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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제임스 카메론'의 '프러덕션 노트'를 읽었다.
그것은 1997년에 세상에 나온 불후의 명작, 영화 '타이타닉'에 대한 巨匠의 진솔한 고백이었다.
그는 말했다.
영화 제작도 중요했지만 그 이전에 '타이타닉호' 최후의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고 싶었노라고.
역시 그가 '거장'인 이유는 그가 만든 영화의 흥행에만 있는 건 아니었다.
그는 끝없는 학구파였다.
'Deep Sea Challenger호'를 직접 만들어 심해를 탐색했던 진정한 탐험가였으며 호기심으로 똘똘 뭉쳐진 열정의 도전자였다.
그런 캐릭터 때문에 그가 만든 前代未聞의 역작들(터미네이터, 타이타닉, 아바타 등)이 그의 영감과 통찰을 통해서 세상에 나올 수 있었고 하나같이 세상의 반향을 이끌었고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뛰어난 한 사람이 세상을 바꾼다'는 말은 과연 허언이 아니었다.
누구나 그럴 테지만 영화 '타이타닉'을 나도 여러번 보았다.
개봉 당시엔 말 할 것도 없지만, 초호화 유람선이 북대서양의 어두운 바다에서 거대한 빙산에 부딪혀 침몰한 지 100년이 되는 해였던
2012년에도 3D 버전으로 다시 보았다.
그 후로도 또 두 번을 감상했고, 이번 추석연휴에도 이 '感動大作'을 다시 접했다.
여전히 가슴이 떨렸고 뭉클한 감동에 전율이 일었다.
그러나 이번엔 좀 다른 각도에서 감상했다.
'프러덕션 노트'를 읽고 오랫동안 사유했던 까닭도 있었지만,
뼈아픈 '세월호 참사'를 겪었던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이 영화 이면에 녹아 흐르는 타이타닉호 각 분야 엔지니어들의 진정한 직업의식과 눈물겨운 희생을 눈여겨 보았다.
그레서 오늘 쓰는 후기는 이 영화의 일반적인 스토리나 시놉시스가 아니다.
또한 '세기의 사랑'과 '영원한 감동'을 서술하기 위한 러브스토리 편향의 글이 아님을 미리 밝혀 두는 바이다.
'카메론'은 선박, 해양 전문가들과 함께 수십 번의 실험을 진행했다.
철저한 '포렌식 기법'을 활용했다.
구체적이고 실증적인 연구였다.
"어떻게 침몰했을까?"
그 질문이 연구의 核心이었다.
'세월호'는 급격한 변침으로 인해 배가 중심을 잃었고, 그 '평형상실'은 곧 침몰과 끔찍한 참사를 의미했다.
배가 기울자 당연히 엄청난 해수가 유입됐고, 선박의 측면이 바닥에 닿은 상태로 수장됐다.
그러나 '타이타낙호'는 달랐다.
두 동강이 난 상태였고 선수와 선미는 무려 600 미터의 간격을 둔 채 똑바로 서 있는 모습이었다.
뒤집힌 것도, 옆으로 누워 있는 상태도 아니었다.
이상했다.
모두지 이해할 수 없는 형태였다.
더 납득할 수 없는 일이 있었다.
그 궁금증의 요체는 '어째서 그 거대한 배가 옆으로 기울지 않았는가' 였다.
생각해 보라.
'타이타닉호'는 선수 우현의 밑창 부위 철판이 거대한 유빙과의 충돌로 찢어지면서 바닷물이 엄청나게 유입되어 침몰했다.
충돌 후 약 2시간 40분 정도가 지난 싯점이었다.
그렇게 270 미터, 4만6천 톤의 거함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상식적인 상황이라면 우현 격실부터 물이 차올랐으므로 무게중심이 급변하여 배가 우측으로 기울었어야 맞다.
그게 세상의 상식이고 科學이다.
배는 평형유지가 생명 아니던가?
제 아무리 빨리 '침수 차단문'을 닫고 신속하게 배수펌프를 가동했어도 충돌로 인한 파손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심각한 수준이었다.
정상적인 판단이라면 '타이타닉호'는 우측으로 기울면서 침몰했어야 한다.
그게 우리가 믿고 있는 '무게중심의 定說'이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상술했던 바와 같이 '카메론'과 수십 명의 선박, 해양 전문가들의 실험에서도 역시 결과는 동일했다.
우현으로 물이 유입됐으면 우측으로, 좌현으로 유입됐으면 좌측으로 넘어갔다.
