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대를 아는 사람만이 그 시대를 바꿀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가 구름이 서쪽에서 일어나는 것을 보고 소나기가 오겠다고 하면 그대로 된다. 또 남풍이 불면 날씨가 덥겠다고 하는데 그것도 그렇게 된다. ‘외식하는 자들아, 너희가 땅과 하늘의 기상은 분별할 줄 알면서 왜 이 시대는 분별하지 못하느냐?’ (눅 12:54-56) 우리 선조들은 개구리가 울 때나 제비가 땅을 가까이 날 때에는 비가 올 것을 알아 미리 준비하는 지혜를 가지고 살았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와 같이 내일을 준비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사는 이 시대를 잘 알아야 합니다. 오늘우리는 가치관의 혼란으로 말미암아 혼돈속에서 온갖 범죄와 타락이 만연하여 우리로 하여금 절망감을 느끼게 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 시대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이 시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롬 12:2)하며 살라고 가르치십니다. 부산 새중앙교회는 여러분에게 꿈과 미래와 소망으로 인도하는 징검다리가 될 것입니다. 담임목사 최홍준 드림”
이상은 새중앙교회 홈페이지에 올라있는 담임 목사의 인사말이다.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기를 원하는 교회와 목사의 친근함이 그대로 배어 나오는 인사이다. 최홍준 목사(부산새중앙교회)합동신학교를 1회로 졸업한 이래로 서울 사랑의 교회에서 부교역자로 시무중 부산새중앙교회에 87년도에 부임하여 당신 약 400여명이던 성도들을 하나님의 은혜로 철저한 제자훈련을 기초로 하여 97년 현재 2000여명 이상의 성도들이 모이는 교회로 성장시켰다. 부산새중앙교회는 특히 2세 신앙교육을 위해 주일학교 부서의 사역자를 전임배치, 장애아 선교를 위해 남다른 애정을 쏟고 있으며 열린 예배를 위해 찬양과 말씀이 어우러진 살아있는 예배를 지향하고 있다.
제자훈련을 뿌리내리게 하는 10가지 원리
경험담을 자연스럽게 말하라면 부담이 없겠으나 무슨 원리를 말한다는 것은 무척 조심스럽다. 지난 10년, 주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전통 기성교회 일반 목회에서 제자훈련을 통하여 체질개선에 성공한 교회로 알려지다 보니 이와 같은 주제의 글까지 부탁받게 도된 것같다. 마음에 부담이 있 지만 사랑하는 동역자들과 마음을 나누고 조금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그간의 경험 들을 토대로 몇 가지 원리를 기술해 보려고 한다.
성경에 나타나는 교회상을 그리며 또한 오늘 이 시대에 꼭 있어야 할 교회를 만들어 보고자 하 는 목회자의 거룩한 욕망은 목회자라면 다 있을 줄 안다. 이 거룩한 욕망(?)을 충족시키기를 원한 다면 제자훈련 목회를 선택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람을 길러내고 변화시키는 일이야말로 우리 목회 의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결코 선택일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 사역이 뿌리를 든든히 내리기 위해서는 시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시작이 순조롭게 되면 시작이 반이라 하지 않았는가? 그러므로 마음에 소원으로만 품고 있을 것이 아니라 첫걸음을 내 딛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전통적인 기성교회에서 제자훈련을 시작하고 성공적으로 정착시 킨다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여러 가지 장애물들이 앞을 가로막고 나설 것이다. 그렇 다면 이런 장애물들을 극복하고 보다 효과적으로 기성교회에 제자훈련을 든든히 뿌리내리게 할 방법은 없을까? 다음의 열가지 원리들이 도움이 되리라 생각된다.
목회철학을 정립하라
한 마디로 보호목회를 할 것인가 훈련목회를 할 것인가를 선택해야 한다는 말이다. 물론 훈련목 회를 선택했다면 목회철학에 일치하는 전략이 제자도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될 것이고 자연 히 제자훈련이라는 방법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성도를 온전케 하여 궁극적으 로 세상을 변화시킬 제자를 만드는 길만이 목회의 생명인 동시에 교회가 해야 할 일이며 오늘의 교회를 갱신할 수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일을 위해서 목회철학을 다시 한 번 점검하고 확립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철학이 결여 된 행동은 언제 중단될 지 모른다. 특히 제자훈련 사역은 지금까지 우리가 해오던 일반목회의 방 향에서 그 강조점이 상당히 수정되어야만 하는 여러 가지 요소가 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전통기 성교회의 목회 토양에서 잘 자라지 못하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 이것에 대해 미리 겁을 먹을 것은 없으나 단단히 각오는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가장 큰 장애는 목회자의 목회철확 부재라는 사실 은 그간의 경험과 사례들을 통해 확인하는 바다. 그러므로 목회철학이 든든히 정립되어 있으면 어 떤 장애물이라도 지혜롭게 극복할 수 있으리 믿는다.
목회 토양을 올바로 진단하고 처방하라.
성도들의 영적 상태는 어떠한지? 성도들의 지적 수준은 어느 정도인지? 성도들의 경제적 형편 은 어떠한지? 등등 교회의 상황과 토양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 그들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위로를 해야 할 것이고 격려를 아끼지 않아야 하며 그들에게 용기를 주어야 할 것이 다. 권면과 책망은 언제나 뒤로 미루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이해하시고 기다리시며 인내하 심같이 그들 수준에 내려가서 가족도, 자식도, 부모도 이해해 주지 않지만 목사님은 이해해 주시 리라는 확신을 성도들에게 심어 줄 수 있어야 마음을 열 것이다.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목회자가 신뢰를 회복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목회철학은 동일하지만 우리가 사역하는 목회 토양, 교회 의 체질은 매우 다양하다. 자신이 목회하고 있는 교회의 체질과 영적 상태등을 정확히 분석하고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일은 치명적인 실수를 방지하며 시행착오를 줄여줄 수 있을 것이다.
목회철학에 입각한 교회론을 증거하라
위로와 격려가 선행되었다면 도전이 있어야 할 것이다. 바울 사도는 그의 서신에 격려를 했을 때 반드시 도전이 따랐다. "성도는 어떤 존재인가?" 하는 성도 자신의 자아 정립이 필요하다. 그 리고 교회를 천국가는 대기소 정도로 이해하고 있지 않는가? 교회가 왜 존재하는가?라고 하는 교 회의 존재 이유를 성도들이 알아 들을 수 있는 수준에서 가르쳐야 할 것이다.
교회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존재하고 세상을 위해 존재하려 한다면 교회는 건강해야 할 것 이 아닌가? 우리 교회가 건강하다고 생각하는가? 교회의 사명을 다하고 있다고 보는가? 거기에 얼마나 가까운가? 이런 교회를 위해서 얼마나 준비 되었는가?하는 것을 계속적으로 가르쳐야 할 것이다.
훈련의 필요성을 역설하라.
왜 교회가 힘을 상실하고 있는가? 성도들이 세상에서 왜 능력을 잃어 버렸는가? 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닌가?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대부분 논술에 취약점을 가지고 있고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나타내는 것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이것은 훈련 부족이다. 우리나라 청소년들과 운동선수들의 인터뷰하는 모습을 보면서 미국의 NBA농구, US OPEN 테니스나 미식 축구 선수들이 우승하고 방송 인터뷰 할 때 비교해 본 일이 있는가? 얼마나 많은 차이가 나는지 모른다. 그들은 자신 의 소감과 감정을 너무나 잘 표현한다. 아나운서가 질문하기 바쁘게 답변을 유창하게 하고 있지 않는가? 그들은 자라면서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줄 아는 훈련을 생활화하면서 자란 아이들이다. 이만큼 훈련받는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교육은 훈련과는 다르다. 그 차이는 보이스카웃 훈련을 생각해보면 될 것이다. 성도들에게 세상에서 성도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도전하라. 훈련 의 필요성을 도전하라. 그렇게 함으로써 훈련을 받아야하겠다는 동기를 부여해야한다.
장로 그룹부터 제자훈련 하라.
교회 생활이 오래되고 익숙한 중직자 그룹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결코 아닐 것이다. 그러나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제자훈련이 뿌리 내릴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 분들을 설득하는데 지혜를 모아야한다. 본인의 경우 연세나 신앙경륜이 훨씬 많은 장로님들에 게 함께 성장을 위해 같이 말씀을 중심으로 공부하자고 한 것이 장로님들의 공감대를 얻을 수 있었다. 내가 당신들을 훈련시키겠다는 의도가 비쳐진다면 어느 누가 동참하겠는가? 사실인즉 목사도 성장해야 하지 않는가? 주님을 모시고 말씀을 공부하며 지켜 행하는 적용을 함께 할 때에 목사와 성도가 같이 성장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당회원들을 비롯한 교회의 핵심 중직자들부터 제자훈련을 시작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시작했다면 첫 그룹에 사활을 걸어라.
첫 단추를 바로 끼어야 한다고 했다. 첫 번이 실패하면 다시 회복하기란 너무나 힘들 것이다. 설교식의 소그룹을 운영해서는 실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귀납적인 방법을 적극 활용하여야한 다. 정석을 도입하라. 시험적으로 한번 해보겠다는 생각으로는 안된다. 1기 제자반이 흐지부지 열매없이 끝나버린다면 성도들은 제자훈련에 대해 매력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1기 훈련생들 이 변화되고 생명력 있는 삶을 살아간다면 2기를 시작하기는 훨씬 쉬워질 것이다. 그러므로 목회자 는 첫 그룹을 중요히 여기고 거기에 사활을 걸어야한다.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목회자 자신부터 체질을 빠구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무엇이든지 끄는 힘이 있어야 한다. 사람들이 모이는 데 힘쓰도록 재미가 있어야 하고 영적으로 충족되어야 할 것이다.
목회 철학에 입각한 비젼을 제시하라.
성도를 훈련시켜 교회를 든든히 하려고 한다면 분명한 목적이 나타나야 한다. 교회의 기본 사명 인 예배를 갱신하고 세상을 향하여 선교와 미래의 일꾼을 키우는 일 , 그들(성도)의 자녀들에게 꿈을 제시하는 일들을 구체적으로 해야 할 것이다. 선교 일변도가 되어서도 안될 것이다. 교육과 훈련을 병행하여 성경적인 교회의 모습이 보여져야 할 것이다. 목적이 이끌어 가는 교회가 되어갈 때 제자훈련은 뿌리를 내려 갈 것이다.
아울러 제자훈련 제도권밖의 성도들을 포용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제자훈련은 소그룹으로 운영되는 특성상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없다. 또 마음에 원 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제자훈련에 임하지 못하는 성도들이 있을 수가 있다. 목회자는 그들로 하여금 소외감을 느끼게 만들어서는 안된다. 그들 역시 동일한 목회철학을 가지고 자신들의 다양 한 은사를 따라 배우고 또 일할 수 있는 사역의 장을 만들어줄 필요가 있다.
오늘날 네트워크 은사배치 사역이 관심을 끌고 있다. 학력이나 연령 때문에 제자훈련을 받지 못 한 성도들을 포용하는 것은 제자훈련을 뿌리내리게 하는데 큰 비중을 갖는다고 본다. 60세 이상 남녀 성도들을 위해서 마리아, 갈렙반을 운영하는 것, 예수 사랑 실천부의 활용 등이 있겠다.
훈련받지 않은 사람을 등용하지 말라.
교회안에 지도자들이 훈련되지 않았을 때 일어나는 문제는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먼저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즉, 동질감과 목회철학 면에서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재능이 있다 없다를 떠나서 하나님 중심, 교회중심 그리고 교역자 중심의 교회 운영을 해야 하는데 많은 문제를 어떻게 해결 할 것인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제자훈련을 받아야 주일학교 부감, 부장, 성가대 총무, 각분과 총무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제자훈련, 사역훈련, 순장을 하지 않으면 안수집사 공천도 받을 수 없는 분위기가 우리 부산 새 중앙교회 정서이다. 자연히 제자훈련을 선택할 수밖에 없지 않는가? 그래서 5년만 지나면 이 교회 에서 제자훈련을 받으면서 신앙생활을 계속할 것이냐 떠날 것인가를 선택하게 될 것이다. 아니면 교회의 중직자의 미련을 버리고 조용히 신앙생활해야 할 것이다. 이런 분들도 많이 계신다. 목회 자는 직분 중심으로 교회의 질서가 서는 것이 아니라 훈련에 의한 변화와 삶의 열매들로 교회의 영적인 질서가 재편되도록 유도해야한다.
감동을 주어라.
목사가 언제나 성령이 충만하고 언제나 은혜가 충만하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평생 주님을 의지하여 구해야 할 기도제목이며 목회자의 염원인 것이다. 그러나 목회자가 목회철학을 강조하고 목 적이 이끌어 가는 교회를 강조하기 위해 자신이 희생을 할 때 성도들은 감동을 받을 것이다. 자신 만을 챙기는 이기적인 삶은 결코 감동이 없다. 언제나 신선한 충격을 주는 목회자가 되겠다고 하 는 마음으로 자신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가꾸고 다듬어 나가라.
한국에는 전통있는 기성교회들이 많이 있다. 그리고 그 교회들이 한국교회사에 기여하고 또 지 역 사회에 이바지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 "전통"이라는 것이 교회가 변화와 갱신에 있어서 장애가 되었던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물론 그 "전통"은 놀라운 잠재력일 수도 있 다. 기로에 서 있는 기성교회들이 어디로 갈 것인지는 결국 하나님께서 세우신 목회자들에게 많은 부분 달려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제자훈련" 이야말로 시대를 넘어서서 교회를 건강하게 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살아있고 영향력 있는 교회로 만드는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믿는다. 분명한 목회철학을 가지고 먼저 제자훈련 사역을 경험한 동역자들과 정보를 나누면 훨씬 효과적으로 동 역자들의 교회에 제자훈련이 뿌리 내릴 수 있을 줄로 믿는다.
평신도 훈련
“부산새중앙교회는 평신도를 깨우는 교회입니다. 평신도가 살아있는 교회만이 진정한 교회의 모습을 지니고 있는 것이며, 평신도를 통한 전문사역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야만이 아름다운 교회입니다. 그런 점에서 철저히 제자훈련하는 교회요, 교육하는 교회인 것입니다. 목표는 성도 각자가 온전한 사람으로 성장하도록 돕는데 있습니다. 이를 위해 부산 새중앙교회는 몇가지 교육과 훈련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다락방
다락방이란 부산새중앙교회의 지역별 소그룹 모임을 일컫는 말입니다. 다락방은 잘 훈련되고 성숙한 순장에 의해 인도되며 교회가 우리 상황에 맞게 특별 제작한 소그룹 성경연구교재를 가지고 말씀을 함께 나누는 모임입니다. 이 모임을 통해 신앙성장에 필수적인 공동체에의 소속감과 인격적인 관계형성이 이루어집니다. 생각과 삶을 진솔하게 나누므로 그 구성원인 순원들 사이에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헌신하게 하는 아름다운 모임입니다.
제자반
제자훈련은 한 교역자가 10명 정도의 훈련생과 함께 신앙훈련을 하는 소수정예과정입니다. 이 과정을 통해서 편신도 지도자가 되기 위한 제자도를 함양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는 등록한 세례교인으로서 신청을 하고 각 교역자가 상담 후 입학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사역반
사역훈련반은 제자훈련반을 성실히 이수한 자들에게 평신도 지도자로서 교회와 이웃을 능력있게 섬길 수 있도록 마련된 일년간의 훈련과정입니다. 이 과정을 마친 분들에게는 다락방 순장이나 또는 다양한 영역에서 평신도 지도자로서 섬길 수 있게 됩니다.
순장반
순장반은 현재 다락방의 순장들을 담임목사님이 훈련시키는 과정입니다. 훈련시간 중 순장들 자체적인 웍샵시간도 있습니다. 순장들이 돌아가며 인도하고 토론함으로 다락방에서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상황들을 미리 점검하고 준비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합니다.
전도폭발훈련
전도폭발훈련은 기존의 많은 성도들이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달할 수 있도록 도우는 훈련입니다. 전후반기를 나누어 16주의 과정으로 실시되며 훈련자와 훈련생의 관계를 두어 서로 도우며 배울 수 있도록 해 줍니다.
크로스웨이
교회가 정하는 소정의 자격에 따라 지원할 수 있으며 1년간의 과정으로 신구약 성경의 전체개요를 배우게 됩니다. 주간반과 야간반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2시간 남짓 잘 분비된 교역자의 강의와 교재를 통해 교육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30.아름다운교회
“새로운 말씀의 영성으로 거듭난 목회”
김기홍 목사
(연세대학교, 장로회신학대학교,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미국 풀러신학교)
목사의 개인신상
필자는 1947년 7월 25일에 태어났다. 용산고등학교를 나와 성균관대학교를 다니는 동안 방황을 했고, 대학 2학년에 군대를 갔다왔으며 대학 3학년 여름방학, 그것도 생일에 중생을 경험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장로회 신학대학에 입학, 신학을 시작했다. 졸업후 1년반 가량을 전도사 훈련을 하고, ‘77년 텍사스크리스천대학 신학부에 가서 신학석사 학위를 받고, 드류대학 대학원에서 ’83년에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 뒤에 아세아연합신학대학에 교회사 교수로 부임해 교무처장, 대학원장, 박사원장 등을 역임했다. 도중에 사카고에서 공부하던 아내와 함께 시카고대학 신학부에 박사 이후 과정을 하였고, 휘튼대학의 빌리 그래함 세터에 초방교수로 있었다. 또한 풀러신학교 객원교수, 맥코믹신학교 연구교수를 지냈다.
월 평균도서량은 일반 서적이 10여 권 정도이고 전문서적은 논문을 쓸 때나, 강의 준비할 때 해당량 만큼 읽는다. 특별히 추천할 만한 한국어로 된 책 몇 권은 생명의 말씀사에서 나온 워치만 니의 [좌행참](니의 다른 책은 추천할 수 없다)으로 율법과 복음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또 노만 빈센트 필의 [행동과 신념의 사람](보이스사간)은 자신의 목표를 영상화하는 훈련을 시켜주고, [마켓팅 불변의 법칙](십일월출판사)은 판매하는 데 이미지가 얼마나 중요한지 말해준다. 어떻게 보면 전도도 세일즈와 같기 때문에 교회와 목회를 위한 좋은 이미지를 만드는데 도움이 된다.
성경은 장로회신학대학 다닐 때 하루에 30장씩 읽었고 방학 때는 아예 들어앉아 일주일에 한번 씩 읽었다. 하루 8시간이면 구약은 5일, 신약은 하루면 읽는다. 처음에는 몇번 읽는지 표시하는 재미로 읽었으나 열번 넘어가면서부터 신비한 깨달음과 경험을 많이 하게되었다. 그래서 30번 정도를 읽고 신학교를 졸업했다. 그 뒤에는 그만큼 열정적으로 읽을만한 시간을 얻지 못해 고작 10번 가량 더 읽었을까 싶다. 하지만 수요성경공부와 토요성경공부를 위해서 해당되는 부분을 집중적으로 연구해오고 있다.
성경연구 방법이란 그저 소설보듯 읽는 것이다. 성경의 유기적인 연결을 믿기 때문에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그냥 읽는다. 그러면 전체의 흐름이 잡히면서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일이 분명하게 잡힌다. 그 맥락에서 부분 부분을 읽어야 바른 이해가 온다. 강해설교 한다고 전체 흐름과 상관없이 그냥 읽으면 별로 유익이 없다. 무조건 많이 읽는 게 좋은 방법이다. 성경이 예수에 대해 말하는 것이라면 전체를 통해 그분을 잘 아는 게 중요하며, 그 다음에야 부분 부분에 제대로 보아지는 것이다. 설교는 쪼개는 게 아니라 모으는 것이며,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기도시간은 아침에 일어나서 30분 가량 하는데, 명상을 곁들인다. 명상이란 하나님이 새롭게 만들어주신 자신의 모습과 사명, 할일들을 생각하고 영상화하는 것이다. 저녁에도 15분 가량 같은 일을 한다. 그리고 하루 종일 일을 하면서 하나님과 대화하며 잠시 쉴때는 다시 명상을 한다. 이것이 대단히 큰 힘을 제공하며 필자의 자아형성을 도와준다. 기도에 부담을 갖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호흡처럼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의식하며 그분이 주시는 능력이 평안 속에 흘러들어옴을 느끼는 게 중요하다.
목회연구
목회를 하게 된 동기로 필자는 두 과정을 말하고 싶다. 하나는 목사가 되겠다는 결심을 한 것이요, 다른 하나는 신학교수로서 목회일선에 뛰어든 것이다. 대학 3학년은 혼란기였다. 대학입시에 1차 불합격하고, 2차에 대학을 들어갔다. 그래서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을 거듭하다가 군대에 갔다. 그러나 군대에서 더욱 헤매다 제대하고 복학했다. 그러던 중 지금의 봉천동 은천교회 조우방 목사님을 통해서 중생을 경험하였다. 마음이 뜨거워서 기동원에서 20일을 금식하고 학교에 가서 대학생선교회(CCC)활동을 하며 전도에 열중하였고 졸업과 동시에 목사의 길을 결정하였다. 그 당시 소명을 느끼기보다는 목사의 길이 가장 보람있는 것으로 여겨져서 그렇게 했다.
성경비판을 피해서 택한 전공이 교회사였다. 그러나 역사를 보는 방법 역시 신앙의 눈을 감아야 했다. 여하간 드루대학의 러슬 리치 교숨(지금은 듀크대학)는 학문이 무엇인지 가르쳐주신 유일한 스승이었다. 공부방법을 위해서 쓴 책이 [논문작성 이렇게 하라]인데, 설교작성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유학을 마치고 신학교에서 일하게 되었다. 사실 박사학위가 끝나면서 몇 달 동안 말할 수 없는 방황을 했다. “내가 선생하려고 이렇게 오랜 동안 공부를 했던가?” 학문은 얻었지만 동시에 잃은 것은 영성이었다. 결국 목회의 심정으로 목회자들을 돕는 일을 하자고 마음을 달랬다.
신학교에서는 한철하 박사를 통해서 학문과 신앙을 연결시키는 방법을 배웠다. 서구의 신학방법은 곧 철학이요 인문과학이었다. 인간의 이성으로 이성의 한계 안에서 자명한 공리를 세우고 그 위에 모든 체계를 세우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초자연이나 영적인 세상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으며, 하나님은 계실 자리가 없었다. 그러나 영원히 변하지 않고 있으며 보이는 세상에 영향을 주는 것은 영적 세상과 그의 법칙이었다. 성경에는 자연과 초자연이 동시에 역사로 나타난다. 그것이 바르고 참된 과학적 관점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모든 책들을 그 관점에서 기술하기 시작했다. 필자가 쓴 [이야기교회사], [천국의 기둥]등이 그것이다. 특히 [역사와 신앙]은 신본주의적인 역사관에 서서 기술한 책이다. 아마도 필자가 기술한 책 가운데서 가장 안 팔리는 책 가운데의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박사논문 다음으로 공을 많이 들였고 필자가 사랑하는 책이다.
교수로 사역하면서 다시 목회에 빠지기 시작한 것은 목사로서의 동경 때문이었다. 전도사 시절의 뜨거운 구령의 열정이 그리워져서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옛날의 감각이 나오지 않아서 대단히 고민했지만 몇 년이 지나면서 목회의 감각을 찾게 되었다. 신학교 강의는 거의 반복적으로 학기마다 같은 것을 가르친다. 학생은 자꾸 바뀌지만 교회 신자는 그렇지 않고 같은 사람들이 계속 온다. 또 자꾸 바뀌면 안된다. 그러다 보니 계속 생수를 퍼올릴 수 있는 샘을 파야만 한다. 이것이 목사의 고충이면서 동시에 즐거운 영적 작업이 된다.
요즘 우리나라 목회는 100년 동안 해오던 것들을 쌓아놓은 것과 같은 생각이 든다. 이 교파에서 하는 것, 저 교파에서 하는 것을 서로 교환하면서 더해간다. 하나의 예르 들면 장로교의 장로제도가 모든 교파가 도입되었다. 성경공부, 제자훈련, 새벽기도, 철야, 전도, 금식, 건축, 총동원 등 남이 하는 것은 서로 한다. 줄이지 않고 계속 더하다보니 목회자나 신자들이 모두 교회 일에 중압감을 느끼게 되었다. 즉 자유함이 아니라 교회 일에 억압이 되는 상태이다. 하지만 다른 교회에서 하는 것을 우리 교회에서 안하면 이상하게 여긴다. 신앙적인 원리보다는 외형적인 방법론에 매달린 결과이다.
현재 필자 목회의 중요한 특징은 전통적인 것을 그대로 하면서도 전통적인 목회 한계를 넘어보자는 것이다. 신도들이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며 강하고 아름답게 살며 빛을 발하게 도우려고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복음적인 사고를 하도록 교인들을 훈련시키는 것이다. 그러려면 복음적인 설교를 해야 하고, 복음적으로 성경을 보도록 공부시켜야 한다. 이것은 전통적으로 훈련받은 신자들이 처음에는 갈등할지 모르나 차츰 깨달음과 능력을 경험하면서 자유함과 확신을 누리게 된다.
복음적인 설교란 다른 게 아니다. 성경을 통해서 반드시 발견해야 할 몇 가지 요소가 있다. 첫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내게 해주신 일이 무엇인지 찾아내고 둘째, 그래서 내가 어떤 존재로 변했는지를 깨닫는다. 셋째, 그러므로 내가 얼마나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는지, 어떤 일을 꿈꿀 수 있는지 발견한다. 이 세 가지 또는 그 가운데 한두 가지가 들어가야 복음적인 설교가 된다. 성경공부도 마찬가지이다. 이 세 가지에 대한 대답이 나타나야만 한다. 그래서 원리를 깨닫도록 만들어주어야 한다.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 두 구절만 보아도 주가 어떤 일을 해주셨고 우리가 어떤 존재며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선명하게 나온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에 짓눌려 악한 경험을 한다. 그래서 이러한 말씀을 그대로 맏지 않는다. 설교자는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말씀으로 설득해야 한다. 그리고 신자들을 설득해서 그대로 믿게 만들고 그 믿음을 유지하게 해야 한다.
그러면 놀라운 일들이 많이 벌어진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대로 사실이기 때문에 믿는 사람들에게는 그에 합당한 열매를 반드시 준다. 그러나 마음이 화합하지 못하기 때문에 말씀을 명상하고 자기 마음에 반복해서 설득시킬 필요가 있다. 그대로 행동한다면 신기한 일들이 벌어지게 된다. 또한 그러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교회 전체가 다 믿음을 얻어가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에서도 순전히 인간적인 방법만 난무하게 된다.
필자는 목회자들에게 강의를 하면서 목회가 즐거운지 물어본다. 지금까지의 경험적 통계로는 목회를 즐기는 이들은 1할이 안되는 것 같고, 목회가 고통스럽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교인들과의 관계라든지, 건강이나 능력의 한계, 환경적인 요소 등등으로 인해 오랜 세월 짓눌린 마음의 결과이다. 이런 상황 아래서는 어떤 새로운 방법을 찾는다든지 어떤 계기가 오기만을 막연히 기다릴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런 마음에서는 절대로 사람의 영혼을 움직이는 설교를 만들어낼 수도, 전달할 수도 없다.
왜 이런 말을 하는가 하면 이것이 설교 작성에 가장 중요한 노하우이기 때문이다. 설교의 논지와 정신은 영적 상태에서 나온다. 설교자가 마음이 뜨겁고 감사하며 삶이 즐겁고 기뻐야 정상적인 설교가 나온다. 앞에 말한 복음의 내용으로 명상해보라. 자신의 마음을 복음으로 설득하라. 시편에 보면 다윗도 여러번 자기 영혼을 격려하는 장면이 보인다. 영적인 활성을 유지하는 것은 복음적인 깨달음과 자기 확인에서 나온다.
평안한 마으의 상태에서 성경을 읽으면 영적인 깨달음이 솟아나온다. 그것을 논지로 삼아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삶을 살면 자연스러운 예화들이 주어진다. 사람은 겉사람과 속사람으로 나눌 정도로 구분이 된다. 겉사람은 감각기관에 의지해서 이성을 움직이므로 항상 변하고 불안하다. 보이고 들리는 것은 걱정스러운 것들뿐이기 때문이다. 성경 말씀은 영혼을 위한 것으로 마음의 깊은 부분에 주어진다. 이성이 이 부분의 소리에 귀를 귀울여야 한다. 그러면 눈에 보이는 것에 흔들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재미있고 신선함을 유지하는 것을 무시하면 안된다. 마음 속 깊은 곳까지 도달하게 하려면 먼저 그들의 감각기관에 닿는 설교가 들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명심할 것은 설교의 목표는 그들의 깊은 마음이다. 그들의 무의식 곧 영혼의 좌소까지 들어갈 설교는 복음적이어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의 본성이 변한다. 필자가 몇 해 동안 목회를 하면서 얻은 분명한 결론이다. 복음적 설교는 사람들을 반드시 변화시키고 성장시킨다.
교회의 성장 분석
아세아연합신학대학에서 교수로 있는 동안 주일에는 안양에 있는 개척교회 협동목사로 있었다. 그러던 중 성경공부를 인도하게 되었다. 진태옥, 설윤형, 루비나 등 대표적인 디자이너들이 디자이너선교회를 구성하고 최복희 전도사를 중심으로 여러 해 동안 전도활동을 벌여왔었다. 그러다가 성경공부를 하게 되었고 필자는 자연스럽게 이 그룹과 연결되었다.
그리하여 설윤형 부띠끄 지하에서 성경공부가 진행되었고 자연스럽게 1990년 11월 4일 교회로 시작하게 되었다. 시작한 멤버는 약 20여 명으로 몇몇 디자이너와 가족 및 친지였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 함해노회 소속인 우리 교회에는 5년이 지난 지금 3백여 명의 교우가 있으며, 교회 조직은 일반적인 것에서 별다른 게 없다. 교우들의 대부분이 초신자들이라서 조직을 짜서 일을 맡겨도 하는 방법을 알지 못했지만 3-4년이 지나면서 자기 교회라는 마음을 가지고 적응하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봉사하는 방법도 각자 알아서들 하는 수밖에 없었고, 담임목사인 필자도 교회생활을 잘 몰랐기 때문에 지도하기도 힘들었다.
교회의 성장추이는 이제부터 시작되는 것 같다. 처음 몇 년은 상당히 헤매면서 보낸 것 같다. 구성원 색깔이 너무도 분명하니까 아무나 마음 놓고 나오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100명 가량이 되는데, 2년 이상 걸렸으나 이제는 150평 가량의 지하공간이 두 번 예배에도 너무 좁아졌다. 각 선교부, 교회학교, 성가대, 기관들이 모여서 움직일 장소도 없다. 그래서 불편한 대로 여기 저기 주위의 장소를 빌려서 하고 있다. 그래서 결국 금년에는 장소를 옮기자고 합의를 보았다. 강남에 마땅한 건물을 하나 사기 위해 건축위원회가 작년에 결성되었고 올해에는 온 교인이 정오에 5분간 합심기도하고 있다. 기도제목은 건축과 복음적인 삶이다.
필자는 교회성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두가지 말하고 싶다. 하나는 목회자의 지도력이다. 세상적이고 인간적인 지도력을 말하는 게 아니고 복음적인 사고와 그의 적용이다. 이 점은 두어달 뒤에 나올 필자가 쓴 설교에 관한 책에 자세히 논하고 있다. 앞 부분에서 조금 언급한 내용을 잘 생각해보기를 바란다. 자신의 정체는 세상적인 비교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하나님이 내게 대하여 말씀하신 그대로를 믿을 때 정확하게 보여진다. 그것은 너무도 훌륭한 것이다.
다음은 외형적인 방법으로 교인들의 마음과 힘을 하나로 규합하는 것이다. 성장한 교회 목회자들은 전체의 힘을 하나로 모으는 요령을 알고 있다. 일년에 두어 차례 전교우가 움직이는 이벤트를 만드는 것이다. 30명이건 1,000명이건 따로 움직이면 아무런 힘이 없다. 반드시 전체가 참여해서 일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려면 수개월 전부터 홍보하고 설득하고 기도하며 훈련해 하나의 목표로 나아가는 것이다. 마친 뒤에는 평가하고 상주고 격려하며 자부심을 북돋우면서 밀물 썰물처럼 복음적인 운동을 펴나가면 교회는 산다. 교인들은 함께 움직이며 배우고 성장하며 참여의식이 늘어난다.
우리교회의 재무상황은 풍족한 편이다. 교우들이 기꺼이 헌금하기에 재정면에서 잘 움직인다. 처음에는 반 이상을 선교비로 사용했다. 지금은 해외에 몇 군데 지원하며 특히 아세아연합신학대학의 외국인 학생 훈련을 위해서 매년 일정액을 보낸다. 그리고 네팔에 한 교회의건축을 지원해서 거의 완공단계에 이르렀다. 매년 8월 첫 주에는 벽지의 한 교회에 온 교우가 함께 가서 의료와 미용봉사를 통해 전도하는 기회를 갖는다. 이렇게 해서 건물까지 세워준 교회도 몇 개 된다. 지금은 약 35퍼센트 가량을 국내외 선교비로 사용하고 있다.
2천년대를 바라보면서 온 교우가 합심해 나아가는 것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축복이 삶에 그대로 나타나는 복음적 신앙의 실천이다. 그리고 이 엄청난 생명의 삶을 다른 모든 신자들이 누리도록 돕는 일을 하려고 한다. 또한 이러한 삶을 모르는 불신 영혼들을 구원하는 일도 대단히 급한 일이다. 이 일이 잘 진행되도록 교우들 각자가 기도하며 훈련하며 누리는 일에 힘을 쓰고 있다.
한 마디 필자가 부연하고 싶은 것은 이제 개교회는 자기 교회만을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교회는 모두가 하나님의 교회이며 우리 교회만 교회가 아니다. 복음도 교회도 보편적이다. 교회 전체가 사는 일에 마음을 모아야 한다.
지금은 대형교회들이 시설이나 지도력에 앞서기 때문에 사람들을 모은다. 대형교회들은 그 힘을 가지고 그들대로 한국교회 전체를 위해 무엇인가 해야 한다. 전체 교회가 약해지면 결국 대형교회들도 약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한 작은 교회들도 서로 도우며 구령사업과 복음적 생활을 이루도록 해야 2천년대의 살아남을 뿐 아니라 크게 왕성해질 수 있을 것이다.
③ 많은 설교 경험 - 일찍이 목회자로 소명받은 유익이 크다. 20년 동안 설교한 횟수가 모두 8천 번 정도되는 것 같다. 그러다보니 성경 어디에서나 어떤 설교이든지 설교하는 데에 어려움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물론 하나님 말씀을 선포한다는 데 있어서 항상 긴장과 도전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④ 훌륭한 신학공부 - 연세대학교, 장로회신학대학교,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미국 풀러신학교에서 교육받은 그 자체가 설교 준비의 큰 노하우이다.
⑤ 소그룹 양육지도와 강해설교 - 소그룹에서 평신도 양육지도는 설교 준비에 큰 도움이 되어왔다. 주일 낮예배를 비롯한 강해 설교는 다음 설교를 위한 준비 자료가 된다.
⑥ 독서, 만남, 사회 경험, 여행, 세미나 참석 등 이 모든 것들이 자연히 설교 준비가 되도록 관심을 가지고 메모하곤 하였다.
2) 자료수집 방법 - 많은 설교집, 주석을 준비해두고 있다. 해외저널, 시사자료 등도 스크랩하여 사용한다. 앞으로 컴퓨터 통신과 비서진을 통하여 자료수집을 더욱 보충하려고 한다.
3) 설교를 위한 특별한 훈련 - 신학교에서 공부한 설교학 외에는 없었다. 음성학, 호흡법 등 톡별한 훈련의 필요성을 느낀다.
충신교회는 서울 용산구 이촌1동 302-67에 위치하고 있는 예장 통합에 소속된 교회로, 1998년 10월 현재 장년 8000여명과 주일학교교 학생 300여명이명이 모이는 교회로 성장하고 있다. 인근에 같은 통합측 교회인 하용조목사의 온누리교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더 크게 성장하는 교회로 용산구를 지키고 있다.
충신교회는 1957년 2월3일 서울 청파동 1가 98번지에서 창립예배를 드렸고 동년 3월 동자동 42-4번지 최창호 씨 댁으로 이전하였다. 4월에 이르러 다시동자동 27번지 벽돌집 3층으로 전세 이전하게되는데 초대목사로 최창영 목사가 부임하게 된다. 그리하여 드디어 5월에 황동노회에 소속함으로 정식적인 교회의 기틀을 마련하게된다. 그러던중 1958년 2월 후암동 102번지에 성전대지를 구입하였고 1960년 7월, 80평의 성전을 건축게된다. 1963년 3월 정운상목사가 2대목사로 방득일 장로가 취임식을 가져 조직교회의 면모를 갖추게 되고 1964년 12월 박종순 전도사가 부임하였다. 1968년 6월 성전대지 확장 및 건축 기성회를 조직하여 1969년 10월 이촌동 302-67번지 현 대지를 303평 구입 1970년 3월 1층 교육관을 기공하였다. 현재 시무중인 박종순 목사가 1976년 5월 부임하여 9월 성전건축을 착공, 1978년 6월 20일 새성전 준공을 하였다 1983년 교육관 1,650평을 구입하였고, 1991년 5월 본당 수리공사 후 7월 28일 새성전에 입당하였다. 1991년 4월 7일 충신 청소년수양관(기도원)부지로 남양주군 수동면 운수리 소재 산 62,000평을 구입하였다.
그러던중 1978년 8월 15일 충신교회에서는 처음으로 서월리 개척교회를 기공하기 시작하여 1979년 9월 11일에는 77부대 충신교회 헌당식을 가졌다. 그 이후로도 2295부대 교회건축을 지원하였고. 1982년 11월 14일 세진교회 개척, 1987년 5월 3일 평강교회 개척,1988 6월 12일 상계충신교회 개척, 1989년 9월 8일 용강충신교회 개척 및 성전건축, 11월 23일 온당충신교회 성전건축 지원, 1992년 8월 10일 부항중앙교회, 1993년 4월 17일 대구충신교회 건축지원, 6월 7일 경구충신교회기공(1994년 6월 2일 헌당), 9월 14일 다지제일교회 기공(1994년 12월 1일 헌당). 1994년 6월 5일 일산충신교회를 개척하는등 충신교회는 지금까지 수없는 교회를 교회를개척 지원하고 DLtSMSW 안디옥 교회와 같은 교회이다.
성장의 돌파구는 없는가
국민소득 1만 불 시대가 되었다고 샴페인을 터뜨린게 엇그제 같은데 지금 나라는 경제적 위기의 벼랑 끝에 와있다. 한국교회도 이제 구조조정의 시기가 온 것인가? 한국교회전체가 성장이 정지되거나 침체하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최근 강남의 대형교회들이 비상이 걸렸다는데, 교인의 숫자가 급격히 감소하며 그 성장이 둔화되고 있을 뿐아니라 헌금까지도 최고 절반까지 줄었다는 이야기가 들려오고 있다 한국교회는 전통적으로 교회예산을 매년20-30%정도 상향조정해서 세우는 것이다. 그런데 예산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상황이 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건축 중에 있는 교회나 재정적으로 어려운 교회들은 초비상이 걸린 것이다. 교회가 변화에 잘 대처하지 못하면 점진적으로 침체할 수밖에 없다. 교회가 변화에 대처하지 못하면 자신도 모르게 죽어가게 될 것이다고 교회성장학자들은 경고한다.
