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 관계에서 나타나는 대단히 우울한 양상은, 처음 알았을 땐 더없이 감사하다고 느꼈던 사람에게 너무나 빨리 익숙해진다는 사실이다. 손목이나 어깨만으로도 우리를 흥분시켰던 사람이 눈앞에 벌거벗고 누워 있어도 무덤덤하기만 하다.
상대방을 재평가하고 다시 갈망하게 되는 법을 고려할 때, 예술가들이 익숙한 것을 다시 보는 방법을 관찰하면 본받을 점을 얻을 수 있다. 연인과 예술가는 똑같은 인간적 약점에 부딪힌다. 쉽게 지루해지고, 사람이든 사물이든 일단 알고 나면 관심을 기울일 가치가 없다고 선언하는 보편적 경향이 그것이다. 따분해져버린 것에 대한 우리의 열정을 되살리는 능력은 위대한 예술 작품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그런 작품들은 이미 익숙해져서 간과하기 쉬운 , 경험의 감춰진 매력을 일깨운다.
19세기 평범한 프랑스인에게 아스파라거스는 식재료나 내다팔 작물 외에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1880년 에두아르 마네가 아스파라거스 몇줄기를 섬세하게 묘사하자, 세계는 이 먹을 수 있는 다년생 개화식물의 조용한 매력에 이목을 집중했다. 붓놀림은 더 없이 섬세했지만 마네는 이 채소에게 아부하지 않았다. 그는 미술을 이용해 아스파라거스에 없는 성질들을 부여하지 않았다. 그는 단지 이미 존재했지만 사람들이 무시했던 매력을 드러냈다. 우리가 그저 보잘것 없는 줄기를 볼때, 마네는 각 줄기의 미묘한 개체성, 특유의 빛깔과 색조의 변화에 주목하고 그것을 기록했다. 그렇게 그는 이 소박한 채소를 구원했고, 오늘날 그의 그림을 보는 사람들은 아스파라거스가 담긴 접시에서 행복하고 남부럽지 않은 삶의 한 이상을 보게 되었다.
오래된 연인관계에서 현재에 안주하는 습관을 깨고자 할때 우리는 마네가 그의 채소에게 발휘했던 변형의 상상력을 우리의 연인에게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우리는 겹겹이 쌓인 습관과 타성 밑에서 선하고 아름다운 면을 찾아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