정밀한 '포렌식 기법'을 활용했지만 결과는 단 한번도 바뀌지 않았다.
물리학에 대한 '불변의 原理'를 새로 쓰지 않는 한, 선박의 평형유지나 침몰에 대한 상식과 준칙도 바뀌지 않아야 옳았다.
그러나 사고발생 후 약 2시간 가량 배는 평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기적같은 일이었다.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일들이 1912년 4월 12일 자정 무렵, 차디 찬 북대서양의 심해에서 처참하게 펼쳐지고 있었다.
도무지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다.
무게중심을 잃지 않았던 까닭에 710 명이 생존할 수 있었다.
배의 '平衡'과 710 명의 생존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냐고 반문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히 절대적인 관계가 있었다.
거대한 호화 유람선엔 승객과 승무원을 포함해 총 2,224 명이 타고 있었다.
處女航海에서 빙산과의 충돌로 1,514 명이 죽었고 710 명이 생환했다.
그나마 710 명이 살았던 이유는 전적으로 20 척의 구명정 때문이었다.
구명정에 타지 못한 사람들은 모두 죽었다.
단 6 명을 빼고는.
긴급한 타전으로 조난을 알렸지만 광막한 대양에서 인근을 지나는 배는 없었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선박, '카파시아호'가 전속력으로 달려와도 4시간 가량이 소요되는 먼 거리에 있었다.
속수무책이었고 방법이 없었다.
첫항해에서 '침몰 할 수 없는 완벽한 배'로 여겨졌던 '타이타닉호'는 헤일 수 없이 수많은 인명을 희생시키고 말았다.
희생자들은 '溺死'가 아니라 '凍死'였다.
칠흑같이 어두운 북대서양의 밤바다는 얼음장같이 차가웠다.
수영실력이나 개인의 대처능력에 상관없이 살을 에는 바닷물에선 누구도 단 몇 분을 견딜 수 없었다.
저체온증으로 인해 속절없이 죽어갔다.
'라이프 자켓' 때문에 3,800 미터 해저 아래로 가라앉지는 않았지만 둥둥 떠다니는 시신들이 드넓은 밤바다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처참한 참사였다.
참혹했다.
전쟁을 빼고 인류가 경험했던,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재난이었다.
710 명이 생존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자.
만약 배가 기울었다면 구명보트를 정상적으로 내릴 수 있었을까?
결론적인 얘기지만, 만약 선박이 기울었다면 구명정은 무용지물일 뿐이었다.
그랬다면 2,200 명이 모두 다 죽었을 것이다.
구명 보트는 평균적으로 한 척에 65 명 정도가 탈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그런데 절체절명의 아비규환 속에서 그 원칙은 지켜지지 않았다.
대개 한 척 당 3-40여 명씩 보트에 승선했고, 승선하고 나면 아파트 20 층 높이에서 수면으로 전기모터와 크레인을 이용해 보트를 내리는 시스템이었다.
사람까지 태운 구명보트의 무게를 난 잘 모른다.
나는 선박 전문가도 아니다.
그러나 문외한인 내 생각으로도 최소한 5-6 톤을 넘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사람이 손으로 밧줄을 잡고 내릴 수 있는 고무보트같은 배도 아니었고, 그런 무게도 아니었다.
생각이 이 대목에 이른다면, 이 글을 읽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2 가지 전제조건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첫째는 우현 10 척과 좌현 10 척의 구명정을 모두 바다에 내릴 때까지 전기가 죽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거대한 선박이 끝까지 평형을 유지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전기도 전기지만 만약 배가 기울었다면 구명정에 사람이 탈 수도 없었고, 약삭빠른 누군가가 탑승했다 해도 바다에 내릴 수 없었다.
기운쪽은 이미 물 속에 잠겼을 테고, 하늘을 향한 쪽은 아무리 노력해도 보트를 바다로 내릴 수 없는 상태였을 테니까.
'타이타닉호'가 세월호처럼 기운 후에 침몰했다면 탑승자 100%가 몰살당했을 것으로 나는 추측한다.
'세월호'의 경우 바다에 뛰어든 사람들은 대개 살았다.
영하의 수온도 아니었고, 구조어선이나 海洋警察의 선박들과 헬기 등이 있었다.
인근 섬이나 육지에서도 그리 멀지 않았다.
그러나 '타이타닉호'의 경우엔 구명보트가 아니면 모두 죽을 수밖에 없는 극한의 환경이었다.
어째서 마지막까지 電氣가 살아 있었을까?
