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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앞에는 성경이라고 불리는 위대한 책이 역사의 유산으로서 남겨져 있다. 많은 현대인들은 성경을 연구하고 그 속에서 무엇인가를 발견해 내고 감격해 하며, 그 감격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음을 우리는 자주 접하곤 한다. 즉 성경은 박물관 속에 보관되어진 죽은 책이 아니라, 많은 시간과 공간이 흐른 오늘날에도 영향력을 행사하는 살아있는 거룩한 책이다.(1 오늘 우리에게도 그 같은 감격을 맛볼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었다. 이제 우리는 성경, 그 중에서도 구약성경을 아주 자세하게 관찰하면서 많은 것들을 얻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한가지 준비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성경이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물어올 때 우리 자신은 성경 앞에서 진지하게 대답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성경은 우리에게 침묵하고 말 것이다. 성경은 성경에서 무엇인가를 얻으려고 덤비는 사람들에게 물음을 던지는 책이다. 정보와 통신이 권력으로서 그 위치를 굳히고 있는 오늘날, 이런 분야에서 선두주자를 달리는 사람들은 이 세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여전히 많은 문제가 산적해 있으며 인간은 그 문제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있다. 그 동안 사람들은 성경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나 과학과 첨단 지식에서 인간의 행복과 미래를 보장받고 싶어했지만 그 꿈은 점점 무산되어져 갔다. 대부분의 현대 학자들은 무너진 도덕성의 회복이야말로 인류의 미래를 책임 질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2 그러면 인간은 어떤 방법을 통하여 무너진 도덕성을 회복할 수 있는가? 이 문제에 대한 답변은 쉽지가 않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온 인류를 설득하고 용납시키며 충족시켜 줄 그 어떤 권위도 우리는 가지고 있지 않다. 지금까지 그 권위를 대신해 온 것은 인간의 욕망을 부채질하며 욕심을 챙기게 한 물질문명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같은 권력 앞에서 굴복하였으며 패배를 당하였던 것이다. 우리는 한가지 방법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성경을 통해서 그 길을 열어보자는 것이다. 세계는 그들이 성경을 경전으로 인정하는 종교를 가지고 있든지, 아니든지 간에 모두 성경의 가치를 인정하고 있다. 물론 극소수의 반대자들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 같은 성경의 권위 밑에서 도덕성을 부활시키는 작업을 펼쳐 나가야 할 것이다. 이런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가 성경을 체계적으로 접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된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구약"과 "신약"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구분점은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이며, 예수께서 오시기 이전의 일들을 기록해 놓은 것이 구약성경이며, 예수께서 나신 이후의 일들을 기록한 책이 신약성서이다. 그리고 그 기록의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대상은 히브리 민족이라고 불리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삶과 그 터전이다. 그러나 단순한 인간의 삶이 아닌 하나님이라는 창조주가 함께 하신 역사이다. 우리는 구약을 읽어가면서 바로 절대자 하나님이 인간의 땅에서 어떤 역사를 이루시는가를 목격해야 한다. 구약성경은 39권의 책으로, 신약성경은 27권의 책으로 이루어 졌다. 따라서 성경 전체는 66권의 책들이 모여 이루어진 것이며, 교회에서는 이것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교회역사를 살펴보면 그리스도의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66권을 인정하게 된 경위를 알 수 있다.(3 올해(1996년)는 성경이 우리나라말로 번역이 된지 114년이 된다. 성경 중에서 누가복음이 최초로 우리말로 번역이 되었는데 그 장소는 우리나라가 아닌 만주 봉천이며, 114년전 일이다. 그 다음으로 요한복음이 번역되었다(1882년). 그 후에 복음서, 바울서신등이 완료되어 1887년에 신약성경이 완성되었다(스코틀랜드의 선교사 존 로스(John Ross)와 존 맥킨타이어(John McIntyre), 이웅찬, 백홍준, 김진기의 노력으로). 한편, 1885년 일본에서 한글 성경 번역이 있었는데 그것은 일본에서 이수정이 기독교로 개종하여 세례를 받고 한글로 번역한 것이다. 그 결과 1885년 초에 마가복음이 번역되었고 이 마가복음을 한국 최초의 선교사인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한국에 입국할 때 가지고 들어왔다. 그러나 구약은 그 양이 방대하기 때문에 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게 되었다. 1910년 비로소 전주에서 구약성경의 번역이 완료되었다. 그리고 곧 이어 성경의 개역 작업이 진행되어 1938년에 공인된 개역 성경이 출판되었으며, 1948년부터 한글 맞춤법에 의해 수정작업을 하다가 6,25사변으로 중단되었고, 전쟁이 끝나고 얼마 지난 1956년에 {성경전서} 개역 한글판이 완성되었다. 이 성경이 우리가 교회에서 사용하는 성경이다. 그 후 신교와 구교가 공동으로 작업하여 펴낸 것이 {공동번역}이며, 최근에 현대어 성경이 출판되었고, 1993년에 개신교가 독자적으로 {표준 새번역 성경}을 출판하였다. {표준 새번역 성경}의 출판으로 각 교계에서 여러 가지 비판의 소리가 높았으나 좀더 원문에 충실하고 현대어로된 새로운 번역이 나왔다는 것은 참으로 의미있는 일이다.
