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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싸이에 올렸던 글인데 한 번 여기에도 올려봅니다. 이 게시판에 올리기에 수준이 너무 낮은 글이라서 걱정이 좀 되기도 하지만.........그냥 재미있는 사진들이 많아서...................
혹시 < He Got Game >이라는 영화를 본 적있는가? 많은 사람들 스테판 마버리 Coney Island's Finest 랜드의 최하단에 위치한 지역이다. 코니 아일랜드는 두가지로 잘 알려져있다. 일단 코니 아일랜드는 유람지이다. 굉장히 오래되서 시설들이 낡기는 했지만 바다를 근처로한 유서있고 나름대로 이곳이 코니 아일랜드이다. 코니 아일랜드의 화려한 유람지 뒤에는 그 화려함과 대비되는 빈민
리 농구의 메카였다. 할렘에 위치한 럭커 파크야 말로 길거리 농구 서 포인트 가드로 성장하는 것은 특별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링컨 고등학교를 다니는 한 고등하교 아이가 놀라운 무브를 보여주며 사 람들을 놀래키고 NBA관계자들을 흥분시킬때 이 소년이 로드 스트 릭랜드, 케니 앤더슨을 있는 뉴욕 출신의 포인트 가드가 될 것이라 고 입을 모았다. 그 소년은 스테판 마버리였고 마버리는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크로스오버중인 마버리 마버리가 링컨 고등학교를 승리로 이끌 때 당시 사람들은 뉴욕 최
다. 두 선수 모두 창조적이고 놀라운 드리볼을 선보였으며 럭커 파 그 정도의 스탯을 기록한다. 그러나 뉴저지는 항상 암울한 성적을 기록했다. 주 원인은 부상이였다. 뉴저지에는 항상 부상자들이 넘 쳐 났으나 팬들은 마버리에게로 비난의 화살을 돌렸다. 마버리는 평균 24득점에 8어시스트를 올렸음에도 비난 받고 결국 피닉스의 제이슨 키드와 트레이드된다. 리그 최고의 두 포인트 가드 두명의 트레이드 이 둘이 앞으로 필연적으로 계속하여 비난 받게 되는 결 과를 가져 왔으며 그것은 마버리에게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온다. 피닉스에서 첫해 마버리는 팀을 플레이오프에 올리는 것에 실패한 나 그 다음해 매리언, 스타더마이어와 함께 팀을 플레이오프에 올 리고 당시 우승팀 샌안토니오를 맞아 마버리의 기적적인 버져 비터 를 통해 1차전을 승리하고 시리즈내내 챔피언을 맞아 대등한 경기 를 보여준다. 비록 팀은 탈락했으나 마버리는 이 해를 기점으로 큰 발전을 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 해를 기점으로 나는 마버리가 공 격형 포인트 가드로서 득점과 리딩을 조화 시키는 법을 터득했다고 본다. 그러나 그 다음해 마버리의 미래는 또다시 어두워진다. 스타 더 마이어는 부상 당하고 팀의 성적은 또다시 않 좋아졌으며 결국 그는 트레이드된다. 그러나 이 트레이드는 그에게 새로운 기점이된 Selfish Point Guard?? 마버리의 기술과 실력에 대해서는 아무도 의심을 하지 않는다. 그 이 뛰어올라 한 앨리웁 백 덩크는 그의 점프력과 운동 신경이 얼마 다. 마버리는 득점을 먼저 생각한다. 마버리는 이기적이다. 마버리 스탁턴이나 제이슨 키드가 아니다. 마버리는 분명 득점을 즐기는 가드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은 마버리가 리그 에서 가장 뛰어난 리딩 능력을 지니 가드라는 점이다. 분명 뉴저지 시절 까지만 해도 마버리가 이기적이라는 말이 완전히 틀렸다고 부 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피닉스를 거쳐 뉴욕의 마버리는 공격형 포 인트 가드로서 경지에 오른 모습이다. 더 이상 무리한 슛을 하지 않 고 패스를 하는 선수, 득점할 때와 패스할 때를 아는 선수가 현재의 마버리다. 그렇다. 마버리는 탐을 아직 이기게 하지 못하는 선수이 다. 하지만 그가 뛰던 팀들마다 벤치를 매우던 부상자들을 생각해 보라. 올 해 뉴욕이 다시 부진하자 그에게 비난을 다시 하지만 지금 뉴욕의 로스터를 보라..... 작년 뉴욕이 건강했을때 마버리가 팀을 바꾸어 놓은 것은 것은 왜 생각 못하고 제이슨 키드와 스티브 내쉬 의 이야기만 하는가? 물론 이런 것들 모두 다 핑계일 수 있다. 이제 앞으로가 마버리가 자신이 팀을 이기게할 수 있는 선수라는 것을 증명해 나가는 과정이 되어야할 것이다. Sebastian "The Bassy" Telfair
세바스티안 텔페어 또한 링컨 고등학교를 다녔다.