거선이 평형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도 미스테리지만 설령 그렇다 해도 선박내부는 이미 100% 침수되어 사람이 생존할 수 없는 조건이었다.
물이 차오르자 선수부터 수면 아래로 잠기기 시작했고 거대한 배의 선미가 하늘 높이 들리면서 끝내 두 동강이 났는데, 선미가 들리기 직전까지 엔진과 전기는 살아 있었다.
정말로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그리고 어느 선박이나 그렇지만 설계와 구조상 엔진룸, 펌프실, 발전실, 보일러실 등은 선박의 하부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미 바닷물이 선수의 갑판까지 집어삼킨 상태에서 그 보다 몇 십미터 아래에 위치한 이 핵심설비들이 온전하게 기능하고 作動할 수 있었을까?
상식적으로 그게 가능했을까?
수수께끼 같은 일이지만 대답은 '예스'였다.
'타이타닉호'의 하부엔 16개의 방수격벽이 있었다.
하지만 완벽하게 방수가 될 수는 없었다.
핵심 설비룸에도 차가운 바닷물이 차오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곳에서 근무하고 있던 엔지니어들은 자신이 죽을지언정 갑판 위의 승객들, 그 생면부지의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단지 그 한 생각 뿐이었다.
그것은 바로 거룩한 '사명감'이었다.
배는 이미 항해를 멈췄지만 엔진만은 계속 돌려야 했고, 전기가 죽지 않도록 격실에 차오르는 바닷물을 대형 펌프를 이용해 빼내야 했다.
그들은 목숨걸고 그 역할을 다했다.
2 천명이 넘는 승객들이 저마다 자신의 목숨 하나를 위해 아비규환의 참상을 보이고 있을 때, 배의 맨 밑바닥에선 엔진 전문가 25 명, 전기 엔지니어 10 명이 모두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내던지면서까지 숨가쁘게 일하고 있었다.
진정한 感動은 '잭 도슨'(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과 '로즈'(케이트 윈슬릿)의 죽음까지 불사하며 영혼을 함께 붙들었던 그 애절한 '러브스토리'가 아니었다.
56캐럿이나 되는 당대 최상, 최고의 다이아몬드였던 '바다의 심장'도 아니었다.
바로 배 밑창에서 세상 어느 누구로부터도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최후의 일각까지 엔진작동, 펌프가동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경주했던, 그리하여 배의 평형유지, 전기생성을 끝까지 책임졌던 35인의 엔지니어들이었다.
그들이야 말로 710 명 생환의 숨겨진 秘密이었다.
그들의 목숨 건 책임감과 숭고한 소명의식은, 어린 학생들을 버리고 가장 먼저 팬티바람으로 탈출했던, 비열하고 저급한 세월호 船長이나 船員들과는 비교할 수도 없고 하고 싶지도 않은 극상의 헌신이요 값진 희생이었다.
710 명의 생존자들, 그들의 증언으로 다양한 보고서가 작성되었고 항해와 침몰과정들이 추론되었다.
1912 년도의 당시 과학기술로는 해저 4천 미터를 탐색할 수도 없었다.
거대 선박이 두 동강 났다고 증언한 사람들이 많았지만 그 엄청난 쇳덩어리가 쪼개졌을 것으로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증거가 없으니 실상을 주장해도 사람들은 자기들이 믿고 싶은 대로 몰고 갔다.
모든 선박 전문가들이나 정부요원들도 그렇게 확신했다.
어두운 북대서양의 밤바다, 잘 못 보았거나 생사의 갈림길에 선 사람들의 데자뷰 또는 착시일 거라 생각했다.
사고를 규명하는 정부 보고서는 생존자들의 몇 가지의 증언과 대부분의 추측성 소설로 그렇게 작성되었다.
그러나 1985 년, 내셔널지오그래픽 해양 탐사팀이 해저 3,821 미터 지점에서 두 동간 난 채로 600 미터나 떨어진 지점에서 잠들어 있던 '타이타닉호'를 발견한 뒤로 하나 둘씩 실체적 진실이 규명되고 있다.
엔지니어들은 말 한 마디 남기기 못한 채 모두 죽었다.
역사는 勝者들의 기록이라고 했던가?
生存者들의 증언은 모두 자신의 입장에서만 보고, 듣고, 느낀 점들을 기술했다.
그리고 현재 화폐기준으로 몇 천만원에 해당하는 1등실이나 특등실을 이용할 수 있었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부호들이었고,
실제로도 그들이 많이 생존했다.