교회 역사를 돌아볼 때 구약 성경의 위치와 권위는 상당히 많은 논란의 대상이 되어왔다. 1930년말에 독일에서 나치들에게 굴종했던 독일교회는 한 때 구약을 기독교 성경에서 제거해버린 일이 있었다. 20세기 이전까지 성서 신학자들은 구약 역사 중 특별히 포로기 이후와 초기 유대교에 대하여 낮은 평가를 내리곤 하였다. 이와 같은 반유대적 사고는 신약성서와 초대 교회부터 그 뿌리가 시작되었으며, 독일의 나치 선전 하의 반유대주의 사상으로 더 굳어지게 되었다. 또 이들은 포로기 이후 시대를 국가없이 유대교가 시작되고 발전하는 시기였으므로 윤리적 개인주의와 개인적 체험이 율법적인 생활과 신앙으로 바뀐, 즉 예언적 종교가 타락한 시대로 본 것이다.(4 이와 같은 사고에 의한 부정적인 평가는 20세기의 영향력있는 학자들에게도 나타나게 되었다.(5 이런 부정적인 평가는 20세기 중반에 고고학적인 뒷받침을 토대로 비판받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 이후부터 새로운 가능성을 가지고 포로기 이후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이런 결과로 인하여 구약의 권위는 회복되었으나 통계적으로 볼 때 아직도 교회 안에서 설교는 구약보다는 신약을 더 비중있게 다루고 있는 형편이다. 그렇다면 구약과 신약은 어떤 관계가 있는가? 구약과 신약의 관계를 말하는 데는 몇 가지 견해가 있다. 첫 번째 견해는 구약과 신약을 대립적인 관계로 보는 견해이다. 구약은 율법, 신약은 복음으로 단정짓는 견해이다. 주후 2세기에 이단으로 정죄되었던 마르시온(Marcion)은 구약과 신약을 극단적인 대칭 관계로 대비하여 구약의 하나님은 정의의 하나님, 엄격한 분노의 하나님, 진노하시는 무서운 하나님, 신약의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 자비롭고 용서하시는 하나님으로 이해하고 서로 대립되는 것으로 보았다. 20세기에 들어와서도 아돌프 하르낙같은 교회사가는 마르시온의 견해는 오류가 아니었다는 태도를 취하기도 했다. 그러나 구약을 율법이라고만 말하는 것은 오류가 있다. 구약에는 율법이 속해있지만 구약전체가 율법의 책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말하는 율법에 해당되는 부분은 1)출20장에서 민10장 10절까지, 시내산 십계명 사건에 집중되어 있고, 2)신명기 12장에서 26장까지 모세의 설교 중에 율법이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율법은 오경에 집중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율법이라는 말은 토라(Torah)의 번역이며, 토라의 본래 의미는 "가르침"(Teaching)이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살아갈 길을 친히 가르쳐 주신 가르침이다. 우리는 율법이라는 단어에서 구속, 제한적, 부정적 느낌을 강하게 연상하게 된다. 그러나 토라의 진정한 의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친히 가르쳐 주셨다는 긍적적 의미가 크다. 토라의 외형이 율법의 형태로 되어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단순히 구약을 율법의 책으로만 보는 견해는 잘못된 것이다. 두 번째 견해는 구약과 신약의 관계를 발전적인 과정으로 보는 것이다. 구약 안에서는 이스라엘 신앙이 저급한 것이었는데 점차 고등한 단계로 발전해 갔으며 결국 최종적인 단계가 신약이다는 것이다. 그래서 구약은 하나님의 초보적 단계의 계시의 기록이고, 신약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계시가 햇빛과 같이 밝히 빛난다는 것이다. 구약의 존재는 신약의 준비 과정으로서만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즉 신약보다 구약이 열등하다는 견해이다. 이 견해의 배후에는 헤겔 철학이 깔려있다. 헤겔 철학은 역사의 과정을 발전의 과정으로 보아서 정. 반. 합의 과정으로 발전한다고 본다. 그래서 구약은 저급한 것이며 이것이 발전하여 신약이 만들어졌으므로 우리는 신약만 가지면 된다고 한다. 이런 헤겔 철학의 영향력으로 구약의 종교가 저급한, 율법적 모세 종교로부터 시작하여, 고등하고 윤리적인 예언자 종교로 발전했다고 보는 견해가 과거에는 지배적이었다. 오늘날 2차 대전 이후 구약 신학자들은 이러한 헤겔 철학의 잘못을 떨쳐 버리는 것을 과제로 삼기도 한다. 세 번째 견해는 구약과 신약을 약속과 성취의 관계로 보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기독론적인 해석이다. 구약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약속해준 책이고 신약은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다는 약속의 성취를 기록했다고 본다. 교회 안의 성경공부의 대부분은 이 관계를 강조하고 있으며, 또한 옳은 주장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한가지 범주만을 가지고 구약 전체를 볼 수 있느냐는 것이다. 구약 안에는 약속과 성취라는 구조가 얼마든지 있지만 이런 한가지 구조로 구약 성경 전체를 다 이해 할 수는 없다. 특히 지혜문학에 해당되는 욥기, 잠언, 전도서 등이 그렇다. 이 부분은 예수의 오심만을 언급하는 것은 아니다. 즉 구약의 모든 곳에서 예수님의 모습을 찾으려 한다면 구약 이해에 상당한 무리가 올 것이다. 네 번째 견해는 구약과 신약을 동심원으로 보는 것이다. 구약은 작은 원으로서 큰 원인 신약 안에 들어 있다. 그래서 신약은 구약을 자연적으로 내포하고 있다. 왜냐하면 구약은 우리 그리스도인의 신앙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구약에 계시된 하나님과 신약에 계시된 하나님은 한 하나님이다. 한 하나님께서 활동하신 역사의 기록이기 때문에 구약의 역사의 기록은 곧 우리들의 신앙의 역사이다. B. W. Anderson은 그리스도인은 모두 이스라엘 사람들이요. 영적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말한다. 결국 우리들은 다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하나님께서 계시해 주시고 활동해주신 구약의 기록은 곧 우리들의 과거 신앙의 역사가 된다. 따라서 구약을 구약 자체로 읽는 것도 우리의 신앙의 역사이기 때문에 중요한 일이다. 구약을 구약 그 자체로서, 구약 안의 역사와 정치와 종교와 문화적인 배경에서 구약 본문을 충실하게 읽고 해석하는 가운데서도 구약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는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다. 즉 구약과 신약은 동심원으로 보는 것이다. 아브라함의 하나님과 이삭의 하나님과 야곱의 하나님은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하나님이고 구약이 바로 그 하나님의 활동을 기록한 것이므로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가 있다.(6