세바스티안 텔페어의 작은 사촌인 세바스티안 텔페어가 처음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그가 고등학교 2학년때이다. 당시 고교 최고의 포인트 가드는 현재 UNC의 2학년 가드 레이먼드 펠튼였다. 펠튼은 당시 평균 29득점에 8어시스트를 고교생으로 기록하고 잇 었고 UNC팬들로부터 엄청난 관심을 받고 있었다. 지금도 펠튼은 엄청난 유망주이지만......당시 펠튼의 유망주로서의 위상은 대단 했다. 당시 ABCD 고교 캠프에서 레이먼드 펠튼이 등장하자 많은 스카우터들은 흥분하기 시작했다. 그 때 펠튼을 상대로 맞서는 빼 빼마른 고교1년생 가드는 측은해 보이기도 했다.
이 앳되 보이는 소년이 2학년 때의 텔페어다.
그러나 전혀 경기가 시작되자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펠튼은 무시무시한 스피드로 돌파를 시도했지만 이 어린 소년은 빠 르게 공으로 가로채 눈 깜짝할 사이에 코트 반대편으로 가서 득점 을 했다. 경기 내내 펠튼은 텔페어의 화려한 드리볼에 속수 무책으 로 당했고 순식간에 스카우터들은 이 링컨 고등학교의 가드에게 주 목하기 시작했다.
레이먼드 펠튼(초록색 져지)와 세바스티안 텔페어(파란색 져지)
그 이후 텔페어는 르브론 제임스와 친하게 지내면서 미디어의 주목 을 더욱 받기 시작했다. 르브론의 고교 4학년 시절 당시 3학년 이던 텔페어는 르브론 다음으로 유명한 고교 선수였고.....텔페어는 모든 고교 캠프에서 엄청난 주목을 받는다. 텔페어의 고교4학년 시즌이 시작되기 전 텔페어는 거의 모든 스카우터들이 #1고교 선수로 꼽 았다. 그러나 텔페어의 주가는 갑자기 추락하기 시작한다. 여러 캠 프에서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고 고교 랭킹1위는 드 와이트 하워드에게 넘어간지 오래였으며 고교 포인트 가드 랭킹에 서도 6-7의 션 리빙스턴에게 밀리기 시작한다. 모든 스카우터들은 텔페어가 마르고 슛이 부정확하다고 대학을 가야한다고 주장했다. 텔페어가 근육을 벌크업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평판은 변함이 없었 다. 텔페어는 당시 가장 인기가 많은 아마추어 선수 였고 드와이트 하워드
보다도 널리 알려져 있었지만 아디다스외에는 텔페어의 명성에 아무도 주
목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뉴욕 이라는 도시가 Hype 머신으로서 지니는
특성에대해 이야기했고 오마르 쿡을 언급했다. ( 쿡은 실제로 텔페어를
많이 도왔으며 기자 회견장에도 있었다. ) 텔페어는 결국 수 많은
기자들에 둘러쌓여서 자신이 드래프트에 참가할 것임을 알렸다. 당시
많은 전문가들은 텔페어의 선수 생명이 벌써 끝난것처럼 이야기했으며
아디다스에서 준 계약서를 가지고 벤치를 지키라고 했다. (텔페어는 고졸
루키로서는 이례적으로 아디다스와 계약을 했으며 벌써 길버트 아레나스,
천시 빌럽스와 함께 GDL이라는 모델을 광고하고있다.) 텔페어의 결정을
지지해준 매체는 원래 고졸들의 리그 진출에 관대한 태도를 보인 <SLAM>
정도 밖에 없었다.
텔페어는 분명 4학년 때 마르지 않았다.
