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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죄를 네가 알렸다?!”, <신과 함께>
영화를 보다가 문득 지나온 삶의 궤적을 돌이키는 경우가 있다. <1987>도 그렇지만 2011년에 개봉하여 736만 관객을 모은 영화 <써니> 역시 1980년대 향수(鄕愁)를 불러일으킨다. 저 시절 나는 뭘 하고 살았던가. 무슨 생각을 하며 하루하루 보냈을까, 하는 궁금증이 이는 것이다. 모든 지나간 것들은 아무리 쓰라리고 괴로웠다 해도 아름답고 그리운 추억으로 남는 법.
하지만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닐 터. 1440만 관객을 넘긴 <신과 함께>를 보면서 여러 가지 상념(傷念)에 빠져들었다. 죽음 이후에 우리가 맞닥뜨릴 세계는 어떤 곳인지, 하는 궁금증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영화는 그런 호기심과 궁금증을 ‘지옥’ 순례라는 절차를 통해서 선명하게 보여준다. 천국의 행복이나 충일(充溢)한 만족감이 아니라, 끔찍한 지옥순례를 발판으로!
사실 영화가 개봉되기 전에 온라인 웹툰으로 <신과 함께>를 미리 보았다. 협소하다 싶을 정도의 공간에서 펼쳐지는 사후의 다채로운 이야기가 흥미롭게 전개되어 있었다. 주호민 작가가 참조한 침고문헌이 만화 끄트머리에 여러 권 제시되어 있다는 점이 이채로웠다. 마치 한 편의 학술논문을 마무리하면서 참고문헌을 적시(摘示)하는 것처럼 정갈한 자세가 돋보였다.
전통적으로 이야기가 부족한 것도 아닌데 한국의 민담과 설화 혹은 신화와 전설은 매우 단편적이다. 720년에 30권으로 출간된 <일본서기>에는 이자나기와 이자나미로 대표되는 일본의 창세신화가 곡진(曲盡)하게 수록돼 있다. 이자나기가 아내 이자나미를 잃고 저승세계(요미)를 다녀오는 이야기는 오르페우스가 에우리디케를 찾아서 지하세계의 하데스를 만나는 장면과 유사하다. 부부의 사랑이 얼마나 극진하면 죽음마저 불사하려 했을까, 찬탄이 절로 나온다.
불의 신 가구쓰치(軻遇突智)를 낳다가 죽음을 맞이한 이자나미를 이승으로 데려오려는 이자나기는 아내의 얼굴을 보아서는 안 된다. 하지만 이자나기는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구더기에 덮여 썩어가는 아내의 모습을 확인하게 된다. 그로써 부부의 연(緣)은 끊기고 이자나기는 홀로 지상으로 귀환한다. 황천을 다녀온 몸이었기에 이자나기는 바닷물로 깨끗하게 목욕한다. 그런 과정에서 이자나기의 왼쪽 눈으로 태양의 여신 아마테라스(天照)가 태어난다. 달의 신 쓰쿠요미(月讀)는 오른쪽 눈에서, 바람의 신 스사노오(素戔鳴尊)는 귀에서 태어난다.
그리스 신화에서 태양신 아폴론은 남신(男神)이며, 달의 신 아르테미스는 여신이다. 전통적으로 동서양 공히 태양은 남성으로, 달은 여성으로 간주돼왔다. 그런데 <일본서기>는 태양신 아마테라스를 여신으로, 달의 신 쓰쿠요미를 남신으로 그려낸다. 중국의 음양오행 (陰陽五行) 사상이 <일본서기> 집필 당시에 아직 전해지지 않은 듯하다. 흥미로운 점은 <일본서기>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바람의 신 스사노오는 자신의 수염을 뽑아서 삼나무를, 눈썹털을 뽑아서 녹나무를, 가슴털을 뽑아서 편백나무를, 엉덩이털을 뽑아서 금송(金松)을 만든다. 삼나무와 녹나무로는 배를 만들고, 편백나무로는 궁궐을 짓고, 금송으로는 관재(棺材)로 쓰라고 스사노오는 지시한다. 실제로 임진왜란 당시 일본의 해상전투 주력을 맡은 안택선 (安宅船) 세키부네는 녹나무나 삼나무로 만들어졌다고 전한다. 1971년 송산리 고분에서 발굴된 무령왕릉의 관재는 금송으로 밝혀진다. 그런데 한반도에서는 관재로 쓰일 정도로 금송은 자라지 못한다. 고대 한반도, 특히 백제와 일본의 특수한 관계가 무령왕릉의 관재로 다시 한 번 입증된 셈이라 하겠다.
