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陽川閑談)일생일대의 숙려단행
금번
장인상에 생각 외로 많은 친구들이 와주어 고마웠고 내가 결혼할 때 초등학생이었던 처남들이 어엿한 사회 중견인사들로 되어 있는 것을 보면 흐뭇하기 하다.
나와
장인어른에겐 잊혀지지 않는 추억이 있다.
내가
첫 직장에 들어갈 즈음 입사시험 중에 안내해주던 월궁항아(月宮姮娥)같은
예쁜 아가씨가 면접 때도 면접관 옆에 앉아 돕고 있어 그 아가씨가 내 심장에 화살처럼 박혔다. ‘저
아가씨하고 같이 일하게 해주세요’하고
빌었다.
그런데
배치 받은 사무실에 가니 바로 내 옆자리에 그녀, 미스
리가 있었다. ‘이건
틀림없이 하늘이 맺어주는 인연이다’ 라고
생각하곤 대쉬해서 1년간
사귀었다. 나중에
얘기 들어보니 자기도 같은 마음이었다나?
그
동안 우리 집 부모님도 뵙고 했으니 그녀의 부모님과도 뵈어야 한다고 말을 해도 우물쭈물하는 것이다. 어찌된
일인고 했더니 아버지한테 남자 사귄다는 말을 입도 뻥긋하지 못하고 있던 것이다. 아버님이
엄청 완고하셔서 위의 두 언니 모두 중매결혼했으니 두말도 못하고 입을 떼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날이 흘러가니 내가 답답했다.
그러던
어느 날 결심을 단단히 했단 말이지. 숙려단행(熟慮斷行)이라
이리저리 생각해보곤 단과감하게 실행하기로 했다. 이런
일이야 일생에 몇 번 있겠냐 하고 굳게 다짐했다. 어느
날 미스 리가 먼저 퇴근한 날에 나는 결심을 단단히 하고 미리 알아둔 미스 리 아버님이 일하시는 을지로의 가게로 출동했다.
가게
앞에서 다시 한번 깊게 심호흡하곤 들어가 아버님을 찾아 뵈었다. 그리고
‘같이
근무하는 누군데 결혼하고 싶습니다’. 라고
아마도 군소리 빼고 단도직입식으로 말씀 드린 것 같다. ‘뭐라고?’ 하며
한참 노려보시더니 역시 짧게 ‘알았네, 가보게.’라고
했다. 짐승우리에서
튀어 나오듯 집으로 내달리려다가 가만 생각해보니 미스 리네 집에서는 아무것도 모른 채 천둥벼락 맞을 듯싶었다.
그래서
미스 리 집으로 곧바로 갔다. 그때
장모님도 그때 처음 뵈었던 것 같다. 무작정
집으로 가니 미스 리도 사색이 되었다. 잠모님에게
인사드리고 거두절미하곤 아버님 찾아 뵈었던 얘기를 하니 아니나 다를까 두 사람 모두 벌벌 떨듯했다. 그런
와중에 ‘자네는
얼른 가보게’라고
하시니 도망치듯 갔다. 그날
저녁은 한 숨도 못 잤던 것 같다.
다음날
아침에 회사에 출근하니 미스 리는 벌써 와 책상을 닦고 있는데 아무런 내색도 않고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내 가슴만 두근두근-- 점심때가
되니 살짝 내 옆으로 와서 ‘지하
다방으로 가셔요’라고
말했다.
천근만근
무거운 발을 끌며 ‘에라
무언가 결정이 났겠지’ 싶어
다방으로 내려가 보니 장인이 와계시는 것이다. 이때는
다방 실내가 어둡고 제대로 얼굴을 쳐다보지도 못하여 그렇게 생각되었는데 나중에 미스 리가 말해주길 형부가 왔었다는 것이다. 하긴
모두 처음 보았으니 제대로 알 턱이 없겠지. 여하튼
이것저것 묻는 말에 열심히 답을 했는데 어떻게 답을 하는지 나도 내 정신이 아니었다.
다음날
미스 리가 하는 말이 형부가 아버지에게 괜찮은 사람이라고 얘기해주셨고 아버지도 허락하셨다는 것이다. 이렇게
어렵사리 결혼승낙을 받았으니 행복한 결혼생활이 되어야 마땅하겠지? 장인
어른 돌아가시기 전에 가끔 그때 이야기를 하면 싱긋이 웃기만 하셨다.
내가
연애결혼의 물꼬를 트니 후에 내 처제 둘도 모두 연애결혼을 하게 되었다는 것. ㅎㅎ
이제
귀천하셔서 하늘을 장막삼고 땅을 자리 삼아 마음 가는 대로 자유분방 하시기를 빕니다.(幕天席地
縱意所如)
(2019.3.25.양천서창 문상두 씀)
"부의금 보내신 친구 중에 무명씨(10만원), 황선유(10만원) 2명은 내가 전혀 알 길이 없어 글 말미에 고맙다는 말 밖에 드릴 수가 없네요. ㅠ 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