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국지 [列國誌] 752
■ 3부 일통 천하 (75)
제12권 사라지는 영웅들
제 9장 여섯을 하나로 (6)
위(魏)나라에 이어 소진(蘇秦)의 발걸음이 향한 곳은 제(齊)나라 수도 임치(臨淄)였다.
소진(蘇秦)의 유세법은 상당히 특이하다. 무엇보다도 사전 조사를 치밀하게 행했다.
그 나라의 장점과 단점을 정확하게 파악한 후 왕을 찾아가 때로는 부추기기도 하고 때로는
겁을 줌으로써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곤 했다.지금까지 소진(蘇秦)은 연ㆍ조ㆍ한ㆍ 위나라 등을
순방하며 각 나라의 약점을 부각시킴으로써 합종의 당위성을 역설해왔다.
- 여섯 나라가 하나가 되어 힘을 합하지 않으면 진(秦)나라의 공격을 감당할 수 없다.
이런 주장에 네 나라 임금들은 한결같이 겁을 먹고 합종 동맹에 서명했다.
그러나 제(齊)나라에 당도한 소진(蘇秦)은 제선왕(齊宣王)에게만큼은 전혀 다른 방법을 사용했다.
그는 먼저 제(齊)나라의 국력과 임치성 주변을 샅샅이 조사했다.
그리하여 앞서 기술했던 대로 제선왕(齊宣王)을 찾아가 다음과 같이 아뢰었다.
임치(臨淄)에는 7만 호가 있습니다.신이 몰래 헤아려보니, 집집마다 최소한 세명의 장정이 있더이다.
이를 계산하면 21만 명이 됩니다.먼 곳의 현(縣)이나 읍(邑)으로부터 징병하지 않아도
임치의 병사만으로 21만 군대를 보유하는 것입니다.임치(臨淄)는 매우 풍족하고 튼실합니다.
이 곳의 백성들은 큰 생황을 불고 비파를 뜯고 거문고를 타고 아쟁을 켜며, 투계(鬪鷄)와 경견(競犬),
육박(六博, 윷놀이), 답국(蹋鞠, 축구) 등을 즐기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임치(臨淄)의 도로는 수레바퀴가 서로 부딪치고, 사람 어깨가 서로 스치며, 옷깃과 옷소매가
어우려져 장막을 이루며, 사람들이 많아 땀을 흘리면 비가 될 정도입니다.
이어 그는 제(齊)나라가 합종에 찬성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를 설명했다.
"이처럼 제(齊)나라는 강합니다. '서쪽에는 진이 있고, 동쪽에는 제가 있다(西秦東齊)' 는 말이
나돌 정도입니다. 더욱이 두 나라는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진(秦)나라는 결코
제(齊)나라를 침범할 수 없습니다.""그런데 제(齊)나라가 무엇 때문에 진(秦)나라를 두려워합니까?
신은 참으로 답답할 따름입니다. 왕께서는 진나라와 제나라 사이에 있는 위, 한, 조나라 등을
잘 어우르기만 해도 동방의 패자(覇者)로서 그 권위를 누릴 수 있습니다."
"제(齊)나라가 육국 동맹에 가입하면 능히 다섯 나라를 호령하며 굳이 군사를 내지 않아도
진(秦)나라를 상대할 수 있습니다. 군사를 내지 않으면 제나라는 실리(實利)를 얻을 수 있을 것이요,
나날이 발전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이것이 제나라가 합종(合縱)해야 할 까닭입니다."
한마디로 진(秦)나라와 멀리 떨어져 있고 강하므로 합종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소진의 말을 듣는 동안 제선왕(齊宣王)은 자신이 마치 중원의 패자가 된 듯한 착각이 들었다.
실제로 소진의 말대로만 된다면 최후의 순간에 제(齊)나라가 천하 패업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에 사로잡혔다.'먼저 진(秦)나라를 누르고 그 다음에 나머지 다섯 나라를 제압한다.'
이런 야망이 제선왕(齊宣王)의 뇌리를 스쳤다.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소진의 손을 움켜쥐고 말했다.
