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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중 한 사람은 마귀니라
요6:60-71
2026년 7월 14일(화)
기동찬
60.제자 중 여럿이 듣고 말하되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한대
61.예수께서 스스로 제자들이 이 말씀에 대하여 수군거리는 줄 아시고 이르시되 이 말이 너희에게 걸림이 되느냐
62.그러면 너희는 인자가 이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본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6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64.그러나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느니라 하시니 이는 예수께서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누구며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아심이러라
65.또 이르시되 그러므로 전에 너희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하였노라 하시니라
66.그 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67.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68.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69.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
70.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의 한 사람은 마귀니라 하시니
71.이 말씀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가리키심이라 그는 열둘 중의 하나로 예수를 팔 자러라.
하나님, 감사합니다.
예수님께서 택하신 열둘 중에 한 명을 가리켜 “마귀니라.”고 하신 특이한 장면을 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70.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의 한 사람은 마귀니라 하시니
하나님, 가룟 유다가 처음부터 마귀는 아니었을 줄 압니다. 만일 그가 처음부터 마귀였다면 주님께서 그를 선택하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마귀”라고 하는 단어는 헬라어로 “디아볼로스”인데 여기에는 “비방하는 자, 대적하는 자, 이간질 하는 자”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가룟 유다는 평소에 겉으로 드러나게 예수님을 대적하거나, 대놓고 다른 제자들을 비방하고 이간질 했던 그런 멍청한 자는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겉으로 드러난 모습은 완벽할 정도로 모든 이들에게 신뢰받는 제자의 모습을 유지했습니다. 만일 그가 평소에 트러블메이커였다면 공동체의 재정을 관리하는 “회계”를 맡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는 겉보기에는 매우 유능하고 신뢰할 만한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요한복음 12장은 가룟 유다의 실상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요12:6). 그는 평소에 대놓고 예수님을 대적한 것이 아니라, 욕심과 이중생활을 통해 서서히 마귀가 합법적으로 자신에게 틈탈 틈새를 열어 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이 어렵다고 말하며 예수님 곁을 떠나고 있는 상태입니다. “제자 중 여럿이 듣고 말하되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한 대 61.예수께서 스스로 제자들이 이 말씀에 대하여 수군거리는 줄 아시고 이르시되 이 말이 너희에게 걸림이 되느냐...66.그 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67.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많은 제자들이 주님의 말씀에 “아멘”하지 못하고 “수군거리고” 난 후부터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66절), 이 장면을 보신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67절)를 향해서도 말씀하시기를 “너희도 가려느냐”(67절)라고 질문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에 “아멘”하지 못하고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해서 수군거리기 시작하면 그 때부터 그 사람은 자기 자신을 마귀에게 문을 열어 주는 셈이 된다는 것을 주님의 말씀을 통해서 깨닫게 해 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그렇습니다, 주님.
주님의 말씀에 “아멘”하지 못한 제자들은 수군거렸고, 그 결과는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66절) 말았습니다. 이 장면을 보신 주님은 한 사람을 가리켜 “너희 중의 한 사람은 마귀니라.”(70절)고 선포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해서 수군거리기 시작하면, 그 때부터 자신을 마귀에게 문을 열어 주는 셈이 된다는 것을 말씀을 통해서 깨닫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가룟 유다는 평소에 겉으로 드러나게 예수님을 대적하지 않았습니다. 대놓고 다른 제자들을 비방하고 이간질 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겉으로 드러난 모습은 완벽할 정도로 모든 이들에게 신뢰받는 제자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많은 이들이 주님의 말씀을 듣고 “아멘”하지 못하고 수군거리는 상황에서 그의 말은 다른 이들에게 영향력을 줄 수 밖에 없었는 줄 압니다.
많은 사람들의 신뢰를 한 몸에 받고 있었던 가룟 유다, 공동체의 재정을 관리할 정도로 신뢰를 받고 있었던 가룟 유다, 그가 받고 있었던 신뢰, 자신의 의로움 이 모든 것을 주님을 위하여 사용하지 않고, 무리들의 대변인 역할을 하게 되니, 이러한 그를 마귀가 좋아 할 수 밖에 없었는 줄 압니다.
놀라운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가나안을 향하여 나아갈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들에게 놓인 환경은 어느 누구 한 사람도 원망 불평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때 여호수아와 갈렙만큼은 모세의 편(하나님의 편)에 서서 그를 위하는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나머지 모든 사람들은 어떻게 행동했는지 민수기 13장14장에 보면, 10명의 정탐꾼(각지파의 대표로서 신뢰할 만한 이)들의 말은 “우리는 그들에 비하면 메뚜기 같다”고 하며 부정적인 수군거림을 시작하니, 온 회중이 그 수군거림에 마음을 빼앗겨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백성이 밤새도록 통곡하였더라.”(민14:1)고 했습니다.
수군거림은 전염병처럼 퍼져 원망과 반역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들은 애굽(세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차라리 낫겠다며, 하나님이 세우신 리더를 거부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우리가 한 지휘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민14:2∽4).
이때 여호수아와 갈렙은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면 그 땅으로 인도해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무리들을 향하여 선포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열 지파의 대표들의 수군거림이 더 큰 영향력을 무리들에게 미쳐 무리들은 회개하기는커녕 돌을 들어 여호수아와 갈렙을 쳐 죽이려고 했습니다(민14:10).
