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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공연예술정책의 전개과정과 향후 추진방향 검토
글/장미진(한국문화정책개발원 연구원)
문화의 세기라는 21세기를 앞두고, 게다가 문화대통령의 취임으로 활기차고 생동감있게 움직여야 할 공연예술계는 IMF의 강타를 맞고 고사 직전의 상황에서 허덕이고 있다. 대학로 티켓박스의 98년 1월초부터 5월 말까지의 판매량을 보면, 96년 26,002매, 97년 25,413매, 98년 15,730매 등으로 98년 판매량은 96년과 97년 평균치의 61.2%에 지나지 않는다. 언제 공연예술계가 풍요로움이나 여유가 있었는가마는 현재의 상황은 과거와는 조금 달라서 가벼이 보아 넘길 수가 없다.
우리에게는 예술, 특히 공연 부분에 대한 애정이 많지 않다. 여기서 말하는 애정이란 일정 정도의 존중을 포함하는 것으로, 우리 민족은 춤추고 노래하고 놀기를 좋아하여 예술적인 품성을 지녔지만 이는 예술전문인에 의해 이루어진 완전한 작품을 보고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예술행위를 하는 것이다(이를 예술행위라 하기에는 약간 어폐가 있는 듯 하지만). 아무튼 공연장이라는 하드웨어, 전문 예술가집단, 공적 또는 사적 지원제도, 문화예술 향수층이라는 공연예술의 제반여건이나 그 역사가 미약한 우리의 상황에서 20여년에 걸쳐 어렵사리 형성해 놓은 문화예술에 대한 가치평가가 경제적 이유로 완전히 곤두박질치려는 상황에 놓여있다.
사실 배고픈 이에게 문화예술은 사치품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 여기서 밥 대신 예술품을 섭취하라는 것이 아니라, 이후에 다시 회복하기 어려운 예술을 잃어버리지 말고, 지금 일정정도의 정책적 지원하에 보호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먼저 공연예술 현황에 대한 자가 점검이 필요하다. 현재 우리가 처한 위기는 어느 누구만의 잘못만은 아니고, 시대적·문화적 한계가 안고 있는 필연적인 결과인 만큼 다각적인 자기 비판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이에 앞서 자주 그 방향성을 잃었을 뿐 아니라, 자신의 주장에 스스로 힘을 실지 못했던, 우리의 문화정책의 어디에 문제가 있었는지 과거 문화정책의 개괄을 통해 문제점을 짚어보고, 나아가 앞으로 추구해야 할 공연예술정책의 기본 골격을 잡아보고자 한다.
1. 공연예술정책 소사
우리의 문화정책은 1948년 정부수립이후 문교부 문화국이 설립되고, 이왕직 아악부를 국립국악원(50년 1월)으로, 경성부민관을 국립극장(50년 5월)으로 설치하는 것으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 시기는 정치적 혼란과 경제적인 피폐, 사회적인 불안이 지속적으로 반복되던 시기로서, 문화정책에 투입할 자원은 커녕 문화에 대한 정책적 관심 자체가 매우 낮았고, 국민들 대다수도 먹고 살기에 급급한 나머지 문화향수에 대한 일말의 욕구마저 찾아 볼 수 없었던 시기였다.
제3공화국 시기에는 문화공보부로 통합되었고, 이 시기예술정책은 각종 문화행사(대한민국문화예술상 제정, 국전, 민속예술경연대회, 지방문화제 개최 등)와 국악사양성소(1967), 중앙국립극장(1973)을 건립하는 정도였다. 이때 문화공보부의 문화부문 예산을 살펴보면 공보부분과 문화부문의 평균예산비율이 각각 81.5%와 18.5%였을 정도로 문화는 단순히 홍보를 위한 수단가치로 간주되었다. 빈약한 국가 재정, 문화행정에 대한 경험과 전문지식의 미흡, 경제제일주의원칙에 따른 문화에 대한 인식부족 등으로 문예진흥에 필요한 실질적인 투자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반면 1966년 @한국예술문화윤리위원회#가 설립되면서 문예활동에 대한 정부 규제가 강화되었다.