변화의 이유
한국교회가 변화해야 할 이유는 자명하다. 텍스트는 변하지 않았지만 콘텍스트인 상황은 급격히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황에 민첩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교회는 자멸할 수밖에 없다. 옛날에 아무리 부흥 했던 교회라도 상황을 재빨리 대처하지 못하면 그 옛날의 영화는 한낱 꿈에 지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인해 한국사회가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고 한다. 산업화와 도시화를 뛰어 넘어 정보화 사회로 급격히 이동 하면서 우리나라는 I. M. F.라는 생각지도 않은 사태를 맞고 있다. 1만불 시대를 맞아 경제적인 여유와 자동차 대량생산으로 인한 물량적인 이동이 교회의 주일에배 참석인원을 줄이더니 이제 대량실직 사태로 인한 구조조정의 몸살을 교회도 맞이하고 있다. 이전에는 하면된다, 믿으면도니다는 사고 방식이 교회를 지배하였지만 이제는 해도 되지 않는 것이 있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큰 평수의 아파트를 찾아서 오늘은 강북으로 내일은 강남으로 그리고 오늘은 또 분당과 일산으로 이동하던 교인들이 전세금이 빠지지 않자 한곳에 어쩔 수 없이 오래 머물러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동안 편의주의적인 익명성으로 인해 간섭받기를 싫어하고 편한 것을 좋아하여 교인들도 편하게 예수 믿으려고 했지만 곤고가 겹겹으로 오기 때문에 말씀을 사모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지금이야 말로 말씀 사역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말씀사역과 질로 승부를 건다
세속적 사고로 교인들도 대형화 추세를 따라갔다. 대형백화점으로 사람들이 몰렸던 것이다. 그러나 대형교회에 출석한다는 사실만으로 성도들이 위기를 이길 수는 없다. 이제는 오직 말씀을 붙잡아야 한다. 충신교회응 그런 면에서 이미 10여년전 박종순 목사가 부임해 오면서부터 분쟁이 있는 교회를 말씀으로 바로잡아 오늘의 성장을 이루어낸 가히 한국교회의 대안을 제시한 교회란 점에서 다시한번 필자의 연구를 요하게 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교인의 고령화 현상은 뚜렷해 질것이 뻔하다. 이러한 고령화 현상은 교회 특히 예배를 경직된 분위기를 만들 위험성이 있다. 또 여성의 사회참여로 교회 내에 여성의 힘이 커지게 되고 여성의지도력이 확장되고 있다. 그것 뿐인가 다원주의 현상으로 인한 멀티미디어시대에 선택이 다양해짐으로써 전도가 더욱 어려워지게 된다. 동질성의 현상으로 교인들도 가까운 지역교회에 나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맞는 지도자를 찾아간다. 이기주의 현상으로 교인들의 현신도가 떨어짐으로써 충성심이 약해지게 되었다. 가족중심화 현상으로교인들의 주일성수 신앙이 악회도오 출석률이 낮아지게 된다. 이러한 우려는 이미 오래전 많은 의식있는 지도자들에 의해 지적되어진바 있다. 하지만 이러한 위기를 우리교회가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그러므로 무엇보다 먼저 한국교회 교인의 의식이 변해야 한다. 그러면 한국교회 교인이 의식이 지금까지는어떠했는가, 첫째,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표현하여 목회자에게 스트레스를 많이 주었다. 둘째, 희생정신이 약하여 정말 교회가 필요할 때 베드로 처럼 주님을 버렸다. 셋째, 결과적으로 교회사역에 충성심이 약해지고 있다고 있다고 교회성장학자들은 말한다.
하지만 그러한 부정적인 반면에 긍정적인 면도 있다. 이전에는 맹목적으로 교회 지도자를 따랐지만 이제는 주체성을 가지고 개인적인 의견을 다야한 형태로 표현하는 편이다. 신세대는 편안히 분위기를 느끼면서 다양한 예배와 다양한 프로그램을 갖기 원한다. 변화를 좋아한다. 변화에익숙해있기 때문에 교회의 규약으로 통제 할 수 없다. 만일 규약으로 통제하면 조직이 죽게 된다. 이러한 현상들은 무조건 부정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다음시대를 위해서도 필효한 요소로 교회가 인식하고 연구해야할 부분이다.
앞으로 더욱 교인과 재정이 감소할 것이다. 그 이유는 모교회 개념이 없어짐으로써 교인들이 한 교회에 정착하지 않고 떠돌이 교인이 많기 때문이다.당연히 헌신적인 교인이 적어지므로 교회의 사역이 약화될 것이다. 새로운 운동으로 교인을 빼앗길 것이다. 교회가 대형화를 지향함으로 교회가 교인들의 필요를 채워주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삶을 변화시키는 목회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박종순 목사의 신앙과 신학
박종순 목사는 모태신앙이다. 3대째 신앙가정의 전통을 이어받았다. 그리고 자신은 현재 5대째로 신앙을 이어가고 있다. 박 목사의 할아버지가 처음 신앙을 받았들였고 부모님들이 진짜 신앙인이었으며 박 목사 아래로 직계로 형제 또는 사촌이 목사안 사람이 전부 10명이 넘는다. 드의 아버지는 1921년판 [구약사기] 한 권을 유일한 유산으로 남겨 주었다고 한다. 박목사의 부친께서 옛날 조사였는데 그는 간증하기를 이책을 통하여 자신이 조사 교육을 받은 것 같다고 말한다.
그때 이후로 그는 책을 사랑하여 현재 서재에는 잘정리된 장서가 약 2만 권이나 된다.
그는 모태 신앙으로 삶이터전을 교회로 하여 자랐다. 그러므로 가정과 교회와 학교가 전부였다고 한다. 시골교회 바로 옆에 교회가 있으므로 가정에서보다 교회에서 지내는 시간이 더 많았을 것은 자명하다. 그가 결정적으로 목사가 된 것은 두가지 요인 때문이었다고 한다, 첫째는 주변에서 권유 때문이고, 둘째는 박 목사의 모친이 복중에 있을 때 서원기도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가 어렸을 때의 꿈은 교수,정치가,음악가였는데, 결국은 0하나님께서 신학의 길로 인도하셨기 때문에 이제 생각해보니 그것은 철젛ㄴ 하나님의 예정이요 섭리 였었다고 한다.
박목사는 숭실대 철학과를 졸업하였다. 철학이 사고의 능력을 길러주리라고 생가하였고 결국 그의 예사은 적중하여 지금도 설교를 준비하는데에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고 한다. 그 후 중앙대학교와 장로회 신학대학교를 졸업하고 아세아연합신학대학원, 미국 플러신학교에서 목회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또한 카자흐스탄 국립종합대학교에서 명예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변화를 두려워 하지 않는 지도자
앤더슨 목사는 변화에 대한 교회의 반응을 다음 여섯가지 형태로 설명한다.
현실에 대하여 저항하는 형태로 나타난다고 한다. 대체로 극복수주의 교회가 이런 형태를 취하고 있다. 즉 지금까지의 방식을 고수하면서안주하려고 한다. 변화에 대처하기 보다 저항하면서 교회의 에너지를 다 소비한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창조적인 사역이 나타나지 못한다. 또 과거의 향수병에 걸린 교회가 있다. 이러한 교회는 큰 영향은 받지 않으나, 적응력이 없으모 점점 쇠약해져가는 교회가 된다.
또 열심히 일하는 교회가 있다. 그들은 세상을 저항하지 않고 세상을 정복하려고 한다. 그러나 옛 방법을 반복해서 열심히 일하지만 비생산적인 교회이다. 그리고 세사에 항복하는 교회가 있다고 한다. 변화에 대처하지 못 하고 변화에 항복해서 따라가는 교회이다. 그리고 기업형교회는 특정한 사람들에게 맞는 특정한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고도의 텔레마케팅전략을 사용하지만 이것도 어디까지나 인본주의적이기 때문에 잠자는 교인들의 영성을 깨우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러면 어떤 교회가 되어야 할까? 우리는 성경과 종교개혁자들의 전통을 따라서 자기 자신을 갱신하는 교회가 되어야 함을 알아야 한다. 갱신하는 교회의 형태는 변화에 능동적으로 잘 대처해 나가는 교회이다. 이러한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과 상황의 변화에 대하여 개방적인 태도를 가지고 옛것과 새것의 변화속에서 본질을 잃어버리지 않고 변화에 능동적으로 변화해가는 교회이다. 이와같은 상황변화에 오래전부터 제자훈련으로 개방적인 태도로 계속해서 자신을 갱신하며 성장하는 교회가 박종순 목사가 시무하는 충신교회이다. 충신교회는 서울 용산구 이촌1동 302-67에 위치하고 있는 예장 통합에 소속된 교회로, 1998년 10월 현재 장년 8000여명과 주일학교교 학생 300여명이명이 모이는 교회로 성장하고 있다. 인근에 같은 통합측 교회인 하용조목사의 온누리교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더 크게 성장하는 교회로 용산구를 지키고 있다.
그는 교회의 타락은 목회자의 타락으로부터 온다. 왜냐면 목회자의 소명감이 감소되고 있기 때문이다. 십자가를 지기 위해서 목회자의 길에 들어서기 보다 인간적인 영광을 바라보며 신학교를 가기 때문에 헌신된 종들을 보기 힘들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래서 개척교회 목회자는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목회자를 떠나고 있다. 그러면서 한국사회 전반적인 흐름에게 목회자의 인기가 하강하고 있다. 신학 교육의 질이 저하하여 목회자들이 변화에 잘 대처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이를 해결하는 길은 오직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서 겸손을 배워야 한다고 한다.
성장포인트
박종순 목사는 ‘목회는 하나님이 하신다’ 는 철학과 ‘하나님이 목회하시고 나는 심부름꾼이다’라는 행동철학으로 지금까지 사역했다고 말한다. 이것은 교회 중심의 목회철학이다. 목회는 종합예술과 같이 다양한 사역의 결합이듯이 이성과 신앙의 균형이 잡힌 목회만이 성공할 수 있다. 화해목회를 지향해야 한다. 그는 ‘교회는 푸른초원과 같은 목가적인 교회로 만들어야 한다.’고 자주 말한다. 또 신자는 교회 오면 행복해져야 하고 어머니의 품과 같은 포근함이 있어야 한다고 늘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박종순 목사의 사역을 한마디로 말하면 화해와 치유의 목회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두 번째 성장 포인트로서 충신교회의 최대의 장점은 교육목회이다. 교회의 규모에 비해 교육 프로그램이 다양하다는 것은 교계가 잘알고 있는 일이다. 하지만 여기서 다시 이것을 언급하는 것은 많은 교회들이 사역의 우선순위를 모르기 때문이다. 충신교회의 목회는 도시인들을 상대로 상처받은 사람들이 교회에 와서 치유받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목회를 지향하고 있다.
이러한 치유중심의 목회덕분에 충신교회는 전입성장이 많지 않다. 거의가 불신자가 예수를 믿어 성장하는 회심성장이다. 그 이유는 교인들이 전도를 열심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 교회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전도하는 교회로 만들어가고 있다. 그래서 충신교회는 심방전담 여전도사가 없다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충신교회는 교구 담당목사는 있으나. 지역장과 구역장은 훈련된 평신도들이 담당함으로써 교인의 심방을 전담하여 교인의 결속과 친교를 더욱 굳게 하고 있다. 목사는 교회를 위해 존재한다는 바탕위에서 교육목회로 기초를 다져온 교회로 성장해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32.순복음 인천교회
“성령으로 다차원 사역에 도전하는”
최성규 목사
총동원전도로 부흥한교회
순복음 인천교회는 전도, 특히 총동원 전도로 유명하다. 1987년 새성전을 마련한 후 ‘성전을 채우라’는 구호로 시작된 10만 명 초청 총동원전도는 교계 신문들의 기사거리가 되기도했다. 이러한 빅 뉴스도 그 근원을 따져 올라가보면 500명 출석교회에서 1만 5천명을 초청하여 1,5000명을 결신시켰다는 광주 무돌교회의 성장때문이었다. 어느 날 그 기사를 읽은 최성규 목사는 감격하여 전도특공대 200여명을 5대의 버스에 싣고 광주로 내려갔다, 광주 무돌교회의 총동원전략을 배워온 최목사와 교인들은 당시 5천 명 출석의 교회로서 10만 명을 초청하는기록을 세웠다. 예배를 주일 하루 동안 11먼 드리고 11만명 가까운 사람을 초청하여 1만 7천명의 결신자를 얻었다고 한 기사는 적고 있다. 이 행사 하나로 순복음 인천교회는 인천은 물론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되었고 수많은 교회에 총동원전도 전략을 가르쳐 주는 계기가 되었다. 1988년부터 시작된 가족초청 천국잔치는 보다 효율적인 결과를 얻었다. 무차별총동원을 지양하고 가족과 친척, 이웃을 선별적으로 초청하는 선별적으로 장년 출석 1만 명의 고지를 점령했다고 한다.
1983년 11월 8일에 창립되었으며 등록성도 63,388명에 약 2만여명이 출석하고 있으며(아동 10,956명, 중등부 1,620명, 고등부 905명, 청년부 985명 포함), 목사 33명, 전도사 102명이 교회를 섬기고 있다.
창립연도인 1983년도에 이미 1,700명이 모이기 시작해서 ’85년도에 10,000명이 돌파되고 ’89년도에는 20,000명이 모였다. ’92년, ’93년도에 각각 4만, 5만명에 육박했고 ’95년에는 6만여명이 넘어섰다. 1984년의 인천 전체인구에서 성도비율은 0.58퍼센트였으나 지금은 2.55퍼센트를 넘어선 부흥을 경험했고 전체세대수에서 3.99퍼센트를 점하게 되었다. 이러한 수치는 인천광역시 내에서의 순복음인천교회의 영향력을 말해 주고 있었다.
목회자로서의 삶의 변화
“목회를 하게 된 동기는 나이 서른이 넘어서야 처음으로 서대문에 있는 순복음중앙교회(현재 여의도순복음교회)에 들어가 조용기 목사의 설교를 듣게 되면서부터 라고 해야할 것이다. 40을 넘겨 회심하고 예수님을 믿게 된 최목사는 하나님의 은혜 아래 수년간 교회의 집사와 구역장으로서 열심히 봉사하던 중에 소명을 느낀 것이다.
결정적인 결심을 굳힌 것은 어느 날 그가 꾸었던 꿈 때문이었다. ‘나를 도와줘’라는 조용기 목사를 꿈에서 본 것이다. 그리하여 기도원에 올라가 금식한다. 최 목사는 말하길 조용기 목사의 설교를 듣고 회심하여 예수를 영접하였고 그 분의 설교를 통해서 날마다 신앙의 성장을 이루어 왔으므로 그분의 도와 달라는 음성이 예사롭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조 목사를 신앙과 삶의 스승으로 삼고 존경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성경을 약 30번 정도 정독했고 성경을 읽을 때는 주로 정독을 하며 주석도 함께 참조한단다. 성경연구의 목적은 어떻게 그 말씀을 실천하며 살아야 할 것인가에 늘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하는 그는 항상 말씀의 절대적인 순종을 좌우명으로 삼아 여기까지 왔다고 했다.
목회자의 영성훈련이 교회성장의 원동력
목회철학을 묻는 질문에 대햇 밝히길 “목회철학이라고 하기에는 거창하지만 하나님의 지상 교회는 이 땅에서 언제나 지속적으로 뻗어나가야 하며 이를 위해서 우리 교회는 전도, 교육, 봉사, 교제를 4대 목표로 삼고 있다. 교회의 성장은 다만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고 우리는 이를 위해서 먼저 충분한 기도를 드려야 한다. 또한 모든 교회의 성도는 최소한 하루에 1시간이상 기도해야 하며 교회 개척 이후 저녁에 “겟세마네 기도회”를 1년 365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실시해오고 있다. 이제는 지칠만도 하지만 교회 창립 13주년을 맞은 금년에 이를 더욱 활성화시키고 있다. 또한 주님의 지상명령인 전도를 위해서 모든 필요한 지식과 자원을 동원하고 있으며 교회의 교육과 세미나, 부흥회도 전도에 대한 도전을 심어주기 위한 목적으로 실시되고 있다. 전도하는 교회, 선교하는 교회, 이것이 오늘에 우리 교회가 존재하는 목적인 것이다“.고 담담하게 말한다.
현대목회의 특징은 협력 목회
협력목회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그는 전통적인 테두리안에서 평신도들을 헌신자로 일하게 하는 목회자로 정평이 나있다. 모든 헌신자들에게 효율적으로 일을 맡기고, 모든 부교역자들과는 협력목회를 한다는 마음으로 일을 분담한다. 그래서 보다 전문적이고 효과적인 목회사역이 이루어진다. 그래서 사랑으로 하나되게 하는 것이 실천원리인데, 모든 성도가 다툼이나 분열이 없이 사랑의 마음과 희생의 마음으로 하나가 되도록 하는 데 힘쓰고 있다. 또한 교회 내적으로 뿐만 아니라 초교단적으로, 전국적으로, 나아가 전세게적으로 교회가 하나 되도록 하는 데에 온힘을 기울이고 있다고 한다.
그리하여 궁극적으로는 전도하여 사랑을 실천하는 성도로 만드는 것이 최후의 목표이다. 모든 불신자는 먼저 예수를 믿음으로써 구원받은 신자가 되어야 하며, 모든 신자는 성령충만함으로 거룩한 성도가 되어야 하며, 성도는 이웃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나누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이를 위해 교회는 이웃과 지역사회를 위해서 아낌없이 투자해야만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순복음 인천교회는 자폐 아동을 위한 특수선교, 유치부를 위한 아동선교, 노인들을 위한 경로잔치, 소년소녀 가장돕기, 헌혈운동, 도시복음화를 위한 교계 연합사역(성시화 운동본부 주관), 사랑의 실천을 위한 ‘효’ 계몽운동 등 모든 예수 사랑 실천에 노력하고 있는데 최근에는 경로를 주제로 한 대학원을 설립하였다..
목회자의 장단점
자신의 목회자로서의 장단점에 대해 물어 보았을 때 “단점으로는 보다 전문적인 신학지식이나 외국어 사용 등의 언어 구사력이 많이 취약하다는 점이다. 또한 필자의 신앙이 너무 보수적이라 현 시대에 뒤쳐진다고 동료 목회자들은 지적하며 부교역자들에게는 너무 혹독하게 훈련시킨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교회에 그러한 단점을 필요한 일군을 동원하여 협력목회를 함으로써 보완하는 것이 필자의 큰 장점이라 여겨진다. 모두 섬김과 순종으로 하나가 되게 하는 친화력이 강하므로 교단을 초월해 많은 목회의 선후배 및 동료들과 풍성한 동역의 삶을 나누고 있는데 신앙의 선배, 인생의 선배들로부터 전해들은 교훈, 잠언, 덕담, 인생철학 등을 통해 많은 것들을 배울 수 가 있다고 한다. 신앙은 보수적이나 신앙의 표현방법은 최첨단의 아이디어들을 적극 수용하며 양 같은 온유함과 교인들의 호감을 무척이나 끄는 인상형이라는 말도 듣는다. 설교를 위한 특별한 행동 지침은 기도이다. 적절한 자료도 설교에 도움을 주지만 무엇보다 필자의 설교는 기도를 통해서 만들어진다.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있듯이 인간은 동질집단경향이 있다. 맥가브란(D.McGavran)은 교회성장에 있어서 동질집단은 “가장 유용한 하나의 도구(Tool)"라고 하였다. 예수님도 제자들을 선택하실 때 대다수를 갈릴리 사람들, 다시 말해 서로 잘 알고 삶을 같이하는 동질적인 사람들을 택하셨다. 순복음인천교회는 대부분의 조직을 연령별, 성별, 직업별, 신앙수준별, 지역별 등으로 구분하여 성도들의 욕구에 부합할 수 있도록 하였는데 장로회,안수 집사회 , 사모회, 영광선교회(60세 이상), 실업인선교연합회(직업 및 직능별)등이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성장 포인트
교회성장 요인에 대해 두 가지로 본다 한다. 첫째는 교회성장에 대한 뜨거운 갈망, 둘째는 효과적인 전도전략(프로그램)개발과 시행에 있다. 교회성장 세미나를 인도하면서 소개하는 교회성장의 일곱 가지 방법이 여기 있다고 소개한다. 첫째로 마음과 뜻을 같이 하는 교회, 둘째 기도에 깨어있는 교회, 셋째 성령의 능력으로 복음만 전하는 교회, 넷째 초대교회 같은 기적이 나타나는 교회, 다섯째 나누어 주는 교회, 여섯째 부정적인 말이 없는 교회, 일곱째 세상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는 교회이다. 순복음인천교회는 초기에 성령운동 위주였으나 지금은 성령운동과 제자운동을 병행하고 있고 문화사역을 통한 간접전도를 활발히 하고 있다.
한 개인의 삶도 마찬가지이지만 한 교회의 성장도 총체적으로 균형을 이루어야만 참된 성공이라고 평가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저 사람이 많이 모인다고, 그래서 교회를 크게 짓는다고 해서 성공적인 목회라고는 할 수 없다. 어떤 일이든지 성서적 균형감각이 없다면 절반의 성공이고 결국은 쓰러지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참된 교회는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교회이다.
우리는 순복음 인천교회가 21세기에도 균형과 조화의 성숙된 모습으로 한국교회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1.한소망교회
예닮운동이 주특기인 교회
류영모 목사
(장로회신학대학교, 장로회신학대학원)
일산을 책임진다.
일산 신도시!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경기도 고양시 일산구이다. 마두2동. 한소망교회가 개척하였던 교회주소이고 마두 3동은 1998년 6월이 건축이 끝나 새로이 입주한 새성전의 주소이다.
분당, 일산, 산본, 안산 중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해 있는 일산은 이제 거의 다 입주를 마친 상태여서 수도권 신도시 중 어느 도시보다도 밝고 활기찬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많은 교회와 목사들이 웅대한 포부를 가지고 도전했고 또 지금도 도전하고 있는 '기회의 땅' 일산, 그곳에서 급성장은 아니지만 어렵고 열악한 환경속에서 온 교인이 최선을 다하여 성장에 성장을 더하고 있는 교회가 있다.
한소망교회, 1991년 6월 9일 능곡에서 교회 창립, 1994년 2월 23일 일산신도시로 이전, 1996년 6월 9일 창립 5주년, 대지 315평 연건평 1030평 성전 건축 기공예배, 현재 건축을 마치고 1998년 초에 입당예배를 드리게 된다. 이제 한소망교회의 새로운 일산시대가 그 새로운 막을 올린 것이다. 결코 길지 않은 역사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오랜시간 침묵과 인내속에서 준비되어온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올해 46세인 류목사는 우리에게 낮설지만은 않은 사람이다. 처음 그를 만났을 때에 느낀 인상은 평범 그 자체였다. 하지만 그리 크지 않은 키에서 사람을 사로잡는 어떤 힘이 느껴졌다. 그를 만나 인텨뷰한 것은 일산 한소망교회의 건축이 막바지에 접어들던 때 였다. 그는 만나자 마자 건축공사중인 현장으로 필자를 데리고 갔다. 그러다 보니 인터뷰도 성전건축공사를 하고 있는 현장 사무실에서 이루어졌다. 현장 사무실 안은 122명의 기도당번 명단이 적혀있고, 1년으로 잡혀있는 빈칸의 표시란 중 절반은 빨간 도장자국으로 채워져 있었다. 성전건축을 위한 불철주야의 기도가 이곳 현장 사무실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을 위하여 도시를 점령'하려는 십자가의 군사들로 여겨졌다.
정치가의 꿈을 접고
자리를 잡고 드린 첫 질문은 류목사의 신앙내력과 목사로서 인생의 방향을 잡게된 배경이었다.
"어릴 때부터 교회를 다녔습니다. 어머니가 일제시대 때 만주에서 교회에 나가셨고 또 주일학교 교사까지 하셨던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불신자와 결혼을 하게 되어 잠시 신앙이 식어졌지요. 하지만 어릴 때부터 저희들은 교회를 보내었습니다. 그래서 집에서 있는 시간보다 교회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사무엘처럼 교회에서 하루종일 놀며 기도하며 지냈지요. 그런데 그때 그 교회 여 전도사님이 저를 많이 사랑해 주셨어요. 그 사랑 때문에 저는 참 행복한 추억을 갖게 되었습니다. 목사가 되겠다는 서원도 아마 그 때 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거창 고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그곳에서 정치가가 되어야겠다는 꿈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학생운동을 주도했고 전교 학생회장 일도 맡았습니다. 그리고 육사를 지원하려고 원서를 내었습니다. 막강한 리더쉽을 배워야 정치를 할 수 있다고 믿고 그 리더쉽을 배울 수 있는 곳은 육사를 나와 장교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1차 필시시험에는 합격했습니다. 그런데 신체검사와 건강검진에서 떨어졌습니다. 평소에는 늘 저혈압이었는데 그날 당일에는 혈압이 90에서 170으로 올라갔습니다. 담당 군의관도 의아했습니다. 너무 좌절되었습니다. 기도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었죠. 기도를 하던 며칠 째인가는 모르겠지만 문득 기도 중에 옛날에 목사가 되겠다고 서원했던 유년시절이 기억났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서원을 들으시고 내가 정치가의 길로 가는 것을 막으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장신 대에 입학했습니다. 전공은 기독교 교육으로 정했구요. 그리고 공군장교로 입대해서 군복무를 마쳤습니다."
이제마 선생의 '사상체질분류'에 따라 류목사를 본다면 '태양인'에 속한다고 할 것이다. 태양인은 신체 중 유별나게 두뇌가 발달한 사람을 말하는데 예로부터 이상적인 지도자는 태양인에서 나온다고 한다. 삼국지의 ‘도원결의’한 세 형제 중 유비가 ‘태양인’에 속한 다고 할 것이다. 한 마디 한 마디 말하는 것이 논리 정연하고 달변이었다. 이러한 그의 지적인 능력은 이미 지나온 세월 속에서 많은 빛을 남겨 놓았다. 그는 대한에수교장로회 통합 측 총회교육부간사로 오랫동안 재직해 있었고 그 때 만든 주일학교 공과가 지금도 사용되고 있다. 현재도 '교회와 신앙'이라는 월간 잡지 주필을 맡고 있다.
"신대원 졸업반 때 졸업위원장 이었습니다. 그래서 동기들을 각 교회 전임으로 보내는 일을 맡은 파송위원장 이었지요. 380명 동기 전원이 전임전도사로 파송되어졌습니다. 그런데 정작 제가 나갈려고 하니까 갈곳이 없어요. 그래서 충신교회에서 그냥 교육전도사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때도 많이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망원제일교회에서 담임목사로 청빙이 들어온 것입니다. 그래서 부임해 갔고 그곳에서 4년 1개월간 시무했습니다. 동기들보다 늦게 파송이 되었지만 교육전도사에서 담임목사로 고속 승진하게 된 것이지요. 그때 신도시들이 수도권 주위에 세워지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새로운 가능성의 교회를 해봐야겠다는 꿈이 있었기 때문에 새로 개척하려고 신도시를 살펴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일산 쪽으로 마음을 굳힌 것입니다. 제 아버님이 6.25때 인천 상륙 작전 도중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북한선교에 대한 감흥이 남다르게 깊습니다. 북한선교를 생각한다면 조금이라도 북쪽에 가까운 곳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한민족을 복음화 하는 소망으로
교회의 이름을 굳이 한소망교회라고 지은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한민족 선교를 꿈꾸고 교회를 창립했습니다. 처음에는 개척이 무엇인지도 몰랐습니다. 그냥 맨손으로 하면 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가정예배 드린 후에 어머니와 가족들은 모두 처가집으로 보내고 퇴직금 450만원을 들고 예배처소를 구하러 다녔습니다. 그러던 중 노회 어른들의 중재로 망원제일교회에서 사택을 내어주기로 해서 사택문제는 해결되어 가족들은 다시 한 집에 모이게 되었던 것입니다. 은평구 신사동에서 피노키오 유치원을 하는 장로님이 일단 개척처소로 빌려주셔서 개척을 위한 준비기도 모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일산 가까운 능곡에서 9500만원을 주고 지하를 빌렸는데 전세금을 맞추어야할 일이 꿈만 같았습니다. 그래서 기도에 기도를 거듭하고 이곳 저곳에서 돈을 빌렸습니다. 성안교회 신협에서 1000만원 빌리고 대명교회 신협에서 2000만원 그리고 사방에서 도움주시는 분들이 합쳐서 98분이 헌금을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시작된 것이지요."
지나온 세월을 회상하면서 소상하게 설명해 주는 류목사의 눈에는 작은 이슬방울이 맺혔다. 아마 그때의 일이 생각나는 듯 잠시 말을 멈추고 눈물을 훔친다. 고양시 일산구 쪽을 바라보며 물새는 지하예배당에서 보낸 6개월 동안 성도도 목사도 그저 울기만 했다고 한다.
"이제 일산쪽으로 이전할 시기가 왔다고 판단하고 능곡의 예배당을 팔았습니다. 그런데 계약단계에 까지 갔던 일산의 땅이 그만 해약되고 말았습니다. 부지를 구하지 못했던 우리는 국민학교 운동장에서 때로는 사택에서, 건축중인 건물 지하 모래 바닥에서 4개월간이나 예배해야 했습니다. 얼마나 답답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한 명의 성도도 떨어지지 않고 따라왔고 또 그때야말로 저와 성도들을 하나님만 바라보게 했던 가장 순수한 시절이었고 기도하게 하셨기에 맑고 깨끗한 영성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봅니다. 그것은 우리 교회에 허락하셨던 하나님의 축복이었고 또 행복한 순간이었습니다."
개척은 믿음으로
그때의 순수성을 잃지 않으려고 지금도 부단히 노력한다는 류목사는 개척은 오직 믿음으로 해야한다고 힘주어 강조한다. 요사이 개척교회가 어렵다고 젊은 목회자들이 개척교회를 시작하는 일이 드물다고 하는데 오직 믿음과 용기로 만이 도전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 중간에 자신을 사랑하는 한 선배 목사님이 건축을 도와주겠다고 6억을 내어놓았지만 하나님의 역사가 되게 하기 위해서는 인간적인 도움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거절한 적도 있었다. 이러한 고민의 밑바탕에는 그가 거창 고등학교에서 배웠던 '직업 선택 10계명' 덕분이었다고 한다. 모든 조건에 갖추어진 곳이나 처음부터 시작해야 할 황무지를 택하라고 했던 그 교훈을 실천했던 것이다. 결국 유치원 부지를 315평 분양받아 연건평 1030평의 성전을 건축하게 된 것이다. 현재 공사 진척도는 30%정도이다.
그러면 그 어려운 여건속에서도 교회를 성장시키고 성도들의 믿음을 강하게 무장시켰던 목회 철학은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저는 늘 성도들에게 류목사의 은사를 살릴 수 있는 목회를 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부탁합니다. 사람마다 달란트가 다르고 목사마다 장점이 다릅니다. 저의 장점은 영성훈련과 성서연구, 그리고 전도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이 세 개의 축으로 한소망교회는 성장했습니다. 또 본질에 충실한 목회를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탈진상태에서 목사자신이 채워지고 세워지는 것이지요. 목회의 성공을 추구하는 것보다 순종하고 충성해야 된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이러한 철학에서 숫자적인 부흥보다 양질의 교회와 양질의 제자를 키우자는 쪽으로 심혈을 기울였지요. 그것이 주효했다고 봅니다. 지금도 우리 성도들은 한가지 이상의 훈련을 받아 스스로 남을 돕고 세워주는 일에 아주 열심입니다."
류목사와 대담을 나누면서 너무 본질적인 얘기를 하는 것 같아 마음에 거북함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거북하게 생각되어지는 필자 자신도 이미 세속적 가치관과 생각에 많이 잡혀 있기 때문이리라. 아무튼 불혹을 넘긴 젊은 목사이지만 성경적인 원칙에 충실한 목회, 양질의 성도를 키워내는 목회를 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는 것이 사실이었다. 필자는 한소망교회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한 목회프로그램이 무엇인지 궁금하여 물어보았다.
"예! 그것은 '예닮운동'이라는 프로그램입니다. 예수님 닮기 운동이지요. 일전에 유행했던 '뜨레스 띠아스' 프로그램과 유사하다고 하겠는데 근본적인 면에서는 다릅니다. 그리고 뜨레스 띠아스 속에 있는 카톨릭적인 요소나 수도원적인 요소는 모두 배제해 버리고 명실상부 개신교의 새로운 틀안에서 만들어낸 공동체 훈련 프로그램이지요. 개혁신학의 교회론 안에서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나가는데는 이보다 더 좋은 프로그램은 없다고 봅니다. 한국교회의 장로들이 어떤 집회에서도 은혜받고 감동하지 않는데 이 예닮운동 프로그램에 들어오면 하루만에 눈물을 흘리며 변화됩니다. 전에는 석달에 한 번정도 이 학습훈련을 했습니다만 지금은 매달 열고 있습니다. 조만간에 다른교회에도 소개할 생각입니다.
두 번째 자랑할 수 있는 프로그램은 전도프로그램들입니다. 현대도시목회는 다원화된 사회를 공략해 가야하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전도방법도 꼭 한가지만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공략대상에 따라 여러 가지 방법이 다 동원되어야 합니다. 물론 매 프로그램마다 평신도들이 훈련을 받아 참여해야 하겠지요. 전도폭발훈련과 각종의 전도운동 프로그램이 훈련된 제자들에 의해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교회가 전도의 능력을 잃어 버리면 교회로서의 사명을 버린 것입니다."
한소망교회의 프로그램을 종합해 정리해 본다면 예닮운동(3박 4일동나 합숙훈련)을 통한 영성과 공동체성 회복의 뜨거움 위에 은사와 달란트에 따라 각종 전도에 참여케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한국교회의 강단이 거듭나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없는 메시지는 메시지가 아닙니다. 케리그마의 회복없이는 교회성장도 세상복음화도 그리고 사회구원도 다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강단은 철저한 복음의 선포장소여야 합니다. 복음을 외치고 복음의 삶을 실천할 때 세상은 교회를 주목하게 될 것입니다. 복음을 들은 성도들이 복음으로 사업하고 복음으로 가정을 꾸리고 복음으로 자녀를 키울 때, 이 세상은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또 늘 개혁에 앞장서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구조적인 갱신이 없이는 이 시대에 교회가 세상의 리더가 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교회가 끌려 다니는 우스운 꼴이 되고 맙니다. 모든면에서 자기갱신을 해나가야 하겠는데 가장 시급하게 고쳐야 할 부분이 있다면 '장로제'입니다. 한국교회는 앙반병에 걸려 있는데 그 원인 제공자들은 장로들입니다. 이것을 고치려면 항존직인 장로의 임기를 임기제로 바꾸어야 합니다. 그래서 한소망교회에서는 아예 이것을 내규로 통과시키려고 합니다. 장로는 3년간 시무하고 사임한 뒤에 다시 재신임을 얻어야 시무할 수 있도록 정해 놓은 것입니다. 교회의 영적인 리더가 되어서 어떤 평신도들보다 앞장서서 나가서 전도하고 사람들을 키워야 할 터인데 장로들부터 에헴! 하고 양반병에 걸려 뒷짐지고 다니니까 평신도들의 사고가 전부 양반병에 물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성장 포인트
성장하는 교회의 공통점이 여럿 있겠지만 그중 한가지는 리더쉽이 흩어지지 않고 목사에게 집중되어야하다는 것이다. 물론 독재나 독단의 위험은 있겠지만 강력한 리더쉽이 하부조직에 까지 골고루 미치게 될 때 목표에 쉽게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끝으로 한소망교회와 목회의 비젼 그리고 향후 계획들을 물어보았다.
"사실 지금은 조금 재 충전해야 할 시기입니다. 여러 가지 일로 바쁘다보니 건강도 많이 상했구요. 병원에서 몇 일간 지내면서 새로운 다짐을 하기도 했습니다. 병상에 누워 있으니까 아! 나도 언젠가는 죽을지 모른다. 내가 죽는다고 해도 부끄럽지 않는 목회를 해야겠다는 비장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종말론적인 각오를 가지고 목회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사역도 부교역자와 평신도들에게 많이 나누었습니다. 그러나 '예닮운동' 만큼은 제가 직접 인도합니다. 왜냐면 목회자인 저에게도 그 프로그램은 재충전의 기회가 되거든요. 그곳에는 진정한 회개와 고백 그리고 사랑안에서의 감동이 있습니다. 비젼이라고 한다면 좀 그렇고, 하나님 안에서 가진 소박한 꿈이라고 할만한 것들은 몇가지 있습니다.
첫째, 우리교회의 축복을 한국교회에 내어 놓는 일입니다 그것중의 하나가 '예닮동산운동'입니다. 한국교회의 조용한 혁명이 될 것입니다. 둘째, 같은 비젼을 가진 교회를 핵 분열하듯 개척할 것입니다. 교회만 개척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와 제자들도 함께 나누어 주는 개척입니다. 셋째. 중국을 통한 북한선교입니다. 넷째는 교회제도 개혁운동입니다. 장로와 목사는 임기제를 바뀌어야 교회가 살아납니다.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왕성하게 뛰어다녔던 대외적인 일은 모두 접어두고 오직 양떼를 돌보는 일에만 온 심혈을 기울이는 류목사. 평안하게 사역하려는 후배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도전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인터뷰에 응했다는 류목사, 목사는 돈과 여자 명예에 대해서는 초월해서 관심도 없다는 것을 성도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고 말하는 그에게서, 우리는 차세대 한국교회의 푸르름을 보는 것 같았다.
2.광일교회
“주 특기는 농촌 목회입니다”
소량호목사
(대한신학교와 신대원)
광주를 위하여
경기도 광주군 광주읍 태전리 271-8번지 성남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한시간 가량 차로 광주읍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다시 10분여쯤 외곽으로 벗어났을 때 들판에는 벼이삭이 황금물결을 이루어 출렁이고 있었다. 논밭사이로 드문드문 공장들이 보이는 것이 이곳이 시골도 도시도 아닌 어정쩡한(?) 지역임을 말해 주고 있었다. 기껏해야 200여 호 남짓한 마을임에도 공장들이 주위에 많은 탓인지 정류장 주변의 건물들은 깨끗한 현대식으로 지어져 있었다. 그 버스 정류장에서 몇 발자국을 더 들어가니 이곳지역 일곱교회중에서 가장 성장하고 있다는 광일 교회당을 만날 수 있었다. 얼마 전 새로 지은 성전 앞에는 '30일 작정 특별 새벽기도회'를 알리는 현수막이 세로로 큼지막하게 내걸려 있었다.
소량호 목사, 한때 크리스천 타임즈의 기획 실장을 맡으며 교계에서 일을 맡아 선교에 헌신하던 그가 이곳 광주읍에 와서 정착한 것은 지난 91년 8월이었다.
광일교회의 시작과 성장
지난주간 금식기도 했기 때문인지 아직 피곤과 수척함이 그대로 남아 있는 소 목사를 붙들고 인터뷰를 시작했다. 우선 교회의 역사와 그간의 사역을 물어 보았다.
"우리교회는 1988년 10월 15일 이 부근에 있는 통합측 모 교회에서 분리되어 개척되었습니다. 그때 당시 이상도 목사님과 이윤섭 장로가 주축이 되어 교회를 세웠는데 그만 시험이 든 것입니다. 그래서 담임이었던 이상도 목사님이 교회 인근에다 새로이 교회를 개척하게 되자 다시 한번 교회는 시험과 분열이 일어난 것입니다. 양떼들은 우왕좌왕했고 말할 수 없는 혼란으로 가슴아파 했습니다. 그때 제가 부임하게 된 것이지요. 그 당시 부임해 보니 교회는 임대교회였는데 보증금 300만원에 월세 50만원을 지출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거기에다 퇴직한 목사님의 퇴직금 때문에 이천여 만원의 부채까지 떠 안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막막했습니다.
상처를 딛고
좁은 지역인데 가까운 곳에 이웃해서 두 교회가 반목하게 되고 새 신자들은 상처를 받아 교회를 등지게 되니 암담하기 그지없는 상태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와서 보니 복음을 알고 실천하려는 제직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분들을 통하여 위로 받고 최선을 다하기로 결심하며 기도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현재의 광일교회는 얼마나 변했으며 또 얼마만큼 성장했을까?
"금년 10월이면 교회가 개척된 지는 10년이 됩니다. 그러나 제가 부임한 뒤로부터 새롭게 개척한다는 각오로 사역에 임했습니다. 그게 벌써 만5년이 되었습니다. 저 작년에 연건평 210평의 성전을 완공해서 입당예배를 드렸습니다. 지금은 장로, 권사 그리고 안수집사 포함한 전체 제직의 숫자가 100여명이 되고 제적 성도는 400여명 정도 됩니다. 농촌교회로서는 상당히 성장한 것이지요. 이 모든 것이 그야말로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실제 주위를 아무리 둘러보아도 어디서 이만한 성도들이 모이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흔히들 농촌이나 벽지지역은 이제 더 이상 교회가 성장하지 않는다고들 알고 있다. 거기에다 광일교회는 개척 초기에 많은 아픔과 상처들이 있었기에 그것이 더욱 어려웠을 것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소 목사는 오직 기도하면서 지금과 같은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어 낸 것이다.
농촌을 사랑하는 일이 급선무
요즘 교회마다 교인들이 줄고 있고 개척교회가 성전건축까지 하게 되는 일이 드물어졌는데 더군다나 광일교회같은 특수 상황에서 성전을 짓고 교회를 부흥시키는 것은 쉽지가 않을 것인데 성전 건축까지의 얘기를 들어보았다.
"모든 것은 하나님이 해 주셔야 합니다. 아직 부흥이라고 할 것까지는 없지만 우리교회의 성장의 비결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성전을 지으려고 하니 사단의 시험이 무겁게 도전하고 시험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인정하고 엎드려 기도하는 것이 승리의 비결이었습니다. 보시다시피 주변에 있는 교회는 성전을 건축해서 자리잡고 있는 교회들입니다. 당시 우리교회는 보증금 300만원에 월세 50만원의 임대교회였습니다. 그런데 93년 5월 어느 날 갑자기 건물 주인이 교회를 비우라는 것입니다. 93년 12월까지 교회를 비우라는 내용 증명을 보내 온 것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성도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죠. 추운 겨울 12월에 개척교회가 갑자기 어디로 이사를 갑니까? 땅을 빌려 천막을 치자, 내년까지 버티자는 등 각가지의 의견들이 나왔습니다만 그 어떤 것도 해답이 될 수 없었습니다.
