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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 베 덴 보 리
 
 
 
카페 게시글
―··· 감상의 즐거움〔정〕 스크랩 내 그리운 그곳..
별우물 추천 0 조회 80 05.08.26 15:49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 문터골사진을  언니허락도 없이 퍼왔답니다 ㅠㅠ 에구 혼나겠다 >
 
 

우리의 만남을

헛되이

흘려버리고 싶지 않다

있었던 일을

늘 있는 일로 하고 싶은 마음이

당신들과 내가 처음 맺어진

이 자리를 새삼 꾸미는 뜻이라

 

우리는 살고 가는 것이 아니라

언제까지나

살며 있는 것이다

 

 

 

이 시는 인병선 시인이 신동엽 시인의 생가를 가보고

말할 수 없이 감격스러운 마음으로 지어올린  詩 한 수이다.

한동안 남의 소유가 되었던 신동엽 시인의 생가를  인병선 시인이 되사서

옛날 그대로의 모습으로 복원해놓고  짚. 풀. 생활사 박물관을 설립하기도 하고

짚. 풀. 문화연구에 여생을 바치는 그의 시 속에는

신동엽 시인의  '있었던 일'을

시인과 함께 '늘 있는 일'로 복원해보고 싶은 소망이 소박하게 자리한다.

 

 

대강  이러한 심정이랄까..

 

 

 

블로그에서 만난 여러 인연들 중에

내가 많이 좋아하는 '살아가는 여자' 두 분과의 잊을 수 없는 시간들을 꿈결처럼 보내고 돌아왔다.

불혹과 지천명도 훌쩍 넘기신 연세에  화랑 겸 카페를  아주 단아한 모습으로 일구어가시던 한 분,

또 한 분은 거의 친언니 수준으로 편하고  쭈뼛거리는 격식 굳이 안차려도 다 이해해주기도 하시는

친언니들 말고도 이렇게 나를 잘 알아줄 수가 있을까 싶은  두 언니다.

 

경기도 하성면 마조리 문터골 화랑의 믿음직스러우신 쥔장 큰언니네를 둘이 다녀온 것이다.

워낙에 블로그의 인연조차도 '러시아 음악'을 찾아 들어가다가 인연을 트게된 인연들인지라

우리들의 만남은 소위 세속적인 블로그 벙개와는 다소 좀 동떨어진,  고적하고 조용한 만남이었다.

 

다른 시골집들의 청기와, 홍기와, 슬레이트 지붕의 편리하지만 다소 좀 유치한 그런 지붕이 아닌

이 언니네 지붕이야말로 옛날의 그 검은회색의 기와 본래의 흙색깔을 그대로 간직한 한옥의 멋과

그 아래로 한폭의 그림처럼 어우러져 내려와진 붉은 황토색 흙담과 하반신의 돌담은

도저히 눈길을 뗄 수가 없는  내 상상 속의 이상적인 전원가옥이라 표현하기도 아까운 그런 곳이다

 

대문 앞에 자리한  고향길같은 토담 우물과 '망치'라고 불리는 어진 시추강아지 한 놈..

대문 옆의 담쟁이덩굴과 호박잎 덩굴, 보라색 도라지꽃과  온갖 이름모를 들풀들..

쥔장언니의 세심함을 보여주는 돌다리들의 귀여운 행렬을 밟으며  삐걱 한옥나무대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가자  오른쪽으로 그 옛날 전축 턴테이블과 엘피판들이 반갑게 꽂혀있었고

왼쪽으로는 우리 어릴때의 엄마의 귀한 물건들, 지금은 찾아볼래야 도저히 찾아볼 수도 없는

그런 옛물건들의 너무도 고적한 자태에  그만 우린 혼을 완전히 빼앗겨버리고 말았다.

마치 시간이 정지된 듯한 느낌.. 타임머신을 타고 내 어릴적 엄마의 마당안을 밟고 있는 듯한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그리움과 반가움의 결합..

 

대문과 직선으로 보이는 언니의 침실겸 서재를 언니 허락도 없이 무뎁뽀로 쳐들어가게된 것은

다름아닌 벽 한면을  빼곡하게 채워진 반가운 누런 책들 때문이리라.

책들의 오른쪽으로 놓여진 쥔장언니의 침대 위편으로는 토담벽을 뚫고 통유리로 바깥수풀세상을

연결해주는 푸른 세상과의 통로.. 작은 창이 하나  너무 운치있게 자리잡혀 있었다.

아,  지금도 눈에 선한 그 푸른 수목이 보이는 창..

감각있는 언니의 손재주로 만들어진 하이얀 커튼의 젖혀진 사이로 바깥마당을 꽉 채운 무성한 나뭇잎들의 싱그로움과 온갖 새소리를 들으며  언니의 아침은 하루를  아름답게 열어주는 것이다.

그야말로 내가 꿈꾸던 그런 전원의 하루를...

 

다시 대청마루로 돌아와  시원한 대나무돗자리에 몸을 딩굴리며

우린 언니가 손수 담근 아주 맛있고 소중한 포도주 한병을 대추와 잣을 안주로 홀짝이기 시작했다.

