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일기(9) - 역답사(황간역/조치원역)
1. 충북 영동 <황간역>
‘황간역’은 가고 싶은 역이었다. 많은 열차 여행 상품에 포함되어 특별한 오지의 풍경을 주는 곳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열차에서 내려 바라본 ‘황간’은 오지는 아니었지만, 독특한 문화적 풍취를 갖고 있었다. 황간역은 1990년대 수요가 줄어 ‘폐역’으로 전환될 예정이었지만 마을 사람들과 예술인들이 합세하여 문학과 예술이 있는 역으로 변모시켰고, 이제는 역관광의 대표적인 장소가 되었다.
황간역의 매력은 역 자체의 꾸임보다는 황간역에서 시작되는 둘레길의 아름다움이다. 역에서 조금 걸어 내려가면 하천과 함께 매력적인 길이 펼쳐진다. 멀리 온화하지만 강인한 산세가 눈에 들어오고 물은 천천히 흐른다. 그 사이에 펼쳐진 가로수 사이의 길은 어떤 길보다도 사색과 명상의 시간을 주는 듯하였다. 20분 정도 걸으면 두 개의 방향이 나타나는데 하나는 영동의 대표적인 명소인 ‘월류봉’으로 가는 길이고, 다른 쪽은 황간읍을 전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길이다. 두 코스 모두 1시간에서 1시간 30분 안에 돌아볼 수 있는 거리로 답사객에게는 부담을 주지 않는다.
특히 월류봉 가는 길은 최상의 산책코스이다. 월류봉의 매력적인 얼굴과 금강 줄기를 따라 걷다보면 월류봉 광장에 이른다. 아름답지만 단단하고, 여유롭지만 호락호락하지 않은 산세는 정자의 운치와 함께 황간의 랜드마크로 자리잡고 있다. 황간역을 상징하는 사진은 월류봉을 배경으로 달리는 기차이다. 과거 월류봉 둘레길을 걸었는데, 월류봉과 황간역이 이렇게 가까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도 이번 답사의 수확이다. 산책코스로 황간역과 월류봉을 즐겼다면, 좀 더 본격적인 둘레길은 반야사를 향해 만들어진 ‘월류봉 둘레길’ 코스을 걸으면 된다. 이곳도 3시간 정도면 왕복할 수 있어 여유로운 답사가 가능하다.
황간읍 답사를 마치고 황간역으로 돌아와 커피를 마셨다. 조금 아쉬운 점은 황간역의 시야가 막혔다는 점이다. 역 앞에는 항아리를 이용한 시화가 곳곳에 만들어져 있지만, 최상의 아름다움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다. 건물로 막힌 황간역 2층에는 카페가 만들어져 있는데 이곳에서는 조금 넓은 시야가 가능할 듯하다.(카페는 문을 닫았다) 내가 뽑는 아름다운 역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은 ‘역’건물이 아니다. 역에서 바라보는 풍경의 깊이와 정취이다. 그래도 황간역은 언제든 다시 오고 싶은 역이 될 것같다. 역에서 시작하여 월류봉을 돌아오는 왕복 코스가 생각날 것이기 때문이다.
2. 세종시 <조치원역>
<조치원역>은 1997년에서 1998년까지 2년 동안 매주 2번씩 이용하던 역이었다. 연수파견 교사에 선발되어 <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 과정에 다니면서 월요일 새벽 열차를 이용하여 내려오고 금요일 다시 열차로 서울로 이동했었다. 20년이 훨씬 넘은 조치원역의 변화를 확인하기 위해 조치원역으로 왔다.
시간의 흐름과 세종시 건설로 역은 분명 현대화되었다. 역 광장은 깨끗해지고 거리는 복잡해졌으며 터미널과 시장은 대규모로 조성되었다. 그럼에도 조금 허한 느낌은 드는 것은 역 앞 광장의 생소함이다. 역 앞에서는 다른 장소로 가는 정류장이 있었다. 많은 버스 노선이 교원대학교로 갈 수 있는 청주로 향했고, 그런 이유로 조치원과 교원대 사이에는 나름 일치감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버스 정류장에서 ‘청주’코스를 발견하기 쉽지 않았다. 정류장에 서서 오고가는 버스를 바라보았지만, 과거 교원대를 향한 버스를 찾지 못했다. 이제 조치원은 철저하게 ‘세종시’의 일원임을 여기저기에서 강조하고 있을 뿐이다.
2년간 조치원역을 이용했지만, 이곳에서 술이나 음식을 먹은 기억은 없다. 이곳은 오로지 집과 학교 사이의 연결점일 뿐이었다. 매주 금요일에 의식처럼 치르는 음주는 항상 서울에서 만날 수 있는 S와 또는 나 혼자라도 서울에서 하였다. 그때도 조치원역에는 술을 마시고 싶은 매력적인 장소는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조치원역 뒤쪽에 유흥가가 만들어졌지만 그다지 멋진 유혹을 발견할 수 없으며, 역 앞에 있는 식당들은 여전히 부실하다.
오랜만에 찾은 조치원역, 과거 2년이 주었던 시간의 허망함때문인가, 이곳은 애틋하지 않다. 더 아쉬운 점은 조치원과 학교 사이의 연결마저도 상실되었다는 느낌이다. 조치원역과 교원대학교 사이의 있던 과거의 길은 사라졌다. 물리적인 연결도, 심리적인 관계도, 이제 조치원역은 추억의 공간으로만 남을 것이다. 그러나 반추할 것이 거의 없는 공간이자 가야 할 곳을 잃어버린 공간이다.
첫댓글 - 월류봉 산책로 풍경이 산뜻하게 펼쳐진다! 이름 값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