당시 우리 교회는 어렵사리 절대농지 300평을 매입해 놓고 있었는데 이 땅은 용도 변경이 불가능한 땅이었습니다. 결국 방법은 기도하는 것밖에 없었습니다. 기도 중에 전교인 100일 작정 기도회를 하라는 하나님의 응답을 받았습니다. 교회당 이전이 아닌 성전건축을 위한 100일 기도회를 시작하기로 선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아!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100일 기도회를 선포하는 그 시간에 그만 교회소형 버스가 사고를 내고 말았습니다. 봉사하던 집사가 구속되었습니다. 그러니 또 어려움과 시험이 찾아옵니다. 교회는 숨을 죽이듯 고요해졌고 성전건축 문제를 거론 하다가 너무나 힘든 상황이 되었습니다. 특히 93년은 50년만에 찾아온 유난히도 무덥던 여름이었습니다. 1차, 2차, 3차로 나뉘어 그 여름이 꼬박 지나도록 밤마다 기도회를 인도했습니다. 매일마다 설교내용과 기도 제목을 프린트해서 나누어주며 기도회를 이어나갔던 것입니다. 오순절 성령의 역사를 눈으로 보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의 배후에서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성전 건축에 대한 마음이 하나로 뭉쳐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결코 인위적인 방법으로는 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온 성도의 동일한 체험이 중요
말을 하는 한마디 한마디가 부드러우면서도 확신 있게 말하는 소 목사에게는 무언가 느낄 수 있는 감화력과 친근감이 있었다.
"그 기도회 덕분에 하나님의 은혜로 대지 150평을 추가로 매입했습니다. 농지전용 허가를 받고 성전 건축 설계, 허가 그리고 시공자가 정해졌습니다. 어느 것 하나 막힘이 없이 마치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하나님께서 형통케 해 주셨습니다. 건축 기초공사가 시작되자 자원하는 더 많은 심령들이 생겨났습니다. 성령께서 얼마나 강하게 역사하셨는지 금반지, 금팔지, 금목걸이들도 헌금주머니에 넣어졌습니다. 순박한 시골 여 집사님들이 돈이 있어봐야 얼마나 있겠습니까? 평생을 두고 장만한 것들을 아낌없이 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기쁘게 받으신 것 같았습니다.
건축하는 동안 성도들이 줄기는커녕 늘어났고 또 좋은 일기 가운데 아무런 사고 없이 무사히 건축을 마치게 된 것입니다. 이사를 나가야 하는 그해 12월에 우리교회는 지하에 임시 입당을 하였고 그 다음 해 6월 24일 정식입당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장로 1분과 안수집사 5분을 새로 선출해서 목사위임식과 임직식을 동시에 갖기로 하였지만 좀더 교회를 성장시킨 뒤에 위임식을 하기로 하고 하나님께 감사의 잔치를 열었던 것입니다. 이제 1997년 10월 15일을 성전 헌당일로 예정하고 온 교우가 합심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경찰서가 하나 늘어나는 것보다 교회당이 하나 더 생기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오늘날에도 사단이 가장 방해하는 일은 교회가 개척되지 못하게 하고 교회가 건축되지 못하게 하는 일일 것이다. 우리의 목회사역에서 이러한 하나님의 일을 훼방하는 악한 세력들을 분별하고 기도로 이들을 결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사단은 정사와 권세를 쥐고 관공서와 지역 사람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교회 건축을 방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게 되면 모든 일이 형통케 되는 것이다.
광일교회 소량호 목사 그는 참으로 기도하는 목회자였다. 그 자그마한 체구에서 어떻게 그런 강인한 믿음과 기도의 능력이 나오는지 모르겠다. 광일교회가 이 지역에서 급성장하고 있는 비결에 대해서 다시 물어 보았다.
"지역 특성상 전도하기가 무척 힘이 들었습니다. 여기는 도시도 아니고 그렇다고 농촌도 아닌 아주 애매한 지역입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 계층 어떤 사람들을 전도의 주 타켓으로 삼을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대개의 부부들은 대도시로 맞벌이하기 위해 출퇴근하고 낮 시간이면 노인들밖에 집에 있지 않습니다. 대도시 같으며 노인들조차도 보기 힘들겠지만 이곳은 그래도 경로당이 여러 군데 있고 노인들도 많이 계십니다. 그래서 우선 실추된 광일교회의 위상을 높이고 좋은 이미지를 심기 위해 장년 층과 노년층들에게 집중적으로 전도했습니다. 노인정을 찾아가 세배도 하고 시설지원도 해드리고 또 70세 이상 노인은 따로 모아 매년 5월 중에 관광도 시켜 드렸습니다. 처음에는 회의적이던 마을 사람들이 광일교회를 새롭게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차츰차츰 축호전도를 시작했습니다.“
개발로 인한 성장의 잠재력 기대
“지금도 우리교회 선교단들이 노방전도를 합니다만 요 최근에 하남시 개발로 밀려난 영세공장들이 광주로 이전해 오면서 교회주위에 사람들이 이주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을 상대로 교역자 사모들로 구성된 편지 전도 팀을 만들었습니다. 편지 전도는 두 가지로 나누었는데 하나는 한 번이라도 교회에 출석한 사람들을 상대로 보내는 사랑의 편지이고 하나는 불신자들을 상대로 보내는 이슬비 전도 편지가 그것입니다. 그 결과 한 번이라도 광일교회를 들른 사람은 그대로 정착해서 안정된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참 감사한 일이지요"
소량호 목사는 일찍부터 문서 전도에 관심이 컸었다. 목사가 문서전도와 글쓰는 일을 즐겨 한다는 것은 참으로 좋은 달란트이다. 그래서 그런지 모든 교회 교육과 양육 자료들은 스스로 집필하고 출판하며 때로는 자비를 들여서 출판해서 그것을 전도와 양육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미 만들어진 책 만해도 여섯 권이고 교회 내에서 초신자 양육용으로 쓰이는 작은 소책자들도 초급에서 중급까지 손수 다 만들어서 사용하고 있었다.
중학교가 겨우 하나 있고 이제 내년이면 고등학교가 들어올 예정인 낙후된 지역에서 오직 하나님께 대한 충성과 양떼들을 사랑하는 일념으로 목회에만 전념해 왔던 결과 오늘 이렇게 성장했노라고 겸손하게 말하는 그의 모습에서 우리는 다음 세대에도 분명히 큰 성장이 있을 것이란 것을 의심하지 않을 수 있었다. 광일교회의 핵심은 아무래도 양육과 선교에의 강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이에 대한 것을 다시 물어 보았다.
예배를 통한 영성운동
"교회의 1차적인 목표는 예배입니다. 우리교회는 하나님께 올바른 예배드리기를 가장 강조합니다. 개척 당시에는 여 제직들이 예배에서 많이 수종 들었는데 지금은 남 제직 중심으로 예배에 봉사하게 합니다. 남자들의 권위를 세워 줌으로써 남 제직들의 믿음이 자라게 되었습니다. 찬양단과 함께 뜨거운 예배를 한 달에 한 번 이상 드리면서 예배 속의 뜨거움과 감격을 잊어버리지 않게 합니다. 예배를 잘 드리는 신자로 양육하는 것이 광일교회의 목표입니다. 이러한 진정한 예배자의 의식이 있을 때 이사야 6장에 나오는 헌신과 선교의 고백과 울림이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예배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감격하게 될 때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헌신하게 되는 것이죠. 광일교회는 앞으로 120구역을 목표로 전도하고 있습니다. 그때가 되면 우리는 한 구역에서 한 곳씩 맡아 120개의 각종 선교사나 단체 기관들을 선교하게 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것을 꼭 응답해 주시리라고 확신합니다"
말씀 준비하기 위해 금식하는 목사, 강단에 올라가기 전 산기도부터 하는 목사, 교회의 중요한 행사 앞에는 언제나 먼저 기도하는 목사로 인정받고 있는 것을 볼 때 광일교회는 광주군 뿐 아니라 나아가서 경기도 일원과 수도권까지도 영향을 미치는 큰 교회로 성장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대담을 정리하면서 광일교회와 소목사의 비전에 대해서 물어 보았다.
"앞으로 한국사회는 도시로 나가서 살던 사람이 다시 도시 근교 농촌이나 전원으로 귀향할 것으로 봅니다. IMF는 이것을 촉진시키고 있습니다. 산업사회에서 너무 많은 스트레스를 받다 보니 자연 회귀 본능이 더 자극되는 것이지요. 그렇게 볼 때 이 지역은 앞으로 많은 인구의 유입이 예상됩니다. 이미 교회 앞뒤에서 농지를 전용하여 아파트가 건설될 예정입니다. 98년도만 1500세대의 아파트 입주자들이 몰려오고 2000년대에는 이 지역 인구가 1만 명 이상으로 불어나리라고 봅니다. 태전리 라는 이 작은 마을이 조그마한 도시가 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우리 교회는 지금부터 2000년대를 준비해야 된다고 봅니다. 준비된 일군들을 키우고 평신도 지도자들을 구비시켜서 이 지역사회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할뿐만 아니라 교회도 중심으로 섬기게 해야 합니다. 또 지역 주민들에게 열린 공간으로서 교회를 개방할 뿐 아니라 깊숙이 침투해서 봉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출 계획입니다. 지금 현재의 성전도 2000년대를 대비해서 더 확장해야겠고 은사와 달란트에 따라 소그룹조직을 많이 만들어 각계 각층에 전도할 수 있는 전문 집단을 만들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향후 광일교회는 2000년까지 천명 성도가 모이는 교회로 성장하리라고 봅니다. 120구역에 120군데에 선교하는 교회 되도록 무릎꿇고 기도하려고 합니다"
기도하겠다는 소목사의 말을 마지막으로 글을 정리한 뒤에 흙먼지가 뽀얗게 날리는 태전리 지방도로를 벗어나면서 믿음과 기도 앞에는 산도 움직여진다는 확신을 갖고 서울로 올랐다. 정확히 오후 4시였다
3.동선교회
“안될 수 없는 교회부흥을 주 특기로”
박재열 목사
(대한신학교와 신대원)
쉬운 복음 가까이 다가가는 교회
그의 메시지는 쉽다. 초신자들도 마음을 연다. 그의 메시지는 사랑이 담겨있고 힘이 있다. 서울 천호 3동 동선교회 박재열 목사(예장대신). 그의 교회는 예배시간에 활기가 넘친다. 오래된 교인들, 교회에 출석한지 불과 3개월밖에 안된 교인들, 지나가던 행인들이 활기를 느낄 정도로 예배가 축제분위기다. 동선교회의 재적교인(장년)은 3천 6백 명, 출석교인은 1천8백 명이다. 이들 가운데 세례를 받지 않은 교인들이 약 70%인데 매년 6백 여명이 이사로 교회를 떠나고 그만큼의 교인들이 초신자들로 채워진다. 이것은 결국 동선교회가 회심전도를 통하여 성장해 왔다는 것을 입증하는 통계인 것이다. 그러나 이 때문에 비슷한 규모의 다른 교회보다 재정이 취약하다. 그러나 이웃을 위한 봉사활동에 전혀 지장 받지 않는다고 박 목사는 말한다. 봉사와 전도에 박 목사와 전 교인들이 솔선 수범하기 때문이다. 최근 성장이 둔화되고 있는 한국교회에 박 목사의 목회스타일과 그의 전도전략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교회갱신이 중요한가 전도운동이 중요한가
먼저 자리를 잡고 그와 이야기를 나눈 첫 주제는 교회의 갱신에 관한 것이었다.
“전도의 갱신을 말하기 전에 교회의 갱신을 말하면 안됩니다. 우리 나라 인구의 80%가 불신자인데 그들의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목회자라면 교회가 성장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히려 교회가 성장되지 않는 것이 기적이지요. 저는 지금까지 목회하면서 수 많은 목회자들을 지켜보아 왔습니다. 재주 많은 목회자는 실패해도 기도하는 목회자가 실패하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게으른 목사는 실패해도 밤낮으로 전도하며 영혼 사랑에 몸부림치는 목회자가 실패하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 교회의 성장은 목회자에게 달려 있습니다 ”
처음부터 정곡을 찌르는 그의 대답에 필자는 잠시 받아쓰기 하는 것을 잊어버리고 그렇게 망연 자실 그의 입만 쳐다보고 있었다. 사실 어떤 진단보다도 더 정확한 진단이요 지적인 것이다. 「안될수 없는 교회부흥」의 저자이면서 교회성장세미나 강사로 전국교회에서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박재열 목사. 필자가 그를 만난 것은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1998년 어느 여름이었다.
그의 목회는 불신영혼의 구원에 모든 초점을 맞춰져 있다고 할 수 있다. 교회의 예산과 프로그램 직분자 임직 행사 등이 모두 불신자들의 영혼구원에 맞게 짜여진다. 교인양육의 기준도 인격이나 교양의 향상, 헌금, 봉사에 머무르지 않고 믿지 않는 이웃을 사랑할 줄 알며 그들을 전도하지 않으면 스스로 마음이 견딜 수 없도록 양육한다. 이것이 짧은 시간 그가 동선교회를 일구어내어 온 비결 아닌 비결이었다고 말한다.
박 목사는 개척교회가 쓰러지고 교회성장이 둔화된다는 요즘의 현상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모든 목회자들은 대형교회는 물라도 중형교회는 이끌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왜냐하면 교회밖에는 불신자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목회자들이 이 믿지 않는 사람들의 영혼을 사랑한다면 교회는 자연히 성장한다는 것이다.
“교회는 구원 선(船)입니다. 세상에 널려 있는 고기(불신자)를 열심히 잡아 구원 선에 가득 채워야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입니다. 성경에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다」(사도행전 18장10절),「추수할 것이 많다」(마태복음9장31절)고 했습니다. 이제는 다른 교회 교인을 빼내어 오는 전도가 아니라 불신자를 구원하는 전도로 전략을 바꿔야 할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지금처럼 개척교회가 전도해 놓은 어린 신자들을 곳감 빼먹듯이 하나 씩 하나 씩 빼내어 가버린다면 언젠가는 그 타격을 대형교회들이 받게 도리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행정적인 거리를 뛰어 넘어 교회 버스를 돌리고 재벌식으로 남의 교회 문 앞에 지 교회를 세우는 풍토가 사라지지 않고는 진정한 의미의 한국교회 연합은 있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전략은 모두 영혼구령이라는 순순한 복음 운동에 기인 한 것이 아니라 패권주의에서 나온 세상 적인 것입니다. 주님은 분명히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고 경고하셨는데 교회가 더 앞장서서 문어발 식 확장을 해 대고 있으니 한국사회가 썩어가는 것 아닙니까?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책임을 가진 곳이 교회인데 오히려 교회가 손가락질 받는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순수한 구령운동으로 되 돌아와야 합니다.”
박 목사는 어려움을 겪어 본 개척교회 목사답게 솔직한 말을 꽤 거침없이 하는 편이었다. 항상 이러한 교계의 잘못된 모습에 대해 의아함을 가지고 있던 필자는 마음이 다 후련해져 옴을 느낄 수 가 있었다.
안 될 수 없는 교회의 부흥은?
1949년 충북 청주출생인 박목사는 대한신학교와 신대원을 나와 82년 현재의 위치에서 가족 6명을 데리고 교회를 시작했다. 한창 개발 중이던 이곳에서 그는 기존교회의 교인들을 대상으로 전도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그러한 절개를 지키고 있는 동안은 그만큼 교회를 성장시키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그는 교인들에게 불신영혼의 구원이 진정한 복음전파라고 깨우쳤다. 그리고 자신도 그것을 실천했다.
이때부터 교회의 모든 행사 예산 프로그램을 믿지 않는 사람들의 전도에 맞췄다. 물론 예산도 넉넉치 않았지만 그는 교회의 헌금의 대 부분은 전도를 위해 쓰여져야 한다고 굳게 믿는 사람이다. 매년 목표 새 신자 등록 수를 정하고 지속적으로 밀고 나갔다. 이 때문에 동선교회의 교구별 헌신예배는 유명하다. 박 목사는 개척한지 17년만에 교인의 70%가 초 신자들로 구성되어 있는 출석교인 1천8백여명의 중형교회를 이끌고 있다.
“생각 해 보십시오. 저는 목사의 사례에 대해 불만이 많습니다. 목사는 복음 전파 자 이기에 당연히 목사의 사례비는 전도 비 항목에서 지출되어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대개의 교회들이 예배비 항목에서 계정하여 지출합니다. 이는 목사를 예배인도지로 보는 시각 때문입니다. 즉 제사를 집전하는 제사장이라는 개념 때문입니다. 목사가 제사장입니까? 목사가 레위인 입니까? 칼빈이 한국교회를찾아 온다면 종교개혁 다시 하자고 할 것입니다. 그리고 목사들부터 치리하자고 달려들지 모릅니다. 이러한 에배 집전자로서 성직자를 바라보는 시각은 카톨릭에서 하는 짖입니다. 목사는 사도들의 사역을 이어 받은 복음 전파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복음 전파의 최일선에 서 있어야 합니다. 목사가 성직자 인 것은 제사장이나 신부들처럼 하나님 앞에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존재라서가 아니라 천사도 흠모하는 복음전파의 중책을 맡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제 철학입니다.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목회에 임하지 않는 한 목회는 양 ‘쟁탈전’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큰 교회의 책임
최근 동선교회는 전국에서 아주 어려운 미자립교회를 10곳 선정, 그 교회목회자들이 주변의 불신 노인 20명씩을 인솔해 제주도 여행을 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천호동의 결식노인들에게 매주 3차례 식사를 제공하고 이 미용서비스를 한다.
이러한 사역들을 하는 이유가 그에게는 있다. 큰 교회는 마땅히 작은 교회를 책임지고 성장 시켜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사실 큰 교회의 성장은 작은 교회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마치 샛강이 있어야 큰 강이 있듯이 말이다, 그러므로 큰 교회들이 작은 교회를 무시하고 작은 교회의 자생력을 무시해 버린다면 결국 큰 교회들도 언젠가는 성장이 멈추거나 줄어 들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성장이 둔화되는 일차적인 책임은 대형교회들에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대기업 재벌들이 우리나라의 중소기업들을 짓밟듯이 큰 교회들이 너무 무차별적으로 공격적인 목회를 한 결과 가능성 있는 중. 소형 교회들까지 존립의 위기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 공멸의 자리에 놓인 것이지요. 결국 이러한 위기는 시간이 갈수록 더 심해질 것입니다.”
안될 수 없는 교회부흥 세미나 개최
4년 전부터 전국 교회의 초청을 받아 「안될수 없는 교회성장」세미나를 하고 있는 그는 올 상반기만해도 28회 2천여명의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불신영혼의 구원이 진정한 전도』라고 외쳤다. 요즘 그는 또 불신영혼 구원에 목회자들이 솔선수범한자는 생각으로 목회자시신기증운동을 펼치고 있다. 이미 4백여명의 목회자들이 시신을 기증하기로 약속했다.
그는 『믿지 않는 자의 영혼을 건지는 사람을 키우는 것이 목회』라고 말했다. 참으로 복음에 사로잡힌 사역자는 교회부흥은 안 될래야 안될 수 없는 것이 교회부흥이라는 말이 저절로 나오게 되는 것을 느낀다. 오늘도 한가지 깨닫는 것은 교회성장의 문제는 목회자 자신이란 것이다.
“생각 해보십시오. 목사가 사도적인 열정에 사로잡혀 있다면 피 묻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지 않고 견디겠습니까? 진정 그가 주의 종이라면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되라는 명령에 둔감하겠습니까? 주님은 ‘가서 제자 삼아 세례를 주고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셨지 단순히 예배 집전자가 도리라고 우리를 부르지 않으셨습니다. 목사는 무엇보다 복음전도에 생명을 걸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교회부흥은 안 될래야 안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수 많은 목회자들이 대가 없이 성공할려고 합니다. 바울 사도가 어디 성공을 위해 좇아 다녔습니까? 그가 대형교회를 세우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까? 그의 관심은 오직 하나 ‘로마에도 복음을 전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로마는 세계의 끝이며 동시에 세계의 시작인 곳입니다. 그래서 할 수만 있다면 로마도 보기 원했던 것입니다. 누군가의 설교처럼 ‘로마가 들어야 할 복음’이었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전하면 당연히 교회는 성장합니다”
우선 그와 말을 나누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모든 말에 거침이 없다. 이것은 한 마디로 말해 그가 고뇌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우리는 대개 신학교를 졸업하면 그 고뇌를 학교에 두고 나온다. 왜냐하면 그대부터 처절한 생존경앵이 있기 때문이다. 목회가 성직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수단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일순간에 고생을 끝낼 수 있는 방법과 프로그램에 몰두하게된다. 그러는 사이에 본질은 저만치 가버리고 우리에겐 현실만 남는다. 하지만 박 목사에게는 우리가 잃어버린 그 본질에 대한 강한 고뇌가 살아 있는 것이다.
복음을 증거하는 교회로 남기 위하여
이제 동선교회 박 목사는 다시 한번 우리에게 도전한다. 어떤교회가 도리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저는 복음을 전하는 교회로 동선교회가 남기를 원합니다. 대형교회 되는 것을 포기하면 가능합니다. 버스 돌리지 않고 지 교회 세우지 않기로 작정하면 간단합니다. 혼자 잘되려고 하지 않고 작은 개척교회들과 함께 공존하며 복음전할 길을 모색하려고 하면 된다고 봅니다. 사실 저희들도 말만 앞세웠지 실천하지 못한 것이 많이 있습니다. 이제 2년 뒤면 21세기입니다. 동선교회는 실천하는 교회 되기를 원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과 작은 교회들의 자생력을 길러주는 일을 위해 지금보다 배나 더 수고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동선교회 박 목사를 인텨뷰하고 나오면서 느끼는 것은 그래도 하나님은 시대 시대마다 자신의 종들 세상에 머리 숙이지 않고 황금에 머리 숙이지 않고 의연하게 맡은 본연의 사역을 감당하는 종들을 숨겨두신다는 것이었다. 이제는 성공신화에 매달려 ‘꿩 잡는 게 매라는 식’으로 무조건 원칙도 사명도 없는 그런 목회가 아니라 우리의 존재 목적에 맞는 목회를 해야겠다는 다짐을 다시 한번 하면서 돌아왔다.
4.안산광림교회
“지역사회에 뿌리 내리는 교회”
최이우 목사
(감신대대학원 김신대신대원(설교학) 감신대 목회학박사원, 서울신학대학원, 풀러신대학원)
안산의 영적 첨병으로
1987년 12월 7일 개척 창립된 안산 광림교회는 서울광림교회(김선도 목사) 남선교회 총연합회의 기도 결실로 세워졌다. 선교회원들의 정성어린 회비와 헌금으로 대지 340평을 구입하고, 187평의 예배당을 건립해 5년 4개월 광림교회에서 부목사로 사역한 치목사를 담임자로 파송 했다. 안산은 반월공단 배후도시로서, 당시 17만 5천명의 시민에 약 200여 곳의 교회가 있었다. 그런데도 개척 12년만에 안산에서 최단 시간에 가장 빠른 성장을 보인 교회로 기록되고 있다. 그를 만나기 위해 몇 차례나 팩스를 보낸 끝에 겨우 승낙을 얻어 당도한 곳은 의외로 주택가와는 많이 떨어진 외진 고개 길 옆의 골목이었다. 안산에서 가장 외곽이라고 하는 거모동 방향이었다.
“처믕엔 이곳에 왔을 땐 사실 막막했습니다. 개척 멤버가 없었던 까닭에 남선교회 회원들이 2개월 동안 매주 15-20명씩 안산에 내려와서 개척을 도와야 할 정도 였으니까요. 하지만 교회는 은혜 가운데 성장해 2개월이 지난 1988년 2월초에는 등록교인 150여 명 가운데서 임원회를 구성하고 서울광림교회 남선교회 측으로부터 모든 것을 인수받았습니다. 사실 감개가 무량하였습니다. 개척 만 10년이 지난 지금, 안산은 인구 55만 도시로 성장했고 교회도 약 600여 개로 늘어났는데, 우리교회는 대지 1,200평에 본당, 교육관, 사무실, 교역자관 등 모두 800여 평의 건물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교회 담장을 완전히 없애버린 교회 마당과 주변에는 130여 대의 승용차를 주차할 수 있는 그나마 여유 있는 교회로 성장하였습니다만 초기에는 외진 곳이라 어려움도 많았습니다.”
그후 교세는 개척 한 달만에 101명의 등록교우들이 교회 창립 멤버가 된 이래 지금은 2600여명, 그리고 교회학교에 1200여명이 등록되어 있다고 한다.
“87년 12월에 개척되어 만 8년이 되기까지 공교롭게도 매년 470여 명씩 등록하였습니다. 아마 그게 제 그릇이니까 하나님이 그렇게 보내 주시나 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신도시 특성상 이동하는 교인도 적지 않아 정착률은 별로 만족할만하지 못했습니다. 교회의 위치가 사람들이 찾아오기 쉽지 않은 곳에 있다는 것과 안산에서 가장 큰 교회들이 더 좋은 위치의 가까운 곳에 우뚝 서 있다는 것은 분명 우리 교회로서는 불리한 점임에는 틀림없지만 그 가운데도 안산 시내에 좋은 소문이 나면서 꾸준하게 성장,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라고 저는 늘 감사하게 목회하고 있습니다.”
그의 첫 인상은 매우 온화하다. 그 기에다 안경을 쓴 관계로 그의 게서는 학자다운 위풍도 나타난다. 하지만 정작 그의 설교를 들어보면 불을 뿜는 듯 웅변적이다. 모든 면에 있어서 그는 항상 온유와 양보를 기본으로 삼지만 복음전도에 있어서는 양보가 없는 사람임을 안다.
나는 누구인가
먼저 그의 목회 노하우어를 알기 위해 그의 과거를 살펴보고 싶었다. 당회실에서 마주 않아 먼저 그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부탁하였다.
“저는 6.25 동족상잔의 상흔이 허옇게 흩어져있던 1952년, 가을의 풍성한 열매들이 무르익어가는 한가위 사흘 전에 불교의 도성 경상북도 경주에서 2남 2녀 가운데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조상 대 대로 내려온 불교가정에, 불교문화가 꽃핀 도시에서 그런 것만 보고 성장했는데, 친구를 통해 고등학교 1학년 때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감신대대학원(조직신학)과 감신대신대원(설교학)을 나와 같은 대학 목회학박사원에서 설교학을 연구했으며, 그밖에 서울신학대학원과 미국풀러신대학원에서도 연구하였습니다. 1977년 대학원 재학 중에 담임목회를 시작하면서 결혼해 두 딸의 아버지가 되었고 아내는 결혼 뒤에 장신대 신학과를 나와 장신대신대원에서 상담학을 공부한 다음 감신대대학원에서 C.P.E 1년 과정을 수료했습니다. 지금은 경기대학교 대학원에서 사회사업을 공부하고 있어 목회의 좋은 동역자가 되고 있습니다.”
자신의 생활에서 사소한 즐거움의 하나는 책방에 가는 일이란다. 한 달에 두세 번 책방에 들르며 20권 정도의 책을 구입하는데 매달 다 읽지는 못하지만 읽으려고 노력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연이어 그는 자신의 성격과 장단점을 이야기 해주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성격은 자상하고 세밀하며, 공정하고 냉정하며, 끈기있고 뚝심이 있습니다. 이러한 성격이 영성생활과 조화돼 목회를 형성합니다. 자상하고 세밀해서 심방목회가 대단히 흥미롭고 이에 대한 달란트가 있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공정하고 냉정한 성격은 교회행정을 비교적 빈틈없이 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입니다. 끈기와 뚝심은 무슨 일이든지 쉽게 요동하지 않고 줄기차게 밀고 나가게 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단기사역보다는 장기사역에 비교적 강한 편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목회와 목회철학
아무도 예수님을 믿지 않는 가정에서 예수님을 처음으로 영접한 뒤에 은혜 받은 최 목사는 기도생활을 열심히 했다고 한다. 하나님이 자신을 목회자로 부르신 분명한 소명은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는데 예수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것이 너무 좋고 감사한데, 이것을 자신만을 위해서 간직하는 것은 죄악이라는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 그때부터 “주여! 주의 종이 되어 모든 사람들에게 이 복음을 전하게 하소서”라고 기도했는데 신학대학에 입학해서도 학자나 기관목회자가 된다는 것은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고 오직 일선 목회자로 살겠다고 결심하고 기도했으며, 예수 믿은 지 10년 만인 1978년 3월에 목사안수를 받았다고 한다. 더욱 감사한 것은 한번도 이 길을 후회해 본 적이 없다는 것과 언제나 어떻게 하면 하나님 마음에 꼭 맞는 목회자로 살 것이나를 기도하며 오직 외길을 달려왔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 하나는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 가족 형제 처가, 친척들이 거의 다 예수님에게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이것은 목회의 커다란 확신의 바탕이 되고 있다고 말한다.
“1977년 4월, 경기도 남양주군 수동면 성산교회에서 시작한 담임목회 2년 뒤에 육군 군목으로 40개월을 복무하고, 서울 광림교회 부 목사로 만 4년을 지낸 1986년 8월에 저는 100일 동안 작정기도를 했습니다. 매일 밤 한 시간씩 교회 기도실에 올라가서 세 가지를 구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시작할 담임목회는 축복 받은 축복의 목회가 되게 하소서, 100평 이상의 건물에서 시작하게 하소서, 기왕이면 서울에서 할 수 있게 하소서’ 작정기도가 끝난 11월 29일, 교회 건축하다가 지붕 올릴 돈이 부족하다는 후배 목사의 말을 듣고는 아내의 제안으로 200만원의 헌금과 5만원의 교통비를 그 목사에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정확하게 1년 뒤인, 1987년 11월 29일 서울 광림교회에서 저를 안산광림교회 담임목사로 파송하는 예배를 드렸던 것입니다”.
안산광림교회의 개척, 담임의 1년 전에 끝난 100일 작정기도의 100퍼센트 응답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안산광림교회 개척비는 땅값(340평), 건축비(187평), 성구비 모두 합쳐서 2억 5백만원이었다. 이것은 1년 전 그의 가정이 친구목사를 위하여 헌금과 교통비로 드린 2백 5만원의 100배의 열매였는데. 신묘막측한 하나님의 역사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라고 겸손하게 말하고 있다.
목회에서 강조하는 것들
이제 그와의 인텨뷰를 구체적으로하기 위해서 목회철학에 대해 물어 보았다.
“무엇 보다 성령충만입니다. 교회와 목회는 전적으로 성령의 영역입니다. 교회의 절대 기초가 되는 신앙고백과 교회의 지상 탄생과 목회의 사역능력인 은사 등 성도들의 인격화된 신앙인, 성령의 열매(갈 5:22-23)등 어느 것 하나도 성령의 역사 아닌 것이 없습니다. 교우들을 심방하면서 발견한 경이스러운 현상은 목사가 심방하기 전에 이미 성령님께서 심방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나는 다만 주님이 승리해 놓으신 현장에 따라가서 승리의 개가만 부르고 올 뿐입니다. 그래서 목회의 현장에 하나님의 성령의 임재와 자유로우신 역사를 간절히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말씀에 굳게 서는 신앙이다. 인간적 설득이나 권면으로서는 단 한 사람의 영혼도 구원하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창조하시고 역사하시고 구원하십니다. 성경은 어떤 의미로든지 절대 무오하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살아있는 이 말씀이 사람들의 심령에 부딪치면 능력을 발휘합니다(히 4:12). 때문에 설교는 말씀 중심의 강해설교를 하며, 교회에서는 트리니티성서연구로 철저하게 말씀을 가르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대로 생명이고 능력이며 약속임과 동시에 축복입니다. 아무 것도 이 말씀의 권위를 대신할 것이 없습니다. 셋째로 넘치는 기도와 찬송입니다. 기도와 찬양의 신앙이 하늘로 치솟을 수 있는 독수리의 두 날개와 같습니다. 기도와 찬양이 삶 속에 가득하면 지칠 줄 모르는 새 힘이 넘치고, 마르지 않는 샘물같이 우리를 만족하고 기쁘게 합니다. 그래서 기도 많이 하는 성도들을 육성해 축복의 역사가 지속되게 하고, 찬양은 수준 있는 성가대와 올바른 찬송으로 신앙의 기쁨을 더하게 합니다. 기도 있는 교회와 신앙은 뜨겁고, 찬양이 넘치는 심령과 교회는 시원합니다. 그래서 할 수 있는 대로 기도의 그룹과 시간을 넓게 하고, 찬양을 많이 부르고 성가대는 되도록 많이 만들어 많은 시간들을 성가대에 봉사하도록 해서 찬양의 기쁨을 얻게 합니다. 넷째로 불타는 구령열입니다. 감리교 창시자인 요한 웨슬리는 목회에 있어서 영혼구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일생 동안 하루에 80킬로미터씩이나 전도여행을 했고, 4만여 회의 설교를 했습니다. 구원받아야 할 영혼이 있는 곳이면 그는 어디든지 달려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세계는 나의 교구다’라고 외치면서 나간 웨슬리의 후예들에게는 불타는 구령열이 있어야 합니다. 다섯째로, 축복을 받고 베푸는 삶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반드시 하늘과 땅의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바른 베풂이 없이 받기만 하는 축복은 ‘기복신앙’의 욕심을 뿐입니다. 축복을 사모하고 크게, 많이 지속적으로 받아 누리고 지속적으로 크게 베풀자”. 한 마디 한 마디가 시원시원한 대답입니다.
미래를 준비하는 목회 정책
“‘안산광림 비전 2000’이라는 마스터 플랜의 윤곽이 잡혔다. 이것을 수행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사항을 준비한다. 첫째, 3,400평 대지와 1만석 예배당과 사회복지선교센타 건립이다. 교회를 개척한 뒤 7년 반 동안 줄기차게 3,400평을 부르짓으며 온 교인이 기도해왔다. 안산의 ‘고잔벌 시대’가 열리기를 기도하는 것이다. 안산의 고잔벌에 220만평의 새 택지조성 지역에 이제 곧 분양 발표를 하게 되면 한국교회 역사에 새로운 장이 열리는 쾌거가 드러날 것이다. ‘3,400평 성전대지’ 꿈에도 부르던 노래였다. 하나님께서 주실 줄로 믿고 명실상부한 안산복음화와 성시화의 중심이될 ‘시민의 성전’과 선교센타는 2천년 1월, 21세기 원년에 장엄한 축복의 문이 열릴 것이다. 둘째, 복지선교에 중점을 두는 목회이다. 21세기 한국은 ‘복지’를 통한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일에 몰두하게 될 것이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를 돌보는 복지 선교를 위해서 교회는 충분한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교회는 사람들의 육적인 욕구와 영적이며 정신적인 욕구와 문화적인 욕구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교회에 많은 지원들을 주셨다. 이 지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면 복지 선교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우선 탁아원과 유치원, 종일반 운영으로 전인교육으로 인간 됨의 틀을 형성하도록 한다. 맞벌이 부부들의 자녀들이 열쇠를 가지고 다니는 경우, 탈선할 요소를 엄청나게 지니고 다닌다. 이들을 하교 뒤에 복지시설로 인솔해서 휴식과 놀이, 학습의 길을 지도하고 부모가 돌아오는 시간에 교회 버스로 돌려보낸다는 것이다. 그리고 청소년들의 문화공간을 마련하고자 한다”
체육관, 도서관, 영사관, 수영장등 정열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는 공간을 이용해 탈선의 길을 막고 건전한 성장을 돕자는 취지인 것이다.
“우리는 매년 헌혈운동을 전개하고 있는데(‘95. 6. 25에는 181명), 94년 12월에는 510명의 안구기증을 약속하기도 했다. 앞으로 우리가 더 할 수 있는 것은 장기기증이며 최후에는 병원에 시신까지 해부용으로 기증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를 기념하는 명패를 부활동산에 안치할 것이다. 부활동산은 그야말로 주님 오신날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소망의 동산이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 기독교인들이 부활신앙을 부활신학으로 정립해야 한다. 전문화된 팀목회 실현이다. 교육, 사회선교, 상담학교, 청소년선교, 음악선교, 해외 국내선교, 문서선교, 방송선교등 각 분야의 최고 전문가들을 초빙해 목회의 분야를 위임하는 목회이다. 물론 담임목사는 이전체목회를 하나로 연결하는 주 채널이 될 것이다. 21세게 목회는 전문목회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복음화와 성시화의 비전을 갖는다. 교회를 개척하면서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두 가지 비전이 이것이었다. 그 동안 주신 기도제목을 붙들고 기도하는 동안 하나님께서 깨우쳐주신 구체화된 목회의 비전들이다. 나는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당신의 마음에 맞는 사람들을 세우시고, 당신의 능력을 주시어 이루게 하신다고 믿는다. 하나님이 때를 정하시고 일꾼과 자원도 하나님이 붙이신다고 믿는다. 나와 우리교회는 주님 오실 때까지 혹은 주님 앞에 설 때까지 하나님의 이 영광스런 일을 위해 쓰임받는 기쁨과 감격으로 순종하며 살 것이다”.
성장 포인트
교회성장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역사하심, 곧 은혜라고 하는 말 이외에 별로 다른 표현이 없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멕가브란으로부터 시작된 교회성장학파들의 성장연구 이후 교회성장을 과학화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성장요인을 분석한다면 성령께서 어떠한 교회 사역에 더 강하게 역사하셨는가를 말해야 할 것이다. 안산광림교회 목회에서는 다음과 같은 사실이 돋보이는 것 같다. 첫째는 삶에 변화를 주는 설교이다. 요즈음 사람들은 어느 교회든지 가서 바로 등록하는 경우는 드물다. 별로 바람직한 행동은 아니지만 현실적인 것은 어느 교회에 가든지 설교를 평가한다. 교회를 순회하다가 설교에 은혜가 되면 대개 등록을 결정한다. 주일 등록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그날의 설교에 달렸다. 자신의 설교는 논리적이어서 이성적인 깨우침과 설득력을 지닌 강해설교였다. 또한 성령께서 설교 때마다 개개인의 영혼을 사로잡는 은혜로 역사하심을 본다.
둘째, 비전과 변화를 주는 목회이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환상과 꿈과 예언을 주신다. 마른 땅에 샘물이 터지고, 사막에 물이 흐르고, 강을 보게 하시고 말하게 하신다. 교인들에게 만족과 지역 그리고 개인과 교회에 대한 분명하고 위대한 비전을 제시해 왔다.
이를테면 1990년대 이후 한국교회들이 전반적으로 침체 및 마이너스 성장을 하고 있는 현실을 보면서 이 시대를 ‘탕자의 시대’라고 보고 10여 년 동안 아버지의 품을 떠나가고 있으나 2천년, 즉 21세기는 ‘탕자 귀의의 시대’라고 생각한 것이다.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오는데, 돌아와야 할 아버지 집은은혜와 사랑이 풍성해야 한다는 비전이다.
21세기는 반드시 영적 대 부흥의 시대가 도래하므로 교회는 충만한 영성과 넓은 사랑의 쉼터를 준비해야 한다. 교회가 성장할 때 환경의 변화도 중요하다. 교회는 내적인 성장과 함께 꾸준히 변화를 도모해왔다. 새로운 프로그램 도입, 교역자 청빙, 대지 확장, 건물 증축, 교회개척, 선교사 파송 등이다.
셋째, 긍지 높은 교회 소속감을 주는 목회이다. 집에서 문을 열고 나서면 바로 문전에서부터 수많은 교회들을 지나쳐서 우리교회까지 찾아온다. 만약에 전통이 오랜 교회라면 조상대대로 섬겨오던 ‘내 교회’의식이 있을수 있지만 개척교회는 이것이 부족하다.
교인들이 이 교회에서 신앙생활하기를 잘했다고 생각하고 만족해할 수 있는 목회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 영감이 넘치는 예배와 찬양, 다양한 성서연구, 뚜렷한 비전 제시, 안산을 변화시키는 선교사업 전개 등이다.
5.열린교회
“불꽃 같은 열정을 주특기로”
김남준 목사
1. 목사님의 신앙에 대해
(성장 배경과 어린 시절)
모든 가족이 신앙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비교적 기독교인 분위기 속에서자랐습니다. 아직 말을 할 줄을 모르던 시절부터 식구들에게 엎혀서 교회에 드나들기 시작했습니다. 비록 회심하지만 못 했어도 중학교때까지 대체로 교회 생활을 계속해 왔습니다.