성서는 불가사이의 책이다. 기록된 지 2,000년이 지났지만, 해마다 베스트셀러를 유지하고 있다. 더욱 불가사의한 것은 그 독서법이나 해석하는 방법이 천차만별이어서 백 사람이면 백 사람 모두 그 방법이 다르다는 점이다. 우리는 이 책이 왜 이렇게 되었는가를 이해해야 한다. 우리가 구약성서라고 부르는 책은 본래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종교인 유대교의 경전으로 제정하였던 것이다. 성서의 기사 중 제일 오래된 것은 기원전 1100년경이며, 가장 최근의 것은 기원전 150년경에 기록되었다. 약 1천년이라는 오랜 기간을 걸친 책이다. 이것이 최종적으로 유대교의 경전으로 편성된 것은 기원 후 100년경의 일이다. 유대인들은 구약을 하나님의 율법으로 받아들인다. 하나님과 유대인은 계약을 맺었고, 그것이 구체적으로 "율법"이라는 형태로 주어졌다고 믿고 있다. 따라서 "율법"을 지키는 것이 인간의 의무이며, 그것으로부터 구원이 주어진다고 믿어 왔다. 이처럼 유대인은 구약성서를 하나님의 명령, 생활의 규범으로 받아들인다. 신약성서는 어떤 책인가. 그것은 그리스도교가 시작된 이후에 예수 그리스도를 둘러싸고 생겨난 문서로서, 주후 50년경에서 100년경에 걸쳐서 기록된 것이다. 유대교 편에서는 이 신약의 부분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유대교에서는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이해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교는 구약, 신약을 모두 경전으로 인정하고 있다. 본래 예수를 따르던 초대교인들은 소수의 유대인이었다. 그러다가 그들이 어느 단계에 이르러서 유대교를 떠나게 되는데, 이때 다른 것은 다 버리고 가면서 오직 하나, 경전을 가지고 간다. 왜 이들은 경전만을 가지고 떠났는가? 유대교 후기와 신구약 중간기의 이스라엘 사람들 사이에 팽배해 있었던 희망이 있었는데 그것은 "새 계약 백성의 출현" 이라는 사상이다. 에레미야와 이사야의 예언에 의하면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요청에 순종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제 더 이상 이스라엘은 하나님 앞에서 특별한 백성으로서의 위치를 잃어버렸다고 했다. 호세아 역시 이스라엘의 처지를 자신의 자녀들의 이름을 통하여 표현했다. 로루하마: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한 계집아이, 로암미: 내 백성이 아니라는 뜻이다. 즉 호세아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과의 계약관계를 파기했기 때문에, 더 이상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말했다. 그런데 신구약 중간기로 오면서 새 계약 백성이라는 사상이 팽배했으며, 자기들이야말로 새 계약 백성이라고 생각하는 무리가 생겼다. 예레미야 31장 31절을 보면,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 라는 말이 있는 데, 이것이 바로 새 언약, 즉 신약(新約)인 것이다. 따라서 초대교회 성도들은 자신들만의 독특한 경전을 "신약"이라 부르게 되었고, 유대교에서 가져 온 경전은 구약이라고 부르게 되었다.(7 이처럼 구약이니 신약이니 하는 이름을 붙인 것은 그리스도교에서 사용하는 호칭이다. 그 이유는 하나님과 유대인이 맺은 계약을 옛 계약이라 부르고 예수 그리스도가 그 계약을 성취시키고, 전 세계를 새롭게 구원 할 새로운 계약(신약)을 세웠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리스도교는 그 후에 여러 갈래로 분열되어 왔다. 9세기에 로마 카톨릭교회(서방교회)와 희랍 정교회(동방교회)로, 16세기에는 종교개혁으로 인하여 프로테스탄트(개신교)의 주류가 되는 루터파 교회, 개혁파 교회, 뱁티스트(침례)파 교회로 나누어졌다. 그 후 영국의 종교개혁 결과로 성공회, 장로파 교회, 회중파 교회가 생겼다. 18세기 이후 메도디스파(감리교, 감독교회)가 생겼으며, 그 이후, 오순절 계통의 교회와 여러 교파가 발생하였다. 이렇게 나누어진 교파는 각 교파 나름대로 성서에 대한 이해가 약간씩 다르다. 어떤 사람이 구원을 찾아 교회 문을 두드리게 될 때 교회의 가르치는 선생은 그 교회가 이해하는 가르침 즉 그 교파의 교리만을 전달해 주는 경우가 많아 열심 있는 신자들은 교리에 빠져 맹목적 신앙의 모습을 띄는 경우가 많다.(8 그리스도의 교회는 이런 모순에서 벗어나고자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사신 교회라면 모든 교회는 하나다 즉 그리스도의 교회다라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각 교파마다 자신들이 만들고 제정한 교파의 법이 있고 때로는 이 법이 성서의 권위보다 더 높게 평가될 때가 있어 성서의 가르침은 허공에 뜬 이상에 불과한 경우가 있다. 이런 모순에서 벗어나고자 인간이 만든 모든 법보다는 성서로 돌아가자는 것이 그리스도교의 운동이다. 즉 각 교리에 의해서 성서를 보는 것이 아니라 성서 그 자체를 보자는 것이다.