"나는 어리석었소. 선생의 가르침 덕분에 이제야 제(齊)나라가 갈 길을 정할 수 있게 되었소."
제나라도 합종 동맹국의 일원이 되었다.이제 남은 나라는 남방대국 초(楚)나라뿐이었다.
초나라 도읍 언영에 당도한 소진(蘇秦)은 초위왕(楚威王)을 상대로 마지막 유세를 펼쳤다.
초(楚)나라는 대대로 중원 문화와 이질적이었다.고집이 세고 자존심이 강했다.
설득하기가 여간 까다롭지 않다.'어떻게 하면 초나라를 설득할 수 있을까?'
소진(蘇秦)은 궁리 끝에 위협과 부추김을 동시에 사용하기로 했다."초(楚)나라의 영토는
사방 5천리로서, 천하에 으뜸가는 강국입니다. 그러기에 진(秦)나라가 가장 경계하는 나라는
초나라입니다.""지난날의 역사에서도 알 수 있듯이 초(楚)나라가 강해지면 진(秦)나라가 약해지고,
진나라가 강해지면 초나라가 약해집니다. 오늘날 천하 대세를 보면 육국의 합종이냐,
육국의 분립(分立)이냐, 둘 중의 하나뿐입니다."
"만일 합종(合縱)을 한다면 진(秦)나라는 약해지고 초(楚)나라는 다섯 나라의 섬김을 받을 것이며,
왕께서 합종하기를 거부하신다면 진나라는 강해져서 초나라 영토를 떼어
진나라를 섬겨야 할 것입니다. 왕께서는 이 두 가지 중 어느 것을 택하시겠습니까?
모든 판단은 오로지 왕께 달렸습니다."소진의 말을 듣는 동안 초위왕(楚威王)의 얼굴은
수시로 변했다.때로는 자긍심에 사로잡히기도 하고, 때로는 공포에서 헤어나지 못하기도 했다.
소진(蘇秦)이 마지막 말을 뱉고 입을 다물자 초위왕(楚威王)은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진을 향해 흔연히 대답했다."우리 나라는 서북쪽으로 진(秦)나라와 국경을 접하고 있소.
진나라는 파(巴)와 촉(蜀)을 빼앗아 한중(漢中)을 손에 넣을 야심을 품고 있소."
"이 때문에 나는 침상에 누워도 편히 잠을 자지 못하고, 음식을 먹어도 단맛을 느끼지 못하며,
마음은 걸어놓은 깃발처럼 언제나 흔들려 의지할 곳을 잃었소."
"그런데 선생의 말을 듣고 스스로 생각해보니. 이제 그 모든 것이 일순간에 해결되었소.
내 굳이 조정 대신들과 의논할 필요도 없소. 나는 감히 말하노니, 선생에게 의탁하여
초(楚)나라의 앞날을 맡기고자 하오."이로써 연(燕)나라로부터 시작하여 조• 한• 위• 제 • 초 등
여섯 나라가 하나가 되는 합종(合縱) 동맹은 완벽하게 성사되었다.
소진(蘇秦)이라는 이름이 천하에 드높여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753편에 계속
열국지 [列國誌] 753
■ 3부 일통 천하 (76)
제12권 사라지는 영웅들
제 9장 여섯을 하나로 (7)
소진(蘇秦)의 지금까지의 행적은 상당히 극적이다.너무나 극적이어서
오히려 선뜻 믿겨지지 않을 정도다.이 때문에 중국 학파 중 하나인 의고파(擬古派) 학자들은
소진을 가공의 인물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그 근거로는 우선 연대가 분명치 않고,
아울러 한 사람의 힘으로 그 넓은 중국 대륙을 돌아다니며 유세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러 사료(史料)를 종합해볼 때 소진(蘇秦)을 가공 인물로 치부하는 것은
너무 무리한 주장이다.후세의 사가(史家)들이 저마다 조금씩 꾸며넣은 부분은 있을지 몰라도
각 사서마다 일관되게 한 인물을 만들어내기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 정도는 생각해볼 수 있다.
