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밥반찬을 마련할 경우 생선 요리는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다. 돼지고기나 쇠고기야 별다른 재주가 없어도 냅다 구워서 상추에 싸 먹으면 그만이지만 생선이라는 놈은 물에 씻고 내장을 가르는 등 복잡다단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렇다 보니 백수나 자취생의 경우 생선에 많은 DHA나 불포화 지방산과는 담을 쌓고 먹을 수 있는 물고기는 그저 멸치뿐이라고 단념해 버린다. 그러나 멸치는 아무리 뼈대있는 생선이라도 살과 뼈와 분리하기 힘든 종자다. 멸치살을 골라 먹다가는 신경성 위장염에 걸릴 확률이 더 높다. 또한 멸치는 애석하게도 생선이지만 생선 맛을 내지는 못하는 비극적인 어종일 뿐이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는 아주 오래전부터 손질할 필요도 없고 먹을 때 뼈를 발라낼 필요도 없는 생선이 존재해 왔다. 바로 고등어 통조림이다. 혜성처럼 등장한 참치 통조림에게 지존의 자리를 내주기는 했지만 언제나 마트나 슈퍼 한 구석에 건빵의 별사탕처럼 존재하는 생선 통조림계의 양대 산맥. 그러나 고등어 통조림은 애석하게도 참치 통조림과는 달리 뜯어서 바로 먹거나 김치 넣고 살짝만 볶아줘도 훌륭한 찬거리가 되지 못하는 운명을 타고 난 까닭에 저렴한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먼지만 뒤집어쓰고 있기 십상이다. 하지만 이제 이 통조림 계의 풍운아에게 온정의 손길을 내밀 때가 왔다. 먼지를 말끔하게 씻어내고 과감하게 고등어 통조림을 품어 보자.
우선 재료를 고른다. 고등어 통조림을 1캔 산다. 고등어 통조림 제조사는 세개 정도다. 전통의 펭귄보다 동원 고등어 통조림이 더 비싸다. 하지만 가격은 50원 차이이므로 동원 참치를 신뢰하는 사람은 동원표 고등어를 선택한다. 고등어 통조림은 역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펭귄이다 싶은 사람은 펭귄표 고등어를 선택하면 된다. 무 1개와 양파, 고추, 다시마도 각각 1팩씩 구입한다.
만약 백수의 경제 식단대로 착실히 조미료를 사 모았다면 더 이상 재료를 구입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여전히 머릿속으로 맛만 그려본 자라면 앞서 언급한 나머지 재료를 빠짐없이 구입해야 한다. 몇 번이나 강조하지만 한 번 살 때 제대로 갖춰두면 다음에 돈 들 일이 거의 없으니 웬만하면 양념과 김치는 장만해두자. 이 때 주의할 점은 양념을 지나치게 넉넉하게 살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동해물과 백두산만 마르고 닳는 것이 아니다. 냉장고에 오래 놓아두면 고추장도 간장도 마른다. 따라서 항상 최소의 분량만 산다는 생각으로 양념을 구입해야 한다.
재료를 다 구입했다면 가격을 따져 보자. 고등어 통조림 1400원, 무 1000원, 양파 1팩 1500원, 고추 1팩 1000원, 다시마 1팩 1000원으로 합계 5900원이 되겠다. 이 정도면 4인분을 만들 수 있으니 대충 따져도 1500원에 한 끼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반찬을 만드는 셈이다. 다시마라는 훌륭한 비타민 공급처가 있으므로 별도의 밑반찬 없이도 한 그릇을 뚝딱 비울 수 있다. 확실히 간편하고 저렴한 식단 되겠다.
그럼 본격적으로 만들어 보자. 우선 고등어 통조림을 냄비에 붓는다. 김치도 함께 넣고 3분 정도 볶아 준다. 이렇게 볶아야 김치와 고등어 맛이 제대로 어우러진다. 이때 주의해야 할 점은 지나치게 힘을 줘 볶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고등어 살이 다 부서지면 나중에 고등어를 다시마위에 올려 싸 먹기가 대략 난감해진다.
다 볶았으면 불을 끄고 식힌다. 그 사이 나머지 재료들을 다듬는다. 무와 양파는 껍질을 깎아 5mm정도의 두께로 썰어 놓는다. 고추는 굳이 씨를 빼는 수고를 할 필요 없이 대충 썬다. 어차피 혼자 먹을 것이므로 너무 모양에 신경쓸 필요는 없다. 사실 푹 삶아지면 모양 유지하기도 힘들다. 다시마는 물에 깨끗하게 씻은 뒤 물기를 잘 짜서 접시나 채반 위에 담아 놓는다.
다음으로 양념장을 만든다. 고추장 2숟가락, 다진 마늘 1숟가락, 간장 3숟가락, 고추가루 2숟가락을 섞기만 하면 된다. 굳이 양념장으로 만들기 귀찮다면 그냥 조리하는 과정에 분량만큼 넣어서 잘 섞어줘도 된다. 다만 양념을 넣을 때마다 섞다 보면 고등어살이 부서질 위험이 있기 때문에 양념장을 만들어 한꺼번에 붓는 것이 좋다.
모든 재료의 손질이 끝났으면 무를 제일 아래에 깔고 다시마를 제외한 나머지 재료들을 모두 냄비에 쓸어 담는다. 그런 다음 재료가 살짝 잠길 정도로 물을 자작하게 부어 준다. 다음 요령은 꽁치 통조림 조림과 같다. 센 불에서 국물이 끓기 시작하면 중불로 맞춰 원래 재료의 양만큼 물이 졸아들 때까지 조리면 된다.
조리가 다 끝나면 맛있게 먹는다. 다시마를 손바닥 위에 올리고 그 위에 밥 한 숟가락을 얹은 다음 간이 잘 밴 고등어와 김치 한 조각을 올려서 예쁘게 쌈을 싼다. 이렇게 먹으면 다시마와 고등어의 향이 멋지게 어우러진다. 바다를 통째로 들이마신 느낌이라면 너무 자화자찬일까.
재료: 고등어 통조림 1캔, 김치 300그g, 무 반개, 양파 1개, 고추 4개, 다시마 1팩, 고추장 2숟가락, 다진 마늘 1숟가락, 간장 3숟가락, 고추가루 2숟가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