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9. 1. 주일 큐티
다니엘 10:12 ~ 21
마지막 날 환상에 대한 해석의 배경
관찰 :
1) 그 “한 사람”이 다니엘에게 오기까지 있었던 방해에 대한 설명
- 12절. “그가 내게 이르되 다니엘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깨달으려 하여 네 하나님 앞에 스스로 겸비하게 하기로 결심하던 첫날부터 네 말이 응답 받았으므로 내가 네 말로 말미암아 왔느니라” => 주님은 다니엘이 두려워하지 말 것을 명하십니다. 그리고 다니엘이 하나님이 주시는 환상을 깨닫고자 하는 노력을 가상하게 여기시고 귀중하게 생각하심을 알려주십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이 친히 다니엘에게 임재하기까지 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다니엘에게 기도의 응답을 주시기로 작정을 하셨습니다. 다니엘이 겸비하여 기도하기로 작정한 첫날 이미 기도의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21일 동안 금식을 했고, 그 이유는 기도의 응답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기도의 응답을 하시고자 했음에도 불구하고 기도의 응답이 이르지 못한 사정이 있었음을 알게 됩니다.
- 13절. “그런데 바사 왕국의 군주가 이십일 일 동안 나를 막았으므로 내가 거기 바사 왕국의 왕들과 함께 머물러 있더니 가장 높은 군주 중 하나인 미가엘이 와서 나를 도와 주므로” => “바사 왕국의 군주”는 페르시아의 왕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그가 어떻게 다니엘에게 기도 응답을 해 주시려는 주님의 임재를 방해할 수 있었겠습니까? 여기서 “군주”(שַׂר, 사르)는 ‘두목’, ‘통치자’, ‘지배자’라는 뜻입니다. 일반적으로 왕을 지칭할 때는 멜렉을 사용했는데, 여기서는 의도적으로 사르가 사용된 것입니다. 이것은 미가엘에 대해서 군주로 표현하면서 영적 존재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바사 왕국의 군주”는 그렇기 때문에 페르시아 제국의 수호신에 해당하는 악한 영적 존재들을 상징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니엘의 경우에도 기도의 응답이 이렇듯 악령에 의해 지연되었다면, 오늘날 성도들의 기도 역시 악령들에 의해 기도의 응답이 지연되는 일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기도의 응답이 늦어진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더 크신 분이심을 믿는 믿음을 잃지 않고 쉬지 않고 기도할 때 기도의 응답을 받게 될 것을 또한 믿어야 할 것입니다. 기도의 응답이 지연될지라도 그것조차 성도들에게 유익함으로 작용되도록 역사하시는 분이 또한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거기 바사 왕국의 왕들과 함께 머물러 있더니”이 말은 원어 성경에서는 미가엘의 도움 이후에 해당되는 문장의 말미에 기록되고 있습니다. 즉 그 ‘한 사람’이 미가엘 천사의 도움으로 악한 영의 세력들을 이긴 다음 페르시아의 왕들 곁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그들에게 영향력을 미쳤다는 의미입니다. “바사 왕국의 왕들”이라는 표현을 통하여 그 영향력이 고레스에게 국한 된 것이 아니라 페르시아 제국 전 역사 속에서 지속적으로 유대 민족의 회복과 구속을 위하여 일하심을 암시하는 말씀입니다. “미가엘”(מִֽיכָאֵל, 미카엘)은 ‘누가 하나님과 같으신가’라는 뜻을 가지는 천사장입니다. 미가엘 천사장은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을 보호하는 임무를 맡아 악한 영계의 권세에 대항하여 싸우는 천사들의 우두머리였습니다(유 1:9; 계 12:7).
- 14절. “이제 내가 마지막 날에 네 백성이 당할 일을 네게 깨닫게 하러 왔노라 이는 이 환상이 오랜 후의 일임이라 하더라” => 여기서의 “마지막 날”은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의 유대인 핍박 시기를 가리키는 동시에 세상의 끝의 시기를 가리키는 이중적인 의미가 있는 표현으로 해석합니다.
