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3장 32절 – 38절
아버지의 마음을 잘 보여주는 것 중 하나는 하나님이 만드신 가시고기라고 하는 물고기입니다. 이 고기의 수컷은 새끼들을 위해서 자신을 모든 것을 내어 줍니다. 자식들은 아비고기의 몸을 먹으며 자라납니다. 이번 주는 고난주간입니다. 예수님의 고난당하심은 당신이 잘못해서 그것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고난당하심을 보던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께 특별히 잘못을 해서 그 벌로 십자가형을 당하거나 매를 맞았다고 여겼습니다. 성경 이사야선지자의 증거한 말씀에 또는 시편말씀에 아무리 우리의 죄를 위해 무죄한 분이 채찍을 맞으시고 십자가를 지실 것이라고 말씀하고 그것을 달달 외어도 하나님이 눈과 귀를 멀게 하시고 깨닫는 마음을 주시지 않으시면 그져 까만 것은 글자이고 하얀 것은 종이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는 사람들은 누구라도 성령님께서 그 읽는 말씀의 본래적인 의미와 그 말씀을 통해 지금 읽는 자에게 주시는 말씀을 깨닫고 들을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어떤 자들은 성경읽는 것을 자기의 의로 여기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것도 역시 십자가의 원수입니다.. 성경을 가까이 하고 늘 읽어야 하지만 그 행위가 자신에게 의로움의 근거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골고다 즉 해골동산을 보게 됩니다. 로마인들은 죄수들을 십자가에 못박되 어떤 유대인들이라도 가장 잘 볼 수 있도록 되어 있는 장소에서 십자가 형을 하였습니다. 이는 유대인들에게 반로마적인 생각이나 행동을 못하게 억제하는 의도였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골고다 언덕에 가는 두강도는 열심당원들로 로마와 그 제국에 협조하는 자들을 살인하다가 붙잡혀 십자가형을 받게 되었습니다. 당시 십자가형은 반로마적인 행위의 증거였습니다. 당시 제사장들을 비롯한 산헤드린 공의회는 예수님을 스스로 유대왕이라고 칭한다고 해서 로마황제의 권위에 도전하는 반로마적인 죄목으로 고소한 것입니다. 유대총독 빌라도는 예수님이 반로마적인 행위 즉 황제의 권위에 도전하는 어떤 행위도 하지 않았음을 알았지만 유대인들의 반란이 두려워 십자가형을 선고한 것입니다.
범죄한 아담의 후손들을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 제물이 되신 예수님을 바라보는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희롱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종려주일에 예수님이 초자연적인 능력을 발휘해서 반로마적은 봉기에 앞장을 서시기를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이루시고자 하는 나라는 유대인들이 갈망하는 그런 나라가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추구하는 바가 전혀 달랐습니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교회나아와 예배를 드리지만 그 추구하는 바가 똑같지는 않습니다. 어떤 자들은 하나님나라를 추구하지만 또 어떤 자들은 그 공로를 통해 세상에서 잘되는 복을 바라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언제나 충돌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따라 하나님나라를 추구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을 희롱하는 유대인들과 군인들을 보면서 기도를 하십니다. 바로 그들이 자신들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위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 주었다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사단에게 쓰임받는 행위였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예수님을 희롱한다고 여겼지만 실재로 그들은 하나님이 보내신 그들의 메시야를 희롱하는 것입니다. 말세지말이 되어지면 사람들이 하나님을 위하여 행한다고 여기면서 실재로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가장 경건해 보이는 자가 가장 소경된 인도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악한 인도자나 군중심리에 조종당하는 대중들이 되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