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치마를 늘이고 먼지의 비단에 앉아 있어요. 겨울엔 꽁꽁 얼다 햇볕에 녹아버린 코는 매의 부리 같군요. 구멍에 동전을 넣으면 들들들 지렛대가, 녹슨 바퀴가 돌아가고, 휙휙 글씨를 써요. 오므린 손에 툭, 카드를 떨어트리죠. 어젠 백지를 건넸어요. 무슨 비밀처럼. 성냥불을 붙이자 레몬주스로 쓴 메시지가 나타나는데 카드가 홀랑 타버렸어요. 흰 수국으로 만발하는 씨앗 하나, 불타면서 빛나는 노래 한 소절 몰래 전해주고 싶었을까요? 타로 마녀는 끓는 왁스를 들이붓고 유리 상자 속에 가둔 이를 알고 있을까요, 흐린 회랑을 엿보며, 관계에서 멀어져 반죽처럼 조용해진 나를 기다릴까요? 타로 마녀는 차갑고 뜨거워요. 작은 톱니를 삼켰지요. 광대, 운석, 지팡이, 뼈다귀를 섞어 영원히 끝나지 않는 이야기를 지어내는 미궁을
* 레이 브래드버리,『민들레 와인』에서.
ㅡ《문학의오늘》2022년 여름호
잘 생긴 '시베리안 허스키' / 사진 〈Bing Image〉
들 개
강 신 애
멀리
개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컹컹,
채찍 같은 소리에 쫓겨
헐떡이며
머루와 나는 달렸다
가도 가도 붉은 흙이었다
잘못 든 택지개발지구
지름길이 아니었다
숨이 차고,
우린 끝없이 이어진 허연 가림막
텅 빈 궤도를 돌았다
출구가 없었다
밀리고 밀려 회색늑대가 된 개들
여기는 번지가 부서지고 경사가 파묻힌
그들만의 영역
들개 세 마리가 작은 푸들과 나를
단숨에, 찢어발길 듯
핏빛 우렁우렁한 소리로 포위했다
탕!
어둠 속에 나타난 사내가 철망을 쳤다
개들이 흩어졌다
하현이 창백한 귀를 세우고
멈춰 있다
두려움에 베인 목,
짖기를 잊은 머루와
늪 같은 흙길 수 킬로를 되돌아가야 한다
나무 한 그루 없다
지름길이 없다
- 《현대시》 2021년 5월호 -
〈강신애 시인〉
- 1996년《문학사상》등단
- 시집 '서랍이 있는 두 겹의 방', '불타는 기린',
'당신을 꺼내도 되겠습니까', '어떤 사람이 물가에 집을 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