1)유대교에서 우리가 말하는 구약을 이해할 때 율법해석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시대가 흐르게 됨에 따라 시대에 부응하는 새로운 해석과 설명이 필요하게 되었다. 유대교의 율법교사들은 "미쉬나"라고 부르는 '규범'을 정했다. 이 미쉬나는 다시 주해나, 해설이 필요하게 되어 "게마라"라고 부르는 책이 나오게 된다. 그 후에 이 게마라에 유대교의 전승들이 첨가되었으며, 그 후 오랜 시간이 걸쳐 {탈무드}라고 무르는 방대한 책이 만들어지게 되었다(천명에 가까운 학자들의 의견이 종합된 것임). 이것은 유대교가 지켜야 될 절대적인 규범이 되었으며, 랍비들은 이를 여러 백성들에게 안내하고 쉬운 말로 적용해 주는 역할을 담당했다. 따라서 유대인의 성서해석은 탈무드라는 독특한 주해서에 고착되어 버렸다. 2)유대교의 학자로 성서해석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사람이 있는 데 그 이름은 알렉산드리아의 필로이다. 그는 유대교 율법을 그리스 사람들에게 이해시키기 위하여 비유적인 해석을 취했다. 성서에는 숨겨진 의미가 있고 수(數)나 이름에도 비밀의 뜻이 있다고 했다. 또 하나님과 세계 사이에는 그리스 철학에서 말하는 로고스가 매개자로 존재하고, 무한자와 유한자가 중재 역할을 한다고 했다. 필로의 이러한 사고는 그리스도교에서 환영을 받게 되어, 그 후 그리스도교적인 성서해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3)주후 100년경 로마의 클레멘트는 그리스도를 중심에 두고, 구약을 신약의 예고로 이해하여, 그리스도는 구약의 완성자라고 주장했다. 즉 구약을 그리스도교 문서로서의 자리를 차지하게 했다. 4)오리게네스(185-254)는 성서해석법, 나아가서는 그리스도교 사상에 학문성을 부여하였다. 그가 속해 있는 알렉산드리아 학파 학자들에 의해서 그리스도교의 사상은 그리스의 철학과 어깨를 겨루는 높이까지 이르게 되었다. 오리게네스는 성서는 삼중의 의미를 지녔다고 했다. 마치 인간이 육체, 혼, 영이 구비된 것처럼(헬라적 구분법, 히브리 사고는 몸개념), 성서에도 문학적, 도덕적, 영적인, 세 의미가 있다고 함. 그리고 이 영적인 의미를 알려면, 비유적인 방법(알레고리적 해석방법)에 의존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가르쳤다. 그는 교회의 교리에 속박되지 않고, 성서의 말을 맹목적으로 문자대로 믿지도 않았고, 비이성적인 수용태도에 떨어지지 않으려는 해석법을 개척해 주었다. 5)그 후 오리게네스는, 알렉산드리아에서 쫓겨나 시리아에서 살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안디옥 학파가 생겨났다. 이것은 유대적인 영향을 강하게 받아 비유적인 해석법보다는 문학적, 역사적 연구에 중점을 두었다. 그래서 성서를 객관적으로 이해하려는 경향이 강해졌다. 이렇게 해서 가능한 한 성서의 본래적인 의미와 문학적인 의미를 탐색하려는 태도는 우연하게도 근대의 합리주의적인 성서 연구법과 흡사하다. 이처럼 여러 각도에서 성서를 탐구해 왔었으나 이단 논쟁을 통하여 정통파 교회의 경향이 점차로 강화되면서 성서의 연구방법이 획일화되었다. 6)어거스틴(354-430)은 고금을 통해 장대한 신학체계를 쌓아올린 사람이었다. 그는 성서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님의 구원사상을 정리해 놓았다. 타락한 인간은 인간의 조상 아담의 원죄를 짊어지고 하나님의 형벌에 처해지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은 특별한 긍휼로써 은총을 베풀어, 그리스도를 믿는 일정한 수의 사람을 구한다고 하였다. 그것은 교회를 통하여 달성될 것으로서, 그는 공교회(카톨릭)를 중심한 "하나님 나라" 사상을 구축했다. 이렇게 해서 그의 신학이 카톨릭 사상의 기준이 되어, 그 후 오랜 기간을 걸쳐 중세 그리스도교 문화의 이론적인 기둥이 되었다. 어거스틴의 성서해석법은 이전부터 있었던 영적, 비유적인 방법에 의존했으나 객관성이 결여되었고, 상당한 착상이나 기지적인 면이 있었다. 교회의 교리에 적응시켜서 해석하였기 때문에 상당히 궁색한 면도 있었다. 여기서부터 교회의 교리나 신학을 전제로 하여 성서를 해석하려는 전통이 시작되었다. 7)16세기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이후에 교회의 전승적인 권위에 의존하지 않고 직접 성서의 권위에 의한 구원을 믿으려는 프로테스탄트(개신교)가 생겼다. 이 때 학자들은 루터, 칼빈, 멜랑히톤, 쯔빙글리 등 종교개혁자들이었다. 8)16세기-17세기의 전반에 걸쳐 개신교에서는 "성서영감설"이 뿌리를 내렸는데, 그것은 성서의 각 언어가 하나님의 영감에 의하여 기록되었다는 무오설을 주장하게 되었고 성서에 대한 비판을 완전히 봉쇄하였다. 9)17세기 후반 계몽운동에 영향 받음 계몽운동은 인간이 자신의 이성에 의하여, 자신의 힘으로 자기를 형성하려는 운동이다. 즉 휴머니즘에 의한 세속사회가 도래한 것이다. 이것은 중세의 신 중심의 교회 사회에서 180도 회전을 의미한다. 성서연구에 있어서도 당연히 교회에 의하여 규정된 교의에서 해방되어 새로운 성서해석학이 탄생된다. 10)18세기가 되면서 이 새로운 움직임은 독일의 관념론 철학계통의 역사철학에서 자극을 받아 역사적, 비평적, 또는 문헌적 연구가 성행되어, 성서 각 문서의 성립과정, 편집과정을 탐구하게 되었다. 11)19세기 독일에서 종교사학파가 일어났다. 이것은 리츨(1822-89)의 제자들에게서 일어난 운동이었다. 리츨의 주장은 1)그리스도교는 구원의 종교로서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그 인격에 연유한다. 2)복음은 개인의 구원과 하나님 나라를 문제삼는다. 3)이 하나님 나라는 종교와 도덕의 발전에 의하여, 이 지상에 실현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그 때문에 종교사학파 경향은, 초자연적 성서해석을 피하고, 십자가와 부활을 중심으로 하는 정통주의에서 이탈하고, 하나님의 형벌이나 구원이 경시되는 데로 기울어졌다. 이때 학계에서는, 다른 종교에 대한 연구도 성행했고, 고고학상의 발견도 줄을 이었고, 일종의 학문적인 "종교학"이라는 새로운 학문분야도 연구되었다. 이러한 새로운 학문과의 교류는 종교사학파의 성서연구를 한층 유리하게 만들었고, 성서해석을 위해서는 새로운 자료가 수집되고, 언어학적, 고고학적, 사회학적, 비교 종교학적인 방법을 채용했다. 따라서 종래의 비유적, 전통적, 신학적인 방법에 구속되지 않고, 전혀 새로운 성서연구가 시작되었다. 당연히 종래의 성서학과는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으며, 이러한 논쟁으로 말미암아 학문의 발달은 촉진되었다.(9 12)20세기, 성서해석학이 정립되고 발전되었던 시기이다. 