제4공화국에 들면서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영화진흥공사가 발족하였고, 공보부문에 대비한 평균예산비율이 45.5%로 증가하였다. 이와 같은 예산비율의 변화는 1, 2차 경제개발계획의 성공적인 수행에 따라 문화적 수와 욕구가 증대되었다는 점과 문화발전이 바로 생명력 있는 국가발전의 길이라는 인식이 싹트기 시작한 데 기인한다. 72년의 문화예술진흥법의 제정으로 예술활동 지원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한편, 정부 차원에서도 각 분야의 예술활동을 지원하게 되는데, 당시로서는 상당한 규모라고 할 수 있는 485억의 자금이 문화예술분야에 투자되어, 문예진흥기반 조성사업(문화예술진흥법 제정 및 중앙국립극장, 세종문화회관 등의 문화시설 확충 등), 예술창작 지원사업(대한민국 음악제, 연극제, 무용제 행사 등), 문화예술 국제교류사업 등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 기간은 이른바 유신시대로 정부의 감독과 통제가 심하여 문화의 자율적 신장을 기대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81년 제5공화국 기간 동안 문화부문 예산이 거의 3∼4배로 증가하고 0.2%를 넘지 못하던 대(對)정부세출예산 비율도 0.3%를 상회하게 되어 괄목할 만한 증가가 있었고, 이는 주로 대규모 문화시설 건립에 집중적으로 투자되었다. 확대된 문화재원을 바탕으로 국립현대미술관(1986), 예술의전당(1993), 독립기념관, 국립국악원(1987) 등의 대규모 문화시설이 건립되었고 각 시, 도에도 종합문예회관, 특장문화시설, 중요무형문화재 전수회관 등 문화시설이 경쟁적으로 확충되었다. 또한 정치, 경제분야와는 달리 문화 분야에서는 과거의 규제와 통제에서 지원과 조장 위주로의 정책적 변화가 점차 가시화되기 시작하여, 문화의 자율적 기능이 높아져 일정 정도 다양한 형태와 내용의 예술활동이 보장되었다. 예술성과 전문성을 살린다는 목표하에 정부가 주관하던 대한민국 연극제, 무용제, 국악제 등 전국규모의 문화예술행사가 민간에 이관되고, 국가와 지방 문화기관의 장을 상당부문 문화예술계 인사로 대체 임명하기도 하였다.
6공화국이 시작되면서 대선 공약사항으로 언급되었던 문화부 창설이 90년도에 이루어지고 정부내 장관의 서열도 7위로 격상되었다. 문화예산은 2.7배 증가하였고 정부세출예산 대비율에 있어서는 0.29%에서 0.43%로 상승하게 되었다. 또한 이 시기에는 지난 20년간의 문화정책이 문화예술의 진흥을 위한 기반 조성과 확산에 치중한 반면에 90년대를 중심으로 수용자인 국민을 대상으로 정책 방향을 전환하였다. 즉, 제5공화국이 전국적인 대규모 문화시설의 조성과 지방문화의 육성을 통해 문화향수의 중요한 기반을 마련한 기간이었다면, 6공화국 기간은 이러한 기반을 바탕으로 문화의 생활화를 이루는데 문화정책의 초점을 두었다. 예술에 대한 직접지원방식으로는 예술창작 지원사업의 규모확대, 전문예술가 양성을 위한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설립, 창작공간의 확충, 예술의 해 제정과 해당 장르 집중 육성 등이 추진되었다.
1993년 김영삼정부 출범이후에는 민간 대기업을 중심으로 이익의 사회적 환원에 대한 도덕적 의무감이 싹트고 이것이 새로운 홍보전략으로서 기업이미지 제고에 기여하면서 문화에 대한 민간기업의 지원이 크게 증대하였다. 기업의 문화재단 설립이 붐을 이루고 순수예술 내지 대중문화에 대한 직접적인 참여나 후원이 활성화되어 기업의 문화지원이 점차 사회적 패턴의 하나로 정착되어, 94년 @한국기업메세나협의회#가 창립되기도 하였다.
