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날 전역을 하던 자리에서 전임 사단장 김봉수 장군은 무척 애석해 했다. “제27번 시추공은 내가 재임했을 때 시추 했던 곳인데....” 실제로 제27번 시추공은 분명 전임 김봉수 장군의 재임 중에 뚫린 것이었다. 그러나 그때는 그 파이프가 땅굴로부터 겨우 한 뼘의 오차로 벗어나 있었다. 그러니 별다른 징후가 나타날 리가 없었다. 굴착 음을 듣고서 북괴군도 작업을 중지하고 있었으므로 이상 음이 전파되거나 감지될 턱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제27번 파이프가 묻힌 부분이 좁은 것을 알아낸 북괴군들이 그 목처럼 좁은 곳을 넓힐 셈으로 다이너마이트를 장전해 폭파했다. 그 폭파 때문에 제27번 파이프에 채워져 있는 물줄기가 뿜어 올랐던 것이다.
더구나 그날 사단을 비우고 회의에 참석해 있었다. 바로 그 점이 (제3땅굴)의 발견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비록 최고 책임자가 사단을 비웠어도 한날 보초병들까지 자신의 소임 완수에 얼마나 지극한 충성심으로 철저히 임해있었던 지를 보여준 산 표본이었기 때문이다. 장군은 틈만 나면 훈시했다. “우리 제1사단은 수도 서울 방어의 최전선 요충지이다. 가장 중요한 시기에 가장 중요한 장소에서 자장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천하 제1사단이다. 따라서 우리 사단의 모든 장병들은 우리 제1사단의 영역과 초소를 우리의 안방처럼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그 훈시는 제3땅굴을 발견해 낸 지금 그대로 실증 되었다.
제3땅굴을 발견하고 그것을 세상에 공개하고 나서도 장군은 사단 장병들에게 긴장을 조금도 늦추지 않았다. 그로부터 한 달쯤 뒤인 11월30일, 장군 자신이 설계하여 건립한 (멸공관)이 준공되었다. 제1사단에는 많은 외국 손님들이 줄을 이었다. 휴전선을 경계로 남과 북이 서로 대치해 있는 긴박한 사항을 이해하려는 관심 있는 이들은 누구나 판문점을 둘려보고 이곳 제1사단을 방문했다. 제1사단의 온 지역을 다 둘려 보고나면 사람들은 그제야 한국이 놓인 비극적 상황과 안보상태, 그리고 그 땅위로 전류처럼 흐르는 일촉즉발의 긴장을 쉽사리 느낄 수 있었다.
다녀간 미국의 저명한 인사들도 수없이 많다.---브라운 미 국방장관, 샘넌, 코헨 미 상원의원. 베시, 새뮤얼, 험프리, 골드 워트, 브레진스키, 머스키, 그리고 미 하원의원 등등. “이것을 보십시오.” 현장안내를 맡은 정00 중령은 유창한 영어로 내방객들에게 설명했다.(멸공관)안에서였다. 그는 지휘봉으로 고무 제품의 잠수용 물갈퀴를 가리켰다. “이두 가지는 모두 일본제와 독일제입니다. 지난번에 사살된 대남침투간첩들로부터 노획한 장비지요. 귀국(貴國)에서 생산된 제품으로 그들은 무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제품에는 분명(made in japan) 또는 (made in Gemany) 라고 적혀 있었다. 백 마디 설명보다 단 한 번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 더 설득력을 지니고 있음을 덧붙여 말할 필요조차 없는 일이었다. 바로 그것이 사단장 전 장군의 빈틈없는 착안이었다. 그래서 그는 (멸공관)의 건립을 서둘렀던 것이다. (멸공관)에는 우리 민족의 역사적 수난을 설명하고, 그 수난의 역사를 어떻게 극복해 왔는지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민족투쟁사실(民族鬪爭史室)을 비롯하여 제1사단의 약사(略史)를 흝어보는 독립된 전시실과 그 밖의 많은 자료가 전시되어있다.
제1사단 지역의 보안부대장 임00 중령은 이렇게 회상한다. “보고사항이 있어 장군 앞에 나가면, 장군께서는 꼭 두 번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찬찬히 흝어 보십시다. 결재는 서류의 문장(文章)으로서가 아니라 보고자의 자세로 가늠하셨지요. 장군의 냉엄한 표정을 보고 있으면 허위보고 따위를 결코 할 수 가없습니다. 그러나 하시는 말씀은 늘 너무도 자상하고 다정 하십니다. 장군께서는 보고자의 보고내용에 조금이라도 잘못된 거짓이 섞여 있지 않은지 저울질해 보시는 것 같았습니다. 다른 이야기를 하듯 슬쩍 던지는 물음에 대답하다보면 처음에 의도했던 보고내용을 뛰어넘어 결국은 열배나 되는 보고를 마치는 셈이 되어 버립니다.”
임00 중령은 보안사령부의 상항실장을 지냈었다. 전장군은 긴요하고 시간을 지체할 수 없는 보고는 언제 어느 때라도 흔쾌히 받아드리는 자세로 일관했다. 다른 안일한 지휘관들이 좀처럼 흉내 낼 수 없는 일이었다. 병사를 자신의 자식처럼 아꼈다는 이야기는 앞에서도 잠깐 비쳤지만, 특히 全장군이 직접 마련해준 초소 근무병들의(털귀가리개)는 그의 이러한 애정을 단적으로 증명해 보이는 일화 가운데 하나다.
첫댓글 이렇게 정성을 다하여 글을 싣는 천마단장님게 고마움을 느낍니다.
가막살님 그동안 잘 지내고 계시지요? 환절기 건강 관리 잘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