 육지로 나오는데 잠수복도 검은 색이어서 용암석과 구별하기가 어렵다. 나중에 이들중 일부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 소풍지로 나가서 자신들이 채취한 해물을 직접 제공하기도 한다. 아니면 이들은 이미 해변에서 이들을 기다리는 상인들에게 자신들의 수확물을 팔아 넘긴다. 해녀들은 오래 전부터 바다의 신인 '영등'을 숭배하고 있다. 음력 2월 초하룻날에는 영등을 바다에서 불러내어 같은 달 15일까지 여러 다양한 제의를 갖는다. 이는 올해에도 해녀들의 위험한 작업을 보호해주고 풍성한 수확을 기원하는 행사이다. 이외에도 제주도의 바다는 잠수를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풍부하고 잘 보존된 산호초들을 갖춘 이상적인 장소이다.
해안을 달리다 보면 특히 서부 지역의 작은 어촌들에서는 현대적인 가옥들 사이사이에서 검은 용암석을 쌓은 돌담들 뒤로 나즈막한 초가집들을 발견할 수 있다. 다소 둥근 형태의 지붕은 심하게 부는 바람에 대비해서 세심하게 동아줄로 고정되어 있으며 이 동아줄들은 담장을 따라 설치되어 있는 목재에 묶여 있고 그 위에는 돌이 얹혀져 있다. 이렇게 하면 심한 폭풍에도 견딜 수 있을 것이다.
집 주변에는 야채와 멀리까지 향기를 풍기는 마늘밭들이 들어서 있다. 각각 세 개의 구멍을 지닌 두 개의 돌기둥이 서 있는데 집안에 들어서는 첫 관문이라고 할 수 있다. 방문자는 돌기둥 사이를 연결하는 세 개의 나무 막대기의 배열은 해석할 줄 알아야 한다. 세 개의 막대기가 모두 가로로 늘어서 있으면 집안에 아무도 없다는 말이다. 세 막대기가 모두 왼편으로 걸려서 땅에 늘어져 있으면 집안에 누군가 있다는 신호이다. 가장 아래쪽의 막대기만 끼워져 있고 나머지 두 개는 땅에 기대어져 있으면 집안에 사람이 잠시 부재중이지만 곧 돌아온다는 것을 의미한다. 집의 문들에는 잠금 장치가 따로 없다. 제주도에는 도둑질과 같은 범죄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제주도는 관광객들에게 아주 안전한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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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변화시키는 인터넷①』
(≫≪) 미군 희생 여중생들의 죽음을 애도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