국민의 정부는 10대 중점과제를 내세우고 있으나 특별한 변별성을 지니지는 못하고 있다. 단, 문화정책의 실효성 확보를 위한 각종 재원 마련을 추구한다는 점이 보다 현실적 시각인 듯한데, 국고 중 문화재원 1% 조 달성(2001년), 문예진흥기금 4,500억원조성(2002년), 문화산업진흥기금 5,000억
원(2003년) 등의 계획이 수립되었다. 그 실현가능성 여부를 떠나 국민의 정부 문화정책은 아직 진행중이므로 평가를 유보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이렇게 우리 문화정책을 간략히 살펴보면 그 역사의 한계성을 인식하지 않을 수 없다. 70년대 비로소 문예진흥법의 제정으로 문화입법이 시작되었고, 80년대에 들어와서야 문화투자가 확대되어 대규모 문화시설의 조성과 함께 국민의 문화향수 기회가 일정 부분 확대되었다. 정부에 의한 공산권 문예작품에 대한 대규모 해금조치나 각종 규제가 철폐되고 자유로운 예술창작의 기틀이 마련된 것은 80년대 말에야 가능했다. 결국 법적으로나 재원, 민주화의 기틀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 이제 채 20년도 되지 않은 짧은 기간임을 확인할 수 있다.
2. 우리의 공연예술현황
1) 역사적, 사회·문화적 환경
유럽권에서는 중세 이래로 문화 보호와 육성을 정부차원에서 추구해야 할 공적인 임무로 여겼다.
독일의 경우를 보면 연극문화는 18세기 이래로 교양연극으로 확립되었고, 공연예술기관을 교육장소라고 보는 전통이 생겨났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극장은 시민계급의 문화시설로서 진정한 팬들을 확보하고 있어서, 영상매체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관객은 극장으로부터 멀어지지 않는다. 영국의 경우도 런던 시내에만 약 삼백 여 군데의 공연장에서 최소한 백오십 편이 넘는 연극이 매일밤 무대에 오르며, 이렇게 다양한 작품들이 매일밤 관객을 극장으로 오게 한다. 프랑스의 경우는 기업화, 영리화된 대중·통속극이 국민의 정신을 피폐하게 만드는 사회 문제라고 판단하고 연극극장을 하나의 큰 교육기관으로 간주한 것이 1871년 5월이다.
그러면 우리의 현실을 보자 우리 국민의 대부분은 아직도 여가시간이 많지않다. 지금도 많은 직장인들은 저녁 7시가 되어도 퇴근하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더러의 예술공연참가에 있어서도 지금까지 초대권 등에 익숙해져 있어 예술에 대한 지출을 필수적인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 IMF 관리체제 이전(96. 7. 1∼97. 6. 30)에도 공연예술의 관람을 보면 연평균 관람횟수로는 연극 0.4회, 전통음악공연 0.3회, 클래식·오페라공연 0.2회, 무용공연 0.1회로 나타났다. 연극관람 횟수는 1회이상 관람한 사람이 20.2%이고 한 번도 관람한 적이 없는 사람이 79.8%로 나타났다. 무용공연의 경우 더욱 나빠서 1회이상 관람자는 4.0%이고 한번도 관람한 적이 없는 사람은 96.0%이다. 연극이나 무용 등 대부분 공연예술에 참가하는 사람은 국민의 10%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결론이다.
설상가상으로 IMF 이후에는 상황이 더욱 나빠졌는데, 연극공연은 0.4회에서 0.34회, 전통음악공연 0.3회에서 0.15회, 클래식·오페라 공연은 0.2회에서 0.18회, 무용공연은 0.1회에서 0.04회로 감소했고, 직접관람한 경험률은 연극 20.2%에서 17.2%로, 무용 4.1%에서 2.8%로 각각 감소했다.
