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와 진정성
네이버 블로그 - cbr9543님의블로그/ 안도현 - 너에게 묻는다
② 차이 나기, 성찰의 결실
서정시의 본질이라고 하는 ‘주관적 감정’, ‘개인의 내면적 체험’이란 개인, 시대, 환경에 따라 시시각각 내용과 형태를 달리 하는 수밖에 없다. 한 시인에게서도 무수한 주체의 무수한 화자의 시가 가능한 이유이다.
시인은 시시각각 작자 자신과 세계를 성찰하여 삶의 세부까지 새롭게 각성하면서 새로운 시공으로 나아간다. 그 방향과 모습은 지상에 있는 인간의 지문 이상으로 복잡다양하다. 시란 가장 본래적인 삶을 앞장서서 탐구하고, 보존하고, 신장시키려는 인간의 차이 나는 세계로의 이행 언어인 것이다.
하지만 언어 표현면에서의 차이만을 극단으로 몰아갈 경우, 시가 독자에게 외면당하게 됨은 물론, 문학의 소통 자체를 저해하는 사태에 봉착할 수도 있다. 여기에 오늘날의 시에 주어진 주요 과제의 하나가 놓여 있다.
현실의 지식과 논리가 기본적으로 모방과 재현에 기대고자 한다면 시쓰기는 그것을 극복 지양하고 새로운 시공을 모색하는 속성을 지닌다. 하지만 현실적 지식이나 이론의 도움 없이는 한계에 쉽게 봉착하게 된다는 점 또한 사실이다. 논리, 개념이라는 동일성을 극복하면서 차이 나는 체험을 지향할 때 이상적이고 성공적인 시가 이루어질 수 있다. 이론이나 이념을 무비판으로 수용한다든지, 언어적 수사(修辭)로 ‘차이’의 흉내나 낸다든지 하는 일은 자칫 인간의 정신과 문화 자체를 왜곡하는 일이 될 수도 있을 터이다.
시인의 이상적인 표현은 무엇보다 시적 인식과 사상의 진정어린 체험에서 우러나야 한다. 체험은 직접 체험에서 쌓이기도 하고 독서를 통하기도 하고 가까운 은사나 동료의 영향이나 간접경험, 독서나 학습을 통해 내재화되기도 한다.
마개를 빼면
화약 냄새가 나는 지구
언젠가
거울 앞에 앉은 아내의 향수병을
채색한 일곱 가지 무지개 빛깔
맥주병 안으로 침몰한 태양
어둠이 피부에 기면
피가 나도록 긁는 쾌감. 빈대
카실카실 카시오피아 성좌에서
카실히 지는 낙엽소리
질풍신뢰(疾風迅雷)의 속도로 도는 지구 위에서
현기증과 구토가 메아리 치고
뛰어 내리기 전에
쓰디 쓴 이별의 커피맛
―구연식, 「감각A」 전문
1연은 폭력의 광란장과도 같은 지구상의 현실에 병마개와 지구라는 우연한 관계를 설정, 표현했고(데페이즈망), 2연은 순간적인 희망과 절망의 교차, 3연은 불안에 대한 자학적 쾌감, 4연은 실존적 허무의 음성적 표현, 5연은 급속히 변하는 사회에 대한 부적응과 혼란, 6연은 무력감과 습관화된 개인주의 취향을 표현하고 있다. 또 각 연은 후각, 시각, 촉각, 청각, 기관감각, 미각 등 감각적 이미지로 배열되어 있다. 특히 ‘카실카실 카시오피아 성좌에서/ 카실히 지는 낙엽소리’ 같은 언어감각, ‘카’와 ‘실’은 격음, 마찰음의 특성도 가미되면서 그 반복이 목젖에 걸린 허무의식을 은유하는 압운적 효과마저 발휘한다. 직간접의 복합적 체험이 병치되어 나름 1970년대 지식인의 무력감을 감각적으로 맥락화 하고 있다 하겠다.