2) 인자와 같은 이의 위로
- 15절 ~ 17절. “그가 이런 말로 내게 이를 때에 내가 곧 얼굴을 땅에 향하고 말문이 막혔더니 인자와 같은 이가 있어 내 입술을 만진지라 내가 곧 입을 열어 내 앞에 서 있는 자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주여 이 환상으로 말미암아 근심이 내게 더하므로 내가 힘이 없어졌나이다 내 몸에 힘이 없어졌고 호흡이 남지 아니하였사오니 내 주의 이 종이 어찌 능히 내 주와 더불어 말씀할 수 있으리이까 하니” => 다니엘은 신적 존재에 대해서 매우 민감한 사람이었습니다. 다니엘은 세상에 대한 혜지(慧智)가 넘쳤을 뿐만 아니라 영적 지혜에 대해서도 누구보다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적 현상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해석했습니다. 그렇기에 신적 존재의 등장에 대해서 그는 육을 가진 영적 존재인 인간이 취해야 하는 마땅한 반응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지극한 경외감이며, 마땅한 공포이며, 합당한 두려움이었습니다. 그로 인해서 손가락하나 까딱할 수 없이 진이 빠지고 호흡이 멎는 것 같은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신이신 주님과 더불어 대화를 나누는 것이 불가능한 일임을 스스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주님은 자신의 가장 낮아지신 인자의 모습으로 다니엘에게 오셨고, 다니엘은 그분으로 말미암아 새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 18절. ~ 19절. “또 사람의 모양 같은 것 하나가 나를 만지며 나를 강건하게 하여 이르되 큰 은총을 받은 사람이여 두려워하지 말라 평안하라 강건하라 강건하라 그가 이같이 내게 말하매 내가 곧 힘이 나서 이르되 내 주께서 나를 강건하게 하셨사오니 말씀하옵소서” => 주님은 인자의 모습으로 오셔서 다니엘을 위로하시고, 만져주시며, 강건하게 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분의 임재는 너무나 엄청난 것이지만 그분의 위로로 평안이 되찾아지고 강건하게 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렇듯 하나님의 백성을 위로하실 때 강건하게 해 주십니다. 그렇게 됨으로 자신의 민족의 지독한 고난에 대한 예언을 하는 중에 슬픔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에서 자신이 해야 할 마땅한 일들과 준비를 수행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주님은 죽은 것과 같은 자에게도 힘을 공급해 주시고, 그 자리에서 일어나 주님의 일을 수행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 20절. “그가 이르되 내가 어찌하여 네게 왔는지 네가 아느냐 이제 내가 돌아가서 바사 군주와 싸우려니와 내가 나간 후에는 헬라의 군주가 이를 것이라” => 그리스도는 말일에 그 백성에게 되어 질 일(11, 12장)을 언급하기 전에 영계에서(계 12:7) 택한 백성들의 궁극적인 구원을 위해 일어날 일들을 개괄적으로 암시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유대 민족으로 하여금 메시야의 사역(영적 전쟁)을 통해서 고난 뒤에 궁극적인 구원과 회복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알려줌으로써 위로하려는 의도를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백성을 버리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페르시아가 망한 뒤에 헬라의 군주가 도래할 것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주님은 분명하게 역사속에서 어떤 흐름으로 흘러가게 될 것임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사 군주에서 헬라 군주로 바뀌는 것, 즉 악한 영적 존재가 이어지며 동일하게 악령의 역사가 이어지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시고 있습니다.
- 21절. “오직 내가 먼저 진리의 글에 기록된 것으로 네게 보이리라 나를 도와서 그들을 대항할 자는 너희의 군주 미가엘뿐이니라” => “진리의 글”은 세계 역사와 성도들의 받을 고난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서를 지칭하는 것입니다. “기록된 것”은 11절 이후에 기록된 그 섭리와 계획에 대한 세부적인 사항들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아무리 악령의 세력이 강하게 공격을 하고 침노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이 진리의 글에 기록하셨기 때문에 그들의 공격은 치명적이지 못합니다. 오늘날도 하나님께서 미가엘을 통해서 주님을 도와서 성도들을 도우실 것입니다. 이것은 변하지 않는 진실입니다.