특히 여성들과 아이들을 먼저 구했으니 그들의 입장에서 선박 밑창에서 일하는 무식한 노동자(?)들의 희생과 헌신을 헤아릴 수 있는 眼目과 識見을 가진 사람들이 과연 있었을까?
당연히 전무했다.
어느 누구도 그 엔지니어들을 대변하지 못했고, 기적같은 생존의 이면에 그들의 피땀과 '위대한 희생'이 있었음을 생각하지 못했다.
영화계의 거장 '카메론'이 숱한 실험과 연구, 탐험과 취재, 통찰과 분석을 통해 傑作을 세상에 내놓기 전까지는 말이다.
710 명의 기적같은 생환이 '우연의 산물'이 아님을 적어도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꼭 한 번씩이라도 마음판에 새겼으면 좋겠다.
영웅같은 희생과 헌신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살리고 말없이 스러져간, 맑은 빛줄기 한 조각 신선한 바닷바람 한 떨기 불지 않았던, 언제나 퀴퀴하고 후미진 맨 바닥에서 묵묵히 일만했던, 35 명의 타이타닉호 '엔지니어들'에게 이 지면을 빌려 깊은 감사와 오마주를 보내고 싶다.
사람은 위대한 존재이면서 동시에 가장 추악한 존재다.
거대한 함정이 침몰할 때 소용돌이와 와류가 발생하는데 가까이에 있는 物體들은 빨려들어 갈 위험이 컸다.
바다에 내려진 20 척의 구명보트들.
그 소용돌이를 피하기 위해 타이타닉호에서 점점 멀어져 갔다.
그러다 거함이 흔적도 없이 침몰한 이후로 이내 바다가 잠잠해 졌다.
물에 빠진 사람들의 살려달라는 목소리가 밤하늘에 창궐했으나 어느 보트도 신속하게 다가가지 않았다.
자신의 生存에 조금이라도 피해가 생길까 싶어 주저하고 머뭇거렸다.
그렇게 무심한 시간이 재깍재깍 흘러갔고 그러는 새 모두가 저체온증으로 죽어 갔다.
끝내 건강한 영혼을 가진 승무원들의 거룩한 분노가 폭발했다.
다른 보트에 승객들을 분승케 하고 어두운 밤바다를 향해 노를 저어 갔다.
유일한 단 한 척의 보트 뿐이었다.
하지만 이미 너무 늦은 뒤였다.
그렇게라도 기적적으로 구한 사람이 있었다.
달랑 6 명이었다.
큰 꿈을 싣고 처녀항해에 나섰던 '타이타닉호'는 1,514 명의 고귀한 생명과 함께 얼음장 같이 차가운 북대서양의 밤바다에서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나의 삶은 어떤가?
당신의 인생은 어떤가?
더불어 살고자 노력하며 쉼없이 기도하는 인생인가?
아니면 여전히 我田引水인가?
주지하는 바와 같이 이 영화의 주제곡은 '제임스 호너'가 작곡하고 '셀린 디옹'이 부른 'My Heart Will Go On'이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영화음악의 최고봉이다.
영원한 사랑과 감동을 애절하게 읊어내는 한 편의 주옥같은 서정시다.
하지만 이 글엔 어울리지 않아 첨부하지 않는다.
모두가 살고자 날뛰는 그 극한의 현장에서 마지막까지 승객들의 한 줌의 平和와 慰安을 위해 연주를 멈추지 않았던 실내악단의 그 아름다운 영혼이 오늘따라 더 향기롭고 더 갈급하게 느껴진다.
아마도 나만의 느낌표는 아닐 것이다.
그들이 연주했던 최후의 곡이 여전히 내 마음을 애잔하게 울리고 있다.
그 곡은 바로 'Nearer, My God To Thee'였다.
찬송가 364 장이다.
'내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다. 내 일생 소원은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아멘"
먹먹한 울림이 영혼을 적신다.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그 곡은 여러 명의 가수가 불렀습니다.
대표적으로는 Anne murray, Patti page, Mahalia jackson 등입니다.
그 중에 잭슨의 노래가 가장 애절하고 마음에 와닿습니다.
그래서 그녀의 곡을 첨부했습니다.
첫댓글 아무리 척박한 상황에서도 헌신하고 희생하는 사람들이 있어 살만한 세상이 되는 것이겠지요.우리 친구도 세상의 밀알이 되기 위해 기꺼이 나선 선구자같은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기온이 뚝 떨어져 차가운 아침입니다. 글을 읽다보니 가슴 한구석이 뭉클해집니다. 보이지 않는 곳을 찾는 마음이 더욱 아름답게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