- 합종(合縱)을 주장하는 여러 유세객들의 활동을 모두 그 대표자인 소진에게 갖다 붙인 것은
아니었을가?<사기(史記)>를 쓴 사마천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냉정하게 기록하고 있다.
세상에 퍼진 소진의 행적에는 이설(異說)이 많다.시대를 달리하는 사적(史跡)이라도 모두
소진에게 끌어다 붙였다. 그러나 어쨌건 소진이 평민의 신분에서 입신하여 육국(六國)을
연결시킨 것은 그의 재주와 지혜가 보통 사람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리라.
사마천(司馬遷)의 지적대로 소진(蘇秦)은 그 전까지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큰 일'을
해냈음이 분명하다.그것도 세 치 혀 하나로.
- 합종(合縱).
이로 인해 혼란의 도가니로 치닫던 전국시대(全國時代)는 전혀 예상치도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었다.단신의 몸으로 전국칠웅 중 여섯 나라를 하나로 묶은 소진(蘇秦)의
그 후 행적 또한 소설적으로 흘러간다.
형만(荊蠻)이라 불리고 있는 남방 대국 초(楚)나라마저 합종 동맹에 가입시킨 소진(蘇秦)은
곧 각 나라로 사자를 보내어 정식으로 회맹식을 추진하였다.초ㆍ제ㆍ조ㆍ위ㆍ한ㆍ 연 등
여섯 나라 임금은 곧 원수(洹水)라는 땅에 모여 삽혈(歃血)동맹의 의식을 치렀다.
원수(洹水)는 지금의 하남성 북부 일대를 흐르는 강이다.안양하(安陽河)라고도 한다.
소진(蘇秦)이 의식의 진행을 맡았다.
제단 위로 올라가 한 자리에 모인 여섯 군주들에게 주술(呪術)하듯 고했다.
"이 자리에 모인 임금들은 천하 대국의 주인으로서 그 위(位)는 왕이나 후(侯)이며,
다스리는 땅은 넓고 거느리는 군사도 많은지라 가히 영웅이라 자처하는 바입니다."
"그런데 지금 진(秦)나라가 말 기르던 천인(賤人)의 후예로서 함양 땅의 지리를 이용하여
천하의 모든 나라를 침략하려 하고 있습니다. 모든 임금께서는 이 일을 용납할 수 있겠습니까?"
말 기르던 천인(賤人)이라는 것은 옛날 말 사육의 명인인 조보(趙父)를 말함이었다.
여섯 임금들은 최면에라도 걸린 듯했다. 약속이나 한 것처럼 일제히 대답했다."용납할 수 없소.
선생이 우리를 지도하오!"소진(蘇秦)이 다시 외쳤다.
"우리가 합종(合縱)해야만 진(秦)나라를 누를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신이 말한 바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선 희생(犧牲)의 피를 입술에 바르고, 천지신명께 맹세하고, 서로 결의형제를 맺고,
서로 돕자는 서약만 하면 됩니다. 응하시겠습니까?""삼가 선생의 가르침을 받고자 하오!"
이에 소진(蘇秦)이 희생의 피를 담은 소반을 들고 여섯 임금 앞을 돌았다.
육국의 임금들은 소진이 자신의 앞에 설 때마다 손으로 희생의 피를 찍어 입술에 바르고
차례대로 천지신명에게 맹세했다.만일 한 나라가 이 맹세를 어길 시엔
나머지 다섯 나라가 그 나라를 치리라.삽혈(歃血)과 맹세가 끝나자 각 나라 임금들은
그 서약문에 친히 서명한 후 한통씩 나누어가졌다.모든 절차가 끝나자 소진(蘇秦)을 재상에
임명하여 열국 순방을 도운 조숙후(趙肅侯)가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임금들에게 제안을 했다.
"소진(蘇秦)이 이번에 천하 평화를 위해 백년대계를 세우고 우리 육국의 화평을
이루게 해주었소. 소진에게 마땅히 그에 보답하는 지위를 내려주는 것이 어떻소?"