스피커에서는 언니가 틀어주는 '러시아 음악'이  간간이 흐르고

우린 혀끝으로 포도주의 은밀함을 탐닉하며  때로는 지난 이야기들로.. 때로는 자신의 삶들로..

급기야 나는 한 음악의 선율에 취해.. 술에 취해.. 그만 한 줄기 눈물이 주르르..

음.. 주책스러운 막내땀시 한껏 흥을 돋구던 언니들이 잠시 당황했었다는...

 

누가 큰언니 아니랄까봐  우리 얘기하고 있는 사이  휭하니 다시 사라진 쥔장마님..

어디 숨으셨나 찾아보니  대문 앞에서  호박잎을 정성껏 따고 계셨다.

해지기 전에 따야 하는 거랜다. 

푹 삶아서  된장에 싸먹게 하시려고 어린 잎파리로 골라.. 정성껏.. 

 

그렇게 해서 정성껏 이루어진 평상에서의 시골스러운 밥상 메뉴를 한번 나열해볼까나?

그야말로 시골집된장으로 끓인 너무너무너무 맛진 된장찌개..

ㅋ...  그 맛은 내가 이 짧은 언어로 도저히 다 묘사할 수가 없다.

된장막장,  삶은 호박잎,  고들빼기김치,  갓김치,  갓 따은 싱싱한 풋고추..

언니가 직접 갈아부친 감자호박전,  시골멸치졸임,  시원해서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를 오이미역냉국,  그리고 그 식단의 하이라이트,  진짜 누런 쌀막걸리 한병..

슈퍼에서 파는 막걸리는 우윳빛인데  언니네서 먹은 막걸리는 그야말로 옛날 우리 아버지들이

사오라고 하셔서 주전자 들고 가서 받아오던.. 옛날표 진짜 누런색 막걸리였던 것이다. 

ㅋ ㅑ ... 

그 맛도 일품..  마당 한구석에 공사할 일이 있을 때  엄마가 일꾼들한테 막걸리 부어주던 때에

옆에서 쪼그리고 앉아  일꾼 아저씨에게 알랑방구끼면  아저씨들이 한모금씩 먹여주던 그 맛이다.

그러던 사이 어느덧 석양은 뉘엿뉘엿 서산으로 기울어져 넘어가고

마당 평상위에서의 우리들의 추억과 사랑과 삶에 대한 고백들은 어둠 속으로 하나씩 묻혀져 가기 시작했고  사위는 어느새 캄캄해지고  귀또리는 귀똘귀똘 우짖는  칠흑같은 어두움 속에 남겨졌다.

 

흠..  집에 가야지..  그러나..

도무지 발걸음은  풀을 딱 붙인 양..  흙땅에서  좀처럼 떨어지려고 하지를 않았다.

아..  정녕 떠나고 싶지 않은 이 흙.. 돌.. 칠흑같은 밤하늘.. 시골냄새.. 들풀냄새.. 러시아 음악..

밤이면 밤마다  블로그에다가  외치던 < 내 상상 속의 전원풀집..  언제든 돌아가리라 > 하던 그 곳..

비라도 내려주면  고즈넉한 창밖을 내다보고  작품 하나 나올듯한.. 내 꿈 속에서 그렇게나 그리던

내 엄마같고  고향같으며  지난 아득한 기억속의 누런 한 페이지같은 그 곳이  떠나고 싶지 않았다.

 

 

 

내 가진 돈을 다 털어서라도  사버리고 싶을 만큼의.. ( 하지만 돈이 없다.  흑.. ) 그런 집.

인병선 시인이  신동엽 시인의 생가를 가보고

왜 그리  그곳을 온통 다 사들여서 복원하고 과거의 정지된 시간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했는지

시집을 막연히 읽어볼때는 전혀 몰랐었지만  막상 내가  그런 기분을 느껴보니  이해가 간다.

 

< 있었던 일 > 을  < 늘 있는 일 > 로 복원해놓고 싶은 마음..

우리는 < 살고 가는 것 > 이 아니라,  < 늘 살면서 가는 것 > 이어야 하는 그 마음을...

문터골을 가보고 나서야  인병선의 마음을 이해할 수가 있었다.

임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곧 사라지게될  이 귀하고 소중한 이 곳..

아.. 아스라이 가슴이 아파오고  어떻게 해서든  이 곳을  지키고 싶은데.. 

어찌해야 하나..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가장 좋은 것은  누가 이 언니네 집의  스폰서가 되어주는 일인데..

그래서 옛날처럼  화랑 전시회도 열고  손님들도 북적북적대는..  그런 문화적인 공간으로..

내가 가진 돈만 있다면  당장 그리 하고 싶은데..

아아아....

 

 

 

ㅡ어떤여자ㅡ

 

 

 

 
Je Suis Malade - Lara Fab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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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5.08.26 21:30

    첫댓글 '내 그리운 그곳' 이라' 는 글 제목에서부터 느껴지듯 글이 아니라 차라리 아름다운 그림이나 긴 시라 해도 무방할듯 싶네요. 사실적이고 단순, 소박한 표현들이 오히려 정결한 멋을 자아내요. 잘 읽었습니다.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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