1143년에 간행된 우리의 가장 오랜 사서(史書)인 <삼국사기>에는 건국신화는 나오지만 창세설화나 신화는 없다. 1281년부터 1283년 어간에 출간된 것으로 보이는 <삼국유사>에서 우리는 조선의 건국신화와 만난다. 환인의 서자(庶子)인 환웅이 풍백, 우사, 운사와 3000의 무리를 거느리고 태백산 신단수 (神壇樹) 아래에서 신시를 열었다고 일연은 기록한다. 왜 하필 환웅은 서자였을까, 그리고 우사와 운사는 동일한 원소인 물을 가리키는 게 아닌가, 하는 궁금증이 생겨난다. (고대 그리스에서 사람들은 지수화풍(地水火風)의 4대원소를 언급했다.)
여기서 궁금한 대목이 신단수는 어떤 나무일까, 하는 점이다. 적잖은 사람들이 박달나무라고 말한다. 1287년에 이승휴가 저술한 것으로 알려진 <제왕운기>에도 그렇게 나온다고 한다. 경북대 명예교수 박상진은 다른 논지를 전개한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조상들과 친근한 나무지만 나무의 자람 특징으로 보아서 박달나무는 신단수가 되기에 부족한 점이 많다. 우선 박달나무는 수백 년에서 천 년을 넘길 만큼 오래 살지 못하고, 자라는 모양이 키다리 꼴이다. 그래서 가지를 넓게 펴서 주위를 넉넉하게 감싸고 악귀를 쫓아내는 신단수의 위엄과 넉넉함에는 미치지 못하는 나무다.” <역사가 새겨진 나무이야기>, 158쪽.
신단수의 실체를 밝히려고 박 교수는 민속학자들이 제기하는 서낭당과 신단(神壇)의 개념을 가지고 당산나무로 등장하는 느티나무에 주목한다. 한국의 전체 당산나무의 3분의 2가 느티나무라고 한다. 그에 따르면, 생명력이 매우 길고, 우아하고 고상한 자태와 커다란 덩치, 고아(高雅)한 품위를 가진 느티나무가 태백산 신단수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우리나라 사서와 민담 등에는 막연한 기록들이 대세를 이룬다.
필자는 일제 강점기에 육당 최남선이 집필했다는 <조선의 신화와 설화>를 찾아 읽어보고는 몹시 실망했다. 그가 말하는 ‘조선’의 개념은 내선일체(內鮮一體)에 기초한 것으로, 일본의 오키나와(류구열도)와 한반도는 물론이려니와 중국의 이야기까지 포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변절한 지식인이자 문필가 최남선의 뼛속 깊은 부일의식이 가슴에 저리게 다가왔다. 이런 한계를 최대한 극복하면서 그려진 만화가 주호민의 <신과 함께>라고 생각한다.
장르의 속성에 따른 차이 때문에 영화 <신과 함께>와 만화 <신과 함께>는 여러 가지 면에서 다르다. 웹튠에서 절대적인 인기를 얻어낸 탓에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도 상당수에 이른다고 한다. 만화에서 도달한 재미와 감동에 미치지 못할 것을 저어하는 때문이라 전한다. 이것은 명작소설을 원작으로 삼은 대다수 영화가 태작(駄作)에 머무르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것은 소설의 촘촘한 서술과 내면묘사 그리고 작가의 직접적인 개입 같은 요소가 불가능한 영화장르의 한계에 기인한다. 영화가 소설처럼 세세하게 설명하거나 강력하게 주장하기 시작하면 장르의 가능성이 사상(捨象)되어 붕괴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예외가 있다면 톨킨 원작을 영화로 만든 피터 잭슨의 영화 <반지의 제왕> 정도가 아닐까 한다. <신과 함께> 만화와 영화를 모두 보았지만 필자 생각으로는 양자 모두 나름대로 성공한 것으로 평가하고 싶다.
영화 초입에서 저승차사로 등장하는 덕춘이가 망자(亡者)인 김자홍 소방관을 저승입구인 초군문으로 데려가면서 내뱉는 말이 흥미롭다.
“김자홍씨께서는 오늘 예정대로 무사히 사망하셨습니다. 1593년 논개 (論介) 이후 424년 만에 저승 일곱 재판을 무사통과 할 확률이 가장 높다는 정의로운 망자 귀인이십니다.”