(청년시절과 활동)
제가 회심을 경험하게 된 것이 스무살 때 쯤으로 기억됩니다. 그 이후로 교회를 떠나지 않고 신앙 생활을 했지만 깊이 변화 받지는 못한 상태였습니다. 따라서 특별히 신앙적인 활동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어요. 신학을 공부하기 전까지 직장 생활 하면서 주일학교 교사로 줄곧 섬겼던 것이 전부였습니다. 구원의 획신은 없었지만 여전히 제 꿈은 세상에 있었습니다.
2. 신학동기
신앙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지독한 방황 속에서 젊은 시절을 보내고 있던 때 저를 목회자로 불러주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회심하고 난 지 약 5년 후였던 것으로 기억됩이다. 우연히 참석한 직장내 신우회의 성경공부 모임이 계기가 되어서 서서히 영적인 변화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결정적으로 목회의 길에 들어서기로 결심한 것은 일주일 동안의 금식기도의 응답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총각 집사로서 한 교회에서 유년 주일학교를 책임을 맡고 있었어요. 전도사님이 없었기 때문에 설교도 하고 성경공부를 가르치기도 하였는데, 여름 성경학교를 맞이하게 되었어요.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며 한 주간동안 금식기도하는 가운데 영혼의 구원을 위하여 나를 부르시는 것을 확신하게 된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3. 개척하실 때 상황
제가 교회 개척 할 때는 신학교에 교수로 외었던 때에요. 기독 대학교에 외었죠. 조교수로 있었던 시절인데 물론 꿈이 교회에 있었어요. 그래서 신학교 생활 9년 하면서도 늘 꿈이 교회에 있었던 것은 사실인데 학교에 있으니까 교회에 부임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그런 상황인데 기도 중에 교회를 개척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3년 전에 개척하게 되었어요.
4. 성장 비결에 대해서
살아있는 예배가 결정적입니다.
(목회 철학 참고)
저는 목회 철학을 따로 이야기 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 보다 성경에 가까이 다가간 목회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별도로 꿈을 가질 필요가 없이 하나님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 가장 하나님의 뜻에 가까운 사역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생각 때문인지 가장 아직 한번도 제 스스로의 목회 철학이 무엇인지 정리해 본 적도 없고 더욱이 체개를 세워서 다른 사람에게 알려 본 적도 없었습니다. 다만 교회가 성경으로 돌아가기를 바랄 뿐이고, 무엇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전해 주시려고 한 참된 기독교 신앙인가를 가지고 성경과 함께 고민하고 씨름할 뿐입니다.
5. 한국교회의 현 상황에 대한 진단과 해결책은
「설교자는 불꽃처럼 타 올라야 한다.」 「자네 정말 그 길을 가려나」
저는 독자둘이 이런 종류의 책에 목말라하는 현실에 대하여 일종의 슬픔을 느낌니다. 하루속히 이런 책들이 충격으로 다가오지 않고 잘 읽힐 필요도 없는 예배 현실이 되기를 비는 마음입니다. 저는 그 책이 독자들에게 폭팔적인 반응을 얻으며 읽히는 이유를 세가지로 봅니다. 첫째는 고통스러운 정도로 답답한 예배 현실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이 없는 예배는 사람들의 마음을 점점 더 굳어지고 만들어 주고 형식에 만족하는 외식하는 그리스도인이되게 하지요. 그렇다고 해서 그렇게 예배드리는 사람들이 전혀 영적 생활이라고 부를 수 어뵤는 그러한 종교생활에 만족하느냐면 그렇지 안거든요. 이런 목마름들이 그 책을 찾게하는 것 같아요. 둘째로는 최근의 목회적인 반성 때문입니다. 조국교회가 한계에 부딫힌 목회상황을 타개해 보고자 여러 가지 시도들을 해 보지 않았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런 시도들이 그리스도인의 목마름을 궁극적으로 해갈해 주는 방편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예배의 회복에 대한 관심이 폭 넓게 해결하게 된 것이 또 한 원인이 되었습니다. 출판의 시기가 시의 적절하였던 것 같습니다. 셋째로는 책의 내용이 한국적이라는 데 있었던 것 같아요. 제 책이 출간되기 몇 개월 전부터 이미 예배에 대한 책들이 여러번 번역 출판되었지만 별로 주목을 못 끈 것은 역시 예배에 대한 고민과 대안을 찾음에 있어서 “한국적인” 몸부림에 충분한 공감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조국은 그 어느때 보다도 심각한 위기 앞에서 있습니다. 국민 정신은 물가치와 되어가고, 동족애는 피폐해지고, 도덕성은 황폐화 되어 가히 윤리의 실종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물질적으로는 살기가 나아졌다고는 하나 여유있는 사람들은 대체로 향략으로 흐르고, 더 가난해지게 된 사람들 중에는 한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이 시회로 하여금 더욱더 반하나님 적이고 반기독교적이 되어가게끔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민족의 고민은 여러 갈래이고 교회의 아픔은 다양한 원인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뜻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조국과 교회의 이같은 어려운 형편을 변화시켜 보고자 여러모로 애쓰고 수고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분들의 진지한 고민과 섬김을 높이 사고, 격려해 주어야 하겠습니다. 아무나 그분들처럼 이 시대와 조국의 교회를 부여잡고 아파하면서 섬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국 땅에서 민족과 함께 성장해 온 교회와 기독교 신앙을 거스리는 이 시대의 물결은 너무나 힘차고 도도하게 느껴지며, 이를 역류해 보려는 우리 그리스도인들과 조국교회의 몸부림은 왠지 연약하게만 느껴집니다.
우리가 그리스도가 왕이심을 고백해도 왠지 조국땅은 공의와 사랑으로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통치로부터 멀어져가고 있는 것처럼만 느껴지고, 그때마다 이 땅위의 교회탑, 높이 솟은 십자가를 바라보는 우리들의 마음 한 구석은 시려오기만 합니다.
「영혼을 울리는 설교 개발」中에서 p. 59~60
6. 후배 목사님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
“소정의 과정을 마치면 신학교는 졸업장을 줍니다. 필요한 절차를 마치면 노회는 안수를 주고, 교회는 그들을 목자로 초빙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어학 훈련을 마치면 수료증을 받고 선교지로 나아 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하나님을 떠난 패역과 불신앙이 소용돌이 치는 이 세상이 변화되기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가슴에 불 붙는 말씀이 임하기를 사모하십시오. 이 시대를 향해 주시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설교자로 부름 받은 우리들을 영혼을 불같이 일깨우기를 구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모든 지식을 습득하고, 온갖 신학을 통달하였다 할지라도, 그것만으로 우리가 설교자로 태어나는 것은 아닙니다……누가 진리의 말씀을 해일처럼 몰고와서 패역한 이 시대의 바벨탑을 쓸어 버리고 여호와의 깃발을 세울 것입니까? 이 척박한 조국땅에 진리로써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 가득하게 만들어 줄 자 누구입니까? 오늘 하나님의 말씀이 임함으로 큰 자가 된 세례 요한을 보십시오. 설교자로서 한 시대를 일깨워 그리스도의 오시는 앞길을 예비하기 위해 그는 삼십년 가까운 세월을 광야에서 극심한 훈련을 받으며 영성을 키워갔고, 영력을 쌓아갔습니다.”
김남준 목사님의 저서 「세례 요한」中에서
7. 영향을 받은 선배 목사님이 있다면.
제가 영적인 어두움 가운데 있을 때에 하나님을 만난 것은 성경을 읽으면서였습니다. 성경을 통하여 영적인 각성을 경험하게 된 저는 제가 이제껏 믿어 온 것이 참된 기독교 신앙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것이 저의 영적인 순례의 닻을 올리는 계기가 되었어요. 그리고 저의 최근의 저서들은 그러한 영적인 순례의 길에서 얻어진 결과들입니다. 특별히 전적으로 영향을 준 사람은 없는 것 같아요.설교자로서의 삶은 중세 말기 플로렌스의 설교자 기롤라모 사보라롤라에게서, 설교자로서 성경 해석에 충실하고자 하는 태도에 있어서는 18세기 영구의 전설적인 설교자 죠오지 윗필드에게서 많은 감화를 받았고,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이해함에 있어서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에 대한 이해는 종교 개혁자 요한 칼빈과 18세기 미국 영적 대각성의 지도자였던 죠나단 에드워즈에게서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 앞에서 살아가야 할 인간에 대한 탁월하고도 목회적인 이해에 있어서는 17세기의 영국 청도교 죤 오웬을 비롯한 여러 성학들에게서 많은 감화를 받았거나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청도교들에게 심취하였던 로이드 죤즈의 저서속에서도 가르침을 받고 있습니다.
인터뷰 기사 中에서
8. 독서량은 얼마나 되십니까?
틈나는 데로 볼려고 하나 볼 수 없었어요. 그러나 여러 책을 볼 때 그와 관련된 여러 책을 볼 수 있었어요.
9. 가족관계
부인과 아들이(초등학교 5학년) 딸이 (7살)이예요.
10. 성경읽기는 어느 정도 하시는 가요?
전에는 다독을 하였지만 목회하게 된 때부터 정독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묵상도 하면서요.
믿음이라는 것은 그리스도인 각 개인과 하나님(I-You)의 대좌(対坐)이다. 우리가 죄사함을 받았다는 것, 즉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렀다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about Him)에 대한 태도가 아니라 '하나님에게'(to Him)의 태도이다. 내가 하나님과 만나 나의 전(全) 존재를 맡기고 그분에게 순종하는 전적(全的)인 결단을 의미한다. 이런 믿음의 가장 직접적인 표현은 기도이다. 기도는 하나님과 대면하여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기도의 모범에서 '당신의 이름'(Thy name), '당신의 나라'(Thy kingdom), '당신의 뜻'(Thy will)이라고 가르치셨다. 예수님께서 이방인들처럼 중언부언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그것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이 아니라 스스로 자기 마취적인 주문(呪文)을 외우는 것과도 같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떤 사람과 만났을 때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 내가 하고 싶은대로 행동하지도 않는다. 적어도 상대를 인격적으로 대하기 때문이다. 만일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만나 대화한다면(기도한다면) 함부로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육신의 아버지를 만난 자리에서 "당신은 정말 살아있습니까?"라는 식으로 말하지 않듯이 말이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분의 인격에 우리의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이다. 어떤 영화에서 보았던 장면이다. 한 아이가 그의 집에서 강도 둘에게 인질로 잡혀 있었다. 경찰이 그 집 주위를 포위하고 있었지만 누구 하나 제대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아이의 아버지는 의도적으로 총알이 없는 총을 가지고 그 집안으로 잠입했다. 아이의 아버지는 강도 중의 한 명에게 자신의 총을 갖도록 하고, 총을 가지고 있었던 나머지 한 명을 처치하고 그가 가지고 있던 총을 빼앗았다. 결국 아이의 아버지와 한 명의 강도는 서로 맞서게 되었다. 아이의 아버지의 총에는 총탄이 장전되어 있었고, 강도가 갖고 있는 총에는 실탄이 들어 있지 않았다. 강도는 아이를 인질로 잡고 있었다. 아이는 강도와 가까운 거리에 있었고, 강도는 아이에게 총을 겨누고 있었다. 아버지는 강도에게 총을 겨누고 있었다. 강도가 아이에게 총구를 겨누며 쏘려고 하자 아이는 무서워 떨며 어쩔 줄을 몰랐다. 그때 아이의 아버지가 말했다. "얘야, 아버지가 너 아버지를 알지? 내 말을 들어라. 하나, 둘, 셋 하면 아버지에게로 뛰어오너라. 괜찮다." 그리고는 곧바로 말했다. "하나, 둘, 세엣!" 그러자 아이가 아버지에게로 달려갔다. 물론 강도는 아이에게 총을 쏘았다. 그러나 그것은 총알이 없는 것이었다. 강도는 후에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죽게 된다.
믿음이란 것은 이런 것이다. 아버지를 믿고 달려가는 것이다. 진실한 아버지를 신뢰하는 것이며, 그분과의 대면이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죄사함을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지 못하던 상태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상태로 옮겨진 상태이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 자라면 더 이상 하나님의 존전에서 쫓겨나는 일은 없다. 오히려 죄사함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가지는 것이며, 그분의 말씀에 전적으로 따르는 것이다. 믿기 때문이다.
믿음이란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지만 내가 생각할 때는…" 하고 덧붙이는 게 아니다.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으니까 그 다음은 아버지께 맡기고 그렇게 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전적인 신뢰를 하지 못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한번 하나님께서 뛰어오라면 뛰어가 보라. 거기엔 분명 하나님만이 알고 계시는 비밀이 있기 때문이다. 당장 눈에 보이는 강도의 총과 같은 어려움이 있지만 그것이 아무 것도 아닌 가짜란 것을 하나님은 이미 알고 계시다. 모든 것을 전적으로 맡기고 기도해 보자. 그리고 모든 것을 맡기고 행동으로 옮겨보자. 그 다음 일은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다.
우리에게는 계시록에서 언급하고 있는 영원한 안식처가 있다. 그곳은 죄사함 받은 자들의 합당한 목적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직도 우리는 사탄의 세력과 대면하고 있다. 빈 총이 무서워, 너무 바빠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되지 않을 것 같아서 갈등하고 있다. 죄사함 받은 우리는 그분께 우리의 전존재를 맡기고 더욱 친밀한 관계를 누릴 수 있다. 그것은 우리의 특권이다. 당신은 그분에게 당신의 전존재를 맡겨 보지 않겠는가?
6.삼일교회
“마른뼈도 살리는 말씀을 주특리로”
전병욱 목사
(연세대 경영학과, 총신대신학대학원)
"마른 뼈도 살아날 수 있다"라는 책을 내놓음과 동시에 알려지기 시작한 전병욱 목사, 연대 경영학과를 나온 후 총신대 신학대학원을 나왔으며 신반포 교회 초등부와 대학부에서 놀라운 부흥을 이루었고 현재 청파동에 있는 삼일교회 담임목사로 시무하고 있다.
94년 전 부임당시 80명 출석교인이 현재 900 여명으로 성장하고 잇다. 그는 한국 교회에서 청년부흥의 새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30대의 신세대 파워 리더이다. 그의 책 속에는 특유의 거침없는 직설언어로 믿음의 야성을 회복하게 하는 열정이 담겨있다. "화려한 신본주의자"라는 별명을 가잔 그는 목소리만 큰 부흥사도 아니요, 책상신학에 찌든 지성적 설교가도 아닌 복음, 믿음, 기도의 본질을 끊임없이 외치면 삶으로 몸으로 하는 사역에 많은 기독청년들이 따르며 목회자들에게 도전을 준다.
예배갱신이 생명줄이다
전에 있던 교회에서 대학부를 담당하고 있을 때, 엄청난 열심으로 목회에 전념하고 있었다. 치밀한 계획, 넘치는 훈련모임, 과도할 정도의 양떼에 대한 관심이 있는 목회였다. 그래서 50명 정도되던 인원이 금방 100명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그런데 이때 문제가 생겼다. 사람은 느는데, 변화는 되지 않는 모습이었다. 이 상황은 약장수라면 만족할 수 있겠으나, 목회자라면 견딜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내가 예배에 목숨을 걸게 된 이유
이 문제를 안고, 2주동안 기도원에서 깊이 기도를 하였다. 경건의 모양이 아닌 경건의 능력이 있는 목회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많은 은혜와 능력을 받은 시간이었다. 2주간의 기도 이후에 대학부 예배를 인도하게 되었다. 예배 시작 기도를 할 때, 성령의 능력으로 압도되는 느낌을 받았다. 하나님!이라는 한마디의 기도에 여기저기서 울음소리가 들렸다. 성가대는 눈물의 찬양을 드렸다. 설교시간에는 100명 전체가 변화받는 체험을 했다. 몇 명은 중앙 통로에 뒹굴면서 내 죄, 내 죄하면서 회개하는 장면도 보였다. 나는 이때 예배의 영광과 능력을 보았다. 수년에 걸쳐서도 변화되지 않던 사람들이 단 한 번의 예배를 통해서 전체가, 완전히 변화되는 것을 체험했다. 나는 이때부터 예배가 모든 것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확신에 차게 되었다.
삼일교회는 지난 한해 동안 정확히 505명의 성도가 새로 등록했다. 그중 92퍼센트가 청년들의 회심이었다. 이들에게 예수를 믿게된 동기에 대해서 물었다. 그중에 85퍼센트가 예배를 통한 변화라고 답했다. 살아있는 예배는 회심케 하는 능력이 있다. 역동적인 예배에는 젊은이의 인생관을 바꾸는 역사가 일어난다.
삼일교회는 주일 저녁예배에 더 많은 성도들이 모인다.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청년들이 몰려든다. 하루종일 예배와 봉사로 지쳤을 것 같은데도, 저녁예배에 이렇게 많은 청년이 몰려드는 이유가 무엇인가? 참된 예배의 맛을 알았기 때문이다.
진정한 예배는 영광의 회복이다
그러면 우리는 예배를 통해서 무엇을 회복하는 것인가? 예배는 성도와 하나님과의 만남이다.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을 하면, 성도는 변화된다.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는 예배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선포에 있다. 왜? 예수님이 영광 자체이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1장 14절을 보면, 사도 요한은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님을 보고, 한마디로 그 분은 영광이라고 말씀했다. 예수님과의 만남을 체험한 사람은 누구나 그의 영광을 이야기하고, 그의 영광에 감격해 한다.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찬 예배를 경험한 적이 있는가? 하나님의 영광 앞에 서 있는 죄인은 누구나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경배하고, 회개하게 되어 있다(사 6장, 눅 5장).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으로 채워져야 한다!
예배는 우리의 닫혀진 눈을 열게 만든다. 바둑을 둘 때, 하수와 고수의 차이는 무엇인가? 수를 얼마나 많이 보느냐의 차이이다. 하수는 몇 수를 못보지만, 고수는 수십 수를 내다볼 수 있다. 예배는 청년들을 영적 고수들로 만든다.
비전없는 인간의 눈은 현재의 상태에만 매달린다. 그러나 예배를 통한 비전을
바라본 영감의 백성들은 역사가 전개될 미래의 상태를 바라본다. 살아있는 예배는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풍성한 비전이 제시되고, 그 비전이 공유되는 시간이다.
진정한 예배는 치유 능력이 있다
요즘 젊은이들만큼 영적 상처가 많은 사람들이 없다. 그런데 예배는 이들 상처난 젊은이들을 치유하는 능력이 있다. 예배를 드릴 때, 겉으로는 별 변화가 없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예배시간은 영적으로 성령께서 한 심령, 심령을 수술하고, 치유하는 시간이다. 변화가 일어난다.
우리 교회는 예배시간에 병들이 치유되는 경험을 많이 한다. 예배를 통해서 자존감을 잃은 청년이 자존감을 회복하는 체험을 한다. 죄악 가운데 빠진 청년들이 죄악을 청산하는 체험을 한다. 어떤 간사가 지난 주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 우리 교회의 이른바 노는 아이들이 주일 저녁예배를 통해서 변화하고 있다. 실제로 교회에서 겉돌고 있던 아이들이 예배를 통해 기도를 배우고, 또 같이 놀던 아이들을 상당수 전도하는 것을 보았다.
이것은 훈련으로 된 것이 아니라 예배의 은혜를 통해서 이루어진 일이다.
예배는 모든 사역의 뿌리이다
우리 교회는 일년에도 8차에 걸친 선교사역이 진행된다. 매번 300명 이상씩 파송이 된다. 그리고 각 캠퍼스와 각 직장에서 중추적인 사역들을 감당하고 있다. 우리 교회 규모의 교회 10개 이상이 감당할 일들을 우리 한 교회가 감당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인가?
나는 예배에 있다고 확신한다. 예배를 통해서 변화되고, 예배를 통해서 능력을 받고, 예배를 통해서 밖으로 나가게 되는 것이다. 나는 예배의 부흥없는 전도, 구제, 교제 등은 모두 뿌리없는 가지에 불과하다고 확신한다. 예배의 부흥없이 청년부흥을 논하는 것은 물총으로 벽돌담을 허물어뜨리려는 시도와 같다. 청년 부흥에 긴요하다는 전도, 구제, 교제 등은 모두 예배라는 뿌리에서 나온 가지의 열매이기 때문이다.
전병욱/ 삼일교회 담임목사.
희망을 사라! 미래를 사라!
1998년은 전국가적인 어려움 가운데 시작되었다. 그러나 우리 교회의 송구영신 예배의 설교제목은 희망을 사라! 미래를 사라! 였다. 이럴 때일수록 하나님의 말씀에 귀기울이고, 이럴 때일수록 공동체의 유익을 구해야 하며, 이럴 때일수록 하나님의 비전, 미래의 희망을 보아야 한다는 말씀이었다. 그렇게 해야만 이 나라에, 이 교회에 희망이 있다는 말씀이었다.
나는 그리스도인은 모이기에 힘써야 하지만 모여 있기만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복음전도와 사회참여는 모두 교회 밖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교회 안에서는 예배와 기도와 말씀으로 준비되고 훈련되어야 하지만 교역자가 아닌 우리의 사역지는 세상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우리 대학청년부에서 강조되는 주제가 겸손이다. 그리고 나는 올해 공부하고 있는 경제학과의 과기도모임을 섬길 것이다. 현장에서 친구들을 전도하려고 한다. 교회를 벗어나 세상으로 나가는 다른 방법은 현장에서 실력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다. 나는 올해부터 시작해서 앞으로 삼년을 실력있는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준비하는 시기로 생각하고 있다. 나와 10여명의 동역자들은 이 나라를 더 이상 하나님의 정의를 모르는 사람들과 주일성수와 십일조로 신앙을 연명하는 경건의 능력이 없는 그리스도인들만의 세계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데 동의하고 있다. 우리가 실력을 갖추지 않으면 지금까지 교회 안에만 머물러 있었던, 경건의 능력은 있지만 실력은 없는, 그래서 이 사회에 대해 교회가 할 말이 없게 만들었던 그리스도인들과 다를 수 없다는 위기감을 느꼈다.
앞으로 20년 후 이 나라를 조금이라도 더 하나님의 뜻에 맞게 움직이기 위해 지금부터 모여서 비전을 나누고 실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나는 이들을 통해 이 나라가 변화될 것이라는 희망을 보고 있다. 하나님의 비전을 보고 있는 것이다
전병욱 목사 저서 소개
마른 뼈도 살아날 수 있다. (나침반)
이 책은 저자의 사역초기의 고백이다. 한마디로 대학부를 2년 반만에 400명으로 부흥시킨 감동의 체험기이다. 그는 서두에서 지나간 사역을 회상하면 서술한다는 것이 과거를 팔아먹고 사는 늙은이 같아서 별로 유쾌하지 않지만 하나님이 역사하신 사실을 기록으로 남겨야겠다는 신념때문이며, 한국교회 대학 청년부 사역의 부흥이 오기를 고대하는 마음과 영적 지도자들에게 자극을 주기위함이라고 말하고 있다.
식어진 가슴에 불을 붙여라. (나침반)
이 책은 저자의 두번째 저서로서 말라기서 강해집이다. 말라기의 참된 주제는 병든 교회를 치유하기 위한 말씀이라고 주장하며 지금 한국교회의 가장 우선 과제는 교회 안의 묵은 그리스도인들을 어떻게 갱생시키느냐 하는 문제라고 진단하며 묵은 그리스도인들의 식어진 가슴에 불을 붙이기 위해 불씨를 던지고 있다.
무너진 성벽을 재건하라 (나침반)
이 책은 느헤미야 강해집으로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의 무너진 성벽을 보고 애통하면 "무너진 성벽을 재건하라"고 외친 것처럼 저자는 한국교회를 향하여, 젊은이들 청년 대학부를 향하여 동일하게 외치고 있다. 한국교회의 갱신과 젊은이들의 부흥을 바라며..
낙타무릎 (두란노)
낙타무릎의 젊은이들이 마귀를 무릎끓게 할 승전기 저자는 이땅에 부흥을 일으키는 유일한 방법은 기도뿐임을 확신하고 밤낮으로 무릎끓고 기도 하다 낙타무릎같이 된 야고보 사도의 그 무릎을 닮기로 결심했다고 말한다. 기존의 책들이 대체로 '기도에 대해서' 써놓은 책들인데 반해 이 책은 목회 현장에서 체험한 기도의 능력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것이 특징이다.
파워 크리스챤 (규장 문화사)
파워리더 전병욱 목사의 강한 크리스챤이 되는 법 이 책은 나약한 신앙인을 최강의 크리스쳔으로 변화시키는 안내서이다. 저자는 지성과 야성을 동시에 포괄할 수 있는 개념은 군사라고 하면서 교회란 하나님의 군사를 양성하는 군병영이 되어야 한다고 호세아서를 통하여 패역한 이 시대를 원색복음으로 정복할 주의 강한 군사는 바로 당신이라고 말하고 있다.
파워 로마서 (Power Romans)(규장문화사)
이 책은 저자의 최신간이다. 로마서 강해집하면 알쏭달쏭한 신학용어와 교리로 적용은 없고 신학해설로만 박제된 책으로 인실되어 있지만 본서는 오늘 살아 움직이는 말씀으로 독자의 생활 깊숙이 들어와 모든 것을 송두리째 바꿔 버리는 능력이 일어날 것이다. 침체되고 아픔이 많았던 삼일교회에 부임하여 80명 이던 교인을 4년만에 900명으로 부흥시킨 전병욱 목사. 그가 부임하고 첫번째로 선호한 말씀이 바로 이 로마서였다. 영적으로 병든교인을 회복시키고 죽은 교회를 다시 살린 능력은 바로 이 책 로마서 에서 시작되었다.
파워 전도서
나의 인생을 확 돌려놓은 알짜 인생 예습서. 돈,취직,부도,IMF문제로 쑥대밭이 된 우리의 마음 당신은 무엇으로 이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하는가. 세상에서 말하는 아무리 좋은 방법으로도 절대 해결할 수 없다. 해답은 오직 하나, 하나님의 방법으로 정면돌파 해야 한다. 우리에겐 참인생의 예습서인 전도서가 있다. 쉽게 지나쳤던 전도서 안에 세상 사는 핵심원리가 숨겨져 있다. 절망의 시대에 비로서 잠자던 전도서가 깨어났다. 나의 삶의 태도를 확 돌려놓은 알짜 인생 예습서. 파워 전도서
이젠 어떤 걱정도, 어떤 절망도 두렵지 않다. "파워 전도서" 영적 부흥의 진검 "파워 로마서"에 이은 인생 부흥의 진검 "파워 전도서"
파워 전병욱 목사가 새벽기도에 승부를 걸었다.
새벽기도는 인생의 생명줄이다.
연줄은 연에게 있어서 생명줄이다. 연줄은 연이 날도록 만드는 원동력이다. 나는 새벽기도를 성도의 삶에 있어서 '연줄'이라고 확신한다. 얼핏 보면, 새벽기도는 부담같이 보이지만, 이 새벽기도의 연줄이 살아있는 동안 나와 삼일 교회 교인들은 '새벽기도의 연줄'을 끊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창공을 나는 승리하는 백성들이 될 것이다. 이 새벽기도의 연줄은 교만한 백성을 겸손하게 만들 것이고, 목이 곧은 백성으로 하여금 눈물과 함께 주의 전에 엎드리게 만들 것이다. 나는 이 새벽기도의 축복이 우리 자손만대에까지 이어지기를 소망한다.
6.분당남서울교회
“뜨거운 가슴하나로”
최요한목사
1992년 1월 12일, 최요한 목사가 수명의 교우와 함께 분당구 서현동 시범 한신상가 B동 208호에서 예배를 드린지 만 5년, 1997년 1월말 현재 총재적 2,400여명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고 있는 분당 남서울교회를 방문했다. 지난 해 개척교회에서 얻은 소중한 경험들을 나누려고 목회자 세미나를 열었을 때 400명을 예상하고 진행했다가 1,200여명의 목회자가 몰려 일부는 되돌아 가야만 했던 바로 그 기적의 현장을 방문하게 된 것이다.
최요한 목사, 그는 평범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별 어려움 없이 유년시절을 지냈다. 3대째 뿌리깊은 신앙의 가정에서 철저한 신앙교육을 받으며 성장하였다. 그러나 그의 말대로라면 보수적인 신앙분위기 속에서 영적으로는 크게 성장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의 영적 전환점은 12년동안 고통을 당하던 두통을 총신대학 신학대학원시절에 간절히 기도하던 중에 하나님의 은혜로 완전히 고침을 받으면서부터 였다고 한다. 총신대학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후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사모와 함께 깊은 산중에 들어가 생명을 걸고 장기금식에 들어가 기도하던 중 깊은 영적인 체험을 하였다고 한다. 이때의 경험이 지금의 영성목회의 원동력이 되었다고 하는데, 그때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하고 서원하였던 것이 모두 응답되었다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교회를 방문했더니 마침 97년도 신년 제직세미나가 열리고 있었다. 외부 강사없이 담임목사 자신이 인도하는 집회였지만 월요일 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임원, 제직들이 나와 훈련을 받고 있었다.
세미나를 마친후 최목사와 인터뷰를 시작했는데, 무엇보다 먼저 한국교회의 성장둔화요인에 대하여 물어보았다.
"글쎄요, 저는 학자가 아니라서 깊은 것은 잘 모릅니다만 일선에서 느낀점은 강단권의 약화가 아닐까 합니다. 목회의 생명은 강단에서 외쳐지는 말씀에 있는데 말씀에서 복음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안타갑고 심각한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교회에서 성도들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삶에 지치고, 죄에 넘어지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그들을 주님의 보혈로 씻어주고 깨끗케 해주는 것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정작 교회에 오면 심령이 자유케 되거나 새로운 용기가 생기지 않아요. 그냥 더 주눅들게 되는 것이지요. 제자신이 그것을 느낍니다 복음의 말씀이 온전히 잘 외쳐졌다 싶으면 성도들의 표정이 기쁨으로 넘치고, 반면에 제 자신의 메시지가 시원찮다 싶은날에는 성도들도 영 기력이 나지 않는 것 같고, 또 저도 참 괴롭습니다. 지식이 아니라 심령에서 나오는 설교가 될 때, 그래서 성도들의 심령속에 파고 들어갈 때, 말씀의 능력이 개인의 삶에서 나타나는 것 아니겠습니까?"
깡마른 체구, 그렇지만 다부진 모습에서 어디서 저런 영성이 솟아날까 싶을 정도로 최목사는 한마디 한마디 힘주어 말했다.
필자는 다시 한번 물어본다. 그러면 정말 생명력 있는 메시지는 어떤 메시지라고 생각하느냐고 질문하자 이렇게 답했다.
"저는 늘 그런 생각을 합니다. 제 설교뿐 아니라 다른 목사님들의 설교를 들으면서, 아! 저분의 설교는 독서에서 나오는구나, 아! 저분의 설교는 무릎에서 나오는구나 하고 느껴집니다. 아마 다른 목사님이 제 설교을 들으면 무엇이라고 평가할까요? 저는 제설교가 무릎에서 나오길 원합니다. 무릎 꿇고 기도할 때 하나님의 영감이 떠오르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제자신이 주님앞에서 깨어지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새로워질 때, 참 죄인의 괴수라도 용서하시는 그분의 사랑을 느낄 때 그 메시지가 어찌 사람의 심령을 흔들지 않겠으며, 또 붙잡아 주지 않겠습니까? 본질 문제라고 봅니다. 메시지는 영혼에 대한 자각이 있어야 합니다. 강단권이 회복되면 교회는 부흥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목회자와 교회들이 프로그램을 구하고 있다. 그래서 교회는 해마다 철따라 주기적으로 프로그램을 시행해 본다. 얼마나 많은 프로그램들이 교회에 소개되고 또 사라져 갔는가? 결과는 그렇게 좋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는 사이에 한국교회는 메시지가 많이 약해진 것이 사실이다. 현대인들의 세속적인 가치관에 조금씩 물들어 가는 교인들에게 보다 더 강력한 메시지의 선포가 있어야 함에도 시류를 따라가는 적당한 말씀들이 얼마나 맥없이 강단에서 외쳐지는가?
필자는 차세대 목회자들과 새로운 목사 후보생들에게 강단권의 회복에 대하여 충고할 말씀을 부탁했다.
"물론 지식과 지성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없다면 기독교 맹신주의나 광신주의로 흐르게 됩니다. 그러나 설교나 목회는 지식이나 책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지도자가 되기 전에, 교회를 이끄는 리더가 되기 전에, 인생이 무엇일까 하는 깊은 고뇌를 겪어 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성도들을 이해하게 되고, 그들을 위로하며 가슴에 품을 줄 아는 것입니다. 가슴이 넓고 뜨거운데 어떻게 사람이 모여들지 않겠습니까? 실패한 사람을 이해하고 격려할 수 있는 사람은 실패해 본 사람 뿐입니다. 고난과 고뇌에 찬 인생의 광야에서 무릎꿇고 기도하면서 한발 한발 내딛는 사람은 메시지가 다릅니다. 저는 그런 목회자들, 그리고 후배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최목사 자신도 역시 깊은 고뇌와 고난의 길이 있었다. 개척도 해 보았고 또 만성두통으로 좌절도 해 보았고, 또 농촌목회를 통하여 인내의 시간도 겪었던 사람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에게는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는 듯 했다. 고난이 올 때 그것을 훈련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는 최목사는 후배들에게 고난을 무서워하지 말고, '인생학교'요 '신앙교육'라고 생각하고 인내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고 바라보라는 것이었다. 필자는 만5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2,400여명이라는 경이적인 성장을 하게 된 남서울교회의 부흥과 성공요인에 대하여 질문을 했다.
"글쎄요, 과연 목회에 성공이라는 말이 어울리겠습니까? 하나님은 그릇에 따라 사람을 쓰신다고 했으니까 작은 교회라도 최선을 다하고 그곳에서 복음으로 변화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이 성공한 것이지요. 큰교회가 그냥 성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위에 더 많은 작은 교회들이 있기 때문에 성장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본다면 교회성장은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다고 보아야겠지요. 저도 막상 이곳에 와서 교회개척을 준비하는데 수중에 돈이라고 오백만원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오백만원을 대출 받았지요. 그 돈으로 겨우 계약금밖에 치룰 수 있었는데 어느날 집사님 한분이 옛날에 저의 설교를 듣고 은혜를 받았다고 하면서 개척하는데 보탬이 되라고 1억을 빌려 주셨어요. 그래서 상가를 빌렸는데, 이게 또 하나님의 기적이었어요 5년전만 해도 분당지역엔 돈이 있어도 상가를 빌릴 수가 없을만큼 절대적인 수가 부족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상가를 분양 받은 목사님 한분이 싼값에 상가를 임대 주시는 것입니다. 기도 하고 믿음으로 시작했더니 여기 저기서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더욱 감사한 것은 현재의 성전을 얻게 된 배경입니다. 그동안 다섯차례나 이사를 했는데 교인이 많아서 더 이상 상가건물에서는 회집할 수 없는 규모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새성전 건축을 준비하고 있는데 성동철 목사님을 만난 것입니다. 이분이 유치원 부지를 분양받아 교회당을 크게 건축했는데 여러 가지 이유로 은퇴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 교회와 연합하기로 하고, 젊은 목사인 저를 위해서 교회를 물려주고 은퇴하신 것입니다. 연건평 300평이 넘는 성전을 저는 하나님의 은혜로 얻게 된 것입니다. 연합을 했지만 성도들도 다 한마음으로 교회를 섬기고 저희들은 이렇게 계속 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모두 하나님이 역사하신 것입니다. 구구한 인간의 말이 필요없는 것이지요. 성전건축하는데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소비됩니까? 그런데 저는 전혀 고생을 하지 않았습니다.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이것도 제가 젊어서 많은 고생을 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덤으로 주시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은 정말 100배의 축복을 하시는 분입니다. 제가 개척초기에 돈을 한 3,000만원 빌려 주었다가 못 받은 일이 있는데, 지금 이 건물이 꼭 30억이 된다고 합니다. 그러니 꼭 100배이지요"(웃음).
지금까지 교회성장을 경이적으로 이루어가는 많은 목사님들을 만났다. 그런데 이분들의 공통된 특징이 있다면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기적을 믿는다는 것이었다. 참으로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길이 분당 남서울교회를 이끌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준비된 사람을 쓰시는 법이다. 분당 남서울교회의목회 방향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저희 교회는 분명한 세가지 목표가 있습니다. 첫째, 가르치는 교회입니다. 철저한 그리스도 중심, 말씀 중심으로 가르치는 목회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교육을 통해 성도들의 신앙이 성숙될 때 헌신이 있을 수 있지요. 둘째, 선교하는 교회입니다. 교회 재정의 50%를 선교에 투자할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지금도 세계 15개지역에 단독 혹은 파송선교사를 보내고 있고, 앞으로 전세계 지역 곳곳에 선교사를 보낼 생각입니다. 셋째, 치유가 있는 교회입니다. 오늘날 산업화 사회의 다양한 스트레스 속에서 원인 모를 질병으로 신음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영적 존재인 인간의 질병문제는 말씀과 기도를 통한 심령 치료만이 온전히 건강해 질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구원은 전인구원입니다. 치유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역시 분명하고도 확고한 철학이 오늘의 분당 남서울교회를 있게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끝으로 필자는 교회와 목사의 비젼을 물어보았다. 목사님의 대답은
"첫째, 교회적으로는 더욱 교육에 치중할 것입니다. 그리고 교인들의 영성을 깨우기 위해 강단권을 강화하고 기도훈련을 많이 시킬 생각입니다. 그래서 온전한 그리스도인의 사명을 강화하도록 하겠습니다. 또 지역사회의 등대가 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둘째, 한국교회를 위해서는 목회자들의 설교연구와 강단권 회복을 위해 헌신할 생각입니다. 연구와 문서출판, 그리고 인터넷을 통한 자료를 제공하기 위해 준비중입니다"
최목사와의 대담을 마치고 교회를 나서니 벌써 밤11시가 넘었다. 택시를 타고 가겠다는 필자를 한사코 말리며 자신의 차로 배웅해 주겠다는 배려를 뿌리치지 못해서 주차장 입구에서 기다리는데 최목사가 몰고나온 승용차는 96년형 프라이드 베타였다.
오늘 따라 밤거리가 그렇게 깨끗하게 느껴질 수 없었다.
용광로 같은 열정으로 부산을 복음화 한다.
수영로교회
정필도 목사
수영로 교회는 부산을 대표하는 교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필도 목사에 의해서 개척되어서 보수적인 부산에서 영적인 혁명을 일으킨 교회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 수영로 교회의 성장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하고 있겠지만 필자가 가까이 에서 지켜 본 바로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청년들을 중심으로 한 사역이 주효하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원래 군목 출신이었던 정필도 목사는 구에서 제대 후 목회지를 찾다가 우연히 성창합판의 사주였던 장로님과 조우하게 된다. 그리하여 성창합판 창고에서부터 교회가 개척되어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 시간도 가장 왕성하게 복음을 전하는 교회 가장 많은 선교사를 파송하는 교회 그리고 가장 열심히 섬기는 교회로 활동하고 있다. 필자가 수영로 교회를 취재하기 위하여 부산에 이르렀을 때 부산 역 에서는 노숙자를 위한 사랑의 식사 배급이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그 저녁에 봉사하는 교회가 수영로교회 였다. 그들은 식사를 나누기에 앞서서 잠시간 예배와 찬양을 드리고 그리고 분배하였는데 그 저녁 너무나도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종교계 내일을 연다] 부산수영로교회 정필도 목사
땅끝까지 가자 복음의 씨앗 들고...20개국 선교사 파견
우리나라의 개신교는 1884년 봄 서양 선교사들이 이 땅에 들어옴으로써 시작됐다. 그로부터 100여년이 흐른 지금 한국은 개신교가 강력한 국가 중 하나가 됐으며 세계 곳곳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데 두드러진 역할을 하고 있다.
부산수영로교회 정필도(58) 목사의 하루는 세계 복음화를 위한 새벽기도로 시작된다. 정 목사는 부산에서 시작해 전국 중요도시를 돌고난 후 다시 세계 각 나라를 생각하며 그 지역의 선교를 갈망하는 기도를 2시간에 걸쳐 드린다.
세계 복음화에 대한 정필도 목사의 소망은 기도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가 교회와 함께 설립한 수영로세계선교회는 인도-중국-우즈베키스탄 등 8개국에 병원-학교-고아원-문화센터를 건립,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외국에서 활동중인 선교사들이 참여하는 '수영로세계선교대회'를 지난 85년부터 개최하고 있으며 매년 500~1000명의 단기선교사를 파견하고 있다. 또 15개 나라, 20개 종족을 '입양'하여 자생적으로 교회를 세울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 것이 땅끝까지 선교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수영로교회가 '세계 선교를 가장 많이하는 교회'가 될 수 있도록 힘쓰겠습니다."
수영로교회와 수영로세계선교회는 현재 20개국에 47명의 선교사를 직접 파견했으며 한국인-현지인 선교사 1000여명을 돕고 있다. 그리고 2000년대에는 세계 모든 나라에 선교사를 파견하고 2000명의 선교사를 지원할 계획이다.