이러한 통계자료가 나타내주는 것처럼, 우리의 공연예술계는 유럽의 시민사회전통은 커녕 대부분의 국민들에게 아직도 낯설고 불필요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는 것이다. 설문조사 결과 많은 사람이 여유가 생기면 공연예술을 관람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는 있지만 과연 이들을 어떠한 방법으로 텔레비전 앞에서 떼어놓을 수 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경제적 어려움은 실로 공연예술계에 커다란 타격이 아닐 수 없다.
2) 경제적 문제
공연예술의 감상이 일상화되어 있지 않은 우리 사회에서 경제적 어려움이 닥치면 문화생활비는 당연히 가장 먼저 줄이거나 없애야 하는 소비지출 항목으로 간주된다. 정부 역시 마찬가지로 문화예술부문 보다는 직접적인 민생 해결을 위한 지출을 늘리는 데 역점을 둘 수밖에 없고, 이를 탓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이는 특별히 우리만이 겪는 일도 아니다. 미국의 경우도 60년대 후반부터 지속적인 성장을 누려오다가 최근들어 관객기반의 감소, 기부금의 축소로 인한 재정난, 정치적 보수화로 인한 지원정책의 변화, 경영상의 문제점 등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 통일 이후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독일의 경우도 1993년 베를린의 쉴러극장(Schiller Theater)이 폐관되기도 했다.
오늘날 경제상황에서 정부지원 문화체계는 원하든 원치 않든 대규모 구조조정 가능성에 직면해 있다. 어떻게 하느냐가 문제이다. 독일의 공공문화예술기관 경영인들은 정부의 잔디깎는 기계 원칙을 반대하고 있다. 일률적인 제재나 감축이 아닌 공연예술의 질과 영향에 대한 정확한 평가후에 선별적으로 경영의 합리화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많은 돈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고선 운영할 수가 없다.'는 말은 어리석은 말이다. 여러분은 '나는 이렇게나 많이 가지고 있다. 이제 이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고 말해야 한다."고 독일 알테 오퍼(Alte Oper)의 책임자인 미카엘 혹스(Michael Hocks)는 말한다. 알테오퍼는 최고 400명이었던 직원을 최근 30명으로 줄였다. 문화예술은 공공재적 성격을 지니고 있으므로 무조건 지켜져야 한다는 단순한 생각은 유럽에서조차 약화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보다 슬기롭게 예술의 질을 유지하면서 경제성을 획득하는 원칙이 필요한 시기이다.
3) 정책의 문제
앞에서의 문화정책개괄에서도 살펴보았지만 우리 문화계는 지나치게 관제구조였다. 일관된 정책은 찾아 보기 어렵고, 정부의 이념이나 정책의지에 의해 좌우되었다. 직접적인 정부 지원금으로 예술계를 운영하다 보니 국립기관 외에는 예술계가 없었고, 그나마 공무원의 일방적인 지시에 의한 운영으로 창조적 의견을 수렴하는데 한계가 드러났다.
게다가 정치·경제논리가 우선되고 문화예술에 대한 의지도 희박하여 간접적인 정부 지원 즉, 세금혜택 등도 추진되지 못하고 있다. 공연예술에 투자 또는 후원하는 금액에 대한 손비처리 등 가장 기본적인 제도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특별법인 또는 문예진흥기금을 경유해 지원하는 일정 부분에 대해서만 손비처리가 가능한데, 이는 지극히 부분적이다. 또한 공연예술로 발생하는 수입에 대한 세금감면도 무수히 주장되었지만 전혀 실현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문예진흥기금 모금도 공연의 규모나 성격에 관계없이 거의 일률적으로 세를 부가하다 보니 영세한 소극장, 극단을 자연스럽게 탈세자, 범법자로 만들어버린다. 나아가 공연장을 짓거나 문화예술공간을 짓는 등 직접 공연예술에 투자하는 행위에 대한 제도적 배려는 기대하기 어렵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금 문화에 경제논리가 도입되고 아무런 제도적 뒷받침 없이 수익성에 대한 주장으로 바뀌려 하자 예술인들 스스로 공영화를 주장하는 듯한 웃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놓여있다.