지금까지의 해석방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구약에 국한하지만 신약에도 적용된다. (1)원전 비평 연구 (Textual Criticism). 성경은 최초의 원본이 없고 사본들만 있기 때문에 사본을 중심으로 본문을 비교 연구한다. (2)역사적. 문학적 연구(Historical and Literary Approach). 성서해석에서 말썽을 많이 가져 온 방법이다. 성서 자료를 역사적으로 분석하고 거기에 따른 여러 가지 문학층을 찾아내어서 여러 자료들을 밝혀낸다. 모세오경의 네 가지 자료설(J.E.D.P)이 이런 방법에서 나오게 된다. (3)종교사적 연구(Religio-Historical Study). 종교, 문화적인 연구이다. 구약이 탄생한 팔레스틴 이스라엘만 아니라, 고대근동세계 전체의 종교적인 맥락에서 어떻게 구약종교가 발전하고 형성되었는가 하는 것을 연구한다. 이런 각도에서 보면 종교사적인 접근 방법은 큰 공헌을 하였다. (4)성서고고학(Biblical Archaeology). 성서의 사실을 고증해내는 데 공헌을 했지만 성서 고고학의 약점은 영적인 세계를 찾아내고, 신학적인 문제를 다루는 데는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약점이 있다. (5)양식사적 연구(Form-Critical Study). 양식사적 비평연구는 문학적 유형과 형식을 찾아 저자의 신학적인 의도를 찾아내기 위한 방법이다. 시편의 문학적 유형 분류가 독일 학자 H. Gunkel에 의해서 알려졌다. (6)신학적 해석(Theological Interpretation). 2,3,4,5에서 미비한 신학적인 해석을 재건해야 한다는 점에서 발달되었다. 지식은 많아도 신앙이 약화되기 때문에 신학적 해석이 이를 보안한다. (7)전승사적 해석(Tradition Historical Study). 신학적 해석 방법에서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창조전승, 족장전승, 출애굽전승, 여호수아전승 등이 전승 이야기로서 이야기 전체가 어떤 신학적 의미를 보여 주는가 하는 점에서 전승사적 연구방법은 우리의 구약성서 신학을 수립하고 하나님 말씀을 바로 해석하는 데 큰 공헌을 하였다 (8) 편집사적 연구(Redactional Criticism). 성서는 적어도 1,000년 간의 문학 형성 과정을 가지고 있었는데 최초는 기원전 9세기부터 기원 후 1세기까지 기록되고 편집이 되고 끝으로 정경(Canon)이 될 때까지 1,000년 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 방법은 편집자가 어떠한 신학적 의도와 사관을 가지고 자기가 좋아하는 내용을 편집해서 성경을 만들어냈는가를 연구하는 것이다. (9)수사학적 연구(Rhetorical Criticism). 성서를 기록한 사람이 어떠한 수사 용어를 좋아하고 활용하는가 하는 것을 비평 연구하는 것이다. (10)구조적 연구(Structural Criticism). 문학적 구조, 예를 들어 시편 탄원시의 구조들을 연구하는 것이다. (11)정경적 연구(Canonical Criticism). 성경이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또는 정경으로 되었는가 하는 정경화 과정을 연구하는 것으로 예일대학의 차일즈(Childs)교수에 의해서 크게 발전되었다. (12)사회학적 연구(Sociological Study). 최근의 연구방향에 큰 영향을 주었다. 사회학의 연구 방법을 이용하여 연구한다. 정치신학, 민중신학 등이 성경을 사회. 경제적으로 연구한 시도에서 나온 것이다. 우리가 성서를 자주 접하게 되는 장소는 교회이며, 주로 성경공부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성경공부는 믿음을 전제하여 교리와 전통에 순응하는 학습이다. 그러나 성서연구는 이성의 수단을 동원하여 구약성서라는 책 속에 담긴 하나님의 말씀과 이스라엘의 신앙을 과학적으로, 객관적으로, 학문적 방법론을 동원해서 탐구해 나가는 학문이다. 구약성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알려줄 뿐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들에게 요구하시는 바가 무엇이며, 또 이 하나님을 어떻게 믿어야 올바르게 믿는가를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는 책이다. 참으로 인간이 만든 종교서적 중에서 구약성서와 같은 책은 둘도 없다고 하겠다.
구약의 명칭. 구약(舊約)이란 말은 옛언약이다. 이 말은 신약을 전제로 사용된 말이다. 신약이란 새로운 언약이란 말로서 구약의 예레미야서에서 유래되었다.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언약 을 세우리라"(에레미야 31:31). 새언약이란 말은 신언약이며 여기에서 신약이라는 명칭이 생겨났다. 이렇게 본다면 구약과 신약은 떼어놓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가 있는 것이다. 구약이 존재하기 때문에 신약이 있을 수 있으며 신약을 통해서 구약의 의미를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것이다. 구약이란 말은 본래 히브리어(Hebrew)로 "하 세파림"이라고 불렸다. 그 뜻은 "그 책들"(the books) 이다. 그리고 히브리어 성경이 희랍어로 번역될 때도 "ta biblia"(the books)가 되었으며, 이 이름이 라틴어를 거쳐 오늘날 성경 전체를 가르키는 영어의 "Bible"이 되었다. 그리고 구약과 신약으로 나누어 쓸 때는 Old Testament, New Testament가 된다. 구약의 구조. 구약은 전통적으로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1)5경(五經, Torah, Pentateuch) - 모세 율법서라고 불리는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이다. (2)예언서(預言書, Neviim, Prophets) - 전기예언서와 후기예언서로 다시 분류된다. 전기예언서는 오늘날 역사서로 취급되는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상,하, 열왕기상,하이다.(10 후기예언서는 3개의 대예언서와 12개의 소예언서가 포함된다. (3)성문서(聖文書, Kethuvim, Writings) - 위에 해당되지 않는 나머지 부분을 모두 포함한다. 그러나 개신교 성경은 70인역의 순서에 따라 다음과 같이 분류하고 있다. (1)오경 (2)역사서 (3)시가 문학서 (3)예언서