다섯 나라 임금이 일제히 찬성했다."바라던 바요.""이후 소진(蘇秦)을 합종 맹약(盟約)의
장(長)으로 임명하고 아울러 육국의 재상을 겸임하게 합시다.""좋습니다."
소진(蘇秦)은 여섯 나라 임금으로부터 재상의 인(印)을 받고 아울러 황금 1백 일(鎰)과
양마 10승(乘)을 하사받았다.이보다 더한 권력과 명예를 누린 사람이 또 있을까?
소진(蘇秦)은 꿈을 꾸는 듯 앞으로 나가 육국 임금들에게 감사의 절을 올렸다.
BC 333년(진혜문왕 5년)의 일이었다.
하루아침에 육국의 재상이 된 소진(蘇秦)은 우선 조(趙)나라로 가 머물기로 했다.
그는 원수(洹水)땅을 떠나 한단으로 향했다.
이때 여섯 나라 임금들은 그를 호위하기 위해 각기 사자와 수레와 말을 보내주었다.
이 때문에 그의 귀환 행렬은 길이만 20리가 넘었고, 앞뒤로는 정기가 펄럭였으며, 치중을 실은
수레가 연이었다.이러한 행렬은 과거 전성기 시절의 주(周)나라 천자의 행렬에 견줄 만한 것이었다.
한단으로 가기 위해서는 주(周)나라 낙양 땅을 통과해야 했다. 낙양(洛陽)은 소진의 고향이다.
당시 주나라 왕은 주현왕(周顯王).과거에 그는 알현을 청하는 소진을 일언지하(一言之下)에
거절한 바 있었다. 이 일을 기억하고 있는 주현왕(周顯王)은 소진이 육국 재상이 되어
낙양 땅을 통과한다는 소식에 기겁했다.모든 관원을 시켜 그가 지나갈 길을 깨끗이 청소한 후 친히
교외까지 나와 영접을 했다. 소진으로서는 이만저만한 위세요, 금의환향(錦衣還鄕)이 아닐 수 없었다.
주현왕(周顯王)의 영접을 받고 다시 길을 떠나려던 소진의 눈에 문득 낯익은 얼굴들이 들어왔다.
어머니와 형수와 아내와 소대(蘇代)ㆍ 소여(蘇厲) 두 동생이었다.
그들은 길바닥에 엎드려 감히 소진(蘇秦)을 쳐다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소진(蘇秦)은 수레를 멈추고 지난날 자신을 구박했던 형수를 내려다보며 웃음 띤 얼굴로 물었다.
"전날 형수는 나에게 밥도 지어주지 않고 홀대하더니, 오늘은 어쩐일로 이다지도 공손하시오?"
형수는 더욱 몸을 굽혀 이마를 땅에 대며 대답했다.
"지난날은 그대의 지위가 볼품없고 황금 또한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홀대(忽待)했습니다만,
오늘은 지위가 높고 많은 황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공경(恭敬)하는 것입니다."
형수의 솔직한 대답에 소진(蘇秦)은 길게 탄식하며 말했다.
"일가 친척도 가난하면 경시하고 부귀해지면 공경하니, 하물며 일반 사람들이야 오죽하겠는가.
나는 오늘에서야 사람이 부귀(富貴)해져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도다!"이어 덧붙였다.
"내게 만일 낙양 근교에 밭 두 이랑만 있었더라도 내 어찌 오늘날 여섯 나라의 재상의 인수(印綬)를
찰 수 있었으리오?"소진(蘇秦)은 가족들을 수레에 태워 함께 고향 마을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온 마을 사람들을 불러모아 크게 잔치를 베풀고 천금(千金)을 풀어 친척과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었다.소진의 동생 소대(蘇代).소여(蘇厲)는 형이 일약 존귀한 신분에 오르는 것을 보자
마음을 굳게 먹었다.- 우리도 <음부경(陰符經)>을 부지런히 익혀놓자.
그때부터 그들은 밤낮으로 유세술을 익히는 데 전념했다.
754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