구연식 시인은 조향 시인을 통해 초현실주의의 절연(切緣, 데이페즈망)의 기법을, 50~60년대의 문화에서 허무주의적 실존을, 정지용, 김광균 등과 연계한 일본의 신감각파 연구 논문 작성 경험에서 감각적 이미지에 대한 감각을 획득했다 할 수 있다. 지식어, 서구어 취향도 조향을 위시한 당대 모더니스트 공통 취향의 하나였다. 하지만 무의식 이론에 맹목화하지 않고 다양한 체험의 이미지들을 얽어 세계에 대한 무기력한 내면을 감각적으로 문맥화 해낸 국면은 시적 성찰의 남다름을 보이는 대목이라 할 것이다.
시란 이렇게 현실에서의 탈출구가 되기도 하는 ‘복합적인 체험의 언어다. 현재는 언제나 결핍되고 소외 상태에 있고 세계를 새롭게 인지하고 소외된 자신을 세계화하고자 하기도 한다. 현재와 새로운 주체가 깃들 시공에 대한 성찰이요 갈망인 것이다.
그러나 차이 나는 세계로의 이동은 무조건적 이탈이 아니다. 탈중심화, 영토확장에 나서되 중심을 잃지 않아야 하는 일탈이다.
잃지 않아야 할 중심의 핵에 진정성이 있다. 시적 주체의 진정성. 이는 새로운 언어로 표현하고 낯선 언어를 낯익은 감동으로 승화시키는 힘이다. 이는 특정의 내용과 형식이 특정의 현상이나 관념을 정확하고 충분히 반영하고 있다는 독자의 신뢰를 얻는 힘이 된다.
영원하고 불변하는 일반의 가치를 내포해야 한다는 말이 결코 아니다. 진정성은 임시적인 것이든, 지속적인 것이든 청자의 마음에 결실되는 분위기, 주제, 가치, 미적 자질 등등과 연관된다. 부단히 완전성을 지향하는 성실성이라 할 만하다. 불가해하고 무질서한 언어적 엔트로피(entropy)에 대한 네겐트로피(negentropy), 즉 시에 있어서 이해 가능한 정보와 질서는 이 진정성에서 샘솟는 것이다.
10년 넘게 우리 국민의 입에 널리 회자된 시 한 편을 들어보자.
너에게 묻는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안도현, 「너에게 묻는다」 전문
단 세 줄의 짤막한 시이다. 하지만 그 감동은 그리 간단치 않다.
우선, 개체와 공동체의 통합적 지경을 갈망하는 화자의 뚜렷한 가치의식을 읽을 수 있고, 여기에 각박한 현실에 대한 진정어린 진단, 성찰과 비판의식이 ‘연탄재’라는 비천한 사물을 신성의 차원으로까지 끌어올려, 읽는 이들로 하여금 스스로 인간애의 옷깃을 여미게 한다.
시의 길이가 길고 짧음이 시적 능력이나 가치를 가늠하는 요소일 수 없다. 공동주체적가치의식―정의로운 논리와 양심적 윤리와 아름다운 조화를 지향하는 시인의 남다른 성찰이 시인을 포함하는 청자 너,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강렬한 각성을 불러일으키는 동력이 된다 할 것이다.
현재에서 잃어버린 본질, 왜곡되고 있는 미래를 성찰하여 이를 복원하고 되찾고자 하는 노력이 시적 창의성과 감동을 생성하는 바탕이 된다는 사실을 새삼 환기시켜준 시라 할 것이다. < ‘차이나는 시쓰기, 차유의 시론(신진, 시문학사, 2019)’에서 옮겨 적음. (2020.10.10. 화룡이) >
태그#주관적감정#개인의내면적체험#인간의차이나는세계로의이행언어#논리개념이라는동일성극복#시인의이상적인표현#시적인식과사상의진정어린체험#데페이즈망#감각적이미지로배열#직간접의복합적체험병치#지식인의무력감#초현실주의의절연의기법#허무주의적실존#현실에서의탈출구#복합적인체험의언어#시적주체의진정성#성찰과비판의식 태그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