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疆理歷代國都之圖)>, 또는 <역대제왕혼일강리도(歷代帝王混一疆理圖)>는 태종 2년(1402년) 조선에서 제작된 가로 164cm, 세로 148cm의 대형 세계지도이다. 지도명의 의미는 '혼일(통일, 개국)', '강리(영토)', '역대국도(역대 중국 도성)'를 표기한 지도라는 의미이다.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는 현존하는 동양의 세계지도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에 속한다. 다만, 동양을 동아시아가 아니라 중동까지 포함한다면 이슬람권에서 제작된 <알 이드리시의 세계지도> 등 더 오래된 11세기 세계지도도 남아있다.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의 '최고(最古)'는 동아시아권의 최고를 말한다.
중국에서는 2006년 이후 <대명혼일도>에 등장하는 광원현(廣元縣)과 용주(龍州) 등의 지명이 1389~1391년 쓰였다는 점에서 그 무렵에 작성된 최고의 지도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후대에 단순히 모사하면서 변화된 지명을 고치지 않고 지도에 그려 넣었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1389년 이후에 작성되었다는 것 이외에는 확정하여 볼 수 없다.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또한 고려나 조선에서 직접 탐사를 해서 작성한 것은 아닌 만큼 이슬람 세계와 접촉한 원나라 때 이후 넓어진 중국의 지리 관념을 수입해 만든 물건임은 분명하므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이전에 현재 남아 있는 <대명혼일도>의 원본 지도가 중국에 있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태종 2년(1402년) 5월에 문신 이회(李薈)가 자신이 직접 그린 <조선팔도도(朝鮮八道圖)를 태종에게 바쳤고, 이로부터 석 달 뒤 좌의정 김사형과 우의정 이무, 검상 이회 등이 주도하여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가 완성되었다. 중국의 옛 세계지도는 대부분 우리나라와 일본은 자세하게 그리지 않거나 빠뜨리고 있는데 이것을 이회가 보완하여 새로 편집한 것이다.
한반도의 모양은 압록강과 두만강 부근이 뚜렷하지 않은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당시 압록강과 두만강이 한반도 세력권 밖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서해안과 동해안의 해안선은 현재의 지도와 별다른 차이가 없고, 하계망과 산계(山系)가 동북부 지방을 제외하면 매우 정확하게 그려져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지도는 전체에서 보면 상대적으로 몇 배나 크게 그려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지도에 표시된 우리나라 지명을 보면 고무창(古茂昌)·고여연(古閭延)·고우예(古虞芮)로 나타나 있는 것으로 보아 폐군(廢郡)이 된 1455년(세조 1) 이후의 지도임을 알 수 있고, 또 같은 폐4군(廢四郡)이면서도 1459년에 폐군된 자성(慈城)이 그대로 있는 것으로 보아 1459년 이전에 모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지도의 원본은 전해지는 것이 없고, 사본이 일본 경도에 있는 류코쿠대학(龍谷大學)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1988년에 류코쿠대학 지도와 거의 같은 지도가 또 일본 구주(九州)의 혼코사(本光寺)에서 발견되었다. 이 지도의 크기는 류코쿠대학본보다 약간 크며 류코쿠대학본이 견지(絹地)인데 혼코사본은 한지(漢紙)에 그려져 있다. 이 밖에도 유사본이 일본에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세계에 자랑할 만한 이 지도들이 우리나라에는 하나도 없고 일본에 모두 있는 것은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또는 일제 강점기에 건너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