자신의 죽음을 실감하지 못하는 자홍에게 ‘제대로’ 죽었음을 알려주는 저승차사 덕춘. 그녀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무사히 사망하셨다”는 말은 얼마나 생경(生硬)하고 영화다운가?! 무탈하고 큰 문제없다는 의미의 어휘 ‘무사히’와 ‘사망’이란 단어의 결합이 선사하는 생뚱맞음이라니! 객석에서 터져 나오는 웃음에는 까닭이 있는 셈이다. 여기에 논개가 덧대진다.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고/ 불붙는 정열은 사랑보다도 강하다/ 아, 강낭콩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하고 시작하는 수주 (樹州) 변영로 시인의 <논개>를 기억하시는가. 1593년 무너져 내리는 진주성에서 왜장(倭將)을 끌어안고 남강 푸른 물속으로 몸을 던진 의로운 관기 (官妓) 논개를 추모한 시다. 김용화 감독은 무슨 까닭에 논개를 영화에 끌어들였을까, 하는 궁금증이 지금까지도 새록새록 생겨난다.
덕춘이의 말에서 우리는 자홍이 통과해야 하는 일곱 개의 재판이 영화의 기둥 줄거리를 이룰 것이라는 정보를 얻는다.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거룩한 인간 자홍도 저승의 일곱 재판을 그냥 지나갈 수는 없다는 점이 재미있다. 대한민국 대표재벌 삼성의 무법, 초법, 탈법, 위법, 범법과는 너무도 다른 저승의 추상같은 법도 (法度). 귀인이 아니라 거의 성인 수준에 오른 자홍이 과연 어떤 재판과 판결을 받아들 것인지, 그것이 궁금해지는 영화 <신과 함께>.
자홍은 살인지옥, 나태지옥, 거짓지옥, 불의지옥, 배신지옥, 폭력지옥, 천륜지옥을 차례로 지나가야 한다. 각각의 지옥에는 지옥의 특성을 담은 7개의 물질이 등장한다. 불, 물, 철, 얼음, 거울, 중력, 모래다. 살인을 범한 자는 불로 심판을 받고, 나태한 자는 물로써 단죄된다. 이런 식으로 7개의 지옥에는 7개의 물성(物性)으로 죄지은 자를 벌한다. 영화의 부제(副題)가 ‘죄와 벌’이라는 점은 그래서 설득력이 있다. 7개 관문에서 가장 극단적인 죄악인 살인을 제외하면 누구나 한두 개 정도는 해당사항이 있어 보인다. (필자도 예외가 아님을 고백한다.)
자홍을 인도하는 차사는 모두 셋이다. 덕춘과 해원맥, 그리고 차사들의 지도자이며 자홍의 변호인 역할을 맡은 강림(降臨)이 그들이다. 이승을 떠난 자홍은 저승세계를 두루 여행하지만, 차사들은 이승과 저승을 자유로이 왕래한다. 자홍은 지난날을 돌아보는 과정에서 그가 살아생전에 밟은 행적과 언행을 확인하는 것에 그친다. 저승에 설치된 거대한 진실의 거울 ‘업경(業鏡)’에는 망자들의 과거행적이 고스란히 비춰진다. 한 올의 거짓이나 기망(欺罔)도 지옥에서는 소용되지 아니한다. 영화를 보면서 적잖게 불편하고 오금이 오그라들었던 까닭은 그래서다.
자홍 만큼 착하게 그려진 인물이 자홍의 아우 수홍이다. 제대를 코앞에 둔 말년병장 수홍은 관심사병인 원 일병을 지극정성으로 보살핀다. 불의의 총기사고로 인해 이승을 떠나야 했던 수홍의 이야기가 이미 저승에 간 자홍의 이야기와 겹치면서 영화는 저승과 이승, 차사와 망자들의 이야기가 서로 긴밀하게 얽히면서 흥미와 눈물을 동시에 자아낸다. 영화 평론가들은 이구동성으로 <신과 함께>의 성공비결을 21세기 한국판 ‘신파(新派)’라고 지목한다.
오늘날 우리는 반복적이고 작위적(作爲的)인 눈물을 강요하고, 시대에 뒤진 클리셰(cliché)를 비아냥거리는 용어로 신파를 사용한다. 그러나 신파는 애초에 상당히 선진적인 요소를 소유하고 있었고, 그렇지 못한 것들을 구파(舊派)로 내몰았다. 1912년 식민지조선에 신파가 처음 등장한 이후 신파는 가정비극에 근거한 멜로드라마를 총칭했다. 오자키 고요(尾崎紅葉)의 <금색야차 金色夜叉>(1902)를 번안한 조중환의 <장한몽>(1913)이 조선신파의 대표작이다.
