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別記◇ 又復此經論中爲顯實相故 就非有義說無自見 集量論主爲立假名故 依非無義說有自證 다시 말하자면, 이 경론 중에는 실상을 나타내기 위해 있지 않다는 쪽으로 나아가다 보니 스스로 볼 수 없다고 하였고 집량론주는 가명을 세워 없지 않다는 뜻을 의거해 자증을 말했던 것이다.
제법은 心과 心法을 말한다고 했다. 이것을 줄여 心法이라 하기도 한다. 심법은 마음과 세상이다. 마음은 망념이고 그 망념에 의해서 제법인 세상천지가 만들어져 있다.
그래서 제법은 없으면서 있다. 그리고 있으면서 없다. 전자는 실상론의 견해고 후자는 연기론의 사상이다. 제법은 마음과 세상이다고 했다. 마음이 주체를 이루고 세상이 나타난다. 그러므로 세상은 없다는 것이 실상이고 그런데도 세상은 엄연히 이렇게 있다는 것이 연기론이다.
제법을 어느 쪽으로 보느냐에 따라 세상에 대한 실상과 연기가 나눠진다. 입능가경과 대승기신론은 지금 실상 쪽으로 제법을 분석하고 있는데 반해 집량론은 연기 쪽으로 제법을 분석하고 있는 것이다.
◇別記◇ 然假名不動實相 實相不壞假名 不壞不動 有何相違 그렇게 가명은 실상을 움직이지 못한다. 실상 또한 가명을 부수지 못한다. 부수지도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하니 어찌 서로 어긋나겠는가.
연기론에서는 가명을 내세운다. 연기론은 실상에 의해 세상만물이 전개된다고 하고 실상론에서는 그런 것들은 그림자나 파도처럼 아예 그 실체가 없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실상론에서는 세상은 실체가 없기 때문에 인연따라 변화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결코 본체인 실상을 움직일 수가 없다고 한다.
연병장에서 병사들이 어떤 제식훈련을 하던 간에 기준을 잡은 병사를 중심으로 분열과 집합을 하게 되어 있다. 그처럼 연기의 세계가 중중무진으로 퍼져나가도 그 중심에는 실상이 반드시 기준을 잡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병사가 아무리 기준을 잡고 서 있다 하더라도 다른 병사들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처럼 실상 또한 연기가 없게 되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러므로 실상과 연기는 서로 보완하고 서로 도울 때라야 만이 서로의 상관관계가 이루어져 중생세계가 만들어진다. 그러니 어찌 서로 어긋날 수 있겠는가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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