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론 땅 바사국에서의 2인자인 하만의 흉계로 인해 그 당시 그 누구보다 말씀대로의 믿음으로 몸부림쳤던 모르드개 뿐 아니라 그 땅에 있던 대다수의 하나님의 백성들까지도 죽임 당하게 된 때에 하나님께서는 결국 모르드개와 하나님의 백성들이 다 살게 되는 것일 뿐 아니라 그 대적인 하만과 그의 집안, 더 나아가 그 땅에서 셀 수 없이 대적 역할을 했던 다른 민족과 족속들까지 망하게 되고 죽게 되는 드라마 이상의 반전과 역전의 일들을 준비하셨던 것입니다..
실상 그러한 모든 역사들에 있어서 그 전에 모르드개를 위시한 하나님의 백성들만 목숨이 위태로웠던 것이 아니라 당시 그 나라의 왕후의 위치에 있었던 모르드개의 사촌 동생인 에스더까지도 목숨을 걸지 않으면 안 되었고, 실제로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믿음의 결단과 몸부림들에 있어서 그 이상으로 극적이고 강렬하며 상상도 못할 은혜와 역전과 흥왕들로 응답하시고 역사하시며 예비하신 것인데..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아래의 본문에서와 같이 만일 그때 에스더 왕후가 그러한 결단을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다시 말해 사실상 우리 인생들의 눈에는 오직 그 방법 밖에 없는 듯이 보이고 다른 방법들은 결코 있을 수 없어 보이는 것이었지만 그러한 하나님께 있어서도 그러실 수는 없는 것이고, 진정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같은 수준, 우리 인생들 정도의 수준이실 수는 없는 것으로 만일 에스더 왕후가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모르드개의 증거처럼 하나님께는 반드시 다른 방법이 있는 것이며, 말 그대로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어떤 식으로든 얻게 하시는 분인 것이고, 심지어는 우리들이 짐작도, 예상도 못할 수 백, 수 천 이상의 방법들을 가지신 분이 아니실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정말 모르드개의 믿음 및 증거와 같이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의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라는 말씀이 참으로 당연하고 마땅하며 합당할 수밖에 없음은 온 세상 천지만물이 하나님의 것이고, 그 하나님께서는 시간과 공간들을 뛰어 넘어서 전지전능으로 살아 역사하시고 통치하시는 분인 것이며, 무엇보다 생사화복과 흥망성쇠가 하나님께 달린 것이고, 심지어는 공중의 새 한 마리와 모든 역사의 순간순간까지도, 게다가 세상 끝 날과 신령한 몸으로의 부활, 영원한 나라, 영원한 생명까지도 모두 다 하나님의 손에 있는 것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무엇보다 본질적으로는 바로 그 하나님께서 그 자체가 말씀이시기에 그러한 살림과 진노들, 흥함과 망함들에 있어서 모든 전제와 기준은 말씀, 말씀 신앙의 유무 및 정도가 아닐 수 없는 것이고, 실상 아무나 생생하고 강력한 살림과 역전들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닌 것이며, 특히 아래 본문의 모르드개의 증거와 같이 다름 아니라 에스더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곧 얼마나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고 말씀대로의 믿음으로 결단하느냐가 참으로 중요하고 전적인 관건인 것이었고, 생각 이상으로 절대적인 것일 수밖에 없는 것이었으며, 사실은 그러한 믿음과 결단들부터 쉬운 것이 아니며 아무나 할 수 있는 것도 아닌 것이고, 따지고 보면 원론적으로는 인간적인 힘이나 세상적인 능력들로는 불가능이라 할 수 있는 일인 것입니다..
좀 더 구체적이고 근원적으로 다시 말씀드리면 우리 인생들이 이 세상에서, 또한 세상 끝 날과 부활과 영생에 이르기까지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의 중심, 근본, 실체이신 분일 뿐 아니라 그 존재와 개념 상 구약과 신약 시대, 오늘날 우리들, 모든 인류 역사들, 심지어는 천지창조와 창세전, 세상 끝 날과 영원에 이르기까지 잠시라도 분리, 별개, 변개이실 수 없는 반면 언제나 함께 이시고 그 역할에 따라 완벽하게 조화되시며 완전히 하나되시어 한 뜻을 이루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본질적으로는 바로 그 자체가 말씀이신 것이고 오직 말씀으로 하나되시어 말씀과 함께, 말씀대로 모든 것을 실행하시고 다 이루시는 분이 아닐 수 없는 것으로 아담과 하와 때부터 죄악으로 인해 진노와 저주와 사탄과 음부와 사망과 심판들의 영적 노예 상태에 빠지게 된 우리 인생들에 있어 그 위치와 역할 상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담과 하와 때부터 구주 예수님에 대해 미리 보이시고 안내하시며 연결될 수 있게 하신 다양한 예표와 모형과 그림자들, 약속과 계시와 상징들 등을 통해 말 그대로 오실 메시야를 믿고 의지했든지, 또는 오늘날 우리들과 같이 오신 메시야를 믿고 의지하고 있든지 간에 어쨌든 반드시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 곧 온 세상과 전 인류, 모든 시간과 공간보다 더 크신 성자 하나님이시자 구원자이시며 중보자이시고 특히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인생들 사이의 길과 통로와 접점 등의 위치와 역할의 구주로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모든 구원을 다 이루신 구주 예수님을 믿음으로만 값없이 구원에 참예케 되는 것이고, 마치 목욕하듯 통째로 하나님의 것이 되는 것이며, 그와 함께 직접적, 현실적, 경험적으로는 그 위치와 역할에 따라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분이며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뜻과 약속과 말씀들을 다 실행하시고 특히 그 한가운데 계신 구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다 이루신 구원의 일들을 시간과 공간들을 초월해서 믿음과 함께 말씀대로 모두 실제가 되게 하시는 성령님께서 정말 천국과 부활과 영생의 백성으로 거듭날 수 있게 하시는 것이고, 본질적으로는 말씀이신 하나님의 것, 말씀의 나라인 하나님 나라의 백성, 곧 말씀의 백성으로 뒤바뀌게 하시는 것입니다..