6. 구약성서는 어떻게 기록되었는가? : (구전과 문서)
아주 오래 전에는 구약이 이 땅에 존재하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39권이라는 아주 귀중한 구약성서를 소유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그 옛날과 오늘날 사이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제일 먼저는 하나님에게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신과 그 뜻을 선택한 인간에게 나타내셨으며, 언약을 맺으셨으며, 이런 이야기들이 후손들에게 구전으로 전해졌으며, 이런 일들이 오랜 세월을 통해 하나님의 감동을 받은 누군가에 의해서 쓰여졌으며, 이런 과정 흐름 속에는 각 시대별로 사람들의 저작 활동이 활발하여 여러 가지 기록과 책들(하나님과는 관계가 먼, 혹은 가깝지만 인정될 수 없는 것들을 포함하여)이 만들어 졌으며, 39권보다 더 많은 책들 중에서 39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였으며, 책들의 배열이 여러 차례 바뀌었을 것이며, 원래 쓰여진 언어에서 다른 나라 말로 번역되었을 것이며, 인쇄술의 발달로 많은 양의 책이 만들어졌을 것이며, 그 책들 중 하나를 우리가 가지게 된 것이다. 구전 : 니베르그(Nyberg)는 전승들이 근동에서 대부분 구전(口傳)으로 전해 내려오고. 문서로는 드물다고 주장한다.. 기록된 문학작품은 길거나 짧은 구전의 시대를 거친 것이며, 문학작품이 나온 뒤에도 표준적인 전승의 형태는 잘 보존되었다고 본다. 기록된 문서로서 구약성서는 포로 되기 이전에는 대부분 구전으로 보존되었으며, 포로 후기에 글로 남길 필요성에 의해서 기록된 것이다.(11 구전이라는 독특한 형태가 선조들의 신앙고백을 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구전이라고 해도 우리가 알 수 있는 구전의 형태와 내용은 모두 성서에 기록된 구전의 내용들이다. 말은 구전자의 입에서 나오는 순간에서 잊혀지기 시작해서 그것을 들은 사람들에게서도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로 잊혀지기 때문이다. 한가지 주의 할 점은 고대 근동의 구전 문화와 성서에 나타난 구전을 모두 같다고 이해해서는 안 될 것이다. 문서 작업 그러나 모든 구약의 내용이 다 구전으로 만 전해 온 것은 아니다. 구전이라는 형태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문서로 기록된 것이 있었다.(12 포로이전 시대에 구약성서에서 언급되는 '문서'‘두루마리' '낭독'라는 단어들은 이미 그 시대에 문서가 있었음을 알려준다(예: 신 8:14 소년의 기록, 왕하 22:8 율법책 발견). 구전으로 내려오는 경우도 있었으며, 문서로 내려오는 경우도 있었는데, 어느 시기에 와서 구전이 글로 옮기어졌다. 그 시기를 대부분의 학자들은 포로기 전후로 보고있다. 나라의 멸망과 함께 수난과 고통을 받아야만 했던 이스라엘은 포로지에서 더 이상 구전의 형태로 신앙고백의 전수가 어려운 환경에서 글로 옮겨 보존해야 할 필요성을 강하게 느꼈다.(13 구약성서는 이스라엘 문학의 전체가 아니다. 다만 거룩하게 수집된 문서들이다. 약 1천년동안 여러 방언을 사용하는 지역들에서 형성되었으며 이러한 문서들은 여러 번 수정되었고, 아람어를 말하는 사람들이 편집하였다.(14
구약성서는 여러 낱권의 책들이 한 데 모여서 이룩된 39권의 정경이다.(15 39권은 여러 책들 중에서 권위가 있으며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인정되는 책들 만 모은 것이다. 이렇게 권위를 인정받은 책을 정경이라고 부른다. 정경이란 말은 영어로 Canon이라고 한다. 이 말은 히브리어 카네(qaneh)에서 나온 말이다. "카네"란 곧은 막대기, 곧은 갈대라는 뜻이다. 이 말은 희랍어 카논(Kanon)으로 번역되었으며 그 말의 뜻도 단순한 막대기 이상의 무엇을 재고 측량하는 자, 기준, 표준의 뜻으로 사용되었다. 그 이유는 갈대가 척도를 재는 도구로 고대에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캐논이라는 말은 다른 것과 비교해서 모범이 되고 표준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로서 신학에서는 정경(正經)이란 의미로 사용되었다. 정경의 개념이 최초로 성서에 적용된 예는 고대 역사가 요세퍼스의 글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는 주전 100년경에 이미 구약성서는 22권으로 책으로 결정되어 있었으며 정경이 될 수 있었던 그 책들은 본질적으로 다음과 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1)영감으로 기록된 것으로 모세 때부터 아닥사스다1세(주전465-424)까지 나타났던 것에만 국한한다. 2)저속한 세속문학과는 구별되는 거룩한 작품. 3)그 책들은 수에 있어서 엄격히 제한되어 있다. 4)그 책들에 나타난 낱말들은 고쳐질 수 없는 신성 불가침의 성격을 지녔다. 주후 100년경에 기록된 것으로 보이는 제2에스드라서 14장 18-48절은 정경화 작업이 포로기의 지도자 에스라에 의해서 이룩된 것으로 보고 있으나, 구약성서 중에는 에스라 이후에도 생겨난 것이 있으니 이와 같은 결론은 맞지 않는다. 그러나 2세기의 기독교는 위의 사실을 그대로 받아 들였다. 정경화 작업은 오랜 역사적 발전과정을 걸쳐서 서서히 진행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역사적 발전과정에는 1)자료의 보존, 2)전달자료의 편집, 3)정경화 작업이 있었다. 구약은 세 단계의 정경화 작업이 있었다. 1)맨 처음 율법이 성서로 인정되었다-주전 400년경. 2)다음은 예언서-주전 200년경. 3)그 다음으로는 많은 분량의 성문서가 인정되었다-주후 90년 얌니아 회의.(16 거룩한 책들이 히브리어 경전으로 분류되어 구체화 된 것은 기독교 이전의 오랜 세월 동안에 계속 진행된 일이다. 정경화 작업은 일단의 취미에 의해서 되어진 일이 아닌 그 시대의 신앙고백과 매우 복잡한 단계를 걸쳐 이루어진 일이다. 구약의 정경은 다른 위경이나 외경과 비교해 볼 때 그 가치가 충분히 인정되고 있다(역사 의식이나, 표현 기술, 문체 등에서 뚜렷하게 구별 됨).