정부가 경제성을 추구하는 것은 거부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영국의 경우 이미 문화부를 문화미디어 체육부(Department of Culture, Media and Sport)로 고치고 제반 문화영역을 한데 모아 문화산업으로서의 경제효과를 극대화시키려는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은 그들과 우리의 상황이, 풍토가 너무나 다르다는 것이다. "우리 나라에 외국의 비가 내리고 있다"는 자조적인 말이 나오고 있을 정도로 우리에게는 문화예술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적 논리에 앞선 문화예술정책의 원칙을 확립하는 것이 시급하다.
4) 예술가의 문제
지금까지 예술가지원은 심사를 거쳐서 단체나 개인에게 사안별로 예산을 지원했다. 이 경우 지원심의위원들은 자신의 친분관계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지원신청자들도 지원방법과 절차, 로비에 능한 중견 단체들이 반복적으로 선정되는 불공평한 사례가 많아 그 내용에 대한 비판이 거세었다. 결국 예술가들 스스로 자신의 살을 갉아 먹고, 예술가들 스스로도 작은 이익 때문에 문화예술의 발전이라는 대의를 놓치는 결과를 낳았다.
또한 우리 예술에서의 가장 취약한 측면 중에 하나가 기초창작력이 약하다는 점이다. 젊은 예술인들의 탄탄한 실험정신도 아쉽지만 중견들의 멈추지 않는 예술혼이 절대 부족한 상황이다.
한 예로 97년과 98년 국립무용단과 서울예술단, 서울시립예술단 등이 오디션을 통해 기존 단원을 탈락시키자 예술인들이 많이 당황하였다. 오디션의 투명성도 문제이지만, 그보다는 자신의 예술적 역량을 정당하게 평가받는 것에 익숙하지 못한 예술인들이 그동안 타성에 젖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그동안 우리 공연예술계에서 직업예술단의 오디션 제도는 기껏해야 단원들의 등급조정을 위한 것일 뿐 통과의례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일상화되어 있었다. 이러한 유명무실한 오디션 제도 등 우리 나라 공연예술단들은 운영에 있어 경영마인드가 결핍되어 있을 뿐 아니라, 조직적 측면에 있어서도 불필요한 부분이 많았다.
이제 IMF체제에 적응하기 위해 각 공연단체나 예술가들의 의식전환이 요구되고 있다. 절약을 통해 제작예산을 줄이고, 보다 창의적인 예술작품 창작에도 매진하여, 부족한 환경을 탓하기 이전에 스스로 환경을 만들어 갈 수 있는 적극적인 자세가 요구된다.
3. 향후 공연예술정책의 방향과 전망
문화정책에는 여러 이슈들이 있다. 문화의 민주화, 자유주의 문화정책, 집단주의 정책, 정책의 보편적 가치나 선택적 가치 등이 그것이다. 어느 것을 선택하기 이전에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공연예술정책은 크게 창작-향수-매개의 3자 지원정책이 아닐 수 없다. 여기서 하나 더 언급한다면 창작과 향수를 연결하는 예술교육을 들 수 있을 것이다.
1) 창작 - 예술가 지원 정책
지금까지 정부의 예술지원은 문화부와 문예진흥원, 두 곳을 통해 이루어졌고 여기에는 특별한 차별성 없이 광범위한 분야에 대해 초점 없이, 일회성 행사에 나눠주기식 소액다건 방식으로 지원되었다. 특히 대표적 지원기구로서 문예진흥기금을 통한 지원에 대한 비판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연간 각 분야에 걸쳐 150개 이상의 사업에 지원하고 있는데, 일정한 목표의식이 없고 그 선정 과정에서도 의혹이 많다는 것이다. 그동안 비판이 많은 만큼 개선방안도 수 차례에 걸쳐 토론되고 발표되었고, 이제는 그 실천의 구체적인 방법이 문제이다.