보라 분명 위의 그림들보다 벌크업되지 않았는가?
나도 사실 텔페어가 루이빌 대학에 가서 1,2년간 릭 피티노의 지도 를 받기 원했다. 그러나 텔페어는 험한 코니 아일랜드의 빈민가로 부터 가족을 벗어나게 하고 싶어했고 결국 NBA드래프트에 참가한 다. 그리고 텔페어를 유심히 지켜보던 모리스 칙스 감독의 포틀랜 드에 지명을 받는다.
Does He Got Game?
텔페어를 괜히 최고의 포인트 가드 유망주라고 한 것이 아니다. 일 단 엄청난 스피드를 지니고 있고 역시 뉴욕 출신답게 엄청난 드리
볼 실력을 지니고 있다. 게다가 놀라운 시야와 팀을 지휘하는 패스 능력 또한 뛰어나다. 게다가 득점력 또한 뛰어나다. 아직 많은 부분 들이 미숙하지만 충분히 엄청난 재능이 있는 선수임에는 분명하다. 포틀랜드에서 많은 출전 시간을 받고 있지는 못하지만 가끔식 벤치
에서 나와 놀라운 패싱센스를 보여주어서 포틀랜드 지역팬들의 많 은 사랑을 받고 있다. 그리고 얼마 전 4쿼터에만 16득점을 하는 놀 라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From the Ghetto of New York..............
마버리와 텔페어 모두 뉴욕의 빈민가에서 험한 유년기를 보냈다. 6 명의 형제를 지닌 마버리나 집 근처에서 도끼 살인이 일어난 텔페
어 모두 하루 빨리 코니 아일랜드의 빈민가에서 벗어나고 싶어했 다. 거친 뉴욕의 길거리에서 만들어진 그 둘의 게임은 이제 사촌간 이 아닌 맞수로서 부딪힐 것이다. 마버리는 조카 뻘인 텔페어를 매 우 아꼈다고 한다. 어렸을적 농구를 가르친 것도 마버리였고.....마
버리가 뉴욕에 온 이후 둘의 사이가 좀 소원해졌다는 이야기가 있
지만......이 사진을 보라
이 경기에서 둘은 멋진 대결을 보여주었다.
부디 앞으로 두 선수가 리그 엘리트 포인트 가드로서 더 멋진 대결
을 보여주기를 바란다.부디 이 둘이 코니 아일랜드의 거리에서 키
우던 꿈을 리그에서 유감 없이 펼치기를 바란다. |
첫댓글 안그래도 텔페어와 하군에 관련된 글을 적고 있었는데.. 근데 읽다보니 참 아이러니 하군요.. 지금 텔페어가 조지아텍에 돈을 받고 들어갈뻔했다는 이야기가 터져나왔으니 말입니다.(사실 이부분에 관해 적고 있었죠.) 잘 읽긴 했습니다만.. 글을 조금 수정해 주심이..^^;
제가 이 글을 쓰고 난 후에 그런 소문이 터져 나왔더군요.....그런데 전 아직은 루머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텔페어 본인과 폴 휴잇 감독이 소문을 부정하고 있고 텔페어의 고등학교 코치도 조지아 텍이 텔페어를 적극적으로 리구르팅하려한 기억이 없다고 했으니까요........
이 소문이 Ian O'Conner 라는 사람이 쓴 책에서 나온 이야기인데 그냥 이 사람이 책 판매량을 늘리기 위해서 쓴 이야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폴 휴잇 감독도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고요. 뭐 진실이 어떤 것일지는 밝혀지겠지만 전 아직까지는 텔페어가 한 "Georgia Tech did not recruit me and never spoke to me.
That's a false statement and I have no furthur comment." 라는 말과 폴 휴잇 감독의 "I feel bad for the kid in a way because my suspicion is this was something he was asked to do to sell the book," 라는 말을 믿고 싶습니다.
저도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이제 겨우 엘더가 돌아와 정상전력을 갖추게 된 GT인데..ㅠ.ㅠ
재밌네요 잘 봤습니다. 밴 엑셀이 부상일때 자주 나와서 보는 사람을 깜짝깜짝하게 만드는 모습을 보여주곤 했던 텔페어인데...내년에 마이티랑 퀵이랑 다 떠나면 많이 나오겠죠.
어우T^T 스타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