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류 채호기
1. 어떤 문제 어떤 문제는 언제나 다른 문제의 증상이기에 그 문제의 경계가 불확실하고 문제가 무엇인지 찾아낼 수도 없다. 어떤 문제는 그 해결책이 옳고 그름이 아니라 좋고 나쁨이다. 좋고 나쁨은 정치와 묶여 있기에 스스로 좋다고 생각하는 게 실제로 나쁜 것일 수 있다. 어떤 문제는 그 문제를 해결했음에도 해결했다는 걸 알 수도 없고 증명할 수도 없다. 2. 표류 대립을 떠나 표류하고 싶다. 갈등과 부드럽게 작별하고 싶다. 질문에 불가능한 대답으로 치욕을 덮어쓰리라. 친밀감과 의심을 동시에 느끼게 하고 회피와 불복종으로 실망케 하는, 너를 아무것도 심사숙고하지 않는다. 모르겠다, 판단하지 않겠다, 무관심은 금지된다. 세상에 네가 있음을 너는 중지할 수 없다. 압도하는 두려움과 결별하여 표류하고 싶다. 3. 선택하지 않는 개입 눈은 감아도 귀는 닫지 못해. 같은 공간에 있는 이유로 듣고 싶지 않아도 들어야 하는 소리.
소리 질러도 아무 소용 없지. 알아, 알지만, 소리 내지 않고 입 다무는 약한 개입. 아무도 없는 닫힌 방에서 시가 지르는 소리를 동공 안으로 삼킨다. 두 패 중 하나를 입 밖으로 흘리지 않고 선택하지 않는 개입. 헛된 저항이 아닌 다른 경제를 조직하는 탈연결, 차이의 모험. 허무주의는 극복할 무엇이 아닌 긍정적인 무엇을 위한 사유의 약한 개입. 모스 부호로 변환한 음악을 달 표면으로 전송하면 소리는 달 그늘과 분화구에 흡수되고 반사된 소리만 다시 지구로 온다. 달이 바꿔놓은 음악의 경제. 음악에 대한 달의 약한 개입. 4. 차전자 자갈에 맺힌 눈물 속에 산다. 정치에서 진보가 이루어진 적은 없다. 진보는 욕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비의 좌우 날개는 완벽한 대칭이다. 자연에서 비대칭은 발생하지 않는다. 인간이 비대칭을 조작한다. 중요한 것은 한 사람 한 사람의 혁명이다. 비인간과 인간의 갱도를 뚫는 갱도를 잇는 정치가 중요하다. 깨져라, 눈물이 굳은 돌덩이 안에서. 죽음을 회피하지 마라. 무기물로 돌아가는 대사 작용에 저항하지 마라. 불멸은 한 생명의 초월이 아니다. 불멸은 어떤 것이 일어나고 반복하는 그것의 세상, 가능성 자체를 없애버리는 반혁명이다. 차전초 이름에 정치가 산다 꽃자루 끝에 피는 발자취 질경이의 정치는 차전자다. 차전에 맺힌 이슬 속에 산다.
—웹진《공정한시인의사회》2026년 8월호 ------------------------------ 채호기 / 1957년 대구 출생. 1988년《창작과비평》등단. 시집 『지독한 사랑』『슬픈 게이』『밤의 공중전화』『수련』『손가락이 뜨겁다』『레슬링 질 수밖에 없는』『검은 사슴은 이렇게 말했을 거다』『줄무늬 비닐 커튼』『머리에 고가철도를 쓰고』『이상한 밤』, 산문 『그리되, 그리지 않은 것 같은,』『주고, 받다』(공저)가 있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