여기서 언급하고자 하는 것은 심의기구의 운영이다.
지금까지 진흥기금 사용에서 가장 많이 지적되는 것이 지원의 전문화분야이다. 예술가들에 대한 폭넓고 지속적인 검토, 연구, 발굴, 지원과 사후심사가 유기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전문인력을 확보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쉽지 않다. 지금까지 심의위원들은 대부분 현직에 있는 이들로 시간적 여유가 많지 않을 뿐더러 단순히 지원심사만 하므로 책임감이 적다. 게다가 심의기준에 대해 객관적인 판단이 가능하게 하는 심의자료의 제공이 제약을 받고 있는데, 지원신청서의 엄청난 물량 때문에 지원심의가 지원신청서가 아닌 심의자료(지원신청서를 담당직원이 간략하게 요약한 자료)를 통해 이루어지므로 위의 심의 기준에 대한 판단에 제약을 받게 된다. 게다가 사후평가작업은 거의 이루어지지 못한 형편이다. 올해부터 예술적 성취도, 목적달성도 등 전문평가단의 평가(질적평가, 60%)와 예산집행 등 외형적 성과에 대한 내부직원의 평가(행정평가, 40%)로 사후 심의를 하고, 평가결과는 차기 연도 심의에 반영한다는 개선안이 나와있기는 하지만 현재의 조건으로는 그것조차 그리 만만한 작업이 아닐 것이다.
지금 문예진흥원의 형편을 보면 분야별로 1∼2명의 담당자가 그 많은 행정처리와 함께 이를 수행하기는 곤란한 형편이다. 게다가 예산삭감, 구조조정의 찬바람 속에서 전문인력을 따로 채용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단기적인 대체방법으로 교수들의 파견근무를 고려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는 부처간의 협의와 대학의 협조를 얻어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지만 추진해볼 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예술지원이 긍정적으로 평가받기 위해서는 결국 돈은 잘 써야 한다. 쓰고도 욕을 먹는 일처럼 어리석은 것은 없다. 또한 지원금액과 지원건수가 충분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공연예술지원정책이 올바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적은 금액이라도 정확한 목표와 방법으로 정확하게 집행될 때 액수보다 몇 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것이다.
2) 향수 - 관객직접지원정책
문화향수자 직접지원의 한 방법으로 91년 시작되었던 사랑티켓이 좋은 반응을 얻었고 정부의 공연예술지원정책과 맞물려 98년부터 확대 실시되었다. 작년에는 5∼6월간 2만장, 10∼12월에 6만장이 추가되어 총 8만장이 발행되었을 뿐 아니라, 올해에는 지난 2월 20일부터 연중 내내 총 10만장이 발행될 계획이다. 이는 연극계의 기대를 충분히 수용한 것은 아니지만 많은 부분 공연예술계의 불황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 예측된다.
그러나 이러한 긍정적인 반응에도 불구하고 부정적인 견해도 없지 않아, 빈익빈 부익부의 결과를 창출할 수 있고, 예술작품의 지나친 상업화라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염려가 있다. 또한 엄격한 심사기준 없이 신청한 협회회원단체 모두에게 이 혜택이 주어져 수준 낮은 연극에까지 지원금이 분산되는 부작용도 없지 않다. 이에 대한 보완책으로 좋은공연만들기협의회가 발족되어 이후로는 심사기준을 보다 엄격하게 하고자 하고 있으며, 한편에서는 제도 자체의 개선방안에 관한 연구가 추진되고 있다. 이후 공연예술인들의 적극적인 의견개진과 참여를 통해 보다 안정되고 보다 확대된 간접 지원정책으로 자리매김하는 일이 남아있다.
3) 예술교육
공연예술의 교육은 미래의 잠재관객 확보이기도 하고 보다 넓은 의미에서 보면 미래사회를 위한 창조적인 인재 양성을 이루는 것이다. 지난 1997년 예술·인문학 대통령위원회에서 발간한 창조적인 미국(Creative America)에서는 $우리가 의미있는 예술교육을 하지 않는다면, 생활속에서 예술을 향유할 가능성 있는 세대를 소멸시키는 것이며, 우리의 문화제도는 내일의 수용자, 자원봉사자, 기부자 개발에 있어서 중대한 도전에 직면할 것이다.*라고 발표한 바도 있다.