100년 전 식민지 조선시대와 마찬가지로 신파는 아직도 대한민국에 멀쩡하게 살아있거니와 막강한 위력마저 발휘한다. 세계최강의 드라마 왕국답게 일일연속극, 월화 드라마, 수목 드라마, 금요 스페셜, 주말 연속극, 방송국 개국기념 드라마, 특집극 등으로 이어지는 드라마의 홍수에서 한국인들은 오늘도 숨을 헐떡이고 있지 않은가?! 그 대부분의 드라마에 등장하는 신파의 요소가 숱한 시청자들을 여전히 쥐락펴락하고 있다.
<신과 함께>에서 객석을 눈물의 도가니로 몰아가는 장면이 있다. 말 못하는 엄마와 큰아들 자홍, 둘째아들 수홍이 겪어야했던 벌거벗은 가난과 꽉 막힌 탈출구가 단적인 본보기다. 기색혼절한 엄마와 영양실조에 걸린 어린 동생을 속수무책 보고만 있어야 했던 소년가장 자홍의 선택과 그 결과는 전형적인 가정비극이자 신파라 아니할 수 없다. 이런 장면이 객석의 소리 없는 흐느낌과 넘쳐나는 눈물로, 매표구에 줄지어선 관객들의 장사진(長蛇陣)으로 연결된 것은 너무나 당연한 노릇 아닐까. 한의 정서로 무장(武裝)했다는 한민족 아닌가?!
영화는 우리에게 바르고 정의롭게, 반듯하고 따뜻하게 살아갈 것을 권유한다. 21세기 4차 산업혁명 시기에 전근대의 권선징악(勸善懲惡)을 금과옥조(金科玉條)로 내세우는 영화 <신과 함께>. 그런데 왜 이토록 많은 관객들이 몰려든 것일까. 그것을 필자는 ‘죄의식’에서 찾고자 한다. 지옥의 일곱 가지 재판에서 드러나는 424년만의 엄청난 귀인 자홍의 크고 작은 오류와 죄악은 우리를 예상치 못한 전율(戰慄)로 인도한다.
자홍 정도의 인간이 범한 사소한 죄로도 지옥의 형벌을 면할 수 없다면, 나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문제제기. 죄를 지었으면 그에 합당한 벌을 받아야 한다는 인과응보(因果應報)의 세계관. 영화장르가 압도적인 우세를 보이는 시각적-청각적 효과와 빛나는 속도감. 해원상생(解寃相生)으로 끝나는 따뜻한 결말이 <신과 함께>를 천만신화의 반열로 끌고 가지 않았을까.
글을 마치면서
2017년 연말과 2018년 연초는 이들 세 편의 영화 덕분에 유쾌하고 따뜻하게 지나갔다. 불과 한 세대 전에 있었던 1987년 6월 항쟁의 가슴 먹먹한 추억의 환기(喚起)로 필자는 청춘시대로 귀환한 것 같은 환각을 맛볼 수 있었다. 문자 그대로 최루탄 냄새가 코끝을 스치는 듯 매캐한 기운이 엄습하는 짜릿한 순간의 기억이 온몸을 휘감았다. 그리고 떠올리는 박종철과 이한열, 두 열사(烈士)의 짧은 생애와 한국 민주주의를 위한 고귀한 희생. 그리고 마냥 부끄럽고 무기력했던 지난날의 반추(反芻)로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나약함으로 전율했다.
우리가 천형(天刑)처럼 수용하고 해결해야만 하는 남북의 분단문제를 새로운 각도로 조명하는 <강철비>에서 우리는 어떻게 북한과 핵문제를 들여다보아야 하는지 깊이 있게 사유한다. 남과 북의 분단과 재통일 혹은 전쟁과 평화는 남과 북의 문제만이 아니라, 동북아와 세계 전체의 운명과도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음을 새삼스레 인식한다. 어떤 경우라도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은 피해야 하며, 동족의 화해와 상생의 관점으로 분단극복의 길을 모색해야 마땅하다는 자명한 인식에 우리 모두가 도달하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이승에서 지은 죗값을 저승에서 고스란히 돌려받는 것이 합당하다는 가르침을 전달하는 영화 <신과 함께>. 그러기에 우리는 현세의 삶에서 개인적인 만족과 행복, 기쁨과 쾌락만이 아니라, 이웃과 공유하고 향수할 수 있는 공동체의식 역시 소중함을 깨달아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나와 가족 혹은 친지와 친척의 범주를 초월하여 살아있는 모든 존재를 향한 연민과 동정의 시선과 실천적인 행위만이 우리를 영원히 구원하리라는 확신으로 인도하는 바른생활 영화가 천만을 돌파했다는 고무적인 사실이 아직도 필자를 흐뭇하게 하고 있다.
이 글은 <사람의 문학> 2018년 봄호에 실렸습니다.