서울대 종교학과와 총신대 대학원을 졸업한 정필도 목사는 공군 군목으로 근무했던 부산에서 1975년 수영로교회를 개척했다. 아무연고도 없는 부산에 자리잡기로 결심한 것은 개신교 신자 비율이 전국에서 가장 낮은 이 지역에 선교의 바람을 일으키기 위해서였다.
"군목 시절 군대뿐 아니라 일반인 상대의 방송 설교와 부흥회를 하면서 '부산을 복음화하면 전국을 복음화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수영로교회는 25년 만에 출석신자 1만명에 이르는 큰 교회로 성장했으며 지역 사회와 하나가 되기 위해 119봉사단, 노인을 위한 청솔대학 등을 운영하고 있다. 최근 기공식을 가진 수영만의 새 교회 건물도 예배공간 뿐 아니라 콘서트홀, 체육관 등 지역주민을 위한 시설을 갖추고 있다.
정필도 목사는 또 그가 소속된 예장 합동 교단의 목회자 갱신 모임인 '교회갱신협의회' 공동회장을 맡고 있다. "민족의 복음화를 위해서는 교회가 변해야 하고 무엇보다 먼저 목사가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 정 목사의 주장이다. (이선민기자)
▲1941년 출생 ▲경기고-서울대 종교학과-총신대학원 졸업, 미국 리폼드신학교 박사과정 수료 ▲서울 신현교회-장충교회 부목사 역임 ▲현재 부산수영로교회 담임목사, 수영로세계선교회 총재, 교회갱신협의회 공동회장
“ ※ 교회가 무엇을 하고 있느냐구요?
"감격과 은혜가 있습니다"
"이웃과 항상 함께 합니다."
본 교회 담임이신 정필도 목사님의 은혜롭고 영감이 넘치는 말씀속에 위로와 기쁨이 당신의 삶을 변화 시킵니다.
수영로교회의 가장 큰 자랑거리는 온 성도가 하나되어 서로 사랑하며 이웃을 섬기는 것입니다. 불우이웃 급식 및 비상상태 협조를 위한 119구조대, 소년소녀 가장, 양로원, 고아원, 부녀복지원에 대한 구제사업과 수영구 지역 불우학생을 위한 장학사업, 유치장, 구치소 전도 등 그늘지고 소외된 곳에 그리스도의 사랑을 몸으로 실천합니다.
"미래 자녀 교육에 앞장섭니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문화공간입니다."
5-7세 유아의 지적 발달과 풍부한 정서를 교육하는 수영로 유치원 운영과 사랑과 기도로 섬기는 주일학교 (초등부, 중등부, 고등부, 대학부)에서 당신의 자녀들이 인격적으로 성숙하게 되며 영어, 일어, 중국어, 한국어, 러이아어를 현지 외국인 강사가 지도하는 선교 언어 학교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사회에 공헌해야 하며, 여기에 수영로교회가 앞장서겠습니다. 결혼, 취업, 법률, 의료, 세무, 건축 등 각종분야에서 전문가의 조언을 구할 수 있는 상담실과 노인을 위한 청솔대학을 운영중이며, 지역 주민들을 위해 더 많은 프로그램과 시설개방을 준비하고 있습니다.(독서실, 소극장, 결혼식장대여, 어학강좌, 세미나실)
"잘 준비된 양육 프로그램이 풍성합니다"
"통일시대를 준비합니다."
새가족을 위한 기초교리(4주,6주)교육으로 교회와 하나님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며, 평신도신학원, 사명자학교, 일대일 양육과정과 수준높은 사역자로서 훈련을 위한 광야 전도학교, 평신도 선교사 훈련 (LMTC.MTI), 교사대학, 찬양대학과 온 가족을 사랑으로 묶어 주는 아버지 학교 가정행복학교와 영어예배 등 다양한 양육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본 교회 20개의 남,녀 전도회가 분단 후 무너진 북한지역의 20개 교회의 재건 및 개척을 담당하고 있으며, 북한동포, 탈북자 돕기 운동에 적극 참여하며 그들과 결연을 통해 정착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수영로 VISION2000 세계속의 교회입니다."
국내 농어촌 지역의 미자립 121개 교회를 돕고 있으며 A.D2000연대 2000여명의 선교사와 20개 종족의 입양을 목표로 하는 [수영로 VISION 2000]을 향해 현재 42명의 파송 선교사, 270명의 협력 선교사, 300명의 현지인 선교사와 선교센타를 지원하며 세계를 품은 참 그리스도인의 사명을 다하고 있습니다.“
"열방을 향해 나아가는 청년국!이 표어는 수영로 교회 청년국의 분위기를 대변하는 표어이다.
6층건물 전부가 청년국 활동무대 수영로교회 청년국의 중심축은 교회의 적극적인 지원과 전통적인 뜨거움, 그리고 부산복음화와 세계 선교에 대한 비전이다.
재정에 있어서도 IMF 한파로 교회의 올해 예산이 모두 동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청년국 지원은 특별히 상향 조정될 만큼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 또한 공간 활용에도 현재 교육관으로 쓰고 있는 선교제자관 1-6층 예배실과 사무실 모두를 청년국이 사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교회의 구석구석 비어 있는 공간을 사용할 수 있도록 최대한 배려를 하고 있다.(참고: 청년국 교역자 목사1인, 남전도사 1인, 여전도사 2인, 전임간사 2인).
1997년도 10월에는 획기적인 조치가 청년국에 있었다. 그동안 주일 1-4부 장년예배 형식과 동일하게 드려지던 5부예배를 젊은이 예배로 독립시킨 것이다. 따라서 청년들의 특징인 찬양과 기도의 뜨거운 열정이 그대로 녹아 나는 새로운 형식을 과감하게 수용하여 예배를 드리고 있다. 설교도 정목사님이 두 번, 담당 목사가 두 번씩 격주로 선포함으로써 담임목사님의 관심과 담당목사의 영적 비전이 동일하게 심어지고 있다. 1998년도 1월 첫주부터는 저녁 5시에 있던 저녁 예배를 4시와 7시 30분으로 분리하여 저녁 1부는 장년을 중심으로 저녁2부는 청년국과 대학부를 중심으로 드려진다. 젊은이 저녁예배는 설교자와 그 예배 형식까지 담당목사들에게 전폭적으로 맡겨진 명실상부한 젊은이들의 예배로 허락된 것이다. 이에 현재 청년국과 대학부가 연합으로 예배기획팀을 만들어 매주 주제가 있는 예배를 기획하고 있다(현재 청년국은 1,000명, 대학부는 300명이 모이고 있다).
12시 전에는 불이 꺼지지 않는 청년국 사무실
전통적으로 청년국이 자랑으로 여기며 지켜지고 있는 것이 있다. 첫번째는 기도의 열정이다. 매주 월요일 저녁 8시가 되면 가나안 수양관으로 유치원 버스 1대와 3대의 승합차가 10여대의 승용차와 함께 시온관에서 출발한다. 월요 산상 기도회에는 평균 120-150명의 기도 용사들이 산상에서 집회를 갖고 바위에서 무릎을 꿇고 교회와 민족과 선교를 위하여 기도한다. 청년국의 영적 에너지는 이곳으로부터 비롯됨을 회원 누구나 알고 있다.
둘째는 전도의 열정이다. 매주 토요일 저녁 8시가 되면 롯데백화점 앞으로 청년국 다섯달란트 승합차가 출발한다. 부산역과 시외버스 터미널 등에서 계속되어 온 토요노방전도는 부산복음화를 위한 구령의 열정을 몸소 체험하는 자리이다. 찬양 집회와 일대일 전도를 마치고 10시에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의 김밥은 꿀맛 그 자체다(다섯달란트는 청년국 고유의 닉네임이다).
셋째는 공부의 열정이다. 매주 수요일 저녁 집회 후에 순장과 서기들이 모여서 일꾼공부를 시작한다. 1천명의 통일성을 위하여 단계적 성경공부나 제자훈련보다는 똑같은 교재로 성경공부를 한다. 담당목사의 인도와 나눔으로 이루어지는 일꾼공부는 학력과 은사, 직장 차이를 초월하여 하나 되게 만드는 능력으로 나타난다. 일꾼공부 후에는 불같이 뜨거운 열정으로 회장의 인도 아래 기도회를 갖는다. 그리고 여기서 함께 얻은 은혜는 주일 젊은이 예배 후에 순공부에서 나누어진다.
이와 같은 뜨거움 때문에 6개 그룹으로 이루어진 청년국의 선교제자관 사무실은 일주일 내내 자정 12시 이전에 불이 꺼지지 않는다. 그리고 청년국에서 훈련된 임원과 회장단은 교회 구석구석에서 훌륭한 일꾼이 되어 있고 청년국에서 배출된 22명의 회장들 가운데 현재 5명이 목사가 되어 있다.
청년국에서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방향은 표어에서처럼 열방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1996년도에 500명, 1997년도에 400명의 청년들이 단기선교를 다녀왔다. 여기에서 은혜받은 사람들이 장기 선교사로 또는 평신도 선교사로 헌신하여 훈련받는 중에 있다. 1996년에만 200명의 선교헌신자가 생겨났다. 1997년에는 10개 나라에 13개 팀이 1년 동안 저축한 경비로 단기선교를 다녀와서 선교정탐보고서 제2호를 펴냈다. 1998년 1월에는 그 열매로 5명의 평신도 선교사들이 우즈베키스탄과 코스타리카로 파송된다.
청년 갱신의 열쇠는 기도와 예배
수영로교회 청년국의 3가지 비전은 첫째 영적 부흥 운동, 둘째 하나님 나라 운동, 셋째 공동체 운동이다. 그 방법은 예배의 회복, 문화정복, 공동체훈련에 두고 있다. 예배와 문화와 공동체, 이것은 통일과 21세기를 앞두고 있는 우리 시대에 필수적으로 준비해야 할 청년회 갱신의 목표지점이다. 따라서 청년국은 5가지의 과제를 두고 있다(청년국의 5대 과제: 1.선교 2.문화 3.환경 4.통일 5.가정).
청년회의 변화와 개혁은 첫째로 단순화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기도의 불씨가 살고 예배의 감격이 회복되고 잃어버린 영혼을 향한 열심이 일어나는 것이 청년회 갱신의 열쇠이다.
그동안 제자훈련은 제자로서의 삶에 많은 도전을 주었다. 그러나 실천적 삶과 선교로서의 동력화에는 미진한 감이 있다. 왜냐하면 복잡하기 때문이다. 청년기에는 열정을 불사르기 전에 기도와 구령의 열정과 예배에 깊이 빠질 수 있어야 한다. 둘째로 청년회 갱신은 전문화가 목표가 되어야 한다. 이제 우리가 사는 영역에서 능력과 영향력을 나타냄으로 그리스도의 통치를 선포할 수 있어야 한다. 직장에서 뒤지고 교회에서 큰소리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우리가 사는 세계가 너무나 다양하기에 각자의 전문영역에서 인격과 실력으로 승부해야 하는 것이다.
셋째로 청년회 갱신의 방향이 마땅히 선교적일 때 부흥이 있다. 더이상 선교에 관심을 닫고는 청년들을 담을 수 없다. 성경이 젊은이들을 선교사로 요구하고 있고 이 땅의 첫 선교사 아펜젤러와 언더우드가 청년들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민족의 청년들에게 세계를 움직일 것을 명령하고 계신 것이다.
청년회장이 된 지 벌써 몇 개월이 지났다. 지난 10월부터 회장으로서 보낸 몇 개월동안 내 인생의 어떤 때보다 주님의 역사하심이 두드러졌다. 나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직분을 맡고 있기에 하나님께서 책임져주고 계신 것을 확신하고 있다.
우리 교회 청년회는 별나다고들 한다. 밤을 깨우는 산상기도회(월), 순모임을 준비하는 리더성경공부(수), 금요철야예배, 토요노방전도, 한나절을 훨씬 넘기는 주일성수. 순장이나 순서기까지는 많은 사람이 참석하고 있다. 나와 함께 청년부를 섬기는 임원들은 때론 날밤을 새우면서 각자의 맡은 사역들을 위해 날마다 헌신하고 있다.
오늘날의 수영로 청년회가 있게 된 것은 당회장 정필도 목사님의 청년들에 대한 끊임없는 기대와 깊은 사랑, 청년회 선배들이 셀 수 없이 많은 밤을 세우며 부르짖은 뜨거운 기도, 우리가 부산을 복음화해야 한다는 전도의 열정이 있었기에 주신 하나님의 은혜라고 확신한다.
1998년은 하나님이 허락해주셨다. 하나님을 위해 멋지게 살아보라고 새해의 햇빛을 보게 하셨다. 올해 우리 청년회의 목표는 기드온 같은 순장 300명, 젊은이 예배 참석 1,500명이다. 현재의 배가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거룩한 부담감이 내 마음을 채우고 있다. 이것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에 회장으로서 내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청년회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우리 청년회의 모든 지체들을 통해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주님의 계획이 이루어지는 1998년이 되기를 기도한다.
이동규/ 수영로교회 청년국 회장
1.한소망교회
예닮운동이 주특기인 교회
류영모 목사
(장로회신학대학교, 장로회신학대학원)
일산을 책임진다.
일산 신도시!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경기도 고양시 일산구이다. 마두2동. 한소망교회가 개척하였던 교회주소이고 마두 3동은 1998년 6월이 건축이 끝나 새로이 입주한 새성전의 주소이다.
분당, 일산, 산본, 안산 중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해 있는 일산은 이제 거의 다 입주를 마친 상태여서 수도권 신도시 중 어느 도시보다도 밝고 활기찬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많은 교회와 목사들이 웅대한 포부를 가지고 도전했고 또 지금도 도전하고 있는 '기회의 땅' 일산, 그곳에서 급성장은 아니지만 어렵고 열악한 환경속에서 온 교인이 최선을 다하여 성장에 성장을 더하고 있는 교회가 있다.
한소망교회, 1991년 6월 9일 능곡에서 교회 창립, 1994년 2월 23일 일산신도시로 이전, 1996년 6월 9일 창립 5주년, 대지 315평 연건평 1030평 성전 건축 기공예배, 현재 건축을 마치고 1998년 초에 입당예배를 드리게 된다. 이제 한소망교회의 새로운 일산시대가 그 새로운 막을 올린 것이다. 결코 길지 않은 역사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오랜시간 침묵과 인내속에서 준비되어온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올해 46세인 류목사는 우리에게 낮설지만은 않은 사람이다. 처음 그를 만났을 때에 느낀 인상은 평범 그 자체였다. 하지만 그리 크지 않은 키에서 사람을 사로잡는 어떤 힘이 느껴졌다. 그를 만나 인텨뷰한 것은 일산 한소망교회의 건축이 막바지에 접어들던 때 였다. 그는 만나자 마자 건축공사중인 현장으로 필자를 데리고 갔다. 그러다 보니 인터뷰도 성전건축공사를 하고 있는 현장 사무실에서 이루어졌다. 현장 사무실 안은 122명의 기도당번 명단이 적혀있고, 1년으로 잡혀있는 빈칸의 표시란 중 절반은 빨간 도장자국으로 채워져 있었다. 성전건축을 위한 불철주야의 기도가 이곳 현장 사무실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을 위하여 도시를 점령'하려는 십자가의 군사들로 여겨졌다.
정치가의 꿈을 접고
자리를 잡고 드린 첫 질문은 류목사의 신앙내력과 목사로서 인생의 방향을 잡게된 배경이었다.
"어릴 때부터 교회를 다녔습니다. 어머니가 일제시대 때 만주에서 교회에 나가셨고 또 주일학교 교사까지 하셨던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불신자와 결혼을 하게 되어 잠시 신앙이 식어졌지요. 하지만 어릴 때부터 저희들은 교회를 보내었습니다. 그래서 집에서 있는 시간보다 교회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사무엘처럼 교회에서 하루종일 놀며 기도하며 지냈지요. 그런데 그때 그 교회 여 전도사님이 저를 많이 사랑해 주셨어요. 그 사랑 때문에 저는 참 행복한 추억을 갖게 되었습니다. 목사가 되겠다는 서원도 아마 그 때 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거창 고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그곳에서 정치가가 되어야겠다는 꿈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학생운동을 주도했고 전교 학생회장 일도 맡았습니다. 그리고 육사를 지원하려고 원서를 내었습니다. 막강한 리더쉽을 배워야 정치를 할 수 있다고 믿고 그 리더쉽을 배울 수 있는 곳은 육사를 나와 장교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1차 필시시험에는 합격했습니다. 그런데 신체검사와 건강검진에서 떨어졌습니다. 평소에는 늘 저혈압이었는데 그날 당일에는 혈압이 90에서 170으로 올라갔습니다. 담당 군의관도 의아했습니다. 너무 좌절되었습니다. 기도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었죠. 기도를 하던 며칠 째인가는 모르겠지만 문득 기도 중에 옛날에 목사가 되겠다고 서원했던 유년시절이 기억났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서원을 들으시고 내가 정치가의 길로 가는 것을 막으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장신 대에 입학했습니다. 전공은 기독교 교육으로 정했구요. 그리고 공군장교로 입대해서 군복무를 마쳤습니다."
이제마 선생의 '사상체질분류'에 따라 류목사를 본다면 '태양인'에 속한다고 할 것이다. 태양인은 신체 중 유별나게 두뇌가 발달한 사람을 말하는데 예로부터 이상적인 지도자는 태양인에서 나온다고 한다. 삼국지의 ‘도원결의’한 세 형제 중 유비가 ‘태양인’에 속한 다고 할 것이다. 한 마디 한 마디 말하는 것이 논리 정연하고 달변이었다. 이러한 그의 지적인 능력은 이미 지나온 세월 속에서 많은 빛을 남겨 놓았다. 그는 대한에수교장로회 통합 측 총회교육부간사로 오랫동안 재직해 있었고 그 때 만든 주일학교 공과가 지금도 사용되고 있다. 현재도 '교회와 신앙'이라는 월간 잡지 주필을 맡고 있다.
"신대원 졸업반 때 졸업위원장 이었습니다. 그래서 동기들을 각 교회 전임으로 보내는 일을 맡은 파송위원장 이었지요. 380명 동기 전원이 전임전도사로 파송되어졌습니다. 그런데 정작 제가 나갈려고 하니까 갈곳이 없어요. 그래서 충신교회에서 그냥 교육전도사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때도 많이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망원제일교회에서 담임목사로 청빙이 들어온 것입니다. 그래서 부임해 갔고 그곳에서 4년 1개월간 시무했습니다. 동기들보다 늦게 파송이 되었지만 교육전도사에서 담임목사로 고속 승진하게 된 것이지요. 그때 신도시들이 수도권 주위에 세워지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새로운 가능성의 교회를 해봐야겠다는 꿈이 있었기 때문에 새로 개척하려고 신도시를 살펴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일산 쪽으로 마음을 굳힌 것입니다. 제 아버님이 6.25때 인천 상륙 작전 도중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북한선교에 대한 감흥이 남다르게 깊습니다. 북한선교를 생각한다면 조금이라도 북쪽에 가까운 곳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한민족을 복음화 하는 소망으로
교회의 이름을 굳이 한소망교회라고 지은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한민족 선교를 꿈꾸고 교회를 창립했습니다. 처음에는 개척이 무엇인지도 몰랐습니다. 그냥 맨손으로 하면 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가정예배 드린 후에 어머니와 가족들은 모두 처가집으로 보내고 퇴직금 450만원을 들고 예배처소를 구하러 다녔습니다. 그러던 중 노회 어른들의 중재로 망원제일교회에서 사택을 내어주기로 해서 사택문제는 해결되어 가족들은 다시 한 집에 모이게 되었던 것입니다. 은평구 신사동에서 피노키오 유치원을 하는 장로님이 일단 개척처소로 빌려주셔서 개척을 위한 준비기도 모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일산 가까운 능곡에서 9500만원을 주고 지하를 빌렸는데 전세금을 맞추어야할 일이 꿈만 같았습니다. 그래서 기도에 기도를 거듭하고 이곳 저곳에서 돈을 빌렸습니다. 성안교회 신협에서 1000만원 빌리고 대명교회 신협에서 2000만원 그리고 사방에서 도움주시는 분들이 합쳐서 98분이 헌금을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시작된 것이지요."
지나온 세월을 회상하면서 소상하게 설명해 주는 류목사의 눈에는 작은 이슬방울이 맺혔다. 아마 그때의 일이 생각나는 듯 잠시 말을 멈추고 눈물을 훔친다. 고양시 일산구 쪽을 바라보며 물새는 지하예배당에서 보낸 6개월 동안 성도도 목사도 그저 울기만 했다고 한다.
"이제 일산쪽으로 이전할 시기가 왔다고 판단하고 능곡의 예배당을 팔았습니다. 그런데 계약단계에 까지 갔던 일산의 땅이 그만 해약되고 말았습니다. 부지를 구하지 못했던 우리는 국민학교 운동장에서 때로는 사택에서, 건축중인 건물 지하 모래 바닥에서 4개월간이나 예배해야 했습니다. 얼마나 답답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한 명의 성도도 떨어지지 않고 따라왔고 또 그때야말로 저와 성도들을 하나님만 바라보게 했던 가장 순수한 시절이었고 기도하게 하셨기에 맑고 깨끗한 영성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봅니다. 그것은 우리 교회에 허락하셨던 하나님의 축복이었고 또 행복한 순간이었습니다."
개척은 믿음으로
그때의 순수성을 잃지 않으려고 지금도 부단히 노력한다는 류목사는 개척은 오직 믿음으로 해야한다고 힘주어 강조한다. 요사이 개척교회가 어렵다고 젊은 목회자들이 개척교회를 시작하는 일이 드물다고 하는데 오직 믿음과 용기로 만이 도전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 중간에 자신을 사랑하는 한 선배 목사님이 건축을 도와주겠다고 6억을 내어놓았지만 하나님의 역사가 되게 하기 위해서는 인간적인 도움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거절한 적도 있었다. 이러한 고민의 밑바탕에는 그가 거창 고등학교에서 배웠던 '직업 선택 10계명' 덕분이었다고 한다. 모든 조건에 갖추어진 곳이나 처음부터 시작해야 할 황무지를 택하라고 했던 그 교훈을 실천했던 것이다. 결국 유치원 부지를 315평 분양받아 연건평 1030평의 성전을 건축하게 된 것이다. 현재 공사 진척도는 30%정도이다.
그러면 그 어려운 여건속에서도 교회를 성장시키고 성도들의 믿음을 강하게 무장시켰던 목회 철학은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저는 늘 성도들에게 류목사의 은사를 살릴 수 있는 목회를 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부탁합니다. 사람마다 달란트가 다르고 목사마다 장점이 다릅니다. 저의 장점은 영성훈련과 성서연구, 그리고 전도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이 세 개의 축으로 한소망교회는 성장했습니다. 또 본질에 충실한 목회를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탈진상태에서 목사자신이 채워지고 세워지는 것이지요. 목회의 성공을 추구하는 것보다 순종하고 충성해야 된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이러한 철학에서 숫자적인 부흥보다 양질의 교회와 양질의 제자를 키우자는 쪽으로 심혈을 기울였지요. 그것이 주효했다고 봅니다. 지금도 우리 성도들은 한가지 이상의 훈련을 받아 스스로 남을 돕고 세워주는 일에 아주 열심입니다."
류목사와 대담을 나누면서 너무 본질적인 얘기를 하는 것 같아 마음에 거북함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거북하게 생각되어지는 필자 자신도 이미 세속적 가치관과 생각에 많이 잡혀 있기 때문이리라. 아무튼 불혹을 넘긴 젊은 목사이지만 성경적인 원칙에 충실한 목회, 양질의 성도를 키워내는 목회를 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는 것이 사실이었다. 필자는 한소망교회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한 목회프로그램이 무엇인지 궁금하여 물어보았다.
"예! 그것은 '예닮운동'이라는 프로그램입니다. 예수님 닮기 운동이지요. 일전에 유행했던 '뜨레스 띠아스' 프로그램과 유사하다고 하겠는데 근본적인 면에서는 다릅니다. 그리고 뜨레스 띠아스 속에 있는 카톨릭적인 요소나 수도원적인 요소는 모두 배제해 버리고 명실상부 개신교의 새로운 틀안에서 만들어낸 공동체 훈련 프로그램이지요. 개혁신학의 교회론 안에서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나가는데는 이보다 더 좋은 프로그램은 없다고 봅니다. 한국교회의 장로들이 어떤 집회에서도 은혜받고 감동하지 않는데 이 예닮운동 프로그램에 들어오면 하루만에 눈물을 흘리며 변화됩니다. 전에는 석달에 한 번정도 이 학습훈련을 했습니다만 지금은 매달 열고 있습니다. 조만간에 다른교회에도 소개할 생각입니다.
두 번째 자랑할 수 있는 프로그램은 전도프로그램들입니다. 현대도시목회는 다원화된 사회를 공략해 가야하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전도방법도 꼭 한가지만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공략대상에 따라 여러 가지 방법이 다 동원되어야 합니다. 물론 매 프로그램마다 평신도들이 훈련을 받아 참여해야 하겠지요. 전도폭발훈련과 각종의 전도운동 프로그램이 훈련된 제자들에 의해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교회가 전도의 능력을 잃어 버리면 교회로서의 사명을 버린 것입니다."
한소망교회의 프로그램을 종합해 정리해 본다면 예닮운동(3박 4일동나 합숙훈련)을 통한 영성과 공동체성 회복의 뜨거움 위에 은사와 달란트에 따라 각종 전도에 참여케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한국교회의 강단이 거듭나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없는 메시지는 메시지가 아닙니다. 케리그마의 회복없이는 교회성장도 세상복음화도 그리고 사회구원도 다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강단은 철저한 복음의 선포장소여야 합니다. 복음을 외치고 복음의 삶을 실천할 때 세상은 교회를 주목하게 될 것입니다. 복음을 들은 성도들이 복음으로 사업하고 복음으로 가정을 꾸리고 복음으로 자녀를 키울 때, 이 세상은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또 늘 개혁에 앞장서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구조적인 갱신이 없이는 이 시대에 교회가 세상의 리더가 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교회가 끌려 다니는 우스운 꼴이 되고 맙니다. 모든면에서 자기갱신을 해나가야 하겠는데 가장 시급하게 고쳐야 할 부분이 있다면 '장로제'입니다. 한국교회는 앙반병에 걸려 있는데 그 원인 제공자들은 장로들입니다. 이것을 고치려면 항존직인 장로의 임기를 임기제로 바꾸어야 합니다. 그래서 한소망교회에서는 아예 이것을 내규로 통과시키려고 합니다. 장로는 3년간 시무하고 사임한 뒤에 다시 재신임을 얻어야 시무할 수 있도록 정해 놓은 것입니다. 교회의 영적인 리더가 되어서 어떤 평신도들보다 앞장서서 나가서 전도하고 사람들을 키워야 할 터인데 장로들부터 에헴! 하고 양반병에 걸려 뒷짐지고 다니니까 평신도들의 사고가 전부 양반병에 물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성장 포인트
성장하는 교회의 공통점이 여럿 있겠지만 그중 한가지는 리더쉽이 흩어지지 않고 목사에게 집중되어야하다는 것이다. 물론 독재나 독단의 위험은 있겠지만 강력한 리더쉽이 하부조직에 까지 골고루 미치게 될 때 목표에 쉽게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끝으로 한소망교회와 목회의 비젼 그리고 향후 계획들을 물어보았다.
"사실 지금은 조금 재 충전해야 할 시기입니다. 여러 가지 일로 바쁘다보니 건강도 많이 상했구요. 병원에서 몇 일간 지내면서 새로운 다짐을 하기도 했습니다. 병상에 누워 있으니까 아! 나도 언젠가는 죽을지 모른다. 내가 죽는다고 해도 부끄럽지 않는 목회를 해야겠다는 비장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종말론적인 각오를 가지고 목회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사역도 부교역자와 평신도들에게 많이 나누었습니다. 그러나 '예닮운동' 만큼은 제가 직접 인도합니다. 왜냐면 목회자인 저에게도 그 프로그램은 재충전의 기회가 되거든요. 그곳에는 진정한 회개와 고백 그리고 사랑안에서의 감동이 있습니다. 비젼이라고 한다면 좀 그렇고, 하나님 안에서 가진 소박한 꿈이라고 할만한 것들은 몇가지 있습니다.
첫째, 우리교회의 축복을 한국교회에 내어 놓는 일입니다 그것중의 하나가 '예닮동산운동'입니다. 한국교회의 조용한 혁명이 될 것입니다. 둘째, 같은 비젼을 가진 교회를 핵 분열하듯 개척할 것입니다. 교회만 개척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와 제자들도 함께 나누어 주는 개척입니다. 셋째. 중국을 통한 북한선교입니다. 넷째는 교회제도 개혁운동입니다. 장로와 목사는 임기제를 바뀌어야 교회가 살아납니다.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왕성하게 뛰어다녔던 대외적인 일은 모두 접어두고 오직 양떼를 돌보는 일에만 온 심혈을 기울이는 류목사. 평안하게 사역하려는 후배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도전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인터뷰에 응했다는 류목사, 목사는 돈과 여자 명예에 대해서는 초월해서 관심도 없다는 것을 성도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고 말하는 그에게서, 우리는 차세대 한국교회의 푸르름을 보는 것 같았다.
2.광일교회
“주 특기는 농촌 목회입니다”
소량호목사
(대한신학교와 신대원)
광주를 위하여
경기도 광주군 광주읍 태전리 271-8번지 성남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한시간 가량 차로 광주읍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다시 10분여쯤 외곽으로 벗어났을 때 들판에는 벼이삭이 황금물결을 이루어 출렁이고 있었다. 논밭사이로 드문드문 공장들이 보이는 것이 이곳이 시골도 도시도 아닌 어정쩡한(?) 지역임을 말해 주고 있었다. 기껏해야 200여 호 남짓한 마을임에도 공장들이 주위에 많은 탓인지 정류장 주변의 건물들은 깨끗한 현대식으로 지어져 있었다. 그 버스 정류장에서 몇 발자국을 더 들어가니 이곳지역 일곱교회중에서 가장 성장하고 있다는 광일 교회당을 만날 수 있었다. 얼마 전 새로 지은 성전 앞에는 '30일 작정 특별 새벽기도회'를 알리는 현수막이 세로로 큼지막하게 내걸려 있었다.
소량호 목사, 한때 크리스천 타임즈의 기획 실장을 맡으며 교계에서 일을 맡아 선교에 헌신하던 그가 이곳 광주읍에 와서 정착한 것은 지난 91년 8월이었다.
광일교회의 시작과 성장
지난주간 금식기도 했기 때문인지 아직 피곤과 수척함이 그대로 남아 있는 소 목사를 붙들고 인터뷰를 시작했다. 우선 교회의 역사와 그간의 사역을 물어 보았다.
"우리교회는 1988년 10월 15일 이 부근에 있는 통합측 모 교회에서 분리되어 개척되었습니다. 그때 당시 이상도 목사님과 이윤섭 장로가 주축이 되어 교회를 세웠는데 그만 시험이 든 것입니다. 그래서 담임이었던 이상도 목사님이 교회 인근에다 새로이 교회를 개척하게 되자 다시 한번 교회는 시험과 분열이 일어난 것입니다. 양떼들은 우왕좌왕했고 말할 수 없는 혼란으로 가슴아파 했습니다. 그때 제가 부임하게 된 것이지요. 그 당시 부임해 보니 교회는 임대교회였는데 보증금 300만원에 월세 50만원을 지출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거기에다 퇴직한 목사님의 퇴직금 때문에 이천여 만원의 부채까지 떠 안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막막했습니다.
상처를 딛고
좁은 지역인데 가까운 곳에 이웃해서 두 교회가 반목하게 되고 새 신자들은 상처를 받아 교회를 등지게 되니 암담하기 그지없는 상태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와서 보니 복음을 알고 실천하려는 제직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분들을 통하여 위로 받고 최선을 다하기로 결심하며 기도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현재의 광일교회는 얼마나 변했으며 또 얼마만큼 성장했을까?
"금년 10월이면 교회가 개척된 지는 10년이 됩니다. 그러나 제가 부임한 뒤로부터 새롭게 개척한다는 각오로 사역에 임했습니다. 그게 벌써 만5년이 되었습니다. 저 작년에 연건평 210평의 성전을 완공해서 입당예배를 드렸습니다. 지금은 장로, 권사 그리고 안수집사 포함한 전체 제직의 숫자가 100여명이 되고 제적 성도는 400여명 정도 됩니다. 농촌교회로서는 상당히 성장한 것이지요. 이 모든 것이 그야말로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실제 주위를 아무리 둘러보아도 어디서 이만한 성도들이 모이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흔히들 농촌이나 벽지지역은 이제 더 이상 교회가 성장하지 않는다고들 알고 있다. 거기에다 광일교회는 개척 초기에 많은 아픔과 상처들이 있었기에 그것이 더욱 어려웠을 것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소 목사는 오직 기도하면서 지금과 같은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어 낸 것이다.
농촌을 사랑하는 일이 급선무
요즘 교회마다 교인들이 줄고 있고 개척교회가 성전건축까지 하게 되는 일이 드물어졌는데 더군다나 광일교회같은 특수 상황에서 성전을 짓고 교회를 부흥시키는 것은 쉽지가 않을 것인데 성전 건축까지의 얘기를 들어보았다.
"모든 것은 하나님이 해 주셔야 합니다. 아직 부흥이라고 할 것까지는 없지만 우리교회의 성장의 비결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성전을 지으려고 하니 사단의 시험이 무겁게 도전하고 시험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인정하고 엎드려 기도하는 것이 승리의 비결이었습니다. 보시다시피 주변에 있는 교회는 성전을 건축해서 자리잡고 있는 교회들입니다. 당시 우리교회는 보증금 300만원에 월세 50만원의 임대교회였습니다. 그런데 93년 5월 어느 날 갑자기 건물 주인이 교회를 비우라는 것입니다. 93년 12월까지 교회를 비우라는 내용 증명을 보내 온 것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성도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죠. 추운 겨울 12월에 개척교회가 갑자기 어디로 이사를 갑니까? 땅을 빌려 천막을 치자, 내년까지 버티자는 등 각가지의 의견들이 나왔습니다만 그 어떤 것도 해답이 될 수 없었습니다.
당시 우리 교회는 어렵사리 절대농지 300평을 매입해 놓고 있었는데 이 땅은 용도 변경이 불가능한 땅이었습니다. 결국 방법은 기도하는 것밖에 없었습니다. 기도 중에 전교인 100일 작정 기도회를 하라는 하나님의 응답을 받았습니다. 교회당 이전이 아닌 성전건축을 위한 100일 기도회를 시작하기로 선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아!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100일 기도회를 선포하는 그 시간에 그만 교회소형 버스가 사고를 내고 말았습니다. 봉사하던 집사가 구속되었습니다. 그러니 또 어려움과 시험이 찾아옵니다. 교회는 숨을 죽이듯 고요해졌고 성전건축 문제를 거론 하다가 너무나 힘든 상황이 되었습니다. 특히 93년은 50년만에 찾아온 유난히도 무덥던 여름이었습니다. 1차, 2차, 3차로 나뉘어 그 여름이 꼬박 지나도록 밤마다 기도회를 인도했습니다. 매일마다 설교내용과 기도 제목을 프린트해서 나누어주며 기도회를 이어나갔던 것입니다. 오순절 성령의 역사를 눈으로 보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의 배후에서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성전 건축에 대한 마음이 하나로 뭉쳐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결코 인위적인 방법으로는 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온 성도의 동일한 체험이 중요
말을 하는 한마디 한마디가 부드러우면서도 확신 있게 말하는 소 목사에게는 무언가 느낄 수 있는 감화력과 친근감이 있었다.
"그 기도회 덕분에 하나님의 은혜로 대지 150평을 추가로 매입했습니다. 농지전용 허가를 받고 성전 건축 설계, 허가 그리고 시공자가 정해졌습니다. 어느 것 하나 막힘이 없이 마치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하나님께서 형통케 해 주셨습니다. 건축 기초공사가 시작되자 자원하는 더 많은 심령들이 생겨났습니다. 성령께서 얼마나 강하게 역사하셨는지 금반지, 금팔지, 금목걸이들도 헌금주머니에 넣어졌습니다. 순박한 시골 여 집사님들이 돈이 있어봐야 얼마나 있겠습니까? 평생을 두고 장만한 것들을 아낌없이 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기쁘게 받으신 것 같았습니다.
건축하는 동안 성도들이 줄기는커녕 늘어났고 또 좋은 일기 가운데 아무런 사고 없이 무사히 건축을 마치게 된 것입니다. 이사를 나가야 하는 그해 12월에 우리교회는 지하에 임시 입당을 하였고 그 다음 해 6월 24일 정식입당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장로 1분과 안수집사 5분을 새로 선출해서 목사위임식과 임직식을 동시에 갖기로 하였지만 좀더 교회를 성장시킨 뒤에 위임식을 하기로 하고 하나님께 감사의 잔치를 열었던 것입니다. 이제 1997년 10월 15일을 성전 헌당일로 예정하고 온 교우가 합심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경찰서가 하나 늘어나는 것보다 교회당이 하나 더 생기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오늘날에도 사단이 가장 방해하는 일은 교회가 개척되지 못하게 하고 교회가 건축되지 못하게 하는 일일 것이다. 우리의 목회사역에서 이러한 하나님의 일을 훼방하는 악한 세력들을 분별하고 기도로 이들을 결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사단은 정사와 권세를 쥐고 관공서와 지역 사람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교회 건축을 방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게 되면 모든 일이 형통케 되는 것이다.
광일교회 소량호 목사 그는 참으로 기도하는 목회자였다. 그 자그마한 체구에서 어떻게 그런 강인한 믿음과 기도의 능력이 나오는지 모르겠다. 광일교회가 이 지역에서 급성장하고 있는 비결에 대해서 다시 물어 보았다.
"지역 특성상 전도하기가 무척 힘이 들었습니다. 여기는 도시도 아니고 그렇다고 농촌도 아닌 아주 애매한 지역입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 계층 어떤 사람들을 전도의 주 타켓으로 삼을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대개의 부부들은 대도시로 맞벌이하기 위해 출퇴근하고 낮 시간이면 노인들밖에 집에 있지 않습니다. 대도시 같으며 노인들조차도 보기 힘들겠지만 이곳은 그래도 경로당이 여러 군데 있고 노인들도 많이 계십니다. 그래서 우선 실추된 광일교회의 위상을 높이고 좋은 이미지를 심기 위해 장년 층과 노년층들에게 집중적으로 전도했습니다. 노인정을 찾아가 세배도 하고 시설지원도 해드리고 또 70세 이상 노인은 따로 모아 매년 5월 중에 관광도 시켜 드렸습니다. 처음에는 회의적이던 마을 사람들이 광일교회를 새롭게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차츰차츰 축호전도를 시작했습니다.“
개발로 인한 성장의 잠재력 기대
“지금도 우리교회 선교단들이 노방전도를 합니다만 요 최근에 하남시 개발로 밀려난 영세공장들이 광주로 이전해 오면서 교회주위에 사람들이 이주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을 상대로 교역자 사모들로 구성된 편지 전도 팀을 만들었습니다. 편지 전도는 두 가지로 나누었는데 하나는 한 번이라도 교회에 출석한 사람들을 상대로 보내는 사랑의 편지이고 하나는 불신자들을 상대로 보내는 이슬비 전도 편지가 그것입니다. 그 결과 한 번이라도 광일교회를 들른 사람은 그대로 정착해서 안정된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참 감사한 일이지요"
소량호 목사는 일찍부터 문서 전도에 관심이 컸었다. 목사가 문서전도와 글쓰는 일을 즐겨 한다는 것은 참으로 좋은 달란트이다. 그래서 그런지 모든 교회 교육과 양육 자료들은 스스로 집필하고 출판하며 때로는 자비를 들여서 출판해서 그것을 전도와 양육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미 만들어진 책 만해도 여섯 권이고 교회 내에서 초신자 양육용으로 쓰이는 작은 소책자들도 초급에서 중급까지 손수 다 만들어서 사용하고 있었다.
중학교가 겨우 하나 있고 이제 내년이면 고등학교가 들어올 예정인 낙후된 지역에서 오직 하나님께 대한 충성과 양떼들을 사랑하는 일념으로 목회에만 전념해 왔던 결과 오늘 이렇게 성장했노라고 겸손하게 말하는 그의 모습에서 우리는 다음 세대에도 분명히 큰 성장이 있을 것이란 것을 의심하지 않을 수 있었다. 광일교회의 핵심은 아무래도 양육과 선교에의 강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이에 대한 것을 다시 물어 보았다.