우리 역시 이러한 예술교육의 중요성이 그동안 인식되지 못한 것은 아니었으나, 교육부와의 협의가 원활하지 않아 그 추진은 거의 이루어지지 못한 형편이다. 이에 대한 정부의 지속적인 정책의 일관성이 요구되며, 한편으로는 문화예술기관들이 이러한 기능을 부분적으로 담당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 먼저 극장이 교육적이며, 문화적인 프로그램을 후원하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다. 이로써 극장은 지역사회에 일정 정도 역할을 할 수 있고, 이는 청소년,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을 통해 국민의 문화 향수 능력을 높이는 일이며, 동시에 예술 경영적 측면에서의 관객개발을 위한 필수적인 전제가 되기도 한다.
사회 교육적 기능을 달성하고 예술을 홍보, 선전하기 위한 프로그램으로는 링컨센터의 <프리 콘서트(Pre-concert)>, <라이브 프롬 링컨센터(Live from Lincoln Center)>, 워커아트센터의 <교실과 연결된 관람(Classroom Connections Tours)>, 영국국립극장의 무대견학(backstage tour) 프로그램과
같이 교육과의 연계선 상의 프로그램을 찾아 볼 수 있다. 특히 초·중·고등학교와 연대를 이루어 그들에게 문화공간을 제공하여, 그들이 극장을 자신들의 공간으로 인식하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나아가서는 창작과 비평 등 창의적 활동이 활발해질 수 있도록 건강한 동호인들의 모임, 비평워크숍 등 성인대상 프로그램도 고려해 볼 수 있다.
4) 매개-공연장지원
정부는 이제 문화시설물을 민간화하겠다는 원칙을 세우고 있다. 이는 선진국이 정부의 개입 없이 전문적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운영의 유연성을 지니고 있는 것을 모범으로 한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의 공연장은 관료체제의 역작용을 뚜렷이 드러냈다.
공공단체가 갖는 관료주의적 경영형태의 비효율성에 의해 시장경제의 이윤동기원칙을 따르지 못하여 과투자 과고용으로 대표되는 방만한 경영을 초래하였다. 이밖에도 정부의 과잉규제 및 통제로 인해 일어나는 비효율성 역시 부인할 수 없다. 그밖에도 부적당한 전문가에 대한 프로그램 배정, 전문적·이념적 사기의 부진, 연계성 미흡, 구조의 지나친 복잡성 등이 지적되고 있다.
이러한 관료제 즉 공무원의 조직구조나 행정구조는 예술적 순발력을 전혀 따라오지 못하기 때문에 극장운영에 적합하지 않고 문화예술발전에 장애가 된다. 또한 극장의 인력 관리만 하더라도 공무원의 보직순환 등의 관례는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고, 이렇게 파견된 공무원들 조차 잦은 교체로 문제가 되고 있다. 또한 예산의 집행문제도 문제점 중 하나인데, 극장의 프로그램 기획제작이 최소 1, 2년 전에 이루어져야 하는데, 지금의 정부 조직 체계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이러한 기본적인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민간위탁(혹자는 사회화라고 표현하기도 한다)의 원칙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앞에서도 언급되었듯이 문화적 풍토가 다른 우리의 상황에서 이는 쉬운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우선적인 것은 일정 정도의 안정된 재정확보와 경영전문화, 전문공연장화이다. 먼저 극장을 규모, 예술적 성격이나 목적, 운영 형태 등에 따라 분류하고, 차별 지원하는 것이다. 규모가 크고 화려하며 상업적인 공연이 가능한 극장, 순수 문예적 작품을 공연하는 극장, 작고 실험적인 공연을 주로 하는 소극장으로 구분하여 각기 다른 지원정책을 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