가르침 :
1) 지역을 지배하고 있는 악령의 존재가 언급되었습니다. 바사국 군주, 헬라 군주 들입니다. 이렇듯 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으로 보여지는 악한 영적 존재들이 존재합니다. 제국의 역사 배후에 그런 악한 영적 존재들이 존재합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런 영적 전쟁의 본질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을 모른 채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것은 지혜가 될 수 없습니다.
2) 기도의 응답은 악한 영적 세력의 방해로 더디 오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잘못 구하기 때문인 경우가 더 많겠지만 바른 기도의 응답일지라도 그렇게 지체되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에 대해서 낙심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악한 영적 존재들과 비교할 수 없게 크고 강하신 분이시기에 이러한 영적 전쟁은 반드시 하나님의 승리가 잇따를 것임을 믿고, 인내하며 기도의 응답을 구해야 할 것입니다.
3)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에 또 다시 두렵고 떨림으로 반응하는 다니엘의 모습은 그의 순전함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영적 존재를 정말로 바르게 보는 자는 그러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 역시 주님을 따르고자 평생의 노력을 할수록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4)고 고백하며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의 죄인 된 자신의 존재를 인정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려는 자는 이러한 경외심을 먼저 회복해야 합니다. 그래서 마음이 청결한 자가 하나님을 볼 것이라는 주님의 가르침은 진리입니다.
4) 우리가 주님을 경외심을 가지고 바라보면, 주님이 우리를 위로해 주시고 격려해 주십니다. 그것이 우리가 주님을 바라볼 수 있는 근거입니다. 죽지 않고 주님을 만날 수 있는 근거입니다. 오직 살아계신 주님을 체험하고, 그 하나님의 은혜로 악령과 싸워 이길 수 있는 근거가 하나님의 위로와 격려와 미가엘 천사장과 그 휘하의 천사들을 통하여 성도들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위로자라는 사실은 너무나 큰 위로가 되는 변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적용 :
1) 다니엘은 정말 영적인 극한의 경지에 인간의 몸을 가지고 접근했던 역사상 매우 놀라운 존재였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이나 모세에게 직접 현현해 주심이 있었지만, 다니엘은 또 다른 영역을 나아간 사람입니다. 그의 지혜, 그의 순전함, 그의 하나님을 향한 갈망을 하나님은 귀하게 여기시며, 하나님이 다니엘을 “큰 은총을 받은 사람”이라고 여겨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가 임할 때, 나의 중심이 주님께 똑바르게 세워지며, 이런 은혜를 보게 될 것을 기대합니다. 혹 이 땅에서 이러한 은혜를 경험하지 못할지라도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내가 주님을 체험하며 만나게 되는 은혜의 역사가 분명히 있을 것임을 확신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영화롭고 위대하고 상상을 초월하는 이유가 바로 그러하신 하나님을 직접 뵈올 수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얼굴빛을 보게 될 그 자리에 나아가게 될 나의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2) 이 세상의 각 지역을 지배하는 악한 영들과의 영적 전쟁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향한 기도와 그 기도의 응답의 더딤을 버텨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도의 응답을 주시지 않으시는 분이 아니심을 또한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고, 그래서 성령님이 오셨습니다. 성령님이 내주하시기에 악령의 존재가 나를 넘어설 수 없습니다. 문제는 내가 성령의 소욕에 복종하는 것입니다. 내 중심이 진실함으로 주님께 굴복되어지기를 주님께 다시금 간구드려야 하는 이유입니다.
3) 주님의 임재에 대하여 다시금 두렵고 떨림으로 반응하는 모습이 내 안에서 있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을 만나는 시간에 대한 두려움, 주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경외심을 회복해야만 합니다. 예배의 요소에서 주님을 향한 경외감이 빠진다면 너무나도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4) 결혼기념일에 아내를 봉안한 에덴 낙원에 못 갔는데, 오늘 민영이 병조와 가정 예배를 드리고 갔다 오고자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고, 또 아내를 추모하는 복된 시간을 허락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