예배를 통한 영성운동
"교회의 1차적인 목표는 예배입니다. 우리교회는 하나님께 올바른 예배드리기를 가장 강조합니다. 개척 당시에는 여 제직들이 예배에서 많이 수종 들었는데 지금은 남 제직 중심으로 예배에 봉사하게 합니다. 남자들의 권위를 세워 줌으로써 남 제직들의 믿음이 자라게 되었습니다. 찬양단과 함께 뜨거운 예배를 한 달에 한 번 이상 드리면서 예배 속의 뜨거움과 감격을 잊어버리지 않게 합니다. 예배를 잘 드리는 신자로 양육하는 것이 광일교회의 목표입니다. 이러한 진정한 예배자의 의식이 있을 때 이사야 6장에 나오는 헌신과 선교의 고백과 울림이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예배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감격하게 될 때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헌신하게 되는 것이죠. 광일교회는 앞으로 120구역을 목표로 전도하고 있습니다. 그때가 되면 우리는 한 구역에서 한 곳씩 맡아 120개의 각종 선교사나 단체 기관들을 선교하게 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것을 꼭 응답해 주시리라고 확신합니다"
말씀 준비하기 위해 금식하는 목사, 강단에 올라가기 전 산기도부터 하는 목사, 교회의 중요한 행사 앞에는 언제나 먼저 기도하는 목사로 인정받고 있는 것을 볼 때 광일교회는 광주군 뿐 아니라 나아가서 경기도 일원과 수도권까지도 영향을 미치는 큰 교회로 성장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대담을 정리하면서 광일교회와 소목사의 비전에 대해서 물어 보았다.
"앞으로 한국사회는 도시로 나가서 살던 사람이 다시 도시 근교 농촌이나 전원으로 귀향할 것으로 봅니다. IMF는 이것을 촉진시키고 있습니다. 산업사회에서 너무 많은 스트레스를 받다 보니 자연 회귀 본능이 더 자극되는 것이지요. 그렇게 볼 때 이 지역은 앞으로 많은 인구의 유입이 예상됩니다. 이미 교회 앞뒤에서 농지를 전용하여 아파트가 건설될 예정입니다. 98년도만 1500세대의 아파트 입주자들이 몰려오고 2000년대에는 이 지역 인구가 1만 명 이상으로 불어나리라고 봅니다. 태전리 라는 이 작은 마을이 조그마한 도시가 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우리 교회는 지금부터 2000년대를 준비해야 된다고 봅니다. 준비된 일군들을 키우고 평신도 지도자들을 구비시켜서 이 지역사회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할뿐만 아니라 교회도 중심으로 섬기게 해야 합니다. 또 지역 주민들에게 열린 공간으로서 교회를 개방할 뿐 아니라 깊숙이 침투해서 봉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출 계획입니다. 지금 현재의 성전도 2000년대를 대비해서 더 확장해야겠고 은사와 달란트에 따라 소그룹조직을 많이 만들어 각계 각층에 전도할 수 있는 전문 집단을 만들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향후 광일교회는 2000년까지 천명 성도가 모이는 교회로 성장하리라고 봅니다. 120구역에 120군데에 선교하는 교회 되도록 무릎꿇고 기도하려고 합니다"
기도하겠다는 소목사의 말을 마지막으로 글을 정리한 뒤에 흙먼지가 뽀얗게 날리는 태전리 지방도로를 벗어나면서 믿음과 기도 앞에는 산도 움직여진다는 확신을 갖고 서울로 올랐다. 정확히 오후 4시였다
3.동선교회
“안될 수 없는 교회부흥을 주 특기로”
박재열 목사
(대한신학교와 신대원)
쉬운 복음 가까이 다가가는 교회
그의 메시지는 쉽다. 초신자들도 마음을 연다. 그의 메시지는 사랑이 담겨있고 힘이 있다. 서울 천호 3동 동선교회 박재열 목사(예장대신). 그의 교회는 예배시간에 활기가 넘친다. 오래된 교인들, 교회에 출석한지 불과 3개월밖에 안된 교인들, 지나가던 행인들이 활기를 느낄 정도로 예배가 축제분위기다. 동선교회의 재적교인(장년)은 3천 6백 명, 출석교인은 1천8백 명이다. 이들 가운데 세례를 받지 않은 교인들이 약 70%인데 매년 6백 여명이 이사로 교회를 떠나고 그만큼의 교인들이 초신자들로 채워진다. 이것은 결국 동선교회가 회심전도를 통하여 성장해 왔다는 것을 입증하는 통계인 것이다. 그러나 이 때문에 비슷한 규모의 다른 교회보다 재정이 취약하다. 그러나 이웃을 위한 봉사활동에 전혀 지장 받지 않는다고 박 목사는 말한다. 봉사와 전도에 박 목사와 전 교인들이 솔선 수범하기 때문이다. 최근 성장이 둔화되고 있는 한국교회에 박 목사의 목회스타일과 그의 전도전략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교회갱신이 중요한가 전도운동이 중요한가
먼저 자리를 잡고 그와 이야기를 나눈 첫 주제는 교회의 갱신에 관한 것이었다.
“전도의 갱신을 말하기 전에 교회의 갱신을 말하면 안됩니다. 우리 나라 인구의 80%가 불신자인데 그들의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목회자라면 교회가 성장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히려 교회가 성장되지 않는 것이 기적이지요. 저는 지금까지 목회하면서 수 많은 목회자들을 지켜보아 왔습니다. 재주 많은 목회자는 실패해도 기도하는 목회자가 실패하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게으른 목사는 실패해도 밤낮으로 전도하며 영혼 사랑에 몸부림치는 목회자가 실패하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 교회의 성장은 목회자에게 달려 있습니다 ”
처음부터 정곡을 찌르는 그의 대답에 필자는 잠시 받아쓰기 하는 것을 잊어버리고 그렇게 망연 자실 그의 입만 쳐다보고 있었다. 사실 어떤 진단보다도 더 정확한 진단이요 지적인 것이다. 「안될수 없는 교회부흥」의 저자이면서 교회성장세미나 강사로 전국교회에서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박재열 목사. 필자가 그를 만난 것은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1998년 어느 여름이었다.
그의 목회는 불신영혼의 구원에 모든 초점을 맞춰져 있다고 할 수 있다. 교회의 예산과 프로그램 직분자 임직 행사 등이 모두 불신자들의 영혼구원에 맞게 짜여진다. 교인양육의 기준도 인격이나 교양의 향상, 헌금, 봉사에 머무르지 않고 믿지 않는 이웃을 사랑할 줄 알며 그들을 전도하지 않으면 스스로 마음이 견딜 수 없도록 양육한다. 이것이 짧은 시간 그가 동선교회를 일구어내어 온 비결 아닌 비결이었다고 말한다.
박 목사는 개척교회가 쓰러지고 교회성장이 둔화된다는 요즘의 현상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모든 목회자들은 대형교회는 물라도 중형교회는 이끌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왜냐하면 교회밖에는 불신자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목회자들이 이 믿지 않는 사람들의 영혼을 사랑한다면 교회는 자연히 성장한다는 것이다.
“교회는 구원 선(船)입니다. 세상에 널려 있는 고기(불신자)를 열심히 잡아 구원 선에 가득 채워야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입니다. 성경에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다」(사도행전 18장10절),「추수할 것이 많다」(마태복음9장31절)고 했습니다. 이제는 다른 교회 교인을 빼내어 오는 전도가 아니라 불신자를 구원하는 전도로 전략을 바꿔야 할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지금처럼 개척교회가 전도해 놓은 어린 신자들을 곳감 빼먹듯이 하나 씩 하나 씩 빼내어 가버린다면 언젠가는 그 타격을 대형교회들이 받게 도리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행정적인 거리를 뛰어 넘어 교회 버스를 돌리고 재벌식으로 남의 교회 문 앞에 지 교회를 세우는 풍토가 사라지지 않고는 진정한 의미의 한국교회 연합은 있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전략은 모두 영혼구령이라는 순순한 복음 운동에 기인 한 것이 아니라 패권주의에서 나온 세상 적인 것입니다. 주님은 분명히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고 경고하셨는데 교회가 더 앞장서서 문어발 식 확장을 해 대고 있으니 한국사회가 썩어가는 것 아닙니까?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책임을 가진 곳이 교회인데 오히려 교회가 손가락질 받는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순수한 구령운동으로 되 돌아와야 합니다.”
박 목사는 어려움을 겪어 본 개척교회 목사답게 솔직한 말을 꽤 거침없이 하는 편이었다. 항상 이러한 교계의 잘못된 모습에 대해 의아함을 가지고 있던 필자는 마음이 다 후련해져 옴을 느낄 수 가 있었다.
안 될 수 없는 교회의 부흥은?
1949년 충북 청주출생인 박목사는 대한신학교와 신대원을 나와 82년 현재의 위치에서 가족 6명을 데리고 교회를 시작했다. 한창 개발 중이던 이곳에서 그는 기존교회의 교인들을 대상으로 전도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그러한 절개를 지키고 있는 동안은 그만큼 교회를 성장시키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그는 교인들에게 불신영혼의 구원이 진정한 복음전파라고 깨우쳤다. 그리고 자신도 그것을 실천했다.
이때부터 교회의 모든 행사 예산 프로그램을 믿지 않는 사람들의 전도에 맞췄다. 물론 예산도 넉넉치 않았지만 그는 교회의 헌금의 대 부분은 전도를 위해 쓰여져야 한다고 굳게 믿는 사람이다. 매년 목표 새 신자 등록 수를 정하고 지속적으로 밀고 나갔다. 이 때문에 동선교회의 교구별 헌신예배는 유명하다. 박 목사는 개척한지 17년만에 교인의 70%가 초 신자들로 구성되어 있는 출석교인 1천8백여명의 중형교회를 이끌고 있다.
“생각 해 보십시오. 저는 목사의 사례에 대해 불만이 많습니다. 목사는 복음 전파 자 이기에 당연히 목사의 사례비는 전도 비 항목에서 지출되어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대개의 교회들이 예배비 항목에서 계정하여 지출합니다. 이는 목사를 예배인도지로 보는 시각 때문입니다. 즉 제사를 집전하는 제사장이라는 개념 때문입니다. 목사가 제사장입니까? 목사가 레위인 입니까? 칼빈이 한국교회를찾아 온다면 종교개혁 다시 하자고 할 것입니다. 그리고 목사들부터 치리하자고 달려들지 모릅니다. 이러한 에배 집전자로서 성직자를 바라보는 시각은 카톨릭에서 하는 짖입니다. 목사는 사도들의 사역을 이어 받은 복음 전파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복음 전파의 최일선에 서 있어야 합니다. 목사가 성직자 인 것은 제사장이나 신부들처럼 하나님 앞에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존재라서가 아니라 천사도 흠모하는 복음전파의 중책을 맡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제 철학입니다.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목회에 임하지 않는 한 목회는 양 ‘쟁탈전’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큰 교회의 책임
최근 동선교회는 전국에서 아주 어려운 미자립교회를 10곳 선정, 그 교회목회자들이 주변의 불신 노인 20명씩을 인솔해 제주도 여행을 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천호동의 결식노인들에게 매주 3차례 식사를 제공하고 이 미용서비스를 한다.
이러한 사역들을 하는 이유가 그에게는 있다. 큰 교회는 마땅히 작은 교회를 책임지고 성장 시켜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사실 큰 교회의 성장은 작은 교회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마치 샛강이 있어야 큰 강이 있듯이 말이다, 그러므로 큰 교회들이 작은 교회를 무시하고 작은 교회의 자생력을 무시해 버린다면 결국 큰 교회들도 언젠가는 성장이 멈추거나 줄어 들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성장이 둔화되는 일차적인 책임은 대형교회들에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대기업 재벌들이 우리나라의 중소기업들을 짓밟듯이 큰 교회들이 너무 무차별적으로 공격적인 목회를 한 결과 가능성 있는 중. 소형 교회들까지 존립의 위기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 공멸의 자리에 놓인 것이지요. 결국 이러한 위기는 시간이 갈수록 더 심해질 것입니다.”
안될 수 없는 교회부흥 세미나 개최
4년 전부터 전국 교회의 초청을 받아 「안될수 없는 교회성장」세미나를 하고 있는 그는 올 상반기만해도 28회 2천여명의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불신영혼의 구원이 진정한 전도』라고 외쳤다. 요즘 그는 또 불신영혼 구원에 목회자들이 솔선수범한자는 생각으로 목회자시신기증운동을 펼치고 있다. 이미 4백여명의 목회자들이 시신을 기증하기로 약속했다.
그는 『믿지 않는 자의 영혼을 건지는 사람을 키우는 것이 목회』라고 말했다. 참으로 복음에 사로잡힌 사역자는 교회부흥은 안 될래야 안될 수 없는 것이 교회부흥이라는 말이 저절로 나오게 되는 것을 느낀다. 오늘도 한가지 깨닫는 것은 교회성장의 문제는 목회자 자신이란 것이다.
“생각 해보십시오. 목사가 사도적인 열정에 사로잡혀 있다면 피 묻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지 않고 견디겠습니까? 진정 그가 주의 종이라면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되라는 명령에 둔감하겠습니까? 주님은 ‘가서 제자 삼아 세례를 주고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셨지 단순히 예배 집전자가 도리라고 우리를 부르지 않으셨습니다. 목사는 무엇보다 복음전도에 생명을 걸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교회부흥은 안 될래야 안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수 많은 목회자들이 대가 없이 성공할려고 합니다. 바울 사도가 어디 성공을 위해 좇아 다녔습니까? 그가 대형교회를 세우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까? 그의 관심은 오직 하나 ‘로마에도 복음을 전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로마는 세계의 끝이며 동시에 세계의 시작인 곳입니다. 그래서 할 수만 있다면 로마도 보기 원했던 것입니다. 누군가의 설교처럼 ‘로마가 들어야 할 복음’이었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전하면 당연히 교회는 성장합니다”
우선 그와 말을 나누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모든 말에 거침이 없다. 이것은 한 마디로 말해 그가 고뇌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우리는 대개 신학교를 졸업하면 그 고뇌를 학교에 두고 나온다. 왜냐하면 그대부터 처절한 생존경앵이 있기 때문이다. 목회가 성직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수단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일순간에 고생을 끝낼 수 있는 방법과 프로그램에 몰두하게된다. 그러는 사이에 본질은 저만치 가버리고 우리에겐 현실만 남는다. 하지만 박 목사에게는 우리가 잃어버린 그 본질에 대한 강한 고뇌가 살아 있는 것이다.
복음을 증거하는 교회로 남기 위하여
이제 동선교회 박 목사는 다시 한번 우리에게 도전한다. 어떤교회가 도리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저는 복음을 전하는 교회로 동선교회가 남기를 원합니다. 대형교회 되는 것을 포기하면 가능합니다. 버스 돌리지 않고 지 교회 세우지 않기로 작정하면 간단합니다. 혼자 잘되려고 하지 않고 작은 개척교회들과 함께 공존하며 복음전할 길을 모색하려고 하면 된다고 봅니다. 사실 저희들도 말만 앞세웠지 실천하지 못한 것이 많이 있습니다. 이제 2년 뒤면 21세기입니다. 동선교회는 실천하는 교회 되기를 원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과 작은 교회들의 자생력을 길러주는 일을 위해 지금보다 배나 더 수고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동선교회 박 목사를 인텨뷰하고 나오면서 느끼는 것은 그래도 하나님은 시대 시대마다 자신의 종들 세상에 머리 숙이지 않고 황금에 머리 숙이지 않고 의연하게 맡은 본연의 사역을 감당하는 종들을 숨겨두신다는 것이었다. 이제는 성공신화에 매달려 ‘꿩 잡는 게 매라는 식’으로 무조건 원칙도 사명도 없는 그런 목회가 아니라 우리의 존재 목적에 맞는 목회를 해야겠다는 다짐을 다시 한번 하면서 돌아왔다.
4.안산광림교회
“지역사회에 뿌리 내리는 교회”
최이우 목사
(감신대대학원 김신대신대원(설교학) 감신대 목회학박사원, 서울신학대학원, 풀러신대학원)
안산의 영적 첨병으로
1987년 12월 7일 개척 창립된 안산 광림교회는 서울광림교회(김선도 목사) 남선교회 총연합회의 기도 결실로 세워졌다. 선교회원들의 정성어린 회비와 헌금으로 대지 340평을 구입하고, 187평의 예배당을 건립해 5년 4개월 광림교회에서 부목사로 사역한 치목사를 담임자로 파송 했다. 안산은 반월공단 배후도시로서, 당시 17만 5천명의 시민에 약 200여 곳의 교회가 있었다. 그런데도 개척 12년만에 안산에서 최단 시간에 가장 빠른 성장을 보인 교회로 기록되고 있다. 그를 만나기 위해 몇 차례나 팩스를 보낸 끝에 겨우 승낙을 얻어 당도한 곳은 의외로 주택가와는 많이 떨어진 외진 고개 길 옆의 골목이었다. 안산에서 가장 외곽이라고 하는 거모동 방향이었다.
“처믕엔 이곳에 왔을 땐 사실 막막했습니다. 개척 멤버가 없었던 까닭에 남선교회 회원들이 2개월 동안 매주 15-20명씩 안산에 내려와서 개척을 도와야 할 정도 였으니까요. 하지만 교회는 은혜 가운데 성장해 2개월이 지난 1988년 2월초에는 등록교인 150여 명 가운데서 임원회를 구성하고 서울광림교회 남선교회 측으로부터 모든 것을 인수받았습니다. 사실 감개가 무량하였습니다. 개척 만 10년이 지난 지금, 안산은 인구 55만 도시로 성장했고 교회도 약 600여 개로 늘어났는데, 우리교회는 대지 1,200평에 본당, 교육관, 사무실, 교역자관 등 모두 800여 평의 건물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교회 담장을 완전히 없애버린 교회 마당과 주변에는 130여 대의 승용차를 주차할 수 있는 그나마 여유 있는 교회로 성장하였습니다만 초기에는 외진 곳이라 어려움도 많았습니다.”
그후 교세는 개척 한 달만에 101명의 등록교우들이 교회 창립 멤버가 된 이래 지금은 2600여명, 그리고 교회학교에 1200여명이 등록되어 있다고 한다.
“87년 12월에 개척되어 만 8년이 되기까지 공교롭게도 매년 470여 명씩 등록하였습니다. 아마 그게 제 그릇이니까 하나님이 그렇게 보내 주시나 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신도시 특성상 이동하는 교인도 적지 않아 정착률은 별로 만족할만하지 못했습니다. 교회의 위치가 사람들이 찾아오기 쉽지 않은 곳에 있다는 것과 안산에서 가장 큰 교회들이 더 좋은 위치의 가까운 곳에 우뚝 서 있다는 것은 분명 우리 교회로서는 불리한 점임에는 틀림없지만 그 가운데도 안산 시내에 좋은 소문이 나면서 꾸준하게 성장,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라고 저는 늘 감사하게 목회하고 있습니다.”
그의 첫 인상은 매우 온화하다. 그 기에다 안경을 쓴 관계로 그의 게서는 학자다운 위풍도 나타난다. 하지만 정작 그의 설교를 들어보면 불을 뿜는 듯 웅변적이다. 모든 면에 있어서 그는 항상 온유와 양보를 기본으로 삼지만 복음전도에 있어서는 양보가 없는 사람임을 안다.
나는 누구인가
먼저 그의 목회 노하우어를 알기 위해 그의 과거를 살펴보고 싶었다. 당회실에서 마주 않아 먼저 그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부탁하였다.
“저는 6.25 동족상잔의 상흔이 허옇게 흩어져있던 1952년, 가을의 풍성한 열매들이 무르익어가는 한가위 사흘 전에 불교의 도성 경상북도 경주에서 2남 2녀 가운데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조상 대 대로 내려온 불교가정에, 불교문화가 꽃핀 도시에서 그런 것만 보고 성장했는데, 친구를 통해 고등학교 1학년 때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감신대대학원(조직신학)과 감신대신대원(설교학)을 나와 같은 대학 목회학박사원에서 설교학을 연구했으며, 그밖에 서울신학대학원과 미국풀러신대학원에서도 연구하였습니다. 1977년 대학원 재학 중에 담임목회를 시작하면서 결혼해 두 딸의 아버지가 되었고 아내는 결혼 뒤에 장신대 신학과를 나와 장신대신대원에서 상담학을 공부한 다음 감신대대학원에서 C.P.E 1년 과정을 수료했습니다. 지금은 경기대학교 대학원에서 사회사업을 공부하고 있어 목회의 좋은 동역자가 되고 있습니다.”
자신의 생활에서 사소한 즐거움의 하나는 책방에 가는 일이란다. 한 달에 두세 번 책방에 들르며 20권 정도의 책을 구입하는데 매달 다 읽지는 못하지만 읽으려고 노력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연이어 그는 자신의 성격과 장단점을 이야기 해주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성격은 자상하고 세밀하며, 공정하고 냉정하며, 끈기있고 뚝심이 있습니다. 이러한 성격이 영성생활과 조화돼 목회를 형성합니다. 자상하고 세밀해서 심방목회가 대단히 흥미롭고 이에 대한 달란트가 있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공정하고 냉정한 성격은 교회행정을 비교적 빈틈없이 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입니다. 끈기와 뚝심은 무슨 일이든지 쉽게 요동하지 않고 줄기차게 밀고 나가게 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단기사역보다는 장기사역에 비교적 강한 편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목회와 목회철학
아무도 예수님을 믿지 않는 가정에서 예수님을 처음으로 영접한 뒤에 은혜 받은 최 목사는 기도생활을 열심히 했다고 한다. 하나님이 자신을 목회자로 부르신 분명한 소명은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는데 예수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것이 너무 좋고 감사한데, 이것을 자신만을 위해서 간직하는 것은 죄악이라는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 그때부터 “주여! 주의 종이 되어 모든 사람들에게 이 복음을 전하게 하소서”라고 기도했는데 신학대학에 입학해서도 학자나 기관목회자가 된다는 것은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고 오직 일선 목회자로 살겠다고 결심하고 기도했으며, 예수 믿은 지 10년 만인 1978년 3월에 목사안수를 받았다고 한다. 더욱 감사한 것은 한번도 이 길을 후회해 본 적이 없다는 것과 언제나 어떻게 하면 하나님 마음에 꼭 맞는 목회자로 살 것이나를 기도하며 오직 외길을 달려왔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 하나는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 가족 형제 처가, 친척들이 거의 다 예수님에게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이것은 목회의 커다란 확신의 바탕이 되고 있다고 말한다.
“1977년 4월, 경기도 남양주군 수동면 성산교회에서 시작한 담임목회 2년 뒤에 육군 군목으로 40개월을 복무하고, 서울 광림교회 부 목사로 만 4년을 지낸 1986년 8월에 저는 100일 동안 작정기도를 했습니다. 매일 밤 한 시간씩 교회 기도실에 올라가서 세 가지를 구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시작할 담임목회는 축복 받은 축복의 목회가 되게 하소서, 100평 이상의 건물에서 시작하게 하소서, 기왕이면 서울에서 할 수 있게 하소서’ 작정기도가 끝난 11월 29일, 교회 건축하다가 지붕 올릴 돈이 부족하다는 후배 목사의 말을 듣고는 아내의 제안으로 200만원의 헌금과 5만원의 교통비를 그 목사에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정확하게 1년 뒤인, 1987년 11월 29일 서울 광림교회에서 저를 안산광림교회 담임목사로 파송하는 예배를 드렸던 것입니다”.
안산광림교회의 개척, 담임의 1년 전에 끝난 100일 작정기도의 100퍼센트 응답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안산광림교회 개척비는 땅값(340평), 건축비(187평), 성구비 모두 합쳐서 2억 5백만원이었다. 이것은 1년 전 그의 가정이 친구목사를 위하여 헌금과 교통비로 드린 2백 5만원의 100배의 열매였는데. 신묘막측한 하나님의 역사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라고 겸손하게 말하고 있다.
목회에서 강조하는 것들
이제 그와의 인텨뷰를 구체적으로하기 위해서 목회철학에 대해 물어 보았다.
“무엇 보다 성령충만입니다. 교회와 목회는 전적으로 성령의 영역입니다. 교회의 절대 기초가 되는 신앙고백과 교회의 지상 탄생과 목회의 사역능력인 은사 등 성도들의 인격화된 신앙인, 성령의 열매(갈 5:22-23)등 어느 것 하나도 성령의 역사 아닌 것이 없습니다. 교우들을 심방하면서 발견한 경이스러운 현상은 목사가 심방하기 전에 이미 성령님께서 심방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나는 다만 주님이 승리해 놓으신 현장에 따라가서 승리의 개가만 부르고 올 뿐입니다. 그래서 목회의 현장에 하나님의 성령의 임재와 자유로우신 역사를 간절히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말씀에 굳게 서는 신앙이다. 인간적 설득이나 권면으로서는 단 한 사람의 영혼도 구원하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창조하시고 역사하시고 구원하십니다. 성경은 어떤 의미로든지 절대 무오하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살아있는 이 말씀이 사람들의 심령에 부딪치면 능력을 발휘합니다(히 4:12). 때문에 설교는 말씀 중심의 강해설교를 하며, 교회에서는 트리니티성서연구로 철저하게 말씀을 가르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대로 생명이고 능력이며 약속임과 동시에 축복입니다. 아무 것도 이 말씀의 권위를 대신할 것이 없습니다. 셋째로 넘치는 기도와 찬송입니다. 기도와 찬양의 신앙이 하늘로 치솟을 수 있는 독수리의 두 날개와 같습니다. 기도와 찬양이 삶 속에 가득하면 지칠 줄 모르는 새 힘이 넘치고, 마르지 않는 샘물같이 우리를 만족하고 기쁘게 합니다. 그래서 기도 많이 하는 성도들을 육성해 축복의 역사가 지속되게 하고, 찬양은 수준 있는 성가대와 올바른 찬송으로 신앙의 기쁨을 더하게 합니다. 기도 있는 교회와 신앙은 뜨겁고, 찬양이 넘치는 심령과 교회는 시원합니다. 그래서 할 수 있는 대로 기도의 그룹과 시간을 넓게 하고, 찬양을 많이 부르고 성가대는 되도록 많이 만들어 많은 시간들을 성가대에 봉사하도록 해서 찬양의 기쁨을 얻게 합니다. 넷째로 불타는 구령열입니다. 감리교 창시자인 요한 웨슬리는 목회에 있어서 영혼구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일생 동안 하루에 80킬로미터씩이나 전도여행을 했고, 4만여 회의 설교를 했습니다. 구원받아야 할 영혼이 있는 곳이면 그는 어디든지 달려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세계는 나의 교구다’라고 외치면서 나간 웨슬리의 후예들에게는 불타는 구령열이 있어야 합니다. 다섯째로, 축복을 받고 베푸는 삶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반드시 하늘과 땅의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바른 베풂이 없이 받기만 하는 축복은 ‘기복신앙’의 욕심을 뿐입니다. 축복을 사모하고 크게, 많이 지속적으로 받아 누리고 지속적으로 크게 베풀자”. 한 마디 한 마디가 시원시원한 대답입니다.
미래를 준비하는 목회 정책
“‘안산광림 비전 2000’이라는 마스터 플랜의 윤곽이 잡혔다. 이것을 수행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사항을 준비한다. 첫째, 3,400평 대지와 1만석 예배당과 사회복지선교센타 건립이다. 교회를 개척한 뒤 7년 반 동안 줄기차게 3,400평을 부르짓으며 온 교인이 기도해왔다. 안산의 ‘고잔벌 시대’가 열리기를 기도하는 것이다. 안산의 고잔벌에 220만평의 새 택지조성 지역에 이제 곧 분양 발표를 하게 되면 한국교회 역사에 새로운 장이 열리는 쾌거가 드러날 것이다. ‘3,400평 성전대지’ 꿈에도 부르던 노래였다. 하나님께서 주실 줄로 믿고 명실상부한 안산복음화와 성시화의 중심이될 ‘시민의 성전’과 선교센타는 2천년 1월, 21세기 원년에 장엄한 축복의 문이 열릴 것이다. 둘째, 복지선교에 중점을 두는 목회이다. 21세기 한국은 ‘복지’를 통한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일에 몰두하게 될 것이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를 돌보는 복지 선교를 위해서 교회는 충분한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교회는 사람들의 육적인 욕구와 영적이며 정신적인 욕구와 문화적인 욕구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교회에 많은 지원들을 주셨다. 이 지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면 복지 선교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우선 탁아원과 유치원, 종일반 운영으로 전인교육으로 인간 됨의 틀을 형성하도록 한다. 맞벌이 부부들의 자녀들이 열쇠를 가지고 다니는 경우, 탈선할 요소를 엄청나게 지니고 다닌다. 이들을 하교 뒤에 복지시설로 인솔해서 휴식과 놀이, 학습의 길을 지도하고 부모가 돌아오는 시간에 교회 버스로 돌려보낸다는 것이다. 그리고 청소년들의 문화공간을 마련하고자 한다”
체육관, 도서관, 영사관, 수영장등 정열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는 공간을 이용해 탈선의 길을 막고 건전한 성장을 돕자는 취지인 것이다.
“우리는 매년 헌혈운동을 전개하고 있는데(‘95. 6. 25에는 181명), 94년 12월에는 510명의 안구기증을 약속하기도 했다. 앞으로 우리가 더 할 수 있는 것은 장기기증이며 최후에는 병원에 시신까지 해부용으로 기증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를 기념하는 명패를 부활동산에 안치할 것이다. 부활동산은 그야말로 주님 오신날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소망의 동산이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 기독교인들이 부활신앙을 부활신학으로 정립해야 한다. 전문화된 팀목회 실현이다. 교육, 사회선교, 상담학교, 청소년선교, 음악선교, 해외 국내선교, 문서선교, 방송선교등 각 분야의 최고 전문가들을 초빙해 목회의 분야를 위임하는 목회이다. 물론 담임목사는 이전체목회를 하나로 연결하는 주 채널이 될 것이다. 21세게 목회는 전문목회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복음화와 성시화의 비전을 갖는다. 교회를 개척하면서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두 가지 비전이 이것이었다. 그 동안 주신 기도제목을 붙들고 기도하는 동안 하나님께서 깨우쳐주신 구체화된 목회의 비전들이다. 나는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당신의 마음에 맞는 사람들을 세우시고, 당신의 능력을 주시어 이루게 하신다고 믿는다. 하나님이 때를 정하시고 일꾼과 자원도 하나님이 붙이신다고 믿는다. 나와 우리교회는 주님 오실 때까지 혹은 주님 앞에 설 때까지 하나님의 이 영광스런 일을 위해 쓰임받는 기쁨과 감격으로 순종하며 살 것이다”.
성장 포인트
교회성장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역사하심, 곧 은혜라고 하는 말 이외에 별로 다른 표현이 없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멕가브란으로부터 시작된 교회성장학파들의 성장연구 이후 교회성장을 과학화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성장요인을 분석한다면 성령께서 어떠한 교회 사역에 더 강하게 역사하셨는가를 말해야 할 것이다. 안산광림교회 목회에서는 다음과 같은 사실이 돋보이는 것 같다. 첫째는 삶에 변화를 주는 설교이다. 요즈음 사람들은 어느 교회든지 가서 바로 등록하는 경우는 드물다. 별로 바람직한 행동은 아니지만 현실적인 것은 어느 교회에 가든지 설교를 평가한다. 교회를 순회하다가 설교에 은혜가 되면 대개 등록을 결정한다. 주일 등록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그날의 설교에 달렸다. 자신의 설교는 논리적이어서 이성적인 깨우침과 설득력을 지닌 강해설교였다. 또한 성령께서 설교 때마다 개개인의 영혼을 사로잡는 은혜로 역사하심을 본다.
둘째, 비전과 변화를 주는 목회이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환상과 꿈과 예언을 주신다. 마른 땅에 샘물이 터지고, 사막에 물이 흐르고, 강을 보게 하시고 말하게 하신다. 교인들에게 만족과 지역 그리고 개인과 교회에 대한 분명하고 위대한 비전을 제시해 왔다.
이를테면 1990년대 이후 한국교회들이 전반적으로 침체 및 마이너스 성장을 하고 있는 현실을 보면서 이 시대를 ‘탕자의 시대’라고 보고 10여 년 동안 아버지의 품을 떠나가고 있으나 2천년, 즉 21세기는 ‘탕자 귀의의 시대’라고 생각한 것이다.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오는데, 돌아와야 할 아버지 집은은혜와 사랑이 풍성해야 한다는 비전이다.
21세기는 반드시 영적 대 부흥의 시대가 도래하므로 교회는 충만한 영성과 넓은 사랑의 쉼터를 준비해야 한다. 교회가 성장할 때 환경의 변화도 중요하다. 교회는 내적인 성장과 함께 꾸준히 변화를 도모해왔다. 새로운 프로그램 도입, 교역자 청빙, 대지 확장, 건물 증축, 교회개척, 선교사 파송 등이다.
셋째, 긍지 높은 교회 소속감을 주는 목회이다. 집에서 문을 열고 나서면 바로 문전에서부터 수많은 교회들을 지나쳐서 우리교회까지 찾아온다. 만약에 전통이 오랜 교회라면 조상대대로 섬겨오던 ‘내 교회’의식이 있을수 있지만 개척교회는 이것이 부족하다.
교인들이 이 교회에서 신앙생활하기를 잘했다고 생각하고 만족해할 수 있는 목회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 영감이 넘치는 예배와 찬양, 다양한 성서연구, 뚜렷한 비전 제시, 안산을 변화시키는 선교사업 전개 등이다.
5.열린교회
“불꽃 같은 열정을 주특기로”
김남준 목사
1. 목사님의 신앙에 대해
(성장 배경과 어린 시절)
모든 가족이 신앙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비교적 기독교인 분위기 속에서자랐습니다. 아직 말을 할 줄을 모르던 시절부터 식구들에게 엎혀서 교회에 드나들기 시작했습니다. 비록 회심하지만 못 했어도 중학교때까지 대체로 교회 생활을 계속해 왔습니다.
(청년시절과 활동)
제가 회심을 경험하게 된 것이 스무살 때 쯤으로 기억됩니다. 그 이후로 교회를 떠나지 않고 신앙 생활을 했지만 깊이 변화 받지는 못한 상태였습니다. 따라서 특별히 신앙적인 활동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어요. 신학을 공부하기 전까지 직장 생활 하면서 주일학교 교사로 줄곧 섬겼던 것이 전부였습니다. 구원의 획신은 없었지만 여전히 제 꿈은 세상에 있었습니다.
2. 신학동기
신앙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지독한 방황 속에서 젊은 시절을 보내고 있던 때 저를 목회자로 불러주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회심하고 난 지 약 5년 후였던 것으로 기억됩이다. 우연히 참석한 직장내 신우회의 성경공부 모임이 계기가 되어서 서서히 영적인 변화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결정적으로 목회의 길에 들어서기로 결심한 것은 일주일 동안의 금식기도의 응답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총각 집사로서 한 교회에서 유년 주일학교를 책임을 맡고 있었어요. 전도사님이 없었기 때문에 설교도 하고 성경공부를 가르치기도 하였는데, 여름 성경학교를 맞이하게 되었어요.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며 한 주간동안 금식기도하는 가운데 영혼의 구원을 위하여 나를 부르시는 것을 확신하게 된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3. 개척하실 때 상황
제가 교회 개척 할 때는 신학교에 교수로 외었던 때에요. 기독 대학교에 외었죠. 조교수로 있었던 시절인데 물론 꿈이 교회에 있었어요. 그래서 신학교 생활 9년 하면서도 늘 꿈이 교회에 있었던 것은 사실인데 학교에 있으니까 교회에 부임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그런 상황인데 기도 중에 교회를 개척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3년 전에 개척하게 되었어요.
4. 성장 비결에 대해서
살아있는 예배가 결정적입니다.
(목회 철학 참고)
저는 목회 철학을 따로 이야기 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 보다 성경에 가까이 다가간 목회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별도로 꿈을 가질 필요가 없이 하나님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 가장 하나님의 뜻에 가까운 사역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생각 때문인지 가장 아직 한번도 제 스스로의 목회 철학이 무엇인지 정리해 본 적도 없고 더욱이 체개를 세워서 다른 사람에게 알려 본 적도 없었습니다. 다만 교회가 성경으로 돌아가기를 바랄 뿐이고, 무엇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전해 주시려고 한 참된 기독교 신앙인가를 가지고 성경과 함께 고민하고 씨름할 뿐입니다.
5. 한국교회의 현 상황에 대한 진단과 해결책은
「설교자는 불꽃처럼 타 올라야 한다.」 「자네 정말 그 길을 가려나」
저는 독자둘이 이런 종류의 책에 목말라하는 현실에 대하여 일종의 슬픔을 느낌니다. 하루속히 이런 책들이 충격으로 다가오지 않고 잘 읽힐 필요도 없는 예배 현실이 되기를 비는 마음입니다. 저는 그 책이 독자들에게 폭팔적인 반응을 얻으며 읽히는 이유를 세가지로 봅니다. 첫째는 고통스러운 정도로 답답한 예배 현실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이 없는 예배는 사람들의 마음을 점점 더 굳어지고 만들어 주고 형식에 만족하는 외식하는 그리스도인이되게 하지요. 그렇다고 해서 그렇게 예배드리는 사람들이 전혀 영적 생활이라고 부를 수 어뵤는 그러한 종교생활에 만족하느냐면 그렇지 안거든요. 이런 목마름들이 그 책을 찾게하는 것 같아요. 둘째로는 최근의 목회적인 반성 때문입니다. 조국교회가 한계에 부딫힌 목회상황을 타개해 보고자 여러 가지 시도들을 해 보지 않았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런 시도들이 그리스도인의 목마름을 궁극적으로 해갈해 주는 방편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예배의 회복에 대한 관심이 폭 넓게 해결하게 된 것이 또 한 원인이 되었습니다. 출판의 시기가 시의 적절하였던 것 같습니다. 셋째로는 책의 내용이 한국적이라는 데 있었던 것 같아요. 제 책이 출간되기 몇 개월 전부터 이미 예배에 대한 책들이 여러번 번역 출판되었지만 별로 주목을 못 끈 것은 역시 예배에 대한 고민과 대안을 찾음에 있어서 “한국적인” 몸부림에 충분한 공감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조국은 그 어느때 보다도 심각한 위기 앞에서 있습니다. 국민 정신은 물가치와 되어가고, 동족애는 피폐해지고, 도덕성은 황폐화 되어 가히 윤리의 실종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물질적으로는 살기가 나아졌다고는 하나 여유있는 사람들은 대체로 향략으로 흐르고, 더 가난해지게 된 사람들 중에는 한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이 시회로 하여금 더욱더 반하나님 적이고 반기독교적이 되어가게끔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민족의 고민은 여러 갈래이고 교회의 아픔은 다양한 원인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뜻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조국과 교회의 이같은 어려운 형편을 변화시켜 보고자 여러모로 애쓰고 수고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분들의 진지한 고민과 섬김을 높이 사고, 격려해 주어야 하겠습니다. 아무나 그분들처럼 이 시대와 조국의 교회를 부여잡고 아파하면서 섬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국 땅에서 민족과 함께 성장해 온 교회와 기독교 신앙을 거스리는 이 시대의 물결은 너무나 힘차고 도도하게 느껴지며, 이를 역류해 보려는 우리 그리스도인들과 조국교회의 몸부림은 왠지 연약하게만 느껴집니다.
우리가 그리스도가 왕이심을 고백해도 왠지 조국땅은 공의와 사랑으로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통치로부터 멀어져가고 있는 것처럼만 느껴지고, 그때마다 이 땅위의 교회탑, 높이 솟은 십자가를 바라보는 우리들의 마음 한 구석은 시려오기만 합니다.
「영혼을 울리는 설교 개발」中에서 p. 59~60
6. 후배 목사님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
“소정의 과정을 마치면 신학교는 졸업장을 줍니다. 필요한 절차를 마치면 노회는 안수를 주고, 교회는 그들을 목자로 초빙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어학 훈련을 마치면 수료증을 받고 선교지로 나아 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하나님을 떠난 패역과 불신앙이 소용돌이 치는 이 세상이 변화되기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가슴에 불 붙는 말씀이 임하기를 사모하십시오. 이 시대를 향해 주시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설교자로 부름 받은 우리들을 영혼을 불같이 일깨우기를 구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모든 지식을 습득하고, 온갖 신학을 통달하였다 할지라도, 그것만으로 우리가 설교자로 태어나는 것은 아닙니다……누가 진리의 말씀을 해일처럼 몰고와서 패역한 이 시대의 바벨탑을 쓸어 버리고 여호와의 깃발을 세울 것입니까? 이 척박한 조국땅에 진리로써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 가득하게 만들어 줄 자 누구입니까? 오늘 하나님의 말씀이 임함으로 큰 자가 된 세례 요한을 보십시오. 설교자로서 한 시대를 일깨워 그리스도의 오시는 앞길을 예비하기 위해 그는 삼십년 가까운 세월을 광야에서 극심한 훈련을 받으며 영성을 키워갔고, 영력을 쌓아갔습니다.”