a. 토라(오경)=1.창세기 2.출애굽기 3레위기 4민수기 5신명기 b. 네비임(예언서)=6.여호수아 7.사사기 8.사무엘 9.열왕기 10.이사야 11.예레미야 12.에스겔 13.12소예언서 c. 케투빔(성문서)=14.시편 15.욥기 16.잠언 17.룻기 18.아가. 19.전도서 20.애가 21.에스더 22. 다니엘. 23. 에스라-느헤미야 24 역대기. 기독교식 성경분류 a. 율법서(오경) =1창세기 2.출애굽기 3레위기 4민수기 5신명기 b.역사서 =6.여호수아 7.사사기 8.룻기 9.사무엘상 10.사무엘하 11.열왕기상 12.열왕기하 13.역대상 14.역대하 15.에스라 16.느헤미야 17.에스더 c. 시가서= 18.욥기 19.시편 20.잠언 21.전도서 22.아가 d. 예언서(선지서) = 23.이사야 24.예레미야 25.애가 26.에스겔 27.다니엘(대예언서) 28.호세아 29.요엘 30.아모스 31.오바댜 32.요나 33.미가 34.나훔 35.하박국 36.스바냐 37.학개 38.스가랴 39.말라기
히브리 정경 24권에 포함되지 않는 15권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책들은 거의 B.C. 200-50년 사이에 기록 된 책들이 많다. 우리는 위에서 B.C. 200년경에 예언서가 경정으로 인정받았음을 알았다. 따라서 B.C. 200 이후에서 성문서가 정경으로 인정받은 A.D. 90년경까지는 이미 위의 책들이 저술되었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지는 책이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책들이 15권으로 한정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희랍시대 때 주로 외국에 흩어져 살던 히브리어를 모르는 유대인들에게 성경을 읽힐 목적에서 히브리어에서 희랍어로 성경을 번역한 일이 있었다. 이것을 70인역 이라고 부른다. 이 번역 때 지금 외경으로 불리는 15권의 책들도 함께 번역되었다. 그 후 A.D. 90년경에 얌니아에서 정경화 작업이 있을 때 15권의 책은 누락되었다. 그러나 이미 그리스도교는 A.D. 90년 이전에 성립되었으며 그 당시 희랍어로 된 구약성경을 읽었기 때문에 지금은 외경이 된 15권이 포함된 70인역을 받아들였다. 그 후 이러한 전통은 로마교회로 이어져 왔다. 그런데 종교개혁 시대에 마틴 루터는 정경문제에서 70인역을 버리고 A.D. 90년경 인정된 팔레스틴 정경을 인정하였다. 그리하여 루터는 그의 독일어 성서 번역본에 15권의 책을 번역본 말미에 추가시켜 외경이라고 불렀으며 읽기에 유익한 책으로 분류시켰다. 그 후에 개신교는 이 전통에 따라 부록으로 취급하거나 제외 시켰다. 이런 결과로 인하여 개신교의 구약 성경의 특징은 내용은 히브리 정경을 따랐으며, 책의 순서와 배열은 그 당시까지의 전통인 70인역을 따랐다. 이런 영향력에 따라 카톨릭 교회는 트렌트 종교회의(1545~1563)에서 70인역을 고수 할 것을 재확인하였지만 에스드라서상권과 하권, 그리고 므낫세의 기도 등 3권은 제외 시켰다. 따라서 오늘날 카톨릭 교회는 우리가 외경으로 취급한 15권의 책 중 위의 세 권이 제외된 12권을 포함하여 정경으로 인정하고 있다.(17 외경 15권은 다음과 같다. 에스드라상. 유대민족의 포로기와 포로귀환의 이야기이다. 요시야 왕 때 있었던 유월절 행사에서 시작되어 포로귀환 후 에스라의 율법 낭독으로 끝나고 있다. 따라서 내용상 역대하, 에스라, 느헤미야의 내용이 겹치고 있다. 역사서에 해당되며 기록 연대는 기원 전 150년경으로 본다. 에스드라하. 묵시문학으로 분류되며 내용은 바벨론 포로기 때 에스라에게 임했던 일곱 계시를 묘사하고 있다. 기록연대는 기원 후 70-135년경. 토비트. 유대 청년 토비트가 살만에셀(B.C. 721년)에 의해 니느웨에 포로로 잡혀가서 당한 사건을 기록한 책이다. 기록연대 B.C. 250-175년경으로 본다. 유딧. 앗수르의 침공 때 유대 과부 유딧이 배반을 가장하여 적의 진지로 들어가 앗수르 장군을 암살하고 도시를 건져냈다는 이야기이다. 기록연대는 B.C. 175-110년경으로 본다. 에스더 부록. 2세기경 헬라어로 에스더를 번역할 때 그 끝 부분에 107절의 내용을 첨가해 놓은 것이다. 내용은 하나님, 기도, 신앙, 헌신, 경건 등이다. B.C. 180-145년경 기록한 것이다. 솔로몬 지혜서.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 거주했던 유대인에 의해 편집된 책으로 그 당시 이집트와 헬라 지역에 흩어진 디아스포라 유대인에게 이방 풍습에 젖어서 신앙을 저버리지 않게 하기 위한 신앙의 권면서이다. B.C. 150-A.D. 40년 경 기록 집회서(시락의 자손 예수의 지혜서). 잠언과 같이 삶의 다양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외경 중 제일 긴 책이며 윤리적 교훈서이다. B.C. 190년경 기록. 바룩. 포로된 유대인의 기도와 회개 및 회복의 약속이 담긴 책이다. 기록연대는 B.C. 200-A.D.70년경으로 봄 에레미야 서신. 에레미야가 바벨론 포로에게 보내는 서신형태로 되어있다. B.C. 317년경 기록. 아사랴의 기도와 세 청년의 노래(다니엘 부록서). 다니엘서 3:23과 3:24사이에 삽입시킨 책으로 내용은 다니엘의 세 친구가 격렬한 풀무불 가운데서 드린 기도와 그 구원 사건 및 하나님께 대한 찬송을 기록하고 있다. B.C. 163경에 기록한 것으로 본다. 수산나(다니엘 부록서). B.C. 100년경에 기록한 책으로 바벨론 포로 시대에 수산나라는 정숙한 연인에게 다가온 어려움을 기도를 통해 극복하고 있는 내용이다. 벨과 뱀(다니엘 부록서). 바벨론 포로 당시 다니엘의 지혜로서 바벨론의 두 우상 벨과 뱀을 쳐부수는 내용이다. B.C.150-100년경 기록. 므낫세의 기도. 유다의 왕 므낫세가 바벨론에 잡혀가 그곳에서 자신의 통치 기간 중 저지른 우상숭배에 대한 죄를 회개하는 내용이다. B.C. 150-50년경 기록. 마카비상. 헬라의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가 시리아의 왕에 있을 때부터 유대 마카비가의 시몬이 세상을 떠난 때까지의 유대 역사의 기록이다. B.C.103-63년경에 기록. 마카비하. 마카비가의 유대 독립 운동의 공을 높이 평가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찬송하는 글이다. B.C.100년경의 기록으로 본다. 