가룟 유다가 받고 있었던 신뢰와 의로움, 이것을 주님을 위하여 사용하지 않고, 무리들의 대변인 역할을 했다는 것은 광야에서 각 지파의 대표이자 지휘관으로서 신뢰받던 10명의 정탐꾼의 모습과 정확히 일치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백성들에게 가장 신뢰받고 영향력 있는 자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하니 온 회중이 도미노처럼 무너진 것입니다. 가룟 유다 역시 제자들의 신뢰를 받는 위치에서 은밀한 원망과 불만을 대변하며 공동체 전체를 영적인 침체로 몰고 갔던 것입니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도 하나님의 말씀과 이적을 경험했지만 환경이 어려워지자 “이 길이 맞느냐”며 수군거렸고, 요한복음에 나오는 무리들도 오병이어의 기적을 맛보고도 주님의 말씀이 어려워지고 이해가 되지 않자 수군거리며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주님의 말씀에 “아멘”하지 못하고 수군거리기 시작하면, 그 때부터 자신을 마귀에게 문을 열어 주는 셈이 된 것인 줄 압니다.
눈앞의 환경이나 이해되지 않는 말씀 앞에서도 수군거림을 선택하지 않고, 베드로처럼, 주님의 질문(너희도 가려느냐?)에
68...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69.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 라고 고백하며 주님 곁에 머무르는 삶이 얼마나 복된 삶인지 다시금 깨닫게 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가룟 유다는 많은 이들에게 받는 신뢰를 주님을 위하여 사용하지 않고, 무리들과 가난한 이들을 위하여 대변하는 척 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는, 마리아가 예수님 발에 향유를 부은 일입니다. 이 때 유다는 “이 비싼 것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않았느냐”며 아주 정의로운 척 예수님의 행동을 우회적으로 비방했습니다. 비방하는 가룟 유다의 말에 다른 제자들은 눈치도 없이 그를 동조하여 마리아를 책망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유다의 은밀한 불만이 제자들 사이에 이간질과 분란을 일으키는 마귀적 역할을 한 셈입니다.
예수님께서 무리들이 수군거림 후에 많이 떠나는 것을 보시고 결론적으로 “너희 중에 한 사람은 마귀니라.”(70절)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하기 훨씬 전입니다. 중요한 것은 유다의 중심에 사람이 제일 되는 목적인 고전10:31절 말씀, 즉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는 삶이 내제 되어 있지 못함을 주님은 이미도 보고 계셨던 것입니다.
가룟 유다는 평소에 대 놓고 원망 불평하는 대적자는 아니었습니다.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예수님의 가치관을 대적하고 거스르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마귀의 도구로 쓰임 받게 된 것입니다. 유다가 처음부터 마귀였던 것은 아닙니다. 유다의 마음이 마귀에게 사로잡히는 과정이 성경에 나오는데, 요13:2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요13:27 “조각을 받은 후 곧 사탄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
가룟 유다는 마귀가 주는 생각을 받아들였고, 결국에는 완전히 그 영에 지배당해 마귀의 대행자처럼 행동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가룟 유다를 마귀라고 지목하신 것은 그가 괴물이라는 것이 아니고 마귀의 생각에 동조하여 예수님의 말씀에 “아멘”하지 못하고 수군거림에 가담하여 배신할 “대적자”가 되었다는 것을 경고하시고 탄식하시고 계시는 장면인 줄 압니다.
한 사람이 마귀에게 사로잡혀 마귀에게 쓰임 받는 마귀의 도구로 전락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두려운 경고의 말씀임을 제 마음에 새깁니다.
주님의 말씀이 이해가 되든 되지 않든 간에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일”임을 선포합니다. 주님과 하나 됨, 주님과의 연합, 포도나무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음, 떡을 먹음이 내 몸의 일부가 되듯 예수님의 살(떡)과 피(포도주)를 먹고 마심으로 예수님과 연합하는 것, 이것이 죄인 된 제가 영생의 길로 나아가는 비결임을 선포합니다.
저는 사람들 앞에서 의로운 척, 대단한 척, 잘 난척 할 것이 전혀 없습니다. 주님, 저는 죄인 중에 죄인입니다. 사도바울의 고백처럼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1:15)고 고백할 수밖에 없는 자입니다.
가룟 유다와 같이 사람들 앞에서 잘 난척, 의로운 척 결코 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죄인일 뿐입니다. 예수님이 필요한 자입니다.
가룟 유다는 자신의 깨끗함과 정의로움을 증명하려다(가난한 자를 위하는 척, 마리아를 비난하다가) 결국 마귀에게 쓰임 받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반면 사도 바울은 자신이 ‘죄인의 대장(괴수)’임을 철저히 인정했기에, 오직 예수!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은혜만을 의지하는 참된 제자로 끝까지 쓰임 받게 된 줄 믿습니다.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끝까지 겸손하게 하옵소서.
이 하루도 주님의 손에 돌려 드리며
제 삶의 주인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Declaration
나의 가치관과 맞지 않는다고 해서 주님의 말씀에 아멘하지 못하고 수군거림은 마귀에게 문을 열어 주는 통로가 됨을 선포합니다.
I declare that failing to say 'Amen' to the Lord's word just because it doesn't align with my values, and instead murmuring, opens the door to the devil.

첫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