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윤흥길 소설을 읽다가 ‘개미 있다’는 말을 적이 있다. 난생처음 듣는 말이었다.
기어다니는 개미가 대체 어디 있다는 건가? 소설의 맥락으로 보면 음식의 맛을 가리키는 말 같은데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다 어느 해 봄에 전북 완주군의 한 시골 마을에서 그 말하고 또 맞닥뜨렸다.
그 무렵 지천으로 노랗게 피어 있는 꽃 이름을 몰라 동네 할아버지에게 여쭈었다.
“아, 그거 멜라초라는 거여.”
멜라초?
역시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다. 저렇게 꽃 피기 전에 연한 잎사귀를 데쳐서 무쳐 먹으면 좀 씁쓰레하면서도 개미가 있지.
식물도감을 뒤졌더니 그 꽃은 산괴불주머니라는 이름의 들꽃이었다.
지역의 사투리를 하나씩 발견하고 알아가는 일은 내게 매우 반갑고 짭짤한 소득이다.
길을 가다가 금반지를 하나씩 줍는 횡재 같기도 하다.
‘개미 있다’의 뜻을 이제는 안다.
맛이 넘치거나 모자라지 않고 감칠맛이 나면서 깔끔하다는 뜻이라는 걸.
하지만 그 어원이 무엇인지 몰라 갑갑증이 났다. 그 말을 처음 각인시킨 윤흥길 선생께 전화를 드렸다. ‘가미’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양념을 더 넣어 맛을 더한다는 뜻과 입에 맞는 좋은 맛이라는 두 가지 뜻이 있지. ‘개미 있다’는 후자와 관련이 있을 거야. ‘아기’를 ‘애기’라고 하는 것처럼 말이야. 명쾌한 설명이었다. 그런데 이놈의 세상에는 왜 이렇게 개미 있는 일이 없는 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