다음은 위경에 대하여 설명한다. 위경은 외경과 마찬 가지로 B.C. 200년 이후에 쓰여진 책들이며 A.D. 200년경까지 쓰여진 많은 유대 문헌들을 포함한다. 이들 중에는 단편과 제목만 알려진 것도 있다. 그 내용으로는 묵시, 전승, 시가, 지혜들이다. 위경이라는 헬라어는 에피그라파로서 어원적으로 '가짜표제'란 뜻이며(제목) 내용상으로 '허구의 인물의 이름으로 기록된 문헌들'이란 뜻을 가진다. 그러나 모든 가명의 책이 다 위경은 아니다. 외경에 해당되는 책들은 다음과 같다. (에녹, 모세의 승천, 바룩의 묵시, 이사야의 순교와 승천, 아담과 하와의 생애, 열두족장의 언약, 요벨서, 솔로몬 시편, 욥의 유언, 예언자들의 생애, 아리스테아스의 편지, 희년, 시빌라, 마카비3서, 마카비4서, 에녹2서, 바룩3서, 아세낫의 기도, 쿰란 동굴에서 발견된 훈련교법서, 다메섹문서, 빛의 아들들과의 전쟁, 감사 찬송 등)
1)성서는 토판이 아닌 두루마리에 기록되었다(애굽에서 수입된 파피루스로 만든). 그리고 그 원어는 히브리어이다. 히브리어는 원래 모음(母音)이 없이 22개의 자음으로 되어 있었다. 그래서 구약 성경도 히브리 자음으로 기록되었다.(18 자음으로 쓰여진 히브리어 원문 성경에 모음부호를 붙인 것은 A.D. 5세기 이후이며, 맛소라 학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에 의해서였다. 2)마소라 학파. 마소라 학파의 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된 시기는 주후 5세기-6세기 초이다. 마소라는 히브리어 "마사르"(전달되다)에서 유래되었다(본문을 전달시키는 자들이라는 의미이다). 이 마소라 학자들의 의해서 모음이 붙여진 히브리어 성경을 "마소라 성경"(Masoretic Text, 약칭 M.T.)이라고 부른다. 3)사해 사본. 구약 성경의 원문이 보존 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유대 서기관 및 랍비들에 의해 아주 엄격하고 세밀하게 만들어진 필사본들이 남아있다. 원본은 세월이 흐르면서 너무 낡아져 읽기 어려워지면 폐기시켰다. 그 사본들 중 가장 오래된 것이 바로 사해사본이다. 사해사본의 연대는 주전 1세기에서 주후1세기 사이이다. 현재 이스라엘 국립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19 4)레닌그라드 사본. 구약 전체가 보존된 최고의 사본은 "레닌그라드 사본"(Codex Leningrad)이다. 이 사본의 완성은 주후 1008년에 완성된 것으로 히브리 원문성경의 토대가 되고 있다. 러시아의 레닌그라드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구약의 역본 (譯本, Version) 1)70인역 번역 역사상 가장 고대의 작품이다. 히브리어 구약을 희랍어로 번역한 것이다. 알렉산드리아 역본이라고도 불린다. 이 역본은 애굽 왕 톨레미 2세의 명으로 70(또는 72)명의 유대인 학자들에 의해서 구약이 희랍어로 번역되었다. 이러한 전승에 따라 70인역(LXX)이라고 불린다. 그 시기는 B.C.250-150년경이며 장소는 애굽의 알렉산드리아이다. 희랍어를 사용하는 유대인들을 위한 번역이다. 2)탈굼 탈굼(히브리어로 번역이라는 뜻이다). 아람어로 번역된 구약성서를 말한다. 유대인들의 포로기 이후 언어는 아람어가 사용되었고, 히브리어는 예배의 용어로만 사용되었다. 따라서 예배 때 사용되는 히브리어를 아람어로 해설 할 필요성이 있었다. 3)수리아역 페시타 주후 2세기 경 구약은 수리아(시리아)어로 번역되었다. 주석적 성격을 지닌 번역이며 페시타(Peshitta)라 부른다. 팔레스틴 북부 시리아 지역의 기독교인들을 위한 번역이다. 시리아어도 일종의 아람어로서 아람어 탈굼과 여러 가지 동일한 특징을 지닌다. 4)벌게이트 역 구약의 번역 중 70인역 다음으로 영향력이 있는 역본은 라틴어 번역인 "벌게이트"(Vulgate)이다. 이 번역은 제롬(Jerome, A.D.342-419)에 의해서 410년경 완성되었다. 벌게이트 역은 오늘날까지도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사용되는 구약성경이다. 5)종교개혁시대 루터의 번역 루터는 개혁 당시 독일어로 구약을 번역하였다(1534). 6)영어번역 14세기 위크리프(John Wycliffe)가 벌게이트 역을 영어로 성경을 번역하였다(1380년대). 이것을 효시로 해서 1520년대 틴테일(William Tyndale)이 히브리 원문에서 영어로 번역하였다. 그 다음 역사적으로 유명한 "흠정역"(King James Version 약칭 K.J.V.)은 1611년에 출판되었다. 오늘날 영어번역으로 가장 권위가 있는 것은 "개정 표준판 번역"(Revised Standard Version 약칭 R.S.V)이다.
영감을 의미하는 헬라어는 '데오프뉴스토스'로서 하나님을 뜻하는 '데오스'와 숨쉬다, 불다의 뜻인 '프네오'가 합성된 형용사로 '하나님의 입김이 쐬인'이란 뜻이다. 따라서 영감이란 하나님께서 인간을 통해 성경을 기록하실 때 그를 감독시키시며, 그의 인격을 주관하시어 성경을 올바로 기록하게 하신 것을 말한다. 1)기계적 영감설 성경기자의 정신활동이 완전히 중단된 상태에서 수동적인 자세로 하나님의 영이 불러주신 것을 기계적으로 그대로 받아썼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성경을 잘 살펴보면 성경기자의 독특한 문체와 개인적인 경험들이 풍부한 것으로 보아 너무 극단적인 주장이라고 생각된다. 2)역동적 영감설 성경기자에게 영감을 불어 주기는 했지만 자신들의 의지에 따라 기존의 다양한 자료들을 배경으로 성경을 기록했다는 주장이다. 3)유기적 영감설 하나님의 영이 성경기자들을 감동시켜 각 개인의 재능 및 경험 등을 유기적으로 사용하여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다는 주장이다. 그래서 각 기자의 모든 기록 부분에서 감독하였기 때문에 성경은 오류가 없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보수주의가 택하는 대표적 성서 영감론이다. |
출처 : 대명교회(大名*大明*大命) | 글쓴이 : 익명 | 원글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