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유에서 공연하는 '홀스또메르'라는 연극이 있습니다. 몇 년전 외국어대학 평생 교육원에서 '러시아'라는 나라를 공부하던 도중에 대표적인 연극으로 추천받았던 작품이었죠. 전 만사 제치고 대학 동창에게 예매를 부탁하고 함께 보자고 꼬드겼습니다. 두번째 보는데도 첫번보다 더 감동이었죠. 홀스또메르 역의 유인촌씨의 연기는 여전히 압권이었고 마굿간지기는 더 목소리가 거칠어졌더군요. 게다가 처음에 무심히 넘겼던 많은 메시지들을 새로 건졌습니다.
순종 말이면서도 어쩌다 얼룩말로 태어난 홀스또메르는 늙고 병든 초라한 말입니다. 그를 놀리고 비웃는 다른 말들에게 자신의 얘기를 하게 되고 지난 세월을 반추하는 형식인 역행적 구성으로 시작됩니다. 뼈대 있는 엄마말과 아빠말 사이에 태어났으나 그만 얼룩배기가 되는 바람에 품위는 귀족말이고 옷은 천하게 입은 불구가 되고 맙니다. '사랑'이나 '정을 통하다'라는 말을 처음 배우고도 무슨 뜻인지 모르고 자라다가 사랑하는 암말을 난봉꾼말에게 빼앗기고 나서야 홧김에 자기도 교미를 하고 맙니다. 그것을 안 주인은 얼룩이로 또 가치없는 말이 태어날 것을 우려해 거세를 시켜 버리게 됩니다. 그 일로 인해 자신의 정체성을 알게 된 홀스또메르는 말들의 사회에서 우스갯거리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뜻밖의 행운을 만나게 되는 우리의 인생처럼 자신을 알아주는 공작을 만나게 되고 그의 황금기는 시작됩니다. 경마에서 1위도 하고, 그의 사랑받는 '화려한'말이 되어 연인의 집에 데려다 주기도 하는 애마로 지내게 되지요. 그런 날들이 계속 된다면 누가 인생을 두려워 하겠어요? 홀스또메르의 황금기는 아주 어이없게 끝을 맺게 되는데 바로 공작의 연인 마쯔이가 정부와 달아난 겁니다. 충격을 받은 공작은 무리하게 그들을 뒤쫓아 달리게 하고 그만 홀스또메르는 탈진해서 주저앉아 그의 화려했던 젊은날은 끝을 보게 됩니다. 다시는 전처럼 달릴 수 없게 되어 버린 것이죠.
제대로 달리지 못하는 홀스또메르는 여기저기 팔려 다니며 짐을 나르기도 하고, 쟁기질도 하게 되지요. 종국엔 여기저기 병이 들어 종기 투성이가 되고 말들의 세계에서도 비웃음거리가 됩니다. 결국 도살을 당하게 되지요. 도살당한 홀스또메르는 껍질과 살은 늑대와 들개들의 먹이가 되고, 남은 두개골과 정강이뼈는 동물학자가 가져다 씁니다. 문득 인간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는 '아낌없는 나무' 생각이 났습니다. 말년의 홀스또메르는 늙은이가 되면 중후하거나 초라해보이거나 두 종류의 삶이 되는데 그 둘이 내재된 모습으로 죽어갑니다.
한편 홀스또메르를 사랑하던 그 공작은 마침내 경마도박으로 모든 것을 날리고 알콜 중독자가 되어 죽었는데 죽은 시신에 멋있는 제복을 입히고 썩어 부은 얼굴에 화장을 해서 온갖 것으로 꾸며 묻고도 무덤까지도 치장을 한다는 겁니다. 말따윈 인간의 소유물에 불과하다고 느끼던 공작의 말로와 하찮은 말이 남을 위해 모든 것을 내어 놓는 삶이 극명하게 대조되며 인간의 겉치레를 다시 생각케하는 멋진 연극이었습니다.
또 다른 메시지 하나는 소유에 관한 것이었지요. 인간은 내 것 나의 것이라고 말하길 좋아 하면서도 내 것을 사랑하지는 않는다는 메시지도 있었죠. '나의 사랑!' 하고 공작을 사랑하던 마쯔이가 다른 이를 사랑하는 것도 상징적으로 나오죠. 아주 쉽고 즐거운 연극입니다.
현대 연극이나 시들은 마치 어렵게 써야만 좋은 글인것처럼 때론 삶에 지친 우리 머리속을 더 어지럽히기도 합니다. 위로 받고 싶었는데 더 지치는 거죠.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이 인생의 진리는 아주 단순하고 쉬운 데에 있는 것이지, 비범한 데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지적 허영심을 충족시키는 글이나 연극은 때로 작가 자신은 알까 싶은 경우도 있어요. 현학적인 글은 결국 쉽게 말하지 못하는 나쁜 습관인 것 같기도 하거든요.
우스갯소리지만 예수님의 비유는 아주 쉬운데 신학자들의 해석은 너무 어려워 이 땅에 구세주가 재림 하시면 당신의 가르침을 알지 못하리라는 말도 있습니다. 가난한 목수의 아들이 무슨 교육을 받아 심오한 신학을 이해하겠느냐는 것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홀스또메르는 쉬운 메시지에 아주 심오한 삶의 아이러니가 숨겨진 재미난 연극이었습니다.
첫댓글 오랜만에 쉼을 가지면서 한편의 연극을 편안하게 본 것 같군요. 예수님께서도 우리에게 어린아이와 같이 단순하게 살라는 말씀... 살다보면 겉치레에 더 신경을 쓸데가 얼마나 많았는지 ...를 생각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