바로 그렇게 먼저 말씀의 사람들, 곧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됨으로 인해 하나님의 백성들이 됨이 하나님으로 인한 모든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 특히 생생하고 강력한 역사와 역전들에 있어 모든 우선과 전제가 아닐 수 없는 것이고, 게다가 악한 세력들이 우는 사자들과 같이 삼킬 자들을 찾는 이 험악한 세상에서 우리 주님께서 이 세상에 다시 오시는 날까지, 또는 이 세상에서의 삶이 다하는 날까지 그것이 전부일 수는 없는 것으로 무엇보다 살아 있고 깨어 있는 믿음과 그로 인한 모든 역사와 복들에 있어서, 직접적으로는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의 생생하심과 충만하심들, 근원적으로는 말씀으로 하나되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기뻐 역사하심과 풍성하심들에 있어서 그렇게 구원에 참예케 되는 것이 전부일 수는 없는 것이며, 사실상 하나님의 백성된 자들이라도 적지 아니 죄악과 세속과 정욕들 등으로 인해 병들고 죽은듯한 신앙들이 되는 현실인 것이고, 진정 한 때의 다윗이나 베드로와 같이 얼마든지 약해 질 수 있고 악해질 수도 있으며 심지어는 있을 수도 없는 죄악들까지 범하기도 할 수 있는 것이기에..
모든 하나님의 백성된 자들마다 그 누구라도, 아무리 대단해 보이는 믿음이나 직분에 있는 자들이라 하더라도 단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처음에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사랑, 이치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순간순간마다 어떤 식으로든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하고 붙잡으며 그 이름으로 기도하고 찬미하면서 바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의 시공을 넘는 하늘의 힘과 은혜를 덧입어서 죄악들과 싸울 수 있는 것이고 싸우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며, 게다가 혹 범하게 된 죄악들에서는 자복하고 돌이킬 수도 있는 것이며 사실 그때는 최대한 빨리 자복하고 돌이켜야만 하는 것이고, 특히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더욱 읽고 들으며 묵상하고 실천하며 증거하는 등과 같은 결단과 몸부림들로 나아가고 또 나아갈 수 있는 것이며 진정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고 심지어는 목숨까지 걸다시피 하며 그렇게 해야만 하는 것이고, 게다가 힘들고 어려운 상황과 여건들, 더 나아가 심각한 박해와 죽음까지 보이는 최악의 상황들에서도, 아니 그때에야 말로 더더욱 말씀과 기도와 찬미로 무기 삼는 신앙이 될 수 있는 것일 뿐 아니라 꼭 그렇게 되어야만 하는 것인데 다른 그 누구보다 오늘 본문의 모르드개와 에스더 등이야 말로 죄악들로 인해 패망케 된 남유다에서 바벨론 땅으로 포로되어 온 남은 자들로 그 선조들 때부터의 율법을 위시한 하나님의 말씀들을 간직하고 사모하며 자복하고 돌이키며 치열하게 애쓰고 몸부림치면서 목숨까지 아끼지 않았던 살아 있고 깨어 있는 믿음, 곧 본질적으로는 치열하고 뜨거운 말씀의 신앙이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며, 무엇보다 하나님의 시간을 위해, 특히 예루살렘으로의 포로 귀환 등과 같은 계속되는 역사들을 위해 훈련되고 단련되며 준비되어진 자들이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고, 특히 그들이 포로된 땅에서 간절하고 처절하게 사모하고 붙잡으며 치열했던 모든 말씀들의 한가운데 아담과 하와 때의 여자의 후손에 대한 계시부터 피 제사와 희생 제물들, 유월절 어린 양과 모세를 통한 장대 위의 놋 뱀, 회막과 성막, 선지자와 제사장들 등과 같이 날마다 순간마다 실제로 오실 메시야를 믿고 의지할 수 있게 함과 함께 구원에 참예케 될 수 있는 것일 뿐 아니라 죄악들과 싸우고 범한 죄악들에서는 자복하고 돌이키면서 그 무엇보다 말씀을 사모하고 가까이하는 살아 있는 말씀의 신앙이 될 수 있게 하는 구주 예수님에 대한 다양한 예표와 모형과 그림자들, 약속과 계시와 상징들 등이 가득했다고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는 것입니다
"모르드개가 그를 시켜 에스더에게 회답하되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목숨을 건지리라 생각하지 말라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하니
에스더가 모르드개에게 회답하여 이르되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
모르드개가 가서 에스더가 명령한 대로 다 행하니라"
(에스더4:13~17)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3년 11월 2일(목)1/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