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104] [동녘이야기](월) / [허균 얼 톺아보기] 성소부부고 살피기 022#
✦권4 문부1 서(序) / 송오가시초(宋五家詩鈔) 서(序)
https://youtu.be/ohwcEkvsmW0
오늘은 이상하게 아직까지 잠을 잘 수가 없네요. 따라서 ‘성소부부고 살피기’를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말씀을 드렸읍니다. 그리고 당연히 ‘죄송하다’는 말씀도 올렸지요. 그런데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아 그렇다면 차라리 원래 계획대로 잠은 뒤로 미루고, 새벽 방송을 하기로 마음을 바꾸어 먹었읍니다. 그래서 이렇게 지난번에 이어 다음 차례로 ‘송오가시초 서’를 읽기 위하여 책을 펼쳤읍니다. 이렇게 시작됩니다.
시는 송나라에 이르러 없어졌다고 할 수 있다. 이른바 ‘없어졌다’는 것은 그 말이 없어졌다는 것이 아니라 그 원리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시의 원리는 상세하고, 완곡(婉曲=모나지 않고 부드럽다)한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말은 끊어졌어도 뜻은 이어지고, 가리킴은 가까우나 지취(旨趣=의지와 취향을 뜻함)는 멀며, 공리(公理=일반적으로 널리 통용되는 진리나 도리)에 사로잡히자 아니하고, 언적(言跡=말 발자취)에 떨어지지 않는 것이 가장 상승(上乘=으뜸)이 되는 것이다. 당나라 시인의 시가 많이 이에 가깝다.
송대의 작자가 많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모두 다 뜻을 드러내기를 좋아하고, 일을 인용하기를 힘쓰며 또 험운(險韻=험한 운으로 한시를 지을 때 어려워서 잘 쓰이지 않는 운자)과 군압(窘押=몹시 누르다)으로써 스스로 그 격조(格調)를 손상시키니 참으로 모르겠다. 천편 만수가 모두 다 패방(牌坊=중국의 독자적 건축으로서, 문짝이 없는 대문 모양의 건축물)의 냄새가 나고, 썩은 말이어서 시도(詩道=시의 도리)에서 벗어남이 수만 유순(由旬=이수의 단위, 범어인 유순나의 줄임말로 소-40리-중대 유순이 있음)이나 되니 어찌 슬퍼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소장공(蘇長公, 소식-蘇軾)은 뛰어난 선재(仙才=신선같은 귀재)였지만 역시 광대교화(廣大敎化=넓게 이끔)라는 나무람을 면하지 못했으니 다른 사람이야 하물며 말할 게 있겠는가?
내가 일찍이 송나라 여러 시인들의 시집을 얻어 보고, 부지런히 공을 들였으면서도 도(道)를 떠난 것이 멂을 슬퍼하였으나, 또한 감히 나의 소견으로써 옛사람들이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부린 것을 없애지 못하여 낯게 여기면서도 남겨 두었다. 그런데 세월이 오래되자 내가 지은 것도 차츰 서강(西江=서강체를 말하며 문체가 마음을 즐겁게 하고 그윽하고 품위가 있다)으로 흘러들어 옛것을 버리고, 가까운 데로 나아감을 스스로 깨닫지 못했으니 낮고, 더러운 것이 사람을 물들임이 이렇게 빠른 것을 알만하다.
우선 응수하기 편한 것을 뜻에 맞다고 여겨 애오라지 버리기를 결단하지 못했다. 아름다운 여자가 시속의 화장법을 배워 저자문에 나와 기대고 있는 격이니 어찌 부끄러움이 낯에 가득하지 않겠는가?
한가한 날 왕문공(王文公=송나라 문장가 왕안석의 시호) 및 장공(長空=소식을 높이 이르는 말)과 황태사(黃太史=황정견으로 벼슬을 이름으로 씀) 및 이진(二陣=진사도와 진여의를 가리킴)의 시를 읽으며 음미하다가 그 소편(小篇=짤막한 글)과 근체시(近體詩=엄격한 규칙을 가진, 당나라 때의 시)에서 좀 아름다운 것을 뽑아 책에다 실었더니 혹자가 힐난(詰難=트집을 잡아 지나치게 많이 따지고 듦)하였다.
“그대가 이미 고시(古詩)에 능했으니 고시가 스스로 세상에 이름나고 후세에 끼칠 만하거늘 어째서 송시(宋詩)를 뽑는가”
그래서 내가 말하였다.
“아니오, 그게 아니오! 말하기가 어렵지만 고시(古詩)는 경이(瓊彜=구슬같이 또렷함)나 옥찬(玉瓚=옥으로 된 제사 그릇)과 같아서 낭묘(廊廟=백관을 통솔하고, 정사를 총괄하던 최고의 정치 기관)에나 베풀 수 있을 뿐, 이사(里社=마을에서 지신을 위하여 마련한 사당)의 잔치 모임에 쓰자면 토궤(土簋=흙으로 빚은 그릇)나 자준(瓷䔿=도자기 그릇)의 편리함만 못하오. 내가 송시(宋詩)를 버리지 않는 것도 이와 같소. 나는 세무(世務=온갖 잡다한 세상일)에 응수하였을 뿐이니 어찌 시도(詩道)를 상할 수 있겠오. 하물며 개보(介甫=왕안석의 자)의 정핵(精核=핵심)함과 자첨(子瞻=소식의 자)의 능려(能慮=아주 뛰어나게 훌륭함)함과 노직(魯直=황정견의 자)의 연굴(演窟=굴뚝연기처럼 흐르다)함과 무기(無己=진사도의 자)의 침착하고, 간명함과 거비(去非=진여의의 자)의 부드럽고 밝음은 당나라 시인의 반열에 놓아도 명가(名家=명문 가문)일 수 있는데 어찌 송나라 시인이라 하여 전부 버릴 것인가”
그러자 힐난하던 자가 “그렇게구려”하였다. 그래서 그 말로써 첫머리에 쓴다.
이렇게 해서 겨우 마쳤읍니다. 그런데 어려운 한자 투의 말이 끝없이 이어져 이해가 쉽지 않아 한참, 애를 먹었읍니다.
이런 오늘도 고마움을 허균의 송오가시초(宋五家詩鈔) 서(序)를 읽습니다. 고마워요.
첫댓글 오늘은 너무 늦은 시간에 잠을 자려고 했는데...
잠이 오지 않았어요.
그래서 이제 잠들면...
오늘은 새벽 방송을 못할 것 같다고 말씀을 드리면서
죄송하다는 말씀도 드렸읍니다.
그런데 잠이 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소부부고를 읽기로 마음을 바꾸어 먹었지요.
그래서 '송오가시초(宋五家詩鈔) 서(序)'를 읽었읍니다.
교산 허균은 언어의 마술사 같다는 생각을 다시금 확인한 셈입니다.
기회가 되시면 한번, 살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