김남준 목사님의 저서 「세례 요한」中에서
7. 영향을 받은 선배 목사님이 있다면.
제가 영적인 어두움 가운데 있을 때에 하나님을 만난 것은 성경을 읽으면서였습니다. 성경을 통하여 영적인 각성을 경험하게 된 저는 제가 이제껏 믿어 온 것이 참된 기독교 신앙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것이 저의 영적인 순례의 닻을 올리는 계기가 되었어요. 그리고 저의 최근의 저서들은 그러한 영적인 순례의 길에서 얻어진 결과들입니다. 특별히 전적으로 영향을 준 사람은 없는 것 같아요.설교자로서의 삶은 중세 말기 플로렌스의 설교자 기롤라모 사보라롤라에게서, 설교자로서 성경 해석에 충실하고자 하는 태도에 있어서는 18세기 영구의 전설적인 설교자 죠오지 윗필드에게서 많은 감화를 받았고,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이해함에 있어서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에 대한 이해는 종교 개혁자 요한 칼빈과 18세기 미국 영적 대각성의 지도자였던 죠나단 에드워즈에게서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 앞에서 살아가야 할 인간에 대한 탁월하고도 목회적인 이해에 있어서는 17세기의 영국 청도교 죤 오웬을 비롯한 여러 성학들에게서 많은 감화를 받았거나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청도교들에게 심취하였던 로이드 죤즈의 저서속에서도 가르침을 받고 있습니다.
인터뷰 기사 中에서
8. 독서량은 얼마나 되십니까?
틈나는 데로 볼려고 하나 볼 수 없었어요. 그러나 여러 책을 볼 때 그와 관련된 여러 책을 볼 수 있었어요.
9. 가족관계
부인과 아들이(초등학교 5학년) 딸이 (7살)이예요.
10. 성경읽기는 어느 정도 하시는 가요?
전에는 다독을 하였지만 목회하게 된 때부터 정독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묵상도 하면서요.
믿음이라는 것은 그리스도인 각 개인과 하나님(I-You)의 대좌(対坐)이다. 우리가 죄사함을 받았다는 것, 즉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렀다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about Him)에 대한 태도가 아니라 '하나님에게'(to Him)의 태도이다. 내가 하나님과 만나 나의 전(全) 존재를 맡기고 그분에게 순종하는 전적(全的)인 결단을 의미한다. 이런 믿음의 가장 직접적인 표현은 기도이다. 기도는 하나님과 대면하여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기도의 모범에서 '당신의 이름'(Thy name), '당신의 나라'(Thy kingdom), '당신의 뜻'(Thy will)이라고 가르치셨다. 예수님께서 이방인들처럼 중언부언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그것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이 아니라 스스로 자기 마취적인 주문(呪文)을 외우는 것과도 같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떤 사람과 만났을 때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 내가 하고 싶은대로 행동하지도 않는다. 적어도 상대를 인격적으로 대하기 때문이다. 만일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만나 대화한다면(기도한다면) 함부로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육신의 아버지를 만난 자리에서 "당신은 정말 살아있습니까?"라는 식으로 말하지 않듯이 말이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분의 인격에 우리의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이다. 어떤 영화에서 보았던 장면이다. 한 아이가 그의 집에서 강도 둘에게 인질로 잡혀 있었다. 경찰이 그 집 주위를 포위하고 있었지만 누구 하나 제대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아이의 아버지는 의도적으로 총알이 없는 총을 가지고 그 집안으로 잠입했다. 아이의 아버지는 강도 중의 한 명에게 자신의 총을 갖도록 하고, 총을 가지고 있었던 나머지 한 명을 처치하고 그가 가지고 있던 총을 빼앗았다. 결국 아이의 아버지와 한 명의 강도는 서로 맞서게 되었다. 아이의 아버지의 총에는 총탄이 장전되어 있었고, 강도가 갖고 있는 총에는 실탄이 들어 있지 않았다. 강도는 아이를 인질로 잡고 있었다. 아이는 강도와 가까운 거리에 있었고, 강도는 아이에게 총을 겨누고 있었다. 아버지는 강도에게 총을 겨누고 있었다. 강도가 아이에게 총구를 겨누며 쏘려고 하자 아이는 무서워 떨며 어쩔 줄을 몰랐다. 그때 아이의 아버지가 말했다. "얘야, 아버지가 너 아버지를 알지? 내 말을 들어라. 하나, 둘, 셋 하면 아버지에게로 뛰어오너라. 괜찮다." 그리고는 곧바로 말했다. "하나, 둘, 세엣!" 그러자 아이가 아버지에게로 달려갔다. 물론 강도는 아이에게 총을 쏘았다. 그러나 그것은 총알이 없는 것이었다. 강도는 후에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죽게 된다.
믿음이란 것은 이런 것이다. 아버지를 믿고 달려가는 것이다. 진실한 아버지를 신뢰하는 것이며, 그분과의 대면이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죄사함을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지 못하던 상태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상태로 옮겨진 상태이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 자라면 더 이상 하나님의 존전에서 쫓겨나는 일은 없다. 오히려 죄사함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가지는 것이며, 그분의 말씀에 전적으로 따르는 것이다. 믿기 때문이다.
믿음이란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지만 내가 생각할 때는…" 하고 덧붙이는 게 아니다.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으니까 그 다음은 아버지께 맡기고 그렇게 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전적인 신뢰를 하지 못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한번 하나님께서 뛰어오라면 뛰어가 보라. 거기엔 분명 하나님만이 알고 계시는 비밀이 있기 때문이다. 당장 눈에 보이는 강도의 총과 같은 어려움이 있지만 그것이 아무 것도 아닌 가짜란 것을 하나님은 이미 알고 계시다. 모든 것을 전적으로 맡기고 기도해 보자. 그리고 모든 것을 맡기고 행동으로 옮겨보자. 그 다음 일은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다.
우리에게는 계시록에서 언급하고 있는 영원한 안식처가 있다. 그곳은 죄사함 받은 자들의 합당한 목적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직도 우리는 사탄의 세력과 대면하고 있다. 빈 총이 무서워, 너무 바빠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되지 않을 것 같아서 갈등하고 있다. 죄사함 받은 우리는 그분께 우리의 전존재를 맡기고 더욱 친밀한 관계를 누릴 수 있다. 그것은 우리의 특권이다. 당신은 그분에게 당신의 전존재를 맡겨 보지 않겠는가?
6.분당남서울교회
“뜨거운 가슴하나로”
최요한목사
1992년 1월 12일, 최요한 목사가 수명의 교우와 함께 분당구 서현동 시범 한신상가 B동 208호에서 예배를 드린지 만 5년, 1997년 1월말 현재 총재적 2,400여명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고 있는 분당 남서울교회를 방문했다. 지난 해 개척교회에서 얻은 소중한 경험들을 나누려고 목회자 세미나를 열었을 때 400명을 예상하고 진행했다가 1,200여명의 목회자가 몰려 일부는 되돌아 가야만 했던 바로 그 기적의 현장을 방문하게 된 것이다.
최요한 목사, 그는 평범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별 어려움 없이 유년시절을 지냈다. 3대째 뿌리깊은 신앙의 가정에서 철저한 신앙교육을 받으며 성장하였다. 그러나 그의 말대로라면 보수적인 신앙분위기 속에서 영적으로는 크게 성장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의 영적 전환점은 12년동안 고통을 당하던 두통을 총신대학 신학대학원시절에 간절히 기도하던 중에 하나님의 은혜로 완전히 고침을 받으면서부터 였다고 한다. 총신대학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후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사모와 함께 깊은 산중에 들어가 생명을 걸고 장기금식에 들어가 기도하던 중 깊은 영적인 체험을 하였다고 한다. 이때의 경험이 지금의 영성목회의 원동력이 되었다고 하는데, 그때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하고 서원하였던 것이 모두 응답되었다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교회를 방문했더니 마침 97년도 신년 제직세미나가 열리고 있었다. 외부 강사없이 담임목사 자신이 인도하는 집회였지만 월요일 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임원, 제직들이 나와 훈련을 받고 있었다.
세미나를 마친후 최목사와 인터뷰를 시작했는데, 무엇보다 먼저 한국교회의 성장둔화요인에 대하여 물어보았다.
"글쎄요, 저는 학자가 아니라서 깊은 것은 잘 모릅니다만 일선에서 느낀점은 강단권의 약화가 아닐까 합니다. 목회의 생명은 강단에서 외쳐지는 말씀에 있는데 말씀에서 복음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안타갑고 심각한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교회에서 성도들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삶에 지치고, 죄에 넘어지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그들을 주님의 보혈로 씻어주고 깨끗케 해주는 것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정작 교회에 오면 심령이 자유케 되거나 새로운 용기가 생기지 않아요. 그냥 더 주눅들게 되는 것이지요. 제자신이 그것을 느낍니다 복음의 말씀이 온전히 잘 외쳐졌다 싶으면 성도들의 표정이 기쁨으로 넘치고, 반면에 제 자신의 메시지가 시원찮다 싶은날에는 성도들도 영 기력이 나지 않는 것 같고, 또 저도 참 괴롭습니다. 지식이 아니라 심령에서 나오는 설교가 될 때, 그래서 성도들의 심령속에 파고 들어갈 때, 말씀의 능력이 개인의 삶에서 나타나는 것 아니겠습니까?"
깡마른 체구, 그렇지만 다부진 모습에서 어디서 저런 영성이 솟아날까 싶을 정도로 최목사는 한마디 한마디 힘주어 말했다.
필자는 다시 한번 물어본다. 그러면 정말 생명력 있는 메시지는 어떤 메시지라고 생각하느냐고 질문하자 이렇게 답했다.
"저는 늘 그런 생각을 합니다. 제 설교뿐 아니라 다른 목사님들의 설교를 들으면서, 아! 저분의 설교는 독서에서 나오는구나, 아! 저분의 설교는 무릎에서 나오는구나 하고 느껴집니다. 아마 다른 목사님이 제 설교을 들으면 무엇이라고 평가할까요? 저는 제설교가 무릎에서 나오길 원합니다. 무릎 꿇고 기도할 때 하나님의 영감이 떠오르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제자신이 주님앞에서 깨어지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새로워질 때, 참 죄인의 괴수라도 용서하시는 그분의 사랑을 느낄 때 그 메시지가 어찌 사람의 심령을 흔들지 않겠으며, 또 붙잡아 주지 않겠습니까? 본질 문제라고 봅니다. 메시지는 영혼에 대한 자각이 있어야 합니다. 강단권이 회복되면 교회는 부흥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목회자와 교회들이 프로그램을 구하고 있다. 그래서 교회는 해마다 철따라 주기적으로 프로그램을 시행해 본다. 얼마나 많은 프로그램들이 교회에 소개되고 또 사라져 갔는가? 결과는 그렇게 좋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는 사이에 한국교회는 메시지가 많이 약해진 것이 사실이다. 현대인들의 세속적인 가치관에 조금씩 물들어 가는 교인들에게 보다 더 강력한 메시지의 선포가 있어야 함에도 시류를 따라가는 적당한 말씀들이 얼마나 맥없이 강단에서 외쳐지는가?
필자는 차세대 목회자들과 새로운 목사 후보생들에게 강단권의 회복에 대하여 충고할 말씀을 부탁했다.
"물론 지식과 지성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없다면 기독교 맹신주의나 광신주의로 흐르게 됩니다. 그러나 설교나 목회는 지식이나 책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지도자가 되기 전에, 교회를 이끄는 리더가 되기 전에, 인생이 무엇일까 하는 깊은 고뇌를 겪어 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성도들을 이해하게 되고, 그들을 위로하며 가슴에 품을 줄 아는 것입니다. 가슴이 넓고 뜨거운데 어떻게 사람이 모여들지 않겠습니까? 실패한 사람을 이해하고 격려할 수 있는 사람은 실패해 본 사람 뿐입니다. 고난과 고뇌에 찬 인생의 광야에서 무릎꿇고 기도하면서 한발 한발 내딛는 사람은 메시지가 다릅니다. 저는 그런 목회자들, 그리고 후배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최목사 자신도 역시 깊은 고뇌와 고난의 길이 있었다. 개척도 해 보았고 또 만성두통으로 좌절도 해 보았고, 또 농촌목회를 통하여 인내의 시간도 겪었던 사람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에게는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는 듯 했다. 고난이 올 때 그것을 훈련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는 최목사는 후배들에게 고난을 무서워하지 말고, '인생학교'요 '신앙교육'라고 생각하고 인내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고 바라보라는 것이었다. 필자는 만5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2,400여명이라는 경이적인 성장을 하게 된 남서울교회의 부흥과 성공요인에 대하여 질문을 했다.
"글쎄요, 과연 목회에 성공이라는 말이 어울리겠습니까? 하나님은 그릇에 따라 사람을 쓰신다고 했으니까 작은 교회라도 최선을 다하고 그곳에서 복음으로 변화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이 성공한 것이지요. 큰교회가 그냥 성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위에 더 많은 작은 교회들이 있기 때문에 성장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본다면 교회성장은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다고 보아야겠지요. 저도 막상 이곳에 와서 교회개척을 준비하는데 수중에 돈이라고 오백만원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오백만원을 대출 받았지요. 그 돈으로 겨우 계약금밖에 치룰 수 있었는데 어느날 집사님 한분이 옛날에 저의 설교를 듣고 은혜를 받았다고 하면서 개척하는데 보탬이 되라고 1억을 빌려 주셨어요. 그래서 상가를 빌렸는데, 이게 또 하나님의 기적이었어요 5년전만 해도 분당지역엔 돈이 있어도 상가를 빌릴 수가 없을만큼 절대적인 수가 부족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상가를 분양 받은 목사님 한분이 싼값에 상가를 임대 주시는 것입니다. 기도 하고 믿음으로 시작했더니 여기 저기서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더욱 감사한 것은 현재의 성전을 얻게 된 배경입니다. 그동안 다섯차례나 이사를 했는데 교인이 많아서 더 이상 상가건물에서는 회집할 수 없는 규모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새성전 건축을 준비하고 있는데 성동철 목사님을 만난 것입니다. 이분이 유치원 부지를 분양받아 교회당을 크게 건축했는데 여러 가지 이유로 은퇴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 교회와 연합하기로 하고, 젊은 목사인 저를 위해서 교회를 물려주고 은퇴하신 것입니다. 연건평 300평이 넘는 성전을 저는 하나님의 은혜로 얻게 된 것입니다. 연합을 했지만 성도들도 다 한마음으로 교회를 섬기고 저희들은 이렇게 계속 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모두 하나님이 역사하신 것입니다. 구구한 인간의 말이 필요없는 것이지요. 성전건축하는데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소비됩니까? 그런데 저는 전혀 고생을 하지 않았습니다.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이것도 제가 젊어서 많은 고생을 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덤으로 주시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은 정말 100배의 축복을 하시는 분입니다. 제가 개척초기에 돈을 한 3,000만원 빌려 주었다가 못 받은 일이 있는데, 지금 이 건물이 꼭 30억이 된다고 합니다. 그러니 꼭 100배이지요"(웃음).
지금까지 교회성장을 경이적으로 이루어가는 많은 목사님들을 만났다. 그런데 이분들의 공통된 특징이 있다면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기적을 믿는다는 것이었다. 참으로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길이 분당 남서울교회를 이끌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준비된 사람을 쓰시는 법이다. 분당 남서울교회의목회 방향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저희 교회는 분명한 세가지 목표가 있습니다. 첫째, 가르치는 교회입니다. 철저한 그리스도 중심, 말씀 중심으로 가르치는 목회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교육을 통해 성도들의 신앙이 성숙될 때 헌신이 있을 수 있지요. 둘째, 선교하는 교회입니다. 교회 재정의 50%를 선교에 투자할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지금도 세계 15개지역에 단독 혹은 파송선교사를 보내고 있고, 앞으로 전세계 지역 곳곳에 선교사를 보낼 생각입니다. 셋째, 치유가 있는 교회입니다. 오늘날 산업화 사회의 다양한 스트레스 속에서 원인 모를 질병으로 신음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영적 존재인 인간의 질병문제는 말씀과 기도를 통한 심령 치료만이 온전히 건강해 질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구원은 전인구원입니다. 치유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역시 분명하고도 확고한 철학이 오늘의 분당 남서울교회를 있게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끝으로 필자는 교회와 목사의 비젼을 물어보았다. 목사님의 대답은
"첫째, 교회적으로는 더욱 교육에 치중할 것입니다. 그리고 교인들의 영성을 깨우기 위해 강단권을 강화하고 기도훈련을 많이 시킬 생각입니다. 그래서 온전한 그리스도인의 사명을 강화하도록 하겠습니다. 또 지역사회의 등대가 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둘째, 한국교회를 위해서는 목회자들의 설교연구와 강단권 회복을 위해 헌신할 생각입니다. 연구와 문서출판, 그리고 인터넷을 통한 자료를 제공하기 위해 준비중입니다"
최목사와의 대담을 마치고 교회를 나서니 벌써 밤11시가 넘었다. 택시를 타고 가겠다는 필자를 한사코 말리며 자신의 차로 배웅해 주겠다는 배려를 뿌리치지 못해서 주차장 입구에서 기다리는데 최목사가 몰고나온 승용차는 96년형 프라이드 베타였다.
오늘 따라 밤거리가 그렇게 깨끗하게 느껴질 수 없었다.
용광로 같은 열정으로 부산을 복음화 한다.
수영로교회
정필도 목사
수영로 교회는 부산을 대표하는 교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필도 목사에 의해서 개척되어서 보수적인 부산에서 영적인 혁명을 일으킨 교회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 수영로 교회의 성장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하고 있겠지만 필자가 가까이 에서 지켜 본 바로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청년들을 중심으로 한 사역이 주효하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원래 군목 출신이었던 정필도 목사는 구에서 제대 후 목회지를 찾다가 우연히 성창합판의 사주였던 장로님과 조우하게 된다. 그리하여 성창합판 창고에서부터 교회가 개척되어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 시간도 가장 왕성하게 복음을 전하는 교회 가장 많은 선교사를 파송하는 교회 그리고 가장 열심히 섬기는 교회로 활동하고 있다. 필자가 수영로 교회를 취재하기 위하여 부산에 이르렀을 때 부산 역 에서는 노숙자를 위한 사랑의 식사 배급이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그 저녁에 봉사하는 교회가 수영로교회 였다. 그들은 식사를 나누기에 앞서서 잠시간 예배와 찬양을 드리고 그리고 분배하였는데 그 저녁 너무나도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종교계 내일을 연다] 부산수영로교회 정필도 목사
땅끝까지 가자 복음의 씨앗 들고...20개국 선교사 파견
우리나라의 개신교는 1884년 봄 서양 선교사들이 이 땅에 들어옴으로써 시작됐다. 그로부터 100여년이 흐른 지금 한국은 개신교가 강력한 국가 중 하나가 됐으며 세계 곳곳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데 두드러진 역할을 하고 있다.
부산수영로교회 정필도(58) 목사의 하루는 세계 복음화를 위한 새벽기도로 시작된다. 정 목사는 부산에서 시작해 전국 중요도시를 돌고난 후 다시 세계 각 나라를 생각하며 그 지역의 선교를 갈망하는 기도를 2시간에 걸쳐 드린다.
세계 복음화에 대한 정필도 목사의 소망은 기도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가 교회와 함께 설립한 수영로세계선교회는 인도-중국-우즈베키스탄 등 8개국에 병원-학교-고아원-문화센터를 건립,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외국에서 활동중인 선교사들이 참여하는 '수영로세계선교대회'를 지난 85년부터 개최하고 있으며 매년 500~1000명의 단기선교사를 파견하고 있다. 또 15개 나라, 20개 종족을 '입양'하여 자생적으로 교회를 세울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 것이 땅끝까지 선교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수영로교회가 '세계 선교를 가장 많이하는 교회'가 될 수 있도록 힘쓰겠습니다."
수영로교회와 수영로세계선교회는 현재 20개국에 47명의 선교사를 직접 파견했으며 한국인-현지인 선교사 1000여명을 돕고 있다. 그리고 2000년대에는 세계 모든 나라에 선교사를 파견하고 2000명의 선교사를 지원할 계획이다.
서울대 종교학과와 총신대 대학원을 졸업한 정필도 목사는 공군 군목으로 근무했던 부산에서 1975년 수영로교회를 개척했다. 아무연고도 없는 부산에 자리잡기로 결심한 것은 개신교 신자 비율이 전국에서 가장 낮은 이 지역에 선교의 바람을 일으키기 위해서였다.
"군목 시절 군대뿐 아니라 일반인 상대의 방송 설교와 부흥회를 하면서 '부산을 복음화하면 전국을 복음화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수영로교회는 25년 만에 출석신자 1만명에 이르는 큰 교회로 성장했으며 지역 사회와 하나가 되기 위해 119봉사단, 노인을 위한 청솔대학 등을 운영하고 있다. 최근 기공식을 가진 수영만의 새 교회 건물도 예배공간 뿐 아니라 콘서트홀, 체육관 등 지역주민을 위한 시설을 갖추고 있다.
정필도 목사는 또 그가 소속된 예장 합동 교단의 목회자 갱신 모임인 '교회갱신협의회' 공동회장을 맡고 있다. "민족의 복음화를 위해서는 교회가 변해야 하고 무엇보다 먼저 목사가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 정 목사의 주장이다. (이선민기자)
▲1941년 출생 ▲경기고-서울대 종교학과-총신대학원 졸업, 미국 리폼드신학교 박사과정 수료 ▲서울 신현교회-장충교회 부목사 역임 ▲현재 부산수영로교회 담임목사, 수영로세계선교회 총재, 교회갱신협의회 공동회장
“ ※ 교회가 무엇을 하고 있느냐구요?
"감격과 은혜가 있습니다"
"이웃과 항상 함께 합니다."
본 교회 담임이신 정필도 목사님의 은혜롭고 영감이 넘치는 말씀속에 위로와 기쁨이 당신의 삶을 변화 시킵니다.
수영로교회의 가장 큰 자랑거리는 온 성도가 하나되어 서로 사랑하며 이웃을 섬기는 것입니다. 불우이웃 급식 및 비상상태 협조를 위한 119구조대, 소년소녀 가장, 양로원, 고아원, 부녀복지원에 대한 구제사업과 수영구 지역 불우학생을 위한 장학사업, 유치장, 구치소 전도 등 그늘지고 소외된 곳에 그리스도의 사랑을 몸으로 실천합니다.
"미래 자녀 교육에 앞장섭니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문화공간입니다."
5-7세 유아의 지적 발달과 풍부한 정서를 교육하는 수영로 유치원 운영과 사랑과 기도로 섬기는 주일학교 (초등부, 중등부, 고등부, 대학부)에서 당신의 자녀들이 인격적으로 성숙하게 되며 영어, 일어, 중국어, 한국어, 러이아어를 현지 외국인 강사가 지도하는 선교 언어 학교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사회에 공헌해야 하며, 여기에 수영로교회가 앞장서겠습니다. 결혼, 취업, 법률, 의료, 세무, 건축 등 각종분야에서 전문가의 조언을 구할 수 있는 상담실과 노인을 위한 청솔대학을 운영중이며, 지역 주민들을 위해 더 많은 프로그램과 시설개방을 준비하고 있습니다.(독서실, 소극장, 결혼식장대여, 어학강좌, 세미나실)
"잘 준비된 양육 프로그램이 풍성합니다"
"통일시대를 준비합니다."
새가족을 위한 기초교리(4주,6주)교육으로 교회와 하나님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며, 평신도신학원, 사명자학교, 일대일 양육과정과 수준높은 사역자로서 훈련을 위한 광야 전도학교, 평신도 선교사 훈련 (LMTC.MTI), 교사대학, 찬양대학과 온 가족을 사랑으로 묶어 주는 아버지 학교 가정행복학교와 영어예배 등 다양한 양육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본 교회 20개의 남,녀 전도회가 분단 후 무너진 북한지역의 20개 교회의 재건 및 개척을 담당하고 있으며, 북한동포, 탈북자 돕기 운동에 적극 참여하며 그들과 결연을 통해 정착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수영로 VISION2000 세계속의 교회입니다."
국내 농어촌 지역의 미자립 121개 교회를 돕고 있으며 A.D2000연대 2000여명의 선교사와 20개 종족의 입양을 목표로 하는 [수영로 VISION 2000]을 향해 현재 42명의 파송 선교사, 270명의 협력 선교사, 300명의 현지인 선교사와 선교센타를 지원하며 세계를 품은 참 그리스도인의 사명을 다하고 있습니다.“
"열방을 향해 나아가는 청년국!이 표어는 수영로 교회 청년국의 분위기를 대변하는 표어이다.
6층건물 전부가 청년국 활동무대 수영로교회 청년국의 중심축은 교회의 적극적인 지원과 전통적인 뜨거움, 그리고 부산복음화와 세계 선교에 대한 비전이다.
재정에 있어서도 IMF 한파로 교회의 올해 예산이 모두 동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청년국 지원은 특별히 상향 조정될 만큼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 또한 공간 활용에도 현재 교육관으로 쓰고 있는 선교제자관 1-6층 예배실과 사무실 모두를 청년국이 사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교회의 구석구석 비어 있는 공간을 사용할 수 있도록 최대한 배려를 하고 있다.(참고: 청년국 교역자 목사1인, 남전도사 1인, 여전도사 2인, 전임간사 2인).
1997년도 10월에는 획기적인 조치가 청년국에 있었다. 그동안 주일 1-4부 장년예배 형식과 동일하게 드려지던 5부예배를 젊은이 예배로 독립시킨 것이다. 따라서 청년들의 특징인 찬양과 기도의 뜨거운 열정이 그대로 녹아 나는 새로운 형식을 과감하게 수용하여 예배를 드리고 있다. 설교도 정목사님이 두 번, 담당 목사가 두 번씩 격주로 선포함으로써 담임목사님의 관심과 담당목사의 영적 비전이 동일하게 심어지고 있다. 1998년도 1월 첫주부터는 저녁 5시에 있던 저녁 예배를 4시와 7시 30분으로 분리하여 저녁 1부는 장년을 중심으로 저녁2부는 청년국과 대학부를 중심으로 드려진다. 젊은이 저녁예배는 설교자와 그 예배 형식까지 담당목사들에게 전폭적으로 맡겨진 명실상부한 젊은이들의 예배로 허락된 것이다. 이에 현재 청년국과 대학부가 연합으로 예배기획팀을 만들어 매주 주제가 있는 예배를 기획하고 있다(현재 청년국은 1,000명, 대학부는 300명이 모이고 있다).
12시 전에는 불이 꺼지지 않는 청년국 사무실
전통적으로 청년국이 자랑으로 여기며 지켜지고 있는 것이 있다. 첫번째는 기도의 열정이다. 매주 월요일 저녁 8시가 되면 가나안 수양관으로 유치원 버스 1대와 3대의 승합차가 10여대의 승용차와 함께 시온관에서 출발한다. 월요 산상 기도회에는 평균 120-150명의 기도 용사들이 산상에서 집회를 갖고 바위에서 무릎을 꿇고 교회와 민족과 선교를 위하여 기도한다. 청년국의 영적 에너지는 이곳으로부터 비롯됨을 회원 누구나 알고 있다.
둘째는 전도의 열정이다. 매주 토요일 저녁 8시가 되면 롯데백화점 앞으로 청년국 다섯달란트 승합차가 출발한다. 부산역과 시외버스 터미널 등에서 계속되어 온 토요노방전도는 부산복음화를 위한 구령의 열정을 몸소 체험하는 자리이다. 찬양 집회와 일대일 전도를 마치고 10시에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의 김밥은 꿀맛 그 자체다(다섯달란트는 청년국 고유의 닉네임이다).
셋째는 공부의 열정이다. 매주 수요일 저녁 집회 후에 순장과 서기들이 모여서 일꾼공부를 시작한다. 1천명의 통일성을 위하여 단계적 성경공부나 제자훈련보다는 똑같은 교재로 성경공부를 한다. 담당목사의 인도와 나눔으로 이루어지는 일꾼공부는 학력과 은사, 직장 차이를 초월하여 하나 되게 만드는 능력으로 나타난다. 일꾼공부 후에는 불같이 뜨거운 열정으로 회장의 인도 아래 기도회를 갖는다. 그리고 여기서 함께 얻은 은혜는 주일 젊은이 예배 후에 순공부에서 나누어진다.
이와 같은 뜨거움 때문에 6개 그룹으로 이루어진 청년국의 선교제자관 사무실은 일주일 내내 자정 12시 이전에 불이 꺼지지 않는다. 그리고 청년국에서 훈련된 임원과 회장단은 교회 구석구석에서 훌륭한 일꾼이 되어 있고 청년국에서 배출된 22명의 회장들 가운데 현재 5명이 목사가 되어 있다.
청년국에서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방향은 표어에서처럼 열방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1996년도에 500명, 1997년도에 400명의 청년들이 단기선교를 다녀왔다. 여기에서 은혜받은 사람들이 장기 선교사로 또는 평신도 선교사로 헌신하여 훈련받는 중에 있다. 1996년에만 200명의 선교헌신자가 생겨났다. 1997년에는 10개 나라에 13개 팀이 1년 동안 저축한 경비로 단기선교를 다녀와서 선교정탐보고서 제2호를 펴냈다. 1998년 1월에는 그 열매로 5명의 평신도 선교사들이 우즈베키스탄과 코스타리카로 파송된다.
청년 갱신의 열쇠는 기도와 예배
수영로교회 청년국의 3가지 비전은 첫째 영적 부흥 운동, 둘째 하나님 나라 운동, 셋째 공동체 운동이다. 그 방법은 예배의 회복, 문화정복, 공동체훈련에 두고 있다. 예배와 문화와 공동체, 이것은 통일과 21세기를 앞두고 있는 우리 시대에 필수적으로 준비해야 할 청년회 갱신의 목표지점이다. 따라서 청년국은 5가지의 과제를 두고 있다(청년국의 5대 과제: 1.선교 2.문화 3.환경 4.통일 5.가정).
청년회의 변화와 개혁은 첫째로 단순화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기도의 불씨가 살고 예배의 감격이 회복되고 잃어버린 영혼을 향한 열심이 일어나는 것이 청년회 갱신의 열쇠이다.
그동안 제자훈련은 제자로서의 삶에 많은 도전을 주었다. 그러나 실천적 삶과 선교로서의 동력화에는 미진한 감이 있다. 왜냐하면 복잡하기 때문이다. 청년기에는 열정을 불사르기 전에 기도와 구령의 열정과 예배에 깊이 빠질 수 있어야 한다. 둘째로 청년회 갱신은 전문화가 목표가 되어야 한다. 이제 우리가 사는 영역에서 능력과 영향력을 나타냄으로 그리스도의 통치를 선포할 수 있어야 한다. 직장에서 뒤지고 교회에서 큰소리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우리가 사는 세계가 너무나 다양하기에 각자의 전문영역에서 인격과 실력으로 승부해야 하는 것이다.
셋째로 청년회 갱신의 방향이 마땅히 선교적일 때 부흥이 있다. 더이상 선교에 관심을 닫고는 청년들을 담을 수 없다. 성경이 젊은이들을 선교사로 요구하고 있고 이 땅의 첫 선교사 아펜젤러와 언더우드가 청년들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민족의 청년들에게 세계를 움직일 것을 명령하고 계신 것이다.
청년회장이 된 지 벌써 몇 개월이 지났다. 지난 10월부터 회장으로서 보낸 몇 개월동안 내 인생의 어떤 때보다 주님의 역사하심이 두드러졌다. 나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직분을 맡고 있기에 하나님께서 책임져주고 계신 것을 확신하고 있다.
우리 교회 청년회는 별나다고들 한다. 밤을 깨우는 산상기도회(월), 순모임을 준비하는 리더성경공부(수), 금요철야예배, 토요노방전도, 한나절을 훨씬 넘기는 주일성수. 순장이나 순서기까지는 많은 사람이 참석하고 있다. 나와 함께 청년부를 섬기는 임원들은 때론 날밤을 새우면서 각자의 맡은 사역들을 위해 날마다 헌신하고 있다.
오늘날의 수영로 청년회가 있게 된 것은 당회장 정필도 목사님의 청년들에 대한 끊임없는 기대와 깊은 사랑, 청년회 선배들이 셀 수 없이 많은 밤을 세우며 부르짖은 뜨거운 기도, 우리가 부산을 복음화해야 한다는 전도의 열정이 있었기에 주신 하나님의 은혜라고 확신한다.
1998년은 하나님이 허락해주셨다. 하나님을 위해 멋지게 살아보라고 새해의 햇빛을 보게 하셨다. 올해 우리 청년회의 목표는 기드온 같은 순장 300명, 젊은이 예배 참석 1,500명이다. 현재의 배가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거룩한 부담감이 내 마음을 채우고 있다. 이것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에 회장으로서 내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청년회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우리 청년회의 모든 지체들을 통해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주님의 계획이 이루어지는 1998년이 되기를 기도한다.
이동규/ 수영로교회 청년국 회장
강한 성령운동과 21세기형 목회가 주특기인
7.벧엘교회
박태남 목사
달동네교회
‘달동네교회’ 사람들은 돈암동의 벧엘교회를 그렇게 부른다. 지하철 4호선을 타고 미아방향으로 가다가 돈암동 성신여고 쪽 출구로 나가면 미아고개 오른쪽 언덕위로 화강석 벽돌로 지어진 고딕형 교회건물이 보인다. 이 교회가 한국에 세 개 밖에 없는 국제순복음총회 소속인 벧엘교회이다. 육이오때 세워진 이 교회는 여의도 순복음교회 측과는 다르게 한국에 순복음운동을 펼쳐 오다가 이제 그 아들 박태남 목사에 의해서 본격적으로 성장하며 교계의 주목을 받고 있어 필자는 인텨뷰를 요청하였다.
오후 6시 고개 길을 가파르게 올라가니 교회가 왠지 시끌벅적하다. 산꼭대기에 있는 교회지만 성신여고와 맞붙어 있어서 주차장을 나누어 쓰고 있었는데 그 곳에서부터 교회 앞까지는 젊은이들과 학생들이 가득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당회실로 들어가면서 안내하는 전도사님에게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오늘 유명가수의 콘서트가 교회에서 있다는 것이었다. 교회에서 왠 가수의 콘서트냐 했더니 일년에 한차례씩 이웃한 성신여대와 성신여고 그리고 젊은이들을 위해서 대학부와 청년회 주최로 열린음악회를 갖는다는 것이다. 물론 가수는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사람을 중심으로 초청하되 음악성이 있는 크리스챤 가수들을 중심으로 초청하여 열린음악회를 갖는다고 했다.
콘서트와 열린음악회가 있는교회
실로 놀라웠다. 일반교회라면 이야기도 못 꺼낼 일을 하고 있는 벧엘교회였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떤 목사일까 궁금하여 당회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후에 그가 들어와 인텨뷰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리 크지 않은 키에 당당한 풍체에 올백한 머리가 아주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필자가 놀란 것은 그의 나이였다. 겉으로 보기에도 상당히 큰 대 교회인데 목사는 너무나도 젊었기 때문이었다. 인사를 나누고 먼저 나이부터 물어보았다.
“목사님도 놀라셨지요. 저는 올해 40입니다. 현재 벧엘교회를 담임한지는 4년 되어갑니다. 그 동안 교회의 도움으로 미국에서 10여 년간 공부하다가 얼마 전 귀국하여 목회를 시작한 것이지요. 그래서 아직 한국교회에 대해 모르는 게 많이 있습니다. 앞으로 많은 지도와 편달을 바랍니다.”
부친의 교회를 이어 받은 목회
그의 나이 40이라면 이제 필자보다 1살 많은 셈이었다. 그런데 어떤 연유로 벧엘교회를 담임하게 되었는지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벧엘교회는 저희 아버님이 1950년도에 개척하셔서 최근까지 목회하시던 교회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아버님이 하늘나라로 가시자 벧엘교회 당회에서는 긴급히 의논을 하게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저를 부르기로 작정하고 연락해 온 것입니다. 사실 오려고 할 때 고민도 많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제가 어릴 때 코흘리개인 저를 유치부 때부터 키워주신 분들이 장로님이 되셨는데 제가 어떻게 그분들을 목사랍시고 지도하겠습니까? 하지만 못다이룬 아버님의 뜻을 받들겠다는 생각에 귀국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그곳에서 초빙하는 많은 교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귀국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벧엘교회에서 제가 입은 은혜가 많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실 한국교회에서 이미 크게 성장한 교회들이 비슷하게 고민하는 문제들이 후계자문제이고 여러교회들이 이에 따른 갈등을 보여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차선책으로 선택하는 것이 담임목사의 2세들이 교회를 이어받는 형태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논의가 아직 활발하지 않기 때문에 매우 조심스러운 사안이기도 하다. 이에 필자는 아버지를 잇는 계승목회가 어떤 장점이 있고 단점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글쎄요, 첫째는 비록 아버지라고 하지만 전임 목회자의 영향력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는데서 오는 성도들의 비교 일 것입니다. 특히 저의 아버님 같은 경우는 강력한 성령운동으로 한때는 이단아니냐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기도를 많이 강조하셨거든요. 하지만 그러면서도 손수 이발기계를 들고 미아리 산동네 아이들의 머리를 직접 깍을 정도로 헌신적인 사랑의 사도였습니다. 그러니 어찌 제가 그 그늘을 이겨내겠습니까. 하지만 그래도 그분이 제 아버님이었기에 성도들이 이해하고 많이 넘어가는 것 같습니다. 반면에 일반적으로 원로 목사님들이 있는 교회에 다른 목사님이 후계자로 들어가게 되면 이러한 면이 극복되지 못해 갈등을 빗다가 결국 파국으로 치닫는 게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 면에서는 2세목사가 교회를 이어 받는 것도 문제해결의 한 방법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한국교회의 문제에 대해
필자는 얼른 이야기의 소재를 바꾸어 한국의 목회와 미국의 목회를 비교해서 이야기해 달라고 부탁했다.
“저는 한국교회가 미국교회를 10년 정도는 뒤지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철학 면에서나 프로그램 면에서 모두 10년 정도의 간격이 있다고 봅니다. 미국에서 이미 성공한 목회철학이나 방법이 한국에서는 3년 정도 지나면 도입하게 되고 그러면서 논쟁이 붙게되다가 어느 날 보면 한쪽에선 이미 시들해져가는데 이젠 해도 된다는 식으로 논의가 끝나는 것입니다. 열린예배가 최근 가장 이슈가 되고 있는데 이것만해도 그렇습니다. 원래 한국교회가 미국장로교회로부터 신앙과 교회의 모양새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100여년 전에 받아들인 교회의 형태나 예배의 형태가 절대적인 것으로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작 우리에게 복음과 구조를 빌려준 미국교회는 날마다 변화하는데 말입니다. 아무래도 본질과 형식이 뒤바뀐 듯 합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교회들이 보이는 이러한 갈등의 모습들이 결국은 본질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데서 오는 문제라고 봅니다. 저희는 순복음교회입니다만 오순절성령운동을 모토로 세워진 교회입니다. 물론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속한 교단은 아닙니다. 하지만 성령운동이 얼마나 오해를 받았습니까? 물론 성령운동이 다 옳았다고는 할 수 업습니다. 신비주의의 위험과 열광주의로 흐를 위험이 많다는 것도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뜨거운 열광주의가 없었더라면 50년대 60년대 가난한 민중들의 아픈 마음을 싸맬 방법은 없었다고 봅니다. 가족을 잃고 또는 전 재산과 고향을 잃은 사람들이 어디가서 하소연하겠습니까? 마치 아들을 얻지 못한 한나가 성전에 들어가서 흐느낀 그 기도를 듣고 있는 엘리제사장에게는 술취한 자의 횡설수설 같이 들렸지만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듣지 않으셨습니까? 오순절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비록 알지 못하는 방언으로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었지만 그 마음의 중심에 있는 기도는 듣지 않았난 합니다. 바로 그런분들이 저희교회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분들입니다. 돈암동 고개마루의 가난한 삶들이 들었던 복음은 신원(伸寃)하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이처럼 오순절운동은 한국교회에 끼친 공이 더 많은 운동입니다. 하지만 이를 두고 지난 20여년간 비판만 해왔습니다. 그러다가 이제는 모든교회들이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처럼 열린예배와 같은 교회구조의 변화도 같은 맥락에서 보아야합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교회의 복음을 변질시키는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라면 복음을 전하는 도구로서의 운동들을 좀더 긍정적인 시각으로 받아들였으면 합니다. 그래서 많은 반대를 예상하면서도 저희 교회에서는 열린음악회나 열린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들어오시다가 보셨겠지만 저희교회는 이미 쇠퇴기에 접어든 교회이면서도 젊은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게 모두 그들을 위한 프로그램들을 많이 도입하니까 가능한 것입니다.”
