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생각이 스쳤다. 지니를 마지막으로 목욕시킨 게 언제였던가. 지난달 한국에 다녀오기 전, 강아지 시터에게 맡기기 직전쯤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꽤 흘렀다는 생각을 하며 아침 인사하러 다가온 지니를 무심결에 쓰다듬었다.
그런데 손끝에 까만 모래알 같은 것이 걸렸다. 순간, 아주 작지만 낯선 감각이 마음을 스쳤다.
손바닥 위에 올려 보았지만 처음에는 그저 마당 흙먼지려니 했다. 그러나 그 감각은 하루 종일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결국 오후에 목욕을 시작했다.
무심결에 비누칠을 하고 털을 벅벅 문지른 뒤 샤워기에서 나오는 물을 지니의 몸에 흘려주었다.
그런데 물이 털을 타고 흘러내리는 순간, 핏물이 섞인 듯한 옅은 분홍빛이 회색의 구정물과 함께 스르르 흘러나왔다.
그리고 샤워실 바닥을 보는 순간 상황은 더 이상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 까만 작은 것들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지니를 큰 타월로 감싸고 철제 빗을 들었다. 빗이 털을 지나갈 때마다 작은 생명들이 떨어져 나왔다. 어떤 것들은 잠깐 공중으로 튀어오르기도 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것은 분명 작은 전투였다.
즉시 대응이 시작됐다. 집에 있던 응급용 강아지 벼룩 스프레이를 목욕 후에 조금씩 뿌려주고, 침구를 모두 교체하고, 카펫과 바닥을 베큠으로 정리했다. 그날 밤은 그렇게 지나갔지만 마음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찍어 둔 사진을 다시 확인하고 자료를 찾아보았다. 여러 번의 비교 끝에 그것이 개벼룩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순간부터 지니의 ‘응급작전’이 시작됐다. 필요한 것들을 하나씩 장바구니에 담아 정신없이 결제하던 그때의 손놀림이 떠올랐다. 생각만 해도 오싹했다.
저녁이 되자 물품들이 도착했고 지니는 다시 목욕과 처치를 받았다. 지니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른 채 조용히 몸을 맡겼다.
철제 빗이 다시 털을 지나갈 때 또다시 떨어지는 것들이 있었지만 그 수는 확실히 줄어 있었다. 처음처럼 거칠게 움직이던 기세도 눈에 띄게 약해져 있었다.
집은 어느새 작은 응급센터처럼 변해 있었다.
도착한 약을 지니 등에 발라 피지선을 통해 벼룩을 죽이는 약효가 돌게 하고, 거실 카펫과 소파를 중심으로 급히 베큠을 돌렸다. 알까지 잡는 스프레이를 지니 침구 속, 소파 위, 카펫 위, 그리고 지니가 다니는 길목의 바닥에 뿌려 소독을 반복했다.
모든 과정이 조용하지만 일사불란하게 이어졌다.
지니가 머무는 거실과 소파, 탁자 밑은 반복해서 정리되었고 카펫과 빗질했던 자리까지 빠짐없이 관리되었다.
빗질은 하루에도 여러 번 이어졌다. 처음에는 눈에 띄게 많던 것들이 점점 줄어들었고 움직임도 점차 둔해졌다.
그리고 오늘 아침.
다시 베큠과 빗질을 했다. 익숙해진 손놀림이었지만 긴장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지니는 탁자 밑에서 조용히 쉬고 있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온한 얼굴이었다.
반면 나는 소파에 앉아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막 긴급 상황을 넘긴 사람처럼 몸이 천천히 풀려갔다.
사흘 전, 아주 작은 흔적 하나에서 시작된 일이 이렇게 집 전체를 움직이는 응급 상황이 될 줄은 몰랐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였다. 작은 생명을 지키기 위해 조용히, 그러나 치열하게 움직였던 시간. 그날의 집은 잠시 전쟁터였고 동시에 보호의 공간이었다.
첫댓글 벼룩이 피가 나도록 꼭꼭 물었으면, 몹씨 성가시고 가려웠을텐데..
말 못하는 짐승이라~ 아뭏튼 지니덕에 집안 대청소 한번 잘했네예~ 크큭!
우리 강아지 지니의 마음을 알아주셔서 감사해요, 박곰님. 이렇게 글을 나누던 세월이 마음을 읽게 된 것 같아요. 너무 소중합니다. 이젠 여기도 비가 그치고 더위가 시작되었어요. 모기에 물리느냐 정신이 없네요. 여름 대비 잘하시고 건강 조심하세요, 박곰님.
잘 마무리가 되었다고 하니 다행입니다..
강아지라고 그냥 커는 것이 아니네요..관심과 사랑이 필요하네요..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맞아요, 유경희님! 뭐든지 손길이 가야 잘 성장하는 것 같습니다. 계시는 곳 날씨는 어떨지 모르겠어요. 기름값 때문에 외출을 할 수 있는 대로 안 하기 때문에 요즘은 날짜가 가는 줄도 모르겠어요. 언제 모든 것이 안정을 찾을지 참 걱정되네요. 더운 날씨에 몸 잘 돌보시고 건강하시고 행복한 환절기 보내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