목사가 치는 피아노와 찬양
벧엘교회를 설명하자면 벧엘교회의 예배를 이야기해야한다. 필자는 벧엘교회의 예배가 궁금하여 그 다음날 수요예배에 참석해 보았다. 참석해본 소감은 한마디로 의외였다. 먼저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박태남 목사 자신이 직접 피아노를 치며 인도하는 찬양시간 있었다. 무선 마이크를 귀에 걸고 그랜드 피아노 앞에 않아 1000여명을 상대로 인도하는 찬양시간은 흔히 외국의 예배에서나 보든 그런 풍경이었다. 갑자기 영화 “씨스터 액트”가 생각이 나는 것은 무슨 이유였을까? 박태남 목사의 리드 피아노에 따라 각종의 악기가 동원되어 드리는 찬양은 한시간이 지나도 끝날 줄 몰랐다. 그런 다음 시간이 되자 박목사는 강대상의 중앙으로 나와 기도를 인도함으로 예배속으로 성도들을 인도했다. 오순절운동에 이미 익숙한 성도들이라 그런지 거의 모든 사람이 방언을 하는 듯했다. 가장 첨단적인 예배형태에서 듣게되는 열광적인 방언기도도 아주 독특하였다. 그런 기도가 30분을 이어졌다. 그러더니 대형스크린에 그날 설교할 성경본문이 투사되고 이어 성경봉독이 이어졌다. 박목사는 강대상 아래에까지 내려와서 성경만을 한 손에 든 채 열정적으로 설교를 해대는 게 마치 미국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우리로서는 파격적인 모습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원고에 의지하지 않고 또 강대상도 없이 인도하는 예배와 설교는 아주 신선하다 못해 놀랍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그의 예배형식 파괴는 벧엘교회를 단숨에 노화된 교회에서 젊은 교회로 바꾸어 놓은 원동력 같았다. 필자는 가져간 비디오 카메라로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촬영하기에 바빴다. 벧엘교회가 성공적으로 후계자가 목회가 계승되어 급성장한 원인도 이러한 젊은이들을 배려한 파격적인 예배에 있는 듯 하였다. 하지만 호응하는 것은 젊은이만이 아니었다. 70이 넘은 성도들도 그들대로 만족해하며 열심히 참여하는 것을 볼 때 이전에 김준수목사가 말한 대로 열린예배 형태는 세대를 허무는 장점이 있는 것 같았다. 원고 없이 하는 설교라지만 결코 즉흥적인 설교가 아닌 것은 그의 설교 요점이 오버헤드 프로젝트에 의해 스크린에 그대로 투사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이 든 성도들도 편안한 자세로 들으며 보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박목사에게 교회적으로 반발이 없었느냐고 물어 보았다.
“물론 처음에는 회의적인 당회원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3년만 믿고 따라와 달라고 간곡히 부탁드렸습니다. 벧엘교회가 과거에도 성장하는 교회로 소문이 났지만 이제 21세기가 되면 우리 성도들의 자녀들의 교회가 될 터인데 그들을 붙잡으려면 그들을 위한 예배가되어야 한다고 말씀드리면서 부모님들이 아무리 믿음이 좋아도 자녀들이 교회에 나오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냐고 간곡히 설명을 드렸지요. 그랬더니 다행히 장로님들과 나이 드신 성도님들이 이해하고 따라와 주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까지 되는 데에는 예산도 많이 들고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한국교회의 진단과 미래전망
필자는 내친김에 한국교회에 대한 소장목사로서의 견해와 진단 그리고 성장의 방안등을 이야기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하면 무엇인가 해답을 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글쎄요 저 자신도 아직 성공적인 목회라고 하기엔 부끄러운 부분이 많은데 말한다는 게 우습습니다. 하지만 제가 느끼고 있는 것 한가지는 이제 10년 안에 서울의 대형교회들이 세대교체를 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모양으로든 수고하셨든 1세대목사님들은 은퇴를 하셔야하고 그 공백을 누군가에게 맡겨야하는데, 누가 그 대안이 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이전의 전통적인 그런 목회로는 더 이상 교회가 성장하지 못한다는 것은 많은 사례와 역사적인 경우를 보아 우리는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저는 분명히 새로운 목회철학과 구조 그리고 대안을 제시하는 분이 있다면 교회의 판도가 바뀌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전에 성장하는 교회들은 쇠퇴하는 반면에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젊은 교회들은 급 부상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해봅니다. 지금은 아주 미미하게 이러한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지만 10여 년내에 이러한 현상들이 급속하리라고 봅니다. 저는 그때를 위해 목사님들이 견문을 넓히고 좀더 폭넓은 사고와 이해로 무장되기 위해 공부하고 준비해야 한다고 봅니다. 해외연수를 받는 것도 좋은 방법이 아닐까 합니다”
유학파답게 해외견문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그에게서 필자도 도전을 받았다.
“미국교회가 많이 세속화되었다고 하지만 그것은 미국을 가보지 않은 분들이 하는 이야기입니다. 미국의 기본은 여전히 기독교이고 교회입니다. 그리고 신학적으로나 방법론적으로 우리보다 많이 앞서 있습니다. 이제는 세계화시대이기 때문에 한국적인 것만을 고집하면 안됩니다. 이제 세계의 모든 문화가 공존하는 시대입니다. 그런 시대에 우리 젊은이들이 살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이해하는 언어와 그들이 이해하고 있는 문화로 접근해야 합니다. 그래야 다음세대를 복음으로 정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대안으로서 열린예배와 젊은이들을 포용하는 목회구조를 취;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한국교회가 가장 시급하게 해야 할 것이 아닌가 합니다. 물론 그 밑바탕에는 벧엘교회의 순복음적인 오순절 성령운동이 깔려 있어야겠지요. 장로교는 장로교의 말씀중심의 철학이 깔려야 하듯이 말입니다. 그렇게 되면 신구의 갈등이 없는 것입니다.”
필자는 참으로 오랜만에 신선한 분위기의 목사를 만난 듯하여 기뻤다. 연 일주일에 걸친 취재시간 내내 그에게서 무엇인가 하나라도 더 배워보려고 이야기하면서 느끼는 것은 하나님은 그의 종을 쓰실 때 준비된 만큼 쓰신다는 것이다. 박태남목사는 어떤교회에서 집회를 요청해도 무료로 가서 인도하는 사람으로도 교계에 많이 알려져있다. 뿐만아니라 집회를 요청하면 본교회의 전도대원들을 총동원하여 데리고 가서 하루 전부터 전도를 해준다. 그뿐 아니라 지금까지 5교회가 넘는 교회를 조건 없이 개척해서 후임자에게 맡겼다. 말로만의 개혁이 아니라 실천하는 개혁을 보여주고 있는 그를 대하면서 한국교회가 결코 미래가 어둡지 않다는 생각을 하며 돌아왔다.
제자훈련으로 다져진 영성 그리고 전통목회와의 조화가 주특기인
8.제자교회
정삼지 목사
제자훈련에 미친 사람
“제자훈련에 미친 사람” 이것이 그를 수식하던 대명사였다. 실제로 정삼지 목사는 제자훈련에 미친 사람이었다. 이것이 필자의 기억속에 남아 있는 정목사의 인상이다. 과거 청년시절에 그가 인도하는 제자훈련수련회에 참석한 결과 내 마음속에 남은 인상이 그러했고, 또 총신대학교에서 강의하던 그의 강의에서 느꼈던 인상이 또 그러했다. 그래서 그의 목회적 성공도 분명히 제자훈련적 테두리안에서 일어날 것이라고 확신하였다. 그래서 그를 인텨뷰하려고 하였던 것이다.
이미 목회에 12년이라는 세월을 보낸 정목사는 반백의 머리를 하고 있었다. 아주 작달만한 키에 카랑카랑한 그의 목소리는 이미 중년을 훨씬 남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했다. 먼저 제자교회의 역사와 연혁에 대해 질문해 보았다.
“제자교회는 1988년 11월 5일에 설립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벌써 12년이 다 되었는데요. 개척동기는 신학교에 입학한 뒤 선교단체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목회보다는 선교와 대학생 사역에 전적인 관심을 가지고 배우고 사역을 하였고, 따라서 목회를 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는데, 군목 제대 후 연세대학교 의대생들을 중심으로 사역했습니다. 그런데 제자훈련 10년을 넘어서면서 ‘왜 제자훈련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변을 찾게 되었습니다. 계속 고민하다가 ‘하나님나라와 제자훈련’이라는 황금맥을 찾게 되었고 이것은 후에 대학원(Th.M.)논문의 중심주제가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지상 교회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면서 골로새서 공부를 통해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교회개척을 결심했던 것입니다. 그 때가 1985년이었을 것입니다. 당시 연세대학교 의대형제들과 대학생 사역하면서 연결된 대학생 15명과 함께 살고 있던 아파트에서 제자교회를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러다 3-4개월 뒤 대치동에 장소를 얻어 2년 정도 선교단체식 대학생 중심의 교회를 하면서 많은 시행착오를 경험했습니다. 당시에는 제자훈련을 중심한 교회로 성장시켜 한국교회에 영향을 주리라고 꿈을 가졌지만 여러 영역에서 한계를 느끼고 2년만에 대치동에서의 사역을 마감했습니다. 그리고 1988년 11월 5일 목동에 제자교회를 개척했던 것입니다. 당시 장년 8가정, 청년 15명 정도가 모여 첫 예배를 드렸고 교회개척을 위한 뚜렷한 개척 성도는 없었던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어렵게 어렵게 성장하여 현재의 교세는 장년재적 1800명, 출석성도 1000명 정도 됩니다. 그리고 중고등부가 재적440명에 출석이 290명 정도 되고요, 주일학교는 약 400명 정도가 출석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교회의 통계 자료를 보니까 90년 이후 매년 35%정도 성장을 기록했습니다. 최근까지 교회 모임 장소는 5층 짜리 상가건물의 4층 일부를 사용하고 있다가 얼마 전 교회를 신축하여 이전해 왔습니다. 목동의 입지적 조건으로 볼 때 교회성장에 많은 장애요소가 있었습니다. 입간판도 세울 수 없고 여러 간판의 난립으로 교회 찾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430평의 대지를 확보하여 교회당 신축이 끝나 입당예배를 드렸던 것입니다.”
제자훈련과 전통목회
무엇보다 먼저 제자교회가 모토로 하고 있는 제자훈련적 목회가 교회의 설립과 성장에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는지 그리고 장애는 없었는지를 물어 보았다.
“사실 먼저 말씀 드린다면 제자훈련적 목회는 절반의 성공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사실 저는 네비게이토에서 정석으로 제자훈련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런 관계로 비젼도 제자훈련적 목회로 한국교회에 모델을 제시하겠다는 생각으로 개척을 시작했습니다. 정말 저는 꿈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너무나도 참담했습니다. 제자훈련을 한다고 하니까 대학생과 청년들밖에 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젊은들이란게 뿌리가 없다보니까 이동이 아주 심합니다. 그러다 보니 정상적인 목회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지역교회라면 당연히 생물학적 성장 즉 교회 안에서 새롭게 가정을 이룬 성도들이 자녀를 낳아 그 자녀들이 교회를 자신의 모교회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있어야겠는데 신설된 교회, 그것도 젊은이들만 가득한 교회에는 있을 수 없는 이야기겠지요. 그러다 보니 교회는 자연히 성장도 하지 못하고 정체만 될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세 번의 실패를 경험한 것입니다. 전통적목회의 필요성도 그 때 깨달은 것입니다. 그 때부터 제자훈련식 목회만 고집하지 않고 전통적 목회의 장점들을 인정하는 가운데 똑같은 비중을 두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교회가 교회다운 모습으로 변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목동에 정착하게 된 것입니다.”
실패를 거듭하며
먼저 정목사 자신이 밝히는 자신의 성격은 긍정적이며 적극적이고 단순하고 순수하며 복잡한 것을 싫어하지만 철저한 것은 좋아한다고 했다. 한 목표를 향해서 꾸준히 나가며, 대충보다는 탁월함을 좋아한다. 하나님의 뜻이라고 판단되면 반드시 순종한다. 깊게 생각하는 것이 부족하고 인간관계를 다양하게 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목회에는 위로 적은 데로 상당히 반영되고 있다. 적극적이고 정적인 면을 좋아하고 단순하고 복잡한 것을 싫어하나 목회에서는 아직까지는 믿음대로 이루어져가고 있다. 20년 이상을 제자훈련과 성경공부라는 한 길로 달려왔고 매사에 하나님의 뜻을 중시하고 그대로 실천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하였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탁월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목회의 여러 분야에서 탁월하게 하려고 한다. 자료를 중시하고 철저하기 때문에 ‘행정적’으로 치우칠 가능성이 있어 인간관계에서 딱딱하게 보일 약점도 있다고 고백했다.
그러한 시행착오들이 엮어져서 현재와 같은 목회방향이 나오게된 것이라는 것이다.
“먼저 설교중심의 목회를 들 수 있는데, 목회에 설교가 그렇게 중요한 줄을 몰랐습니다. 사실 선교단체 출신 목회자인 경우 성경공부, 선교사역에는 강하지만 목회적 준비가 철저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또한 신학교 7년 동안 설교에 관심 두고 배우며 설교해본 경험이 많지 않았습니다. 선교단체 출신의 경우 장점도 많지만 목회적 사고와 전략이 극복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대치동에서 개척 2년 동안 시행착오를 통해 많은 것을 경험하고 7개월의 공백기간 동안 교회성장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설교에 대해서 눈을 뜨게 되었던 것입니다. 목회의 꽃은 역시 설교에 있음을 그때에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제자훈련을 포함해서 프로그램이 정착하고 열매맺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설교가 살아야 한다는 것이 지금의 확신입니다. 설교의 열매 없이는 프로그램의 열매가 없고 프로그램이 설교를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둘째, 평신도 중심 사역입니다. 평신도 사역에 눈뜨게 된 동기는 선교단체에서 훈련을 받으면서부터였습니다. 따라서 목회사역에는 자연스럽게 목회의 기초가 되었고 특별한 동기 없이 자연스럽게 접목되었습니다. 그러나 목회에 적용해서 뿌리가 내리는 데는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목회에서 목사 중심의 사역은 한계가 있게 마련이고 교회가 하나님나라 확장에 능동적으로 효과 있게 기여하기 위해서는 평신도들로 하여금 받은 은사대로 목회사역에 함께 동역자로 사역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전략이었고 사도 바울의 전략이었습니다. 평신도를 훈련시켜 함께 사역하는 것은 성경적이고 효과적인 것이라는 생각은 전통적인 목회로 회귀한 지금도 변함 없습니다. 셋째, 기도와 성령중심의 사역입니다. 흔히 제자훈련하는 사람은 기도에 약한 것이 사실입니다. 목회를 시작하고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느낀 첫 번째는 성경공부, 제자훈련만이 목회의 전부가 아니다는 것이었습니다. 몸에 베인 틀을 바꾸는데 많은 값을 지불해야 했습니다. 지금은 말씀과 함께 기도를 강조하며 성령의 사역을 인정하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역을 하고 있으며, 이것을 축복으로 생각하고 감사합니다. 목사안수 받은 지 7년이 넘어선 때였습니다. 목회는 영력이 있어야 한다는 말씀의 뜻을 이때 깨닫게 되었으니 한심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겨주셔서 인간적 한계를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극복하며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이 은총으로 여겨집니다. 교회는 성경대로 은사를 따라 섬겨야 하므로 성령의 역사가 있어야 함이 당연하고, 사단과 영적 대결을 해야 하므로 기도를 통해 성령의 능력을 얻어 하나님나라를 확장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습니다. 성령이 하나님으로 교회의 주인이시므로 그가 마음껏 역사하시도록 교회가 자신을 내어드리는 것이 성경적이라는 것을 새롭게 깨닫게 된 것입니다. 교회에 기도가 식으면 성령의 역사가 줄어들고 그 결과 영적 대결에서 승리할 수 없으며, 기도해야 교회가 살고 성령의 역사가 있어야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실감한 것입니다.”
이제는 차세대를 책임지는 중견으로
정삼지 목사는 올해 만 49세이다. 학력은 총신대학(1976년), 총신신대원(1979년) 총신대학원(Th.M. 1988년)이며, 주요 경력으로는 네비게이토 선교회에서 훈련받고 대학생 사역(1973-1978년), 공군군목(1979년-1983년), 후암교회 대학부지도(1981-1984년), 국제선교협력기구(KIM) 사무국장(1984-1986년), 한국지구촌선교회(KGM) 설립 및 총무 역임(1986-1990년), 횃불선교원 청지기횃불 강사, 한국기독실업인회 강사, 명지대학교 및 총신신학원 강사 역임, 총신대학 강사(1988년-현재)를 역임했다. 이러한 그의 경력에서 볼 수 있듯이 그는 매사에 일이 확실하고 시명감이 투철한 목사이다.
“지금 필리핀 선교사이면서 필리핀신학교 교장으로 있는 박기호 목사는 신학교에 입학하여 갈등하고 있을때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선배였tmqsl다. 예수님을 소개해주었고 선교단체(네비게이토선교회)를 소개하여 훈련받게 하였으며 개인양육과 함께 신학교 7년 가운데 거의 4년 동안 제자훈련을 받았습니다. 성경공부, 성경암송, 양육, 제자훈련이 전무했던 70년대에 양육과 제자훈련을 받으며 대학 캠퍼스에 가서 함께 전도하고 양육하며 사람들을 세운 경험들은 지금 사역의 기틀이 되었습니다. 복음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헌신, 성실성이 놀라왔고 경제적으로 대단히 어려웠을 때였지만 조금도 굴하지 않고 대학생 전도와 성경공부에 전력투구하며 사람들을 세우는 데 주력하는 모습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쉬운 길 보다는 주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냐를 중요시하여 생활했습니다” 이 말에서서 나타나듯이 정목사의 인생의 전반부는 제자훈련으로 시작되었고 제자훈련 때문에 목회를 ㅅ;작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목회를 하면서 주님을 만나 거듭난 사람이 체계적인 양육과 훈련을 통해 쓰임받는 일군이 되는 것을 보면서 큰 기쁨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가 생각하는 예수님의 주요 사역은 선포와 가르침과 제자훈련이었기 때문에 그도 그렇게 살기기를 원했던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나라의 확장을 위해 부름받은 교회는 사도행전의 교회처럼 성령을 받음으로 하나님나라의 메세지를 선포하고 성장을 맛볼 수 있다는 것을 실천에 옮겼으나 잠시 실패를 하고 이제 이런 모든 일은 성령의 능력 없이는 불가능하므로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면서 전혀 다른 목회의 능력으로 사역에 임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끝으로 정목사에게 한국교회의 미래에 대해 전망과 부흥의 방법에 대해 이야기 해 달라고 했다.
"글쎄요 제가 아직 그러한 전망을 이야기 할 위치에 있는지 모르겠군요. 하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평신도에 대한 교육, 즉 질적인 제자훈련이 없이는 한국교회의 미래가 어렵다는 것만큼은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평신도를 성숙 시키는 목회를 강조해야한다고 봅니다. 최근에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기독교관련 사건들은 그 동안 한국교회가 평싱도들의 훈련과 교육에 정말 최선을 다했는가 하는 자문을 갖지 않을 수 없게 합니다. 이제는 성도들 하나 하나를 성숙한 그리스도의 제자로 만드는 일에 교회가 발벗고 나사야 합니다. 우리한국교회는 전통적인 목회에는 강한 장점이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너무 부정하면서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설교중심의 전통목회는 정말 대단한 파워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 그러한 전통적인 목회위에 제자훈련의 장점인 소수에 대한 집중과 훈련만 덧입혀진다면 그렇게 비관할 문제도 아니라고 봅니다."
정목사는 하나님에 의해 순간순간 쓰임을 받기위해 오늘도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제자교회가 12년의 시행착오속에 오늘날 우뚝서기 까지에는 담임 목회자의 철저한 헌신과 목회철학이 있었다. 확고한 ‘하나님 나라’이해(확장과 성숙으로의 이해)와 성령충만한 기도생활, 그리고 끊임 없는 연구 및 교육, 시간의 우선 순위, 즉 목회 이외의 활동 거의 자제하는 그의 노력의 결과 당연한 성장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끝임없이 연구하고 싱행착오속에 또 새로운 길을 모색해가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필자는 차세대 한국교회의 지도자로서 서주기를 기대해본다.
100.추수감사를 지역의 축제로 승화시킨
수원중앙침례교회
김장환 목사
복음을 위해 존재하는 교회
“현대는 정보 사회입니다. 정보가 재산이요, 힘인 사회가 되었습니다. 수많은 정보 중에서 모든 사람들이 들어야 할 소식이 예수님의 복음입니다. 이 복음은 영원한 진리입니다. 수원중앙침례교회는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사회에 불변하는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서 헌신하는 교회입니다.” 한국교회에 항상 바른 복음과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사도적인 열정의 소유자 김장환 목사가 시무하는 교회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라 있는 초청의 글이다.
우리가 증거하는 멧세지(Message)는 불변하지만, 시대에 따라 적용하는 방법은(Method) 변화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다양한 방법을 개발해야 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교회들이 전통과 변화의 갈등 속에서 중요한 복음증거의 시간들을 다 잃어버리고 있다. 하지만 영원한 청년, 영원한 전도자인 수원중앙교회의 김장환 목사는 오늘 우리의 목회에 많은 영적이며 실천적인 도전을 주고 있다. 필자는 그와 인텨뷰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하였다. 방송선교의 일과 잦은 해외출장 그리고 목회사역에 바쁜 연유로 정상적인 인텨뷰를 갖기가 너무나 힘들었다. 원고 마감 시간은 다 되어 가는데 인텨뷰 요청은 이루어지지 않는 가운데 얻은 지혜가 인터넷을 통한 사이버 인텨뷰를 생각하게 된 것이다. 필자는 먼저 김장환 목사에게 총 9가지 항목에 대한 질문을 먼저 메일로 보내고 그리고 얻어진 대답들을 중심으로 모자라는 답변은 다시 질문하는 방식으로 인텨뷰를 진행해 보았다. 바쁜 일정 가운데서도 보내어준 자료를 통하여 어렵게 원고를 정리할 수 있었다.
예배가 살아 있어야
김장환 목사의 설교는 매우 열정적이다. 거의 웅변조에 가깝다. 그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록 우렁차며 또 그만큼 힘이 넘친다. 그가 그렇게 설교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은 이유가 있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예배는 기독교의 종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그리고 그분의 대속적 죽음. 성령의 강림과 내주, 날마다 감동과 감화의 역사하심이 기독교의 끝이 아닙니다. 그런 것들은 모두 있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에배하게 만드는 ‘수단’들에 불과 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를 구원하시는 이유가 우리로 하여금 예배하는 자가 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를 창조하신 이유도 이사야서에서 ‘찬송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했지만 구속의 이유도 에베소서와 빌립보서에서 우리가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예배를 드리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다면 예배는 격이 달라져야 합니다. 한 주일 마다 모든 총력을 다 기울여서 드려야 하는 것이 예배입니다. 이 예배에는 우리 믿는 신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이방인들도 함께 와서 여호와께 영광들리게 해야 합니다. 그렇게 말한다면 열린예배나 구도자 예배는 다 정당한 것입니다. 모세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보고 그의 장인인 이드로가 뭐라고 했습니까?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았습니까? 이처럼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내는 에배에는 불신자들도 성령의 감동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말씀과 그분의 능하신 능력에 대한 소문을 듣는 것으로도 믿음은 일어나는 법입니다. 기생 라합은 여리고성 안에 살았던 가련한 여인이지만 분명히 하나님과 하나님이 함게는 백성, 이스라엘에 대해 소문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녀의 마음속에 믿음이 일었고, 그 믿음 때문에 정탐꾼을 숨겨주었고, 그리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교회는 전통적인 예배와 함께 젊은이들을 열린 예배를 통해서 이 시대의 사람들을 섬기는 것입니다.”
너무나도 확고한 예배관이다. 필자는 그분의 이야기를 듣자 지금까지 예배에 대해 희미하게 가졌던 생각이 일순간에 정리가 되는 듯했다.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교수 죤 프레임(John M. Frame)은 기독교의 예배를 무엇보다 하나님 중심적인 에배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두 번째로 복음중심적인 예배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셋째로 삼위일체적인 예배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마지막 네 번째로 수직적이며 수평적인 에배여야 한다고 했다. 수원중앙교회가 추구하고 나아가고자 하는 예배가 바로 이런 것이다. 이러한 수원중앙교회의 예배는 하나님 중심적이며, 복음적인 즉 그리스도 중심적이다. 또 삼위일체적이어서 성령의 역사가 있는 예배이다. 그러면서 수직적이며 수평적인 예배이다. 이러한 에배가 가장 잘 드러나는 예배가 무엇이냐 하면 추수감사주일을 맞아 드리는 추수감사예배이다. 이 때 수원중앙교회는 수원시민 전체를 상대로 열린예배를 드린다. 장소도 교회당이 아닌 수원공설운동장이나. 체육관에서 대대적으로 드리는 것이다. 수원중앙교회가 추수감사 예배를 드린다고 하면 수원시장에서부터 각 지역의 유지들까지도 빠짐 없이 참석하고 이웃들과 함께 즐거운 추수감사의 잔치를 열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이다. 사실 열린예배라고 최근에야 교회들이 미국에서 배워와 저 마다 드린다고 법석을 떨고 있지만 확고한 예배관을 갖고 있는 김장환 목사는 일직부터 지역과 함께 하는 열린 목회, 열린예배를 드려 온 것이다.
수원중앙교회가 드리는 추수감사 예배는 단회성으로 끝나는 이벤트가 아니다. 예배라는 중요한 목적과 함께 이웃들을 초청하여 교회의 문턱을 낮추고,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로 삼기 위하여 일년 내내 기획되고 준비된다. 그러다 보니 어느 듯 추수감사 예배는 수원중앙교회의 주특기가 되어 버렸다.
기독교에 한국의 미래가 있다.
그러면 왜 성장한 교회가 더 성장하지 못해 안달인가? 그것은 단순히 교회성장만을 생각하는 목회자의 이야기이다. 김장환 목사는 확고한 국가관과 철학을 가지고 있는 목사이다. 그러므로 미래 한국사회의 희망은 기독교뿐이라고 단호하게 잘라서 말한다. 그가 그렇게 복음에 대해 열정적인 것은 교회가 세상의 대안이 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그의 말을 들으면 실감이 난다.
“외국에 있다가 공항에 들어오면 항상 기분이 상합니다. 공항에 내립니다. 그러면 입국 심사를 받습니다. 그런데 김포공항에서는 한국 사람들은 심사를 까다롭게 늦게 들여보냅니다. 그리고 외국인들, 특히 미국인들은 그냥 오케입니다. 볼 것도 없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또 미국 케네디공항에서 미국에 들어가기 위해 입국 심사대에 서 있으면 한국 사람들에 대한 입국 심사가 제일 느립니다. 미국사람들은 자기네 시민이라고 그냥 오케입니다. 우리가 여기 세금 내고 사는데 왜 우리에게는 까다롭게 하고 외국 사람들은 그냥 막 쉽게 들여 보내줍니까? 미국에 가니까 우리 집사람은 자국민 사람이라고 저쪽으로 쉽게 나가고 나는 한국 사람이라고 여권을 뒤져보며 ‘얼마나 있을 거냐?’ ‘뭐 하러 왔냐?’ 다 꼬치꼬치 물어봅니다. 정말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또 그런데 한국에 와서 보니 똑같아요. 우리 집사람은 그냥 들어가 버리고 나한테는 ‘어디 갔다 왔느냐?’ ‘며칠 있다 왔느냐?’ 꼬치꼬치 따져 묻습니다. 이런 못난 민족이 어디 있어요. 자기 백성을 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문제는 그 동안 지도자들이 잘못 정치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기독교가 나설 차례입니다. 실패한 교육, 실패한 도덕, 실패한 행정 이제 기독교가 이를 책임질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교회 자랑을 하는 것 같습니다만 우리교회에는 부설 초등학교가 있습니니다. 기독교정신의 전인교육과 창의성과 개성을 존중하는 현장교육을 목적으로 94년 설립되었습니다. 기독교가 대안이 되자는 취지의 첫 출발이었습니다. 98년 첫 졸업생을 배출했습니다. 한 학급정원은 35명으로 편성되었습니다. 하루 30분의 성경묵상시간, 다양한 특기교육과 실습위주의 교육으로 화제를 모아 온 우리 중앙기독초등학교는 수원중앙교회와 기독봉사회가 주축이 되어 설립한 사립학교입니다. 기독교 신앙교육의 최적기가 초등학교라는 점을 감안해 최신의 교육시설과 효율적인 커리큘럼을 도입하고 있으며 특히 정신장애아들을 위한 특별학급을 편성하여, 비장애아들과의 통합교육으로 이해와 협동, 인간성존중교육을 함께 실시하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첫 졸업생수는 4학년 때부터 교육을 받아온 1백25명입니다. 현재 전교생은 1천1백여명입니다. 그날 첫 졸업식 때에는 이영덕 전 총리가 특별강연을 해주기도 했습니다. 나라의 미래는 아이들에게 있습니다. 한국교회는 한국사회의 미래를 책임져야 합니다.”
한마디 한마디가 확신과 비젼에 차 있었다. 그래서 영원한 청년이라는 소리를 듣나보다.
역사를 바꾸는 선교에 동참하는 교회
수원중앙교회는 김장환 목사의 활동반경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선교를 위해 존재하는 교회라고 할 수 있다. 김장환 목사가 하고 있는 대공산권 전파선교는 말할 것도 없고 방송선교를 통한 세상의 변혁에 교회가 직,간접으로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선교는 역사를 바꾸는 일입니다. 그래서 선교는 교회의 중요한 사명인 것입니다. 선교는 선택사항이 아니라 역사속에 살아 있는 신자의 지상명령입니다. 우리교회는 다양한 성경 교육프로그램, 치료와 격려를 위한 상담사역, 특수 아동을 위한 사역, 양로원, 유치원 및 기독 초등학교 사역을 통해 지역 사회를 섬기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특히 극동. 아세아방송을 통한 사역을 통해서 공산권 선교에 30여년을 기여하였고 지금도 북한 지역과 중국, 소련의 조선족들을 위해 사역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시대에 함께 비전을 창출하며, 복음의 사명을 이루어 가기 위해 아무 것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저희 극동방송국 직원들이 잊지 못하는 헌금이 있습니다. 직원들은 그것을 과부의 두 렙돈과 같은 헌금이었다고 입을 모읍니다. 조선족들이 한창 국내로 몰려오던 94년, 극동방송국에 허름한 옷차림의 40대 초반 조선족 여인이 찾아왔습니다. 여인은 당장 사장인 저를 만나게 해달라고 졸랐습니다. 안내원은 거절했지만 여인은 막무가내였습니다. 사장실에 안내된 여인은 말릴 틈도 없이 허리춤에서 전대를 풀렀습니다.저희 교회에서 모은 헌금입니다 여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받아 든 돈은 미화 2만2천7백 달러였습니다. 당시 한화로 2천 만원이 넘는 돈이었습니다. 중국에서 한 사람이 평생을 편히 살 수 있는 액수였습니다. 여인은 66년 문화대혁명 이후 교회가 없어지자 마을 교인 수 십 명이 30여 년간 쌀 한톨, 옷 한벌 아껴 모았다고 밝혔습니다. 그 동안 숨어서 방송을 들으며 신앙생활을 하고 기도에 불을 밝힐 수 있었기에 극동 방송국으로 가져왔다고 했습니다. 외화 반출이 금지된 중국에서 몰래 헌금을 가져온다는 것 자체가 목숨을 걸만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여인은 헌금을 전달했다는 사실이 중국 현지에서 밝혀져 결국 돌아가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여인은 고아원에서 머물며 봉사와 함께 신학 공부를 시작했다. 최근 이 여인이 결혼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진정한 헌금은 이와 같이 마음을 모은 것입니다.”
군복음화 운동의 기수
“저희 수원중앙침례교회에서 핵심으로 하는 사업중의 하나가 군복음화 사업입니다. 지난 8월 28일에도 충남 육군제2훈련소 수영장에서 훈련병 4천2백52명에게 침례식(세례식)을 베풀고 훈련병들이 기독인으로서 군 복무에 충실해 나라에 충성하고 성공하는 삶을 살도록 기원했습니다. 연무대군인교회(김동운목사)와 한국기독교군선교연합회(사무총장 문은식목사)가 주관하고 수원중앙침례교회가 후원한 이날 침례식에서 저는 4252명의 장병들에게 침례(세례)를 베풀었습니다.이들은 군입대 3,4,5주차 훈련병들로서 연무대 수영장에서 직접 침례를 베풀었습니다. 훈련병들은 5명이 한조가 되어 한목회자에게 침례를 받았으며 4천2백52명이 침례를 받는데는 40여분이 소요됐습니다. 저는 설교를 통해 침례를 받고 하나님의 성령이 함께 하는 장병은 군 생활 뿐 아니라 모든 생활에서 승리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설교했습니다. 저희 교회는 지난 91년부터 육군 제 2훈련소와 각 보병부대에서 침례식을 거행했습니다. 지난해에도 무려 5천2백90명에게 침례(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이 나라를 지키는 장병들로서 뿐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정병들로서도 훌륭히 커가길 기도하고 왔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날마다 확장되어야 합니다. 전도는 선택 사항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필수 사항입니다.
달란트 운동
실천하는 목회 두 번째는 설교만 듣는 목회가 아니라 체험하는 목회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지금 이 순간 나에게 1만원을 주고 그 열매를 가져오라고 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것은 어느 그룹의 성경공부 토론시간에 나온 질문이 아니다. 수원중앙침례교회에서 실제 행해진 현대판 달란트 비유 체험기이다.
“수원중앙침례교회는 지난해 주일예배에 참석한 교인들에게 1만원 짜리 신권을 나눠주고 그 열매를 6주 후에 가져오게 하는 파격적인 일을 시도했습니다. 당시 저는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돈 1만원씩을 믿음안에서 드린다』며 『부지런히 장사해 그 열매를 간증문과 함께 교회에 헌금하면 전부 선교비로 사용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뜻밖에 달란트 비유를 직접 실천해볼 수 있게 된 교회 성도들은 이때부터 고민에 빠졌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그러나 기도 끝에 이뤄진 성도들의 「사업」은 대성공이었습니다. 조그만 커피숍을 운영하던 한 성도는 만원을 가기고 아이스크림을 판매했습니다. 결국 25만4천원을 남겼다고 간증했습니다. 물론 교인 모두가 성공한 것은 아닙니다. 고무장갑을 팔았으나 간신히 손익분기점을 넘기거나,구두닦이로 나섰다가 원금을 날릴 뻔한 성도도 있었습니다. 당시 성도들의 생생한 체험을 기록해 묶은 단행본을 책으로 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체험의 목회를 강조하다보니 성도들이 삶이 신앙과 유리되지 않고 잘자라는 것을 체험하였다고 김목사는 전한다.
극동방송과 함께 한 세월
김장환 목사와 수원중앙침례교회를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극동방송이다. 극동방소이야 한국교회 전체의 방송이겠지만 수원중앙침레교회가 음으로 양으로 돕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이다. 그래서 김장환 목사는 극동방송에 대해 유달리 할 이야기가 많은 사람이다.
“인천 방송 송신소를 건설할 때 이야기입니다. 당시 돈으로 6억이 들었습니다. 6억이면 지금도 적은 돈이 아닙니다. 제게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하도 재정문제로 시달리고 기도해보았기에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극동방송이 생긴 이래로 재정문제에서 자유로웠던 적이 한번도 없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직원들 월급을 제때에 줘 본적이 한번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설교준비를 하면서 우리 방송국도 십일조를 다른 기관에 해야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면서 회개가 나왔습니다. 선교단체란 핑계로 십일조를 안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방송부장에게 이야기했더니 놀란 토끼눈을 합니다. 하지만 실행에 옮겼습니다. 정확하게 십일조를 떼어 방송국이 아닌 다른 선교단체에 십일조를 보낸 것입니다. 그런데 얼마가지 않아 정말 거짓말 같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재정의 완전한 독립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한번 시험해 보겠다 하고 한번 시작해 봤습니다. 정말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선교를 하면 정작 축복을 받는 것은 선교를 감당한 그 사람이라는 그의 고백은 이처럼 그의 살아 있는 체험에서 나왔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이어 한국교회의 목사들에 대해서도 고언을 앆지 않는다.
“저도 옛날 사람이라 컴퓨터와 그리 친하지는 않습니다만 이제 컴퓨터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실제로 요사이는 컴퓨터 없이 조금도 생활 할 수 없는 시대임을 실감합니다. 10년 사이에 컴퓨터는 286에서 시작하여 386, 486, 586 그러더니 펜티엄급으로 그리고 이제는 686급으로 컴퓨터가 점점 업그레이드됩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최신 기종이라고 그러더니 어느새 보면 신형의 속도 빠른 컴퓨터의 광고가 나옵니다. 그런데 꼴불견이 무엇이냐면 펜티엄급 컴퓨터를 가지고 고작 한다는 게 286시대에 하던 게임이나 오락을 하는데 그 비싼 컴퓨터를 온 종일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컴퓨터는 업그레이드 되었는데 사람은 업 그레이드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목회도 이와 같습니다. 목회자들도 업그레이드 해야 합니다. 그래서 위엣 것을 추구하며 목회하고 성숙하기 위해 몸부림쳐야 합니다. 왜냐하면 한국교회가 우리 목사님들 목회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후배들에게 주시고싶은 말은
“제가 어느 듯 목회 일선에 뛰어든 지가 40년이 되어 갑니다. 목사가 경계해야 할 가장 큰 적이 세 가지가 있다고 했습니다. 이 세 가지는 전부다 영어로 G로 시작합니다. 첫째가 돈(Gold), 둘째가 명예(Glory), 셋째가 여자(Girl)입니다. 옛날부터 익히 들어온 것입니다. 목사도 어쩔 수 없이 유명인의 명단에 들어가 보고 싶은 욕망이 생깁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다른 목회자보다 더 이름이 나고 싶은 욕심이 생깁니다. 교회에서 받는 생활비도 마치 자신이 목회에서 힘을 쓰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쉽게 말하면 권력을 나타내는 수치로 사용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더 멋진 자동차를 몰고 다님으로 자신을 드러내려고 하고, 교회의 성도의 숫자로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고 싶은 욕심에 사로잡히기 쉽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주의해야 합니다. 이것은 저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목사인 저에게도 그런 것들은 목표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목회자의 목표는 다른 곳에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목표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오직 주님이라고 바울은 고백했습니다. 6.25 동란으로 나라가 다 폐허가 되고 학교가 불타서 없어지고 어려웠습니다. 온 나라가 슬픔이었고 고통이었습니다. 조국의 현실을 보면 어는 것 하나 소망이 없어 보였습니다. 아마 믿음이 없었다면 좌절밖에는 할 수 없었을 그런 시대에 저는 살았습니다.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 조국을 위해 무언가 일을 하게 해 주십시오. 그 전쟁 때에 하나님은 희한한 방법으로 저를 인도하셨습니다. 미국 군인 한 사람을 만나게 해 주신 것입니다. 저는 그 사람의 인도함을 받아서 미국으로 건너가서 공부를 하고 됐고, 목사가 되어 말씀을 증거하며 주의 일을 감당하게 된 것입니다. 기도했더니 하나님의 은혜로 사람을 잘 만나게 해 주셨고 그 분이 저를 잘 지도해 주셨고 미국까지 인도해 예수 믿는 학교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한 소년을 이렇게 인도해 주신 것입니다. 사람을 잘 만난다는 것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여러분들도 기도하십시오. 거룩한 소원을 가지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다 들으십니다.”
김장환 목사님을 모시고 인터넷 인텨뷰를 하면서 필자는 전에 없는 생각을 가져본다. 나이에 상관없이 영원히 청년으로 사는 목회자가 있는 가 하며 젊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타성에 젖어 더 이상 변화하기를 주저하는 노년목회자 있다는 것을 남들이 생각하지 않은 것을 이미 실천하는 목사 바로 그가 김장환 목사이다. 마침 지난 99년 7월 155일 전세계 1억 침례교인의 리더로 김장환 담임목사님이 정식 추대 되기도 하는 기븐 날이었다. 600 여명의 침례교 지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독일 드레스덴에서 열린 상임위원회의에서 만장일치로 제18대 세계침례교 총회장으로 추대 된 것이다. 세계침례교총회(BWA)는 200여개국 193개의 침례교 협의회로 구성되어 있다. 1999년 현재 4천 3백만의 침례받은 정회원과 1억명 이상의 침례교인 공동체를 대표하는 기관이다. 이것은 로마 카톨릭 다음으로 큰 규모로 기독교계는 물론 국제사회에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2000년 7월 1일 부터 세계침례교 총회장으로 5년 임기의 공식적인 활동을 시작하게